소설리스트

1화(1권) (1/57)

 一. 기이한 일을 겪고 천월하다

가을의 따사로운 해가 서서히 떠오르자 십방촌(十方村) 하늘을 에워싼 아침 안개가 서서히 흩어졌다. 조삼랑의 집 마당에 있는 감나무엔 잎은 거의 떨어지고 새빨간 감만 탐스럽게 걸려 있었다. 앙상한 어린 여자아이가 감나무 아래서 고개를 치켜들고 감을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한 손엔 무딘 부엌칼을, 다른 손엔 조롱박을 든 아이가 입은 무명옷은 군데군데 기웠고 짧아진 소매 아래 드러난 손목은 거무칙칙했다.

“대화(大花)! 또 농땡이 피우냐! 맞고 싶어 근질근질하지? 네 아비가 돌아오면 때려주라고 하마!” 

집 안에서 들리는 노씨의 호통에 감나무 위에 앉아 있던 까치가 푸드덕 날아갔다. 임새옥은 그 망할 이름에 이미 익숙해졌지만, 갑작스러운 쩌렁쩌렁한 소리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미련 가득한 눈으로 감을 힐끔 바라보고는 침을 닦고 조롱박을 자르기 시작했다. 

“조져주겠어!”

그녀는 저주하듯 한마디 하고는 단칼에 조롱박을 반으로 쪼갰다. 

막 딴 것이라 아직 야들야들하네. 

임새옥은 잠시 생각하다가 손으로 씨를 파내고는 즙이 묻은 채로 흙벽으로 내던졌다. 그 소리에 방 안에서 또 한 번 호통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그녀의 아우, 세 살배기 금단을 깨웠다고 욕하는 소리였다. 

임새옥은 어깨를 으쓱할 뿐 아랑곳하지 않았다. 또 아이를 가진 노씨는 전보다 더 포악해졌다. 진작 익숙해진 아이는 벽에 붙은 씨를 열렬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내일 바짝 마르면 먹을 수 있어!

젠장! 

임새옥은 소매로 코밑을 닦았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이게 뭐람? 

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죄지은 듯 주변을 둘러봤다. 해가 중천에 떠 있고 바람이 따사롭게 불었다. 모처럼 좋은 날씨고, 이상한 일도 없었다.

임새옥은 안도하며 조롱박을 잘게 잘랐다. 그리고는 뼈가 에일 정도로 차가운 우물물에 넣어 대충 헹군 다음 아궁이 위의 큰 솥에 던져 넣었다. 모든 것을 끝낸 그녀는 아궁이 아래 앉아 숨을 돌렸다. 

3년이다! 천월한 지 3년이라고! 

임새옥이란 이름은 땅 파먹는 재주밖에 없는 아버지가 가장 뿌듯해하는 작품이었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마을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눈먼 이야기꾼이 해준 이야기가 바로 <홍루몽(紅樓夢)>1)

아들을 오매불망 바라며 아내의 출산을 기다리던 임노삼은 딸을 낳았다는 말에 침을 크게 뱉고는 발을 쿵쿵 굴렀다. 

‘나도 임가요! 우리 애가 임대옥보다 미인이 되길 바라며 새옥이라고 불러야겠소!’ 

그렇게 임새옥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임대옥을 넘어서라고, 우열을 겨룰 ‘새(賽)’ 자를 붙여준 보람도 없이 오히려 갈수록 홍루몽에 나오는 일자무식 시녀 사대저(傻大姐)를 닮아갔기 때문이다. 물론 머리는 사대저보다 좋았지만, 임대옥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였다. 

매번 새로운 환경을 맞아 인사할 일이 있을 때마다 다들 목을 빼고 그녀를 바라봤다. 대체 어떤 빼어난 인물인가 하고 궁금해하던 사람들은 그녀가 나타나면 순식간에 뿔뿔이 흩어졌다. 이름을 바꾸려고 아버지와 십여 년 동안 죽어라 싸웠지만, 살아갈 날이 적은 아버지에게 져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포기하고 지혜로 외모 결함을 덮으려고 열심히 노력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하늘의 돌봄이 너무 부족해 지지리 운이 없던 그녀는 1지망을 잘못 쓰는 바람에 베이징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높은 점수로 어느 농과대학에 들어가고 말았다.

임새옥은 슬픔을 능력으로 승화하여 본과 4년을 마친 후, 석사 과정 2년을 밟았다. 박사 과정도 밟으려고 하다가 아버지의 편지에 정신을 차렸다. 계속 공부하려고 해도 집에 더는 팔 것이 없었다. 게다가 동생이 결혼도 해야 한다나!

그렇게 섬세한 편은 아니던 임새옥은 그제야 자기가 고생스럽게 공부하느라 십 년 동안 집안 살림을 거의 거덜 냈음을 깨달았다. 제 죄가 심각하다고 생각한 그녀는 인재를 갈구하는 헤드헌터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러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새옥은 당황했다. 벌써 스물다섯인 그녀는 운 좋게 실업자 대열에 들었다! 

요즘은 유학하고 돌아온 학생들도 몸을 낮춰 취업 문을 두드리는 추세인데 하물며 그녀는 비인기 전공에 나이까지 많았다. 그녀가 가축 시장 같은 인재 시장에 비집고 들어가 지켜보는 사이, 골프장 캐디 모집 조건이 중졸에서 고졸로 문턱이 높아지고, 구직자가 갈수록 늘어감에 따라 마지막엔 캐디의 학력 조건이 대졸까지 올라갔다. 

임새옥은 큰돈을 들인 경력을 홧김에 내던져 버리고 짐을 싸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임새옥의 고향인 하남(河南)은 한때 중화민족을 먹여 살린 가장 비옥한 땅이었다. 지금은 갈수록 농사짓는 사람이 줄고 마을 사람 절반이 타지에 일하러 나가는 판에, 마을에서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불리던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임노삼은 곧 쓰러질 것 같은 집 앞에 쭈그리고 앉은 채 꼬박 사흘 동안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임새옥은 눈치 보며 들락날락하면서 뻔뻔하게 한 달을 버텼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도 드디어 정상이 되었지만, 그녀는 곧 ‘배움은 무 쓸모’의 본보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사나흘에 한 번꼴로 자식을 학교에서 끌고 나와 일하러 가라고 도시로 등을 떠밀었다. 아이들이 내키지 않아 하면 부모들은 임가네 딸의 말로를 보라고 이를 악물고 외쳐댔다.

임새옥은 그런 아이들의 ‘그런가?’ 하는 시선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는 믿지 않았다. 지식이 밥벌이가 안 된다고? 그럴 리가 없어! 

마을엔 무엇이든 부족했지만, 땅만은 널리고 널렸다. 임새옥은 자기가 가진 돈 될 만한 것들을 눈을 질끈 감고 죄다 내다 팔았다. 6년 동안 쓴 책까지 다 팔아치우고 야산을 하나 도맡아서 과일나무를 심고, 잡곡을 심고, 닭, 돼지, 오리, 토끼를 키웠다. 

2년 동안 산에서 먹고 잤더니, 바람과 햇볕에 타서 날이 갈수록 까맣게 변하는 딸의 모습에 어머니는 산에서 내려와 결혼이나 하라고 울며 애원했다. 표현하진 않아도 사실 누나를 제일 좋아하는 남동생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시에서 돌아와 그녀와 함께 산을 일궜다.

‘누나는 유능한 사람이야. 난 알아.’ 

낯을 가리는 남동생이 한 말에 언제나 털털하던 임새옥은 반나절 동안 통곡했다. 

단 한 번도 좋은 얼굴빛을 보이지 않던 아버지도 비가 오는 밤이면 몰래 달려와 챙겨주기도 했다. 6년 동안 대학 공부를 헛되이 한 것도 아니고, 겉으로는 냉정해도 속으로는 열렬히 응원하는 가족의 모습에 자극받은 임새옥은 나날이 열심히 했다. 그렇게 2년 후, 대박이 났다! 

요즘 사람들은 뭐든 친환경 유기농과 연결한다는 걸 파악한 그녀는 과일, 채소 품종을 개량했다. 순식간에 그해 수확물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내년 치까지 모두 예약되었다. 그녀가 재빨리 지켜내지 못했다면, 온 산 가득 뛰어노는 닭, 오리, 돼지까지 싹 다 빼앗길 뻔했다.

실직자 임새옥은 드디어 기를 펴게 되었고, 비웃음 사던 임씨네 흙집은 이층집이 되어서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표가 되었다. 중매서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문턱이 다 닳고, 평생 구부정했던 임노삼의 허리가 드디어 곧게 펴질 지경이었다.

장래 유망한 청년 실업가 임새옥은 당연히 눈앞의 이익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친환경 농업을 크게 할 생각이었다. 마을에 더 많은 땅을 사들이고 농공학을 보급하려고 준비하던 그때, 어느 비바람이 부는 밤에 천월하고 말았다. 

눈을 떴더니 열 살짜리 소녀가 된 걸 안 임새옥은 그 즉시 눈앞에 보이는 기둥에 머리를 박았다. 인생에서 가장 우울하던 시절, 그녀는 한때 천월 소설에 빠져 있었다. 이렇게 비참하게 살 바에는 차라리 천월시켜 달라고 날마다 빌기도 했었다. 그러면 취업난 하나 해결해 사회에 이바지하는 거니까. 그런데 지금은 한창 기세등등하게 사업을 넓히며 새 시대의 우수 청년상을 제시하려던 참에 천월? 하늘도 무심하시지! 

몇 년 전에 했던 간절한 기도가 로딩이 걸려서 뒤늦게 하늘에 도착한 걸까.

죽는 데 실패한 임새옥은 튼실한 여자에게 덜렁 잡혀 모질게 맞고 한바탕 욕을 먹었다. 기세가 어찌나 맹렬한지 주먹이 말보다 앞서는 임노삼도 질 정도였고, 머리 박고 죽어서 염라전에 가도 염라대왕 앞에서 자신을 끌고 올 정도였다.

여자가 무섭게 욕해대는 소리를 들으며 임새옥은 이 여자아이가 우물에 미끄러져서 죽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다가 죽은 사람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난 건지는 임새옥의 연구 범위에 속하지 않았다. 천월했다는 현실만 아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했다. 

남겨진 소녀의 기억이 아니었다면, 이 여자가 자기 엄마라는 걸 때려죽여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엄마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임새옥은 머리 박고 죽고 싶은 충동이 다시 한번 일었다. 이름값 못하는 이름을 드디어 벗어났다는 좋은 소식과 함께 더 개똥 같은 이름이 생겼다는 나쁜 소식이 찾아왔다. 꽃! 꽃이라니! 게다가 성이 조라고! 

조화! 임새옥은 이 집 주인에게 바짝 엎드려 감탄할 지경이었다. 이런 좋은 이름을 다 생각해 내다니, 인재로구나! 

신세 한탄하던 임새옥은 나무 문이 끼익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곧바로 아궁이 앞에서 벌떡 일어나 제 키 높이만 한 아궁이 앞에 서서 채소죽을 휘저었다.

조삼랑이 거름 광주리를 짊어지고 들어오자 기척을 들은 노씨가 두꺼운 옷을 껴입은 금단을 안고 안에서 나왔다. 

“대화야, 아버지 물 떠다 드리렴!” 

그녀는 그렇게 고함치고는 금단을 조삼랑에게 넘겼다. 임신 4개월이라, 안 그래도 튼실한 몸에 살까지 쪄서 얼핏 보면 구르는 공처럼 보였다.

세 살인 금단은 키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아이는 땅딸막한 몸으로 히죽히죽 조삼랑의 어깨를 두드리며 아버지, 하고 불렀다. 

화기애애한 그 모습에 임새옥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나 불평은 할 수 없었다. 막 천월해서 왔을 때, 밤낮없이 하늘을 삿대질하며 신선, 보살, 그리고 요괴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녀 곁에 있던 키 작은 나무에 벼락이 떨어진 어느 날, 임새옥은 입을 다물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지! 게다가 사는 게 좀 고돼서 그렇지, 금손을 가진 성공한 천월 인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니 좋은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 되잖아!

그녀는 뜬금없이 이세계로 온 무기력한 슬픔을 금세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동경으로 승화했다. 뭐가 어찌 됐든, 그녀는 천월자였다. 천월자라고! 대단히 멋진 일이라고! 

천월 성공자! 임새옥은 그동안 명나라, 송나라로 천월한 의기양양, 기고만장한 천월자들을 침을 흘리며 부러워했었다. 또 자기 지식을 가지고 천월하면 어떻게 해도 대지주가 될 것이라고 수많이 꿈꿔왔었다. 

천월한 시기가 조금 아쉬웠지만, 새로운 생활엔 새로운 도전이 있는 법. 어쩌면 자신이 세상에 손꼽는 인재가 아닐까? 인재란 모름지기 마음을 괴롭게 하고, 몸을 고생시키며, 배를 굶주리게 하고, 가진 것이 없게 하고, 하는 모든 일을 어지럽고 힘들게 하는 역경을 겪어야 하는 법이다. 2)

임새옥은 그 생각만 하면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변변치 못한 생활이든, 노씨의 구박이든 신경 쓰지 않고 희희낙락 살 수 있었다. 

처음부터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아이였는데 뭐. 이 여자가 진짜 내 부모도 아니고, 마음대로 하라지! 

조화라는 아이는 원래 답답하고 굼뜬 아이였는지, 평소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서 노씨 부부도 자기 딸이 영혼이 바뀐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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