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 추억의 무덤
폐하께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셨다.
죽은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한없이 약해지는 분이셨다. 이쯤에서 그만둬도 된단 걸 알면서도, 나는 가슴 속에 쌓아둔 말을 토해내듯 내뱉었다.
“저 아이가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황족을 잡아먹은 생과부라고 했습니다.”
나는 폐하의 눈을 보며 카리나를 가리켰다.
“왜 제가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합니까? 황후 폐하와 황태자 전하, 소중한 가족들을 가슴에 묻고 슬퍼하실 폐하가 걱정되어 황궁에 남은 저를, 고작 남편 없는 과부랍니다.”
“…….”
“황후 폐하의 패물은 훗날 황태자가 정해지고 결혼식을 올릴 때 착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제 마음도 편하고, 절 보는 폐하의 마음도 편해지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
“하지만 폐하께선 그러지 않으셨죠. 이 모든 사달을 만든 이는 제가 아닙니다. 사과를 해야 할 이도 제가 아니고요.”
감정을 추스르려 꽉 잡고 있던 드레스 자락을 손에서 놓았다. 이제야 풀린 손에서 저릿한 감각이 느껴졌다. 차마 흘리지 못한 눈물이 가슴 속으로 계속해서 떨어졌다.
나는 여전히 고개 숙인 황제께 인사를 드리고 카리나를 외면한 채, 황제전을 나왔다.
* * *
“공작 부인!”
황제전을 나오자 로제와 슈리의 모습이 보였다. 둘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내가 문밖을 나오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왔다.
“공작 부인, 손은…… 손은 괜찮으세요?”
로제가 붕대에 감긴 내 손을 보더니 참고 있던 눈물을 뚝뚝 흘렸다. 늘 씩씩한 슈리마저 코끝이 빨개져서 훌쩍였다. 두 사람 다 황제전에서 언성이 오가던 걸 들은 모양이었다.
“실비아는? 언니는 공작 저로 모셔다드렸어?”
“네. 제가 잘 모셔다드리고 왔어요. 놀라시지 않게 설명도 잘 드렸고요.”
슈리가 재빨리 대답했다. 나는 슈리에게 잘했다고,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오늘 많이 놀라셨죠, 공작 부인?”
“아니야, 로제 네가 더 놀랐겠지. 네가 처음 발견했잖아, 메이를.”
그러고 보니 메이를 수습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메이를 돌보지 못했지만, 더 늦기 전에 고운 모습으로 보내줘야 했다.
“메이는 누가 데려갔어?”
“헬리온 대공께서 데려가셨어요.”
로제의 말에 내가 새장을 향해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헬리온이……?”
“예.”
“어떻게……? 헬리온이 새장에 왔었어?”
“아뇨, 그건 아니고 얼음독수리가 데려갔어요.”
“뮬이? 뮬이 누굴 데려가?”
“앵무새를요. 얼음독수리가 죽은 앵무새를 물고 가서는 헬리온의 처소 창가에서 울어댔어요.”
슈리의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뮬도 전부 보았을 거야.’
메이를 어미처럼 따랐던 뮬이었다. 어미가 죽은 충격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뮬이 얼마나 슬펐을까.
“헬리온 대공은 지금 처소에 있어?”
“예, 공작 부인.”
슈리의 대답에 나는 발걸음을 돌려 헬리온의 처소로 향했다.
* * *
“대공 전하, 윈테라 공작 부인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 하라.
하인들이 열어주는 문을 넘어 헬리온의 처소로 들어갔다. 발을 내딛기 무섭게 나를 반기는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활짝 열린 창가에 앉아 있는 칸이었다.
“칸.”
이름을 불러주자 칸이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구슬픈 울음소리를 냈다. 칸의 옆에는 작은 횃대에 축 늘어진 뮬이 있었다. 비록 말 못 하는 짐승이지만, 뮬의 노란 눈동자에는 슬픔이 짙게 배어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오크색 책상 위에서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헬리온의 모습이 보였다.
“헬리온?”
“아, 이슈텔.”
헬리온의 손끝에서 길고 뾰족한 것이 반짝였다. 은빛 바늘이었다. 하얀 실이 걸려있는 바늘은 마지막 땀을 끝으로 옆에 놓인 반짇고리에 꽂혔다.
“메이는? 뮬이 너한테 메이를 데리고 왔다고 해서 왔는데.”
“안 그래도 막 너한테 가려던 참이었어.”
헬리온이 몸을 옆으로 비키며 책상 위를 보여주었다. 금빛 보자기 위에 고이 잠든 듯 놓인 메이의 모습이 보였다.
“메이…….”
낮에 새장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고운 모습이었다. 날카로운 이빨에 물려 찢겨있던 목은 몸 색과 비슷한 실에 엮여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붉은 피가 떨어져 있던 몸은 깨끗이 씻겨져 있었고, 초점 잃은 검은 눈동자는 깊은 잠에 빠진 듯 살며시 감겨 있었다.
“꼭 잠든 것 같네.”
허리를 숙여 메이를 가까이에서 보았다. 이렇게 보니 아직 살아있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작은 머리를 내 어깨에 비비며 재잘재잘 나를 놀릴 것 같았다.
“고마워, 헬리온. 나 대신 메이를 수습해줘서.”
내가 헬리온을 보며 말했다.
“뮬이 메이를 데리고 와서 많이 놀랐지?”
“놀라긴 했지. 뮬이 유리창을 두드리길래 문을 열어줬더니 메이가……. 이게 무슨 일인가 해서 슈리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물어봤어.”
헬리온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메이 일은 유감이야. 네가 많이 아끼는 친구였잖아.”
“맞아. 메이는 새가 아니라 친구지.”
나는 손을 뻗어 메이의 몸을 쓰다듬었다. 낮보다 훨씬 더 굳은 메이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보내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지금 이 모습 그대로 기억될 수 있게 해주자.”
“나, 못 할 거 같은데.”
“이슈텔…….”
“이렇게 예쁜데……. 이것 봐, 아직도 살아있는 것 같잖아……. 그냥 잠든 거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무어라 말을 더 이을 수가 없었다. 감정이 복받쳐서 한마디라도 더 했다가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흐를 것 같았다.
“이슈텔.”
날 부르는 헬리온의 목소리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겨우 고개만 끄덕였다. 헬리온이 금빛 보자기로 메이의 몸을 감쌌다.
“가자, 내가 옆에 있어 줄게.”
* * *
헬리온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새장 뒤편의 작은 언덕이었다. 낮에는 해가 잘 들고, 밤에도 너무 춥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우리를 따라 나온 칸과 뮬이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에 앉아 땅을 파는 헬리온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헬리온 옆에 앉아 보자기에 싸인 메이의 몸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질 수 있도록 품에 꼭 안아주었다.
“헬리온.”
“응?”
내 부름에 헬리온이 흙을 고르다 말고 나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메이를 죽인 고양이를 탓하니까 그 주인이 뭐라고 한 줄 알아? 고양이가 새를 사냥하는 건 본능이고 천성이래.”
나는 낮에 새장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메이가 죽은 데엔 아무런 이유가 없는 거야. 그냥 메이가 새라서, 그리고 그곳에 고양이가 있어서. 그래서 죽은 거래.”
“…….”
“그 말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아. 고작 그런 이유로……, 그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메이를 잃고 싶지 않은데…….”
헬리온이 파놓은 구덩이가 깊어 보였다. 저 안에 이 작은 몸을 홀로 뉘어야 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마음 아팠다.
“이슈텔.”
헬리온이 한쪽 무릎을 꿇어앉은 채로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어스름한 달빛 아래로 보이는 그의 푸른 눈동자가 어느 때보다 깊어 보였다.
그가 흙 묻은 장갑을 벗어 땅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내 뺨을 어루만졌다.
“이해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마. 이럴 땐 그냥 참지 말고 울어. 그래도 돼.”
헬리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하루 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억눌러왔던 감정들과 모진 말들에 받은 상처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수명이 긴 새야. 신경 써서 기르면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같이 살 수 있었는데. 내가 좀 더 잘해줬어야 했어. 메이가 장난을 칠 때, 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며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켜버렸다. 나는 내 안에 얽힌 감정들을 마주하며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이렇게 아픈데, 이렇게 슬픈데 말할 데가 없어. 폐하께선 날 넌더리가 난다는 듯이 쳐다보시고 사람들은 날 무서워해. 아니야, 난 그저…… 그저…….”
눈물은 계속 흐르는데 날 채운 이 불안한 감정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답답했다. 너무 가슴이 답답하여 메이도 내려놓은 채 주먹으로 내 가슴을 쳤다.
헬리온이 내 손을 잡아 몸에서 떼어 놓았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우듯 몸을 숙여 나를 끌어안았다.
“이슈텔, 괜찮아. 괜찮으니까 하고 싶은 말, 다 해.”
“너무 외로워.”
나는 무서웠다. 그리고 외로웠다. 이미 오래전에 나를 떠나 그녀에게로 옮겨간 폐하의 정이, 죽은 연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리드의 마음이.
어릴 적부터 나는 줄곧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왔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황후 폐하와 황태자까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떠났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나를 사랑해주었지만 결국 하나하나씩 멀어져만 갔다.
변하지 않는 건 세상에 없단 걸 알면서도, 나는 간절히 바랐다. 영원히 내 곁에서 변치 않는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을.
나를 품에 안은 헬리온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알고 싶었다. 헬리온이 내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지.
“내가 있는 한, 넌 혼자 될 일 없어. 걱정하지 마.”
헬리온이 내 등 뒤로 뻗은 손을 쓸어 몸을 다독여주었다. 그의 부드러운 손길을 따라 내 울음도 점점 잦아들었다. 마침내 그가 손짓을 멈추었을 때, 내 숨소리는 한결 차분해졌다.
“정말 그래 줄 수 있어?”
내가 헬리온의 품에 이마를 기댄 채 물었다.
“지금처럼 네가 필요할 때, 언제고 내 곁에 함께해 줄 수 있어?”
헬리온이 천천히 내게서 몸을 떼었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옅게 미소 지었다.
“네가 허락만 해준다면 얼마든지.”
그 말이 뭐라고 겨우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렀다. 당황한 헬리온이 제가 말실수를 한 줄 알고 내 눈치를 살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살짝 웃고 말았다.
“고마워, 헬리온.”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하지만 그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헬리온이 얼굴을 붉히며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늘 어리게만 느껴졌던 헬리온이 오늘따라 어른같이 커 보였다. 아니, 어쩌면 늘 그를 어리게만 본 내가 더 어린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헬리온이 손을 잡아 나를 일으켜 주었다. 나는 메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속삭인 후, 작은 몸을 감싼 보자기를 흙 아래로 넣었다.
헬리온이 메이를 흙으로 덮을 때, 다시금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나무 위에 앉아있던 칸과 뮬도 구슬픈 울음소리를 냈다.
메이를 묻어 두고 황궁으로 돌아가는 길, 무거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럴 때마다 헬리온은 한 번도 재촉하지 않고 내가 다시 걸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렇게 수십 번을 반복한 끝에 우리는 황궁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