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3화>
유현은 기억을 곱씹으며 싸늘한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니, 모르긴 몰라도 훨씬 더 심했으리란 쪽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뉴욕의 아파트는 방음이 형편없는 데다가, 그날 그는 오히려 들으란 듯이 유치하게 굴었으니까.
물론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와 데이트를 즐기는 편도, 고작 첫 데이트에 섹스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모든 게 그의 정상 궤도를 벗어나 어이없는 방향으로 멋대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은…… 분명 ‘그 여자’로부터일 테지.
그 여자는 예전부터 늘 유현의 시야에 걸렸다. 아니, 정확히는, 거슬렸다.
빈티 나는 차림새와 제 덩치보다 커다란 백팩을 언제나 등에 짊어지고 있는 황당한 모습. 대체 뭘 그렇게 꾸역꾸역 집어넣고 다니는지 빵빵하게 부푼 낡은 가방이 엉덩이 아래까지 처져 있는 모양새는 가히 놀라웠다.
언제든 당장 뒤로 발라당 꼬꾸라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신기한 광경에 유현은 쉽사리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별 힘도 못 쓰게 생겨서는 무슨 저딴 가방을…….
가늘기 짝이 없는 몸에 무식하게 큰 걸 등에 메고 다니면서도 여자가 용케 뒤로 나자빠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언제나 꼿꼿하게 등을 세운 자세 때문일 거라고 실없이 생각했었다. 그런 실없는 생각이 반복되고, 언젠가부터 짧은 시선의 마주침이 이어졌다.
질끈 높게 묶은 머리카락이 명랑하게 좌우로 흔들거리는 모습에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중독성이 있었다. 걷는 소리조차 내지 않을 정도로 조용조용 차분하게 걷는데, 그 뒤통수에 달린 머리카락은 어떻게 저렇게 쾌활하게 춤을 출 수 있는지.
그걸 궁금해하는 사람이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것에 유현은 제 여권도 걸 수 있었다. 캠퍼스 끝에서부터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리카락이 나타나는 순간, 주변을 휘감는 묘한 정적에 그는 번번이 목이 탔다.
부러질 듯이 가늘고 새하얗게 질린 목선에 흘러나온 숱 많은 잔머리를 볼 때마다 가슴 언저리에 불쾌감이 번졌다. 뭘 제대로 먹고 다니지도 못하는 듯 빈곤해 보이는 꼴이 시간이 갈수록 그를 언짢게 만들었다.
돈을 아끼려는 심산인지 여자는 핫도그나 도넛 따위를 물고 다니면서 점심을 때우곤 했다. 캠퍼스의 잔디밭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서 잘도 입을 오물거렸는데, 여자의 시선은 오로지 무릎 위에 놓인 무식하리만치 두꺼운 서적에 꽂혀 있었다. 좀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여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면 그는 늘 멍청한 기분을 느꼈다. 인생을 통틀어 지겹도록 주목받으며 살아온 그에게 이토록 완벽한 무관심이란, 신선했으며 생소했다.
당최 핫도그 하나도 한입에 삼키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이 작은 입마저 그의 심기를 건드릴 즈음, 유현은 여자가 살 곳을 찾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같이 살던 애가 갑자기 운 좋게 취업을 해서 캘리포니아로 갔나 봐. 혼자서는 원래 집 월세 감당 못 해서 나온다던데. 들어 보니까, 학교 근처에서 구하긴 어려울 것 같더라고.’
학업과 병행해 조교로 일하며 받는 월급으로 뉴욕의 아파트 월세를 충당하기란 쉽지 않을 일일 터였다.
‘나도 주변에 하우스메이트 구하는 애들 좀 있으니까 소개해 줄까 해서 예산 물어봤는데, 그거 듣고 어이가 없어서…….’
무관심에는 통 면역이 없던 그는 생전 안 하던 짓을 감행했다.
‘집 구한다며?’
스스로도 느닷없는 오지랖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별로 상관없었다. 그는 원래 거슬리는 것을 견디기보다는 치워 버리는 쪽을 좋아했으니까.
어중간하게 얼쩡거리게 두는 것보다 차라리 눈앞에 가까이 치워 버리는 게 나았다.
‘……월세가 얼마인데?’
‘돈은 필요 없고, 날 거슬리게 하지만 않으면 돼.’
여자의 모든 게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점은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쾅.
방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유현은 담뱃갑과 라이터를 아무렇게나 던지고 침대에 털썩 앉았다.
그날, 방음이 형편없는 방 너머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떡 치는 소리를 여과 없이 들었을 그 여자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수도 없이 상상했다.
쓰레기라고 경멸할까.
걸레 같다고 혐오하려나.
유현은 팔로 뒤통수를 받치고 침대 헤드에 가만히 등을 기댔다. 미간이 있는 대로 찌푸려졌다.
무수히 많은 상상 끝에 가장 그럴듯하게 그려지는 장면은…… 그가 다른 여자와 떡을 치든지 말든지, 아무 상관 없다는 평온한 얼굴로 책상에 앉아 책이나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를 경멸하는 것도, 혐오하는 것도 아닌 완전한 무관심이 스스로를 더욱 등신처럼 느껴지게 했다.
“뭐야, 씨발…….”
험상궂게 일그러진 눈매가 꿈틀거렸다. 유현의 시선이 신경질적으로 아래를 향했다.
“이건 또 왜 서고 지랄이야.”
유현은 하늘을 향해 황당하리만치 바짝 발기한 성기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눈치껏 가라앉기는커녕, 뻐근해질 정도로 더 크게 부풀어 오를 뿐이었다. 텐트라도 친 것처럼 얇은 홈웨어를 밀어내며 불룩 솟아 있는 꼬락서니가 기가 막혔다.
유현은 도무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물건에서 시선을 거두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켠 그가 통화 목록을 띄워 놓고 손을 멈추었다.
“……씹.”
집 안까지 끌어들여 놓고 정작 여자의 전화번호도 모른다니.
그는 짜증스럽게 핸드폰을 던져 버렸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당장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평소 살갑게 통화하는 사이가 아닐뿐더러, 아무렇게나 섹스하고 다니는 놈이 집을 비워 줬다고 오히려 맘 편히 두 다리 쭉 뻗고 평화롭게 지내고 있을 테지만.
유현은 전혀 평화롭지 않은 상태인 자신의 하체를 성가시단 눈길로 노려보다가 결국 손을 뻗었다. 그사이 페니스는 더 크게 발기해, 바지마저 적시고 있었다.
“하.”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찌나 뻣뻣하게 서 있는지, 바지춤을 살짝 들추는 것만으로 갑갑하게 눌려 있던 억압에서 해방되기 충분했다. 이미 드로어즈 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좆이 용수철처럼 퉁겨져 나와 거세게 꺼떡거렸다.
유현은 기둥을 거머쥐고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었다. 귀두에서 흘러내린 쿠퍼액을 훑어서 자위하기 좋게 성기 전체에 문질러 바른 후 위아래로 손을 움직였다. 동시에 눈을 감자 눈앞에 어둠이 내렸다.
숨을 내쉬는 가슴팍이 자위하는 사람답지 않게 느긋하게 오르내렸다. 그러나 찰나의 여유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올린 탓에 드러난 목울대가 이내 크게 꿈틀거렸다.
‘욕실 다 썼어.’
물기에 젖은 잔머리가 새하얀 목줄기에 들러붙어 있는 모습이 그의 시야를 어른어른 차지했다.
여자는 매일 같은 시간에 샤워를 했다. 답답하지도 않은지 욕실 안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옷을 단단히 갖춰 입고 나왔다.
혼자 살던 버릇 못 버리고 헐벗은 몸으로 집 안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그를 향한 소리 없는 시위라는 것을 눈치챘지만, 그냥 모른 척했다.
탁탁탁.
커다란 손이 기둥을 빠르게 쳐올렸다. 성기를 움켜쥔 손아귀에 강한 힘을 가하며 유현은 거친 한숨을 터뜨렸다.
‘찝찝하지 않나? 그렇게 씻고 바로 옷 입고 나오면.’
‘……괜찮은데.’
‘안 볼 테니까 편하게 해.’
안 보긴, 씨발…….
옷을 걸쳐 입을 때 마음이 퍽 급했는지, 미처 닦아 내지 못한 물기로 동그랗게 젖어 있는 그녀의 어깨 부근을 훔쳐보았다. 변태 새끼처럼. 순간 척추 아래가 지끈거리고 등줄기에 전기가 흐르던 감각이 선명하다.
“크읏…….”
유현은 페니스를 빠르게 훑던 손을 우뚝 멈춰 세우며 이를 악물었다. 매끈한 귀두에서 허연 정액이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기둥을 움켜쥔 손등에 불거진 핏대가 꿈틀거렸다. 벌름거리는 귀두구에서 하늘을 향해 직선으로 솟구치는 정액의 양이 상당했다.
사정하는 동안에도 페니스를 탁탁탁 빠르게 쳐올리며 자극을 계속하는 유현은 눈을 내리감고 있었다.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듯이.
“큿!”
어깨와 팔, 가슴, 허리, 복근으로 이어지는 모든 근육이 폭발할 것처럼 일제히 불끈거렸다. 하체의 사정은 더욱 괴팍했다. 허벅지는 딴딴하게 부풀고 고환이 사타구니에 쩍 올라붙었다. 마지막 정액을 짜내듯이 기둥을 강하게 압박한 유현의 손등에 미끄덩한 점액질의 액체가 질금질금 흘러내렸다.
“후우.”
유현은 낮은 한숨을 내쉬며 티슈를 뽑아 손에 묻은 정액을 대충 닦아 냈다. 무언가 머리카락을 타고 주르륵 흐르는 느낌에 손을 이마로 가져가니 거기에도 정액이 튀어 있었다.
“씹…….”
이게 뭔 짓거리야.
이래서 자위할 때도 좆에 콘돔을 끼우고 뒤처리를 깔끔히 하는 것을 선호하는 그로선 짜증 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은 티셔츠를 내려다보고 팔을 교차해 벗었다.
머리 위로 티셔츠를 빼내던 유현이 돌연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마에 튄 정액은 양호한 수준이었다. 침대 뒤편의 벽뿐만 아니라 천장까지 튀어 오른 흰 정액이 그를 놀리듯이 질척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유현은 멍청한 기분에 휩싸여 허탈한 실소를 흘렸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를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놈으로 만들어 버린 그 여자는 지금 이 순간 지구 반대편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문득 견딜 수 없을 만큼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