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3화 (76/96)

<외전 3화>

여유롭고 점잖은 척 아연을 다독이기는 했지만, 성현은 입술을 짓씹으며 헛웃음을 삼켰다.

한계에 다다른 것은 오히려 제 쪽이었다. 당장이라도 아연의 좁은 구멍 안을 맛보고 싶어 안달이 난 좆에 뻐근하게 혈액이 몰려서, 심지어는 불알까지 지끈거릴 지경이었으니.

성현은 시뻘겋게 열 오른 귀두로 질구를 쿡 쑤셨다. 요망한 구멍이 얼른 제 안으로 들어오라고 유혹하듯 씨근씨근 벌름거리는 게 보였다.

절로 앓는 듯한 침음이 흘러나왔다. 한계를 알리는 경고등이 머릿속을 울렸다. 성현은 미간을 좁힌 채 아연의 골반을 고쳐 잡았다.

도망가지 못하게 가녀린 골반을 꽉 붙든 그가 자비 없이 허리를 퍽 쳐올렸다.

“하으읏!”

두 사람의 성기가 빈틈없이 결합하며 엄청난 소리가 났다. 안쪽에 고여 있던 애액이 팟 하고 터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하얗고 마른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성현은 가냘프게 흐느끼며 무너져 내리는 아연의 몸을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파들파들 떨리는 아랫배를 받쳐 들고 잔뜩 긴장한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후우.”

낮은 숨을 내쉬며 평정을 유지하려 해 보았지만, 여유 따위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통제를 벗어난 감각이 뇌리를 허옇게 물들였다.

뜨끈하고 미끈한 속살이 쩍 들러붙어 좆기둥을 사정없이 쥐어짰다. 눈앞에 온갖 색깔의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경직된 등골이 쩌릿하게 조여들었다.

미칠 듯한 사정감이 척추 하나하나를 따라 전류처럼 흘러내렸다. 당장이라도 정액을 쏘아 보낼 준비를 마친 고환이 사타구니에 바짝 올라붙는 게 느껴졌다.

견디기 어려운 폭풍 같은 전율.

매번, 매 순간, 아연을 탐하는 일분일초가 목이 메는 기분이다.

아무리 꽉 끌어안고 깊숙이 파고들어도 여전히 바닥없는 갈급함에 허덕일 뿐. 그의 안에 자리한 만족을 모르는 괴물은 탐욕스럽게 아가리를 벌리고 몸을 불렸다.

이 목마름의 끝은 무엇일지.

성현은 아연의 가느다란 몸을 유일한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억세게 움켜잡고 이를 악물었다. 그가 허리를 쳐올리는 박자에 맞춰 속절없이 흔들리는 것은 그녀인데, 정작 뿌리까지 뒤흔들리고 혼돈 속에 헤매는 건 그 자신이었다.

태어나 한 번도 두려움 따위 배우지 않고 오만하게 자란 그는 한아연이라는 존재에게서 거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를 통째로 헤집고 집어삼키는 아름다운 지배자.

영원히 나를 떠나지 말고 나를 지배해 주기를. 내게 목줄을 메고 그 목줄을 쥔 너의 손을 기꺼이 휘둘러 주기를.

오늘도 타는 듯한 갈증은 짙어져 갈 뿐이었다.

* * *

땡.

엘리베이터 도착 음이 울리고 번쩍이는 금속 문이 스르륵 열렸다. 뚜벅뚜벅. 먼지 하나 없이 잘 닦인 구두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걸어 나왔다.

절도 있는 걸음걸이. 일정한 보폭으로 걷던 구둣발은 1301호 명패가 붙은 현관문 앞에 멈춰 섰다.

“크흠.”

헛기침을 하여 가라앉은 목을 가다듬은 김 실장은 자신의 옷차림을 훑어 어디 흐트러진 부분은 없는지를 체크했다. 그와 동시에 왼손에 들고 있던 부직포 가방을 더욱 높이 들었다. 가방 안에 고이 모셔 온 정장의 각이 상하지 않도록 성심을 다하는 태도였다.

오른손에 쥔 쇼핑백을 왼손으로 한데 옮겨 쥐며 그가 쇼핑백 안쪽을 흘끗 살폈다. 안에는 검푸른빛을 띠는 넥타이가 곱게 들어 있었다. 복도의 어스름한 조명을 받은 실크 표면에 고급스러운 윤기가 흘렀다.

챙겨 온 정장과의 색 조화를 고려하여 퍼스널 쇼퍼가 미리 매칭해 둔 것이었다. 주인의 취향을 반영해 세련되고 심플한 디자인.

김 실장은 지금 존경해 마지않는 상사를 모시러 온 참이었다. 빌라의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상사의 집에 들러 그가 오늘 입을 옷을 챙겨서.

“…….”

쇼핑백에서 시선을 떼어 낸 김 실장이 친절한 미소를 만면에 띠고 초인종을 눌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초조하게 기다리던 그가 마른 입술을 혀로 슬쩍 훑었다. 다시 한번 벨을 눌러야 하나 망설이는 순간, 현관문의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가 울렸다.

삐리릭.

문고리를 잡아당겨 여는데 그새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흠씬 젖어 있었다. 김 실장은 허벅지에 축축한 손바닥을 스윽 훔친 뒤 쇼핑백을 다시 오른손에 바꿔 쥐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저 왔습니다, 본부장님!”

김 실장은 경고하듯 큰 소리로 자신의 방문을 알렸다. 그리고 우렁찬 목소리와는 달리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살금살금 옮겼다.

“왔어요?”

가운 차림의 성현이 아일랜드 식탁 옆에 서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생수병째로 벌컥벌컥 들이켠 그는 한 번에 병 하나를 다 비우고는 빈 병을 휙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생수병이 부엌 끄트머리의 휴지통 안으로 텅 소리를 내며 빨려 들어가는 것을 흘끗 쳐다본 김 실장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본부장님.”

“뭐…….”

그가 어울리지 않게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고는 김 실장을 향해 싱긋 웃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잘생긴 얼굴 위에 짓는 미소는 상쾌하기만 한데, 어째서 보는 사람은 이리 간담이 서늘해지는 건지.

김 실장은 내색하지 않고 몸을 굽혀 부직포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칼같이 각 잡힌 정장을 꺼내어 소파 등받이에 조심스럽게 걸쳐 놓고 허리를 폈다.

어이쿠.

화들짝 놀란 김 실장이 다급하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어느새 소파 앞으로 걸어온 성현이 아무렇지 않게 가운을 벗어젖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티끌 한 톨 없는 정장 표면을 괜히 툭툭 두드려 먼지를 터는 척하며 김 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옆쪽을 곁눈질했다. 김 실장의 존재 따윈 개의치 않고 훌렁 벗은 가운을 걸레짝처럼 던져 버린 성현이 시선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느른한 눈길이 소파 위에 올려 둔 옷가지를 훑는 게 느껴졌다. 벌거벗은 몸으로 얼굴이라도 한번 붉힐 법도 한데, 그는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태평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본부장님.”

눈꺼풀을 내리깐 김 실장이 무심결에 성현을 흘끗 살폈다.

다시 보아도 믿기 어려운 크기의 거대한 성기였다.

딱히 종교가 없는 김 실장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불공평한 조물주의 존재가 원망스러웠다.

부와 명예마저 무색하게 만들 정도의 매끈한 외모를 타고난 태강의 황태자. 조물주가 그를 빚을 때 가장 정성을 쏟은 부분을 꼽자면, 단연 저 말도 안 되게 큰 성기임이 틀림없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며 제 눈을 의심해야 했다. 잘못 봤나……? 크기며 굵기며 뭐 하나 훌륭하지 않은 구석이 없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맑고 깨끗한 색깔이었다.

제 것뿐만 아니라 흔히들 보게 되는 남자 놈들의 성기란 대체로 거무죽죽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저런 색깔이…….

김 실장은 신선한 충격에 빠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까칠한 상사의 성기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말았다.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고 불쾌하다는 듯이 눈을 치켜뜬 성현의 시선을 마주친 후에야, 뒤늦게 화들짝 놀라 펄쩍 뛰어올랐다.

자신에게 남의 하체를 흘끔거리는 저속한 취미가 있었나 싶어질 만큼, 본능적으로 향하는 눈길을 떼기 어려웠다. 김 실장은 식은땀에 젖은 콧잔등으로 흘러내린 안경을 검지로 추켜올렸다.

김 실장이 그렇게 복잡한 심경으로 저도 모르게 흘깃거리게 되는 시선을 다스리는 동안, 성현은 느긋하게 옷을 갖춰 입기 시작했다. 드레스 셔츠의 단추를 채우는 태평한 몸짓이 제집인 양 자연스러웠다.

넓디넓은 제집을 지척에 두고 남의 집 거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사람답지 않게 말이다.

김 실장은 권성현 본부장 이전에도 몇몇 로열패밀리를 가까이에서 모시며 사적인 부분을 챙기는 일에 퍽 익숙했다. 그러나 베테랑 비서실장인 그에게조차 예비 신부의 집을 점거한 상사를 보필하는 것은, 다소 생소하고 어색한 일이었다.

성현이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우자 타이밍 좋게 타이를 건넨 김 실장이 남몰래 입꼬리를 늘였다.

몸이 잔뜩 단 모양이지. 고작 몇 달 앞으로 다가온 결혼식까지도 기다리지 못할 만큼.

저 무뚝뚝해 보이는 인간이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 싶어 내심 흐뭇하기도 했다. 그러나 하다못해 가사 도우미나 퍼스널 쇼퍼를 통해 갈아입을 옷이라도 어느 정도 옮겨 놓을 수 있도록 하면 좋으련만, 성현은 절대 제 연인의 집 비밀번호를 알려 주지 않았다.

정작 본인은 부하 직원의 코앞에서 옷을 훌렁훌렁 잘도 벗어젖힐 정도로 무심하고 무던한 성격이면서 제 예비 신부에 한해서라면 여간 유난스러운 게 아니었다. 주변에 경계심을 바짝 세우는 모습이 흡사 새끼라도 밴 예민한 짐승 같았다.

그나마 자신을 이 집에 발을 들이게 허락한 것을 보면, 성현이 저를 몇 안 되는 최측근으로 여기고 꽤 신뢰한다는 의미였다.

펜트하우스에 드나드는 부하 직원은 여럿이지만, 권성현 본부장의 연인이자 예비 신부의 집에 출입이 허락된 사람은 전 직원을 통틀어 김 실장이 유일했다. 나날이 두둑해지는 통장과 몇 계단을 건너뛴 초고속 승진만큼이나 김 실장을 뿌듯하게 만드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앞으로 더욱 성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본부장님.

저 좋은 쪽으로 해석을 마친 김 실장은 입가에 충심으로 물든 미소를 띠고 고개를 들었다. 그사이 옷을 모두 갖춰 입은 성현이 그림 같은 자태로 서서 넥타이의 매듭을 정리하고 있었다.

“갈까요?”

“네. 본부장님.”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단정하게 맨 넥타이의 짙푸른 빛깔이 황태자의 결 좋은 피부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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