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이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서 아연은 잠시 눈을 들었다.
시야에 빗줄기가 거세진 창밖이 들어왔다. 굵은 빗방울이 툭, 투둑,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창문을 때리고 있었다.
“사장님?”
핸드폰을 든 손을 툭 떨어뜨린 채 정승처럼 창밖만 바라보고 선 아연이 이상해 보였는지, 민재가 슬그머니 그녀를 불렀다.
아연은 마법에서 풀려난 사람처럼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연의 얼굴을 본 민재의 눈썹이 흠칫 치켜 올라갔다.
“무슨 일 있으세요?”
민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카운터 문을 열고 통로로 나오며 물었다.
“아, 그게……. 엄마가 주중에 집에 안 계셨다는데, 지금은 전화를 안 받으신다고…….”
아연이 두서없이 상황을 설명했다. 목소리가 볼품없이 떨리고 있었다. 민재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미간을 좁혔지만, 아연은 설명을 하면서 그나마 머릿속이 정리되는 듯했다.
우선 지금 내가 해야 할 것, 할 수 있는 것부터 생각해 보자.
먼저 집에 가서 엄마가 아직도 집에 없는지 확인하고, 집에 없으면 경찰에 신고부터…….
신고라는 말을 떠올리자마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아냐. 집에 있을 거야. 주중엔 워낙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이잖아.
하루가 멀다 하고 스파며 네일살롱, 헤어숍에 들러서 관리받고, 매일같이 독서 모임이다 자선 모임이다 뭐다 하며 외출 바람이니까.
부디 과한 염려이길.
희수를 마지막으로 본 것도 벌써 일주일 전이었다.
평소 희수의 성정을 생각하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가 애지중지 여기는 아연의 낯이 상한 것을 본 이상, 매일같이 전화해서 상태를 점검하고 약은 잘 바르냐는 둥 심한 잔소리를 했을 사람인데, 아무런 연락도 없는 것이 의아하긴 했다.
하지만 의아하면서도 내심 후련했다. 그날 일로 인해 그녀가 제 딸에 대한 집착을 비로소 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사장님, 제가 이해를 잘 못했는데, 지금 사장님 어머니랑 연락이 안 되어서 그러시는 거 맞나요? 집에도 안 계시고요?”
“아, 그건 맞는데. 지금은 집에 계실지도 몰라서 우선 저 좀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네. 얼른 가 보세요, 사장님.”
아연이 허리에 묶은 앞치마를 풀어내며 말했다. 손가락이 굳어서 몇 번이나 손이 미끄러졌다. 앞치마를 손에 쥔 그대로 카페 문으로 향하다가, 가방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탈의실로 방향을 바꿨다.
고장 난 로봇처럼 주춤거리는 것이 안쓰러웠는지 민재가 그런 아연의 어깨를 눌러 손님용 의자에 앉혀 주었다. 그러고는 탈의실로 달려가 가방과 우산을 챙겨 왔다.
“고마워요. 집에 계시는지만 확인하고 다시 돌아올게요. 늦어도 저녁 되기 전에는 올 테니까, 오늘 마감…….”
“사장님, 그런 건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가 보세요.”
혼란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리는 아연의 말을 단호하게 끊은 민재가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카페 바깥으로 걸음을 딛자마자 비 내리는 여름 공기의 습기가 훅 하고 끼쳐 들었다. 사선으로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가 피할 새 없이 뺨으로 흘러내렸다.
뒤늦게 우산을 편 아연은 어깨를 움츠린 채 빗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 * *
커다란 대문 앞에 선 아연은 크게 숨을 몰아쉬고 벨을 눌렀다. 벨 소리에 대답이 없을 거란 것은 예감했지만, 일말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서 초조한 눈으로 현관 벨을 응시했다.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몇 번이나 희수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자신도 모르게 잘근잘근 물어뜯은 입술 끝에서 끝내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아연은 한 번 더 벨을 누르고 기다리다가 낙담한 얼굴로 빠르게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
유난히 음산하게 들리는 알림음과 함께 철컥,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사이가 벌어지자 아연은 묵직한 문을 힘껏 열고 들어갔다.
눈앞에 펼쳐진 정원은 늘 그랬듯이 그림처럼 잘 정돈되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쓸쓸해 보였다. 정원을 가로지르는데 굵직한 빗줄기가 정수리로 쏟아져 내렸다. 아연은 택시 안에 우산을 놓고 내렸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계단을 두 개씩 올라서 현관 앞에 다다른 아연이 또 한 번 심호흡을 했다. 현관문을 열자 여름답지 않은 한기가 느껴졌다.
오후 내내 쏟아진 비와 잔뜩 낀 먹구름 때문에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집 안은 밤처럼 새까맸다.
아연은 숨을 멈춘 채 집 안을 응시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긴장감에 온몸이 차갑게 굳었다. 아니, 차라리 누구라도 튀어나왔으면 했다.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집 안. 살갗을 스치는 냉기가 집이 비워졌던 시간을 실감 나게 했다.
전화 한 번이라도 해 보았더라면.
뒤늦은 후회로 발밑에 못이 박힌 듯 다리가 무거웠다. 아연은 소름이 돋아난 팔뚝을 감싸 안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겨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새 비에 흠뻑 젖은 몸에서 빗물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엄마.”
나직이 엄마를 부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부정하고 싶은 깨달음이 머리를 거세게 때렸다.
엄마가 사라졌다.
아연은 더듬거리며 거실을 지나 침실 문을 열었다. 한층 더 심한 냉기가 좌절과 함께 몰려들었다. 어느새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엄마. 엄마.”
쥐어짜는 것 같은 목소리가 엄마를 애타게 불렀다. 그렇게 하면 희수가 거짓말처럼 눈앞에 짠 하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그저 짓궂고 잔인한 장난이었던 것처럼.
턱이 덜덜 떨려서 이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닫혀 있는 욕실 문으로 뻗는 손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았다.
아연은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눈물이 줄줄 쏟아져 내리는 눈에 힘을 꾹 주었다.
정신을 차려야 돼. 회피할 수 없어. 엄마를 찾아야 되잖아.
통나무처럼 굳은 손이 욕실 문고리에 닫는 순간, 귓가에 삐이, 하는 날카로운 이명이 파고들며 기억이 휘몰아쳤다.
송곳으로 고막을 후비는 듯한 감각에 아연의 눈매가 왈칵 일그러졌다. 날카로운 파열음. 비명 소리. 물이 철벅거리는 소리가 어지러이 뒤섞이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붉은 물. 소름 끼치는 한기. 비릿한 죽음의 냄새가 확 끼쳐 왔다. 아연은 문을 따라 주르륵 무너지며 숨을 헐떡거렸다.
‘엄마! 엄마! 눈 좀 떠 봐!’
바로 이곳이었다. 고작 고등학생이었던 아연이 손목을 헤집어 놓은 채 핏빛 욕조 안에 잠들어 있던 희수를 발견한 곳이.
그날은 아버지를 만나기로 약속되었던 날에서 하루가 지난 날이었다. 그걸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아연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바람맞힌 날이었기 때문이다.
충동적인 반항 같은 것이었다. 대체로는 체념한 채 순응했지만, 유난히 뾰족해지던 경우도 있었고 그날이 그랬다.
하교 시간에 맞춰 강준의 보좌 직원이 아연을 데리고 가기 위해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남학생들 몇 명이 아연의 주변을 서성거리며 이죽거렸다. 두 집 살림. 내연녀. 사생아.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말들이 다 들리진 않았지만 몇몇 단어가 귀에 꽂히듯이 파고들었다.
지금이야 이를 악물고 버텼을 테지만, 고작 고등학생에 불과했던 당시의 여린 마음에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으레 뒤에서 쑥덕거리기나 했지, 직접적인 비난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던 터라 더욱 타격이 컸다.
보통은 성현과 등하교를 함께 했기에 주변의 소음에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은 성현이 가족과 함께 사업상 초청을 받아 일주일 정도 영국으로 떠나 있던 때였다. 흔치 않게 혼자 걷고 있던 아연을 괴롭히고 싶었던 건지, 그 남학생들은 목소리를 줄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아연은 그대로 뒷문을 통해 학교를 빠져나갔다. 대단한 방황을 한 것은 아니었다. 시내를 하염없이 걷고 눈에 보이는 가게마다 들어가 음악을 듣고, 화장품을 구경하고, 책을 들춰 보다가 그마저도 지겨워져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희수에게서 날벼락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예상 밖으로 그녀는 아연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밤늦게까지 전화로 싸우는 목소리가 2층까지 올라와서 아연은 깊은 죄책감을 느끼며 잠이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욕조에 걸레짝처럼 걸쳐져 있는 희수를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헉. 허억. 아연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펴고 문고리를 움켜잡는데 손이 벌벌 떨렸다.
달칵.
끼이익.
소름 끼치는 문소리와 함께 느릿하게 시야가 열렸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던 아연은 숨을 멈추고 기도했다.
제발. 제발. 나한테 또 이러지 말아 줘요. 다시는 반항하지 않을게요. 착한 딸로 살게요. 제발. 제발요.
떨리는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리고 아연은 어둠이 집어삼킨 공간을 바라보았다.
털썩.
욕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맥없이 주저앉은 아연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끔찍한 기억 속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감, 그리고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희수에 대한 걱정이 뒤섞여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물이 펑펑 쏟아져 시야가 엉망이었다. 아연은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훔치며 핸드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를 했다.
곧바로 관할 경찰서에서 경찰관이 집으로 찾아왔다. 인적 사항을 전달하니 경찰관은 가장 최근에 찍은 희수의 사진을 요청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핸드폰에는 엄마의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결국 벽에 걸린 액자에서 그나마 최근에 찍은 사진을 꺼내 주자 진척 사항이 있으면 연락 주겠단 말을 남기고 경찰관이 떠났다.
커다란 저택에 다시 소름 끼치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 넓은 곳에서 매일 밤 혼자였을 희수의 연약한 모습이 떠오르며 자꾸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아연은 안절부절못한 채로 거실을 서성거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자꾸 희수의 남자관계 따위나 물어보던 경찰관이 영 못 미더웠다. 아연은 결국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질퍽질퍽 물웅덩이가 고인 정원을 가로지르며, 아연은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으로 흐려진 눈앞을 연신 문질렀다. 무거운 대문을 어깨로 밀어 열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그저 막막했다.
엄마가 있을 만한 곳.
아연은 정신없이 되뇌었다. 그리고 그저 발이 닿는 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대사관로를 따라 쭉 걸어 올라갔다. 얼마 후 눈앞에 삼청각이 나타났다. 어렸을 때 주말마다 아침 식사 후 소화를 시킬 겸 엄마와 손을 잡고 걸었던 곳이었다.
가로등 하나 없이 온통 새까만 어둠 속에서 초롱불 하나가 감감히 깜빡거렸다. 평소 같으면 이런 곳에 희수가 있을 리 없다고 여겼겠지만, 아연은 홀린 듯이 걸어갔다.
“아……!”
발밑이 너무 어두워서 갑자기 나타난 보도블록에 발이 걸리며 털썩 앞으로 고꾸라졌다. 넘어지면서 본능적으로 바닥을 손으로 짚는 바람에 비와 흙으로 지저분해진 손바닥을 툭툭 털며 아연은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쓸려서 따끔거리는 손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 빈주먹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문득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 혼자 남았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무서워.
아연이 정처 없이 떨리는 눈을 들었다. 나뭇잎에 비가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에 요란하게 울렸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입술 사이에서 하얀 입김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아연은 서늘한 어둠 속에서 발을 주춤거렸다.
“엄마…….”
대답 없는 부름에 지쳐 입을 뻐끔거리는 순간.
“한아연!”
북악산 산등성이를 다 울릴 정도의 목소리였다. 아연은 뒤를 돌아보며 비에 젖은 속눈썹을 깜빡거렸다. 거짓말처럼 돌담길 끄트머리에 성현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