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96)

<54화>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린 그가 아일랜드 식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아연의 팬티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그것으로 페니스를 길게 훑어 닦았다. 정액과 애액으로 난잡하게 얼룩진 성기는 사정한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위협적인 모양새였다.

남의 팬티를 제멋대로 가져다가 티슈 대용으로 사용하고는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져 버리는 모습을 얼이 빠져서 쳐다보던 아연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태풍에 휩쓸린 것처럼 난잡하게 헤집어진 제 꼴과는 달리, 그는 페니스를 바깥으로 내놓은 것만 제외하면 대체로 말끔했다.

얼른 다리를 오므리려는데, 그것조차 성현에게 제지되었다.

“기껏 채워 놨더니 이렇게 헤프게 흘려 버려서야.”

쯧, 하고 혀를 찬 그가 아연을 다시금 끌어안았다.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하지 않겠어?”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반항할 겨를도 없이 아연을 아기처럼 안아 올린 성현이 주저 없이 걸음을 옮겼다.

“뭐? 이거 놔. 내려놓으라고! 할 만큼 했잖아!”

“너 아직 옷도 다 안 벗었어, 아연아. 침대로 가서 제대로 해야지. 우리 할 얘기도 남아 있고.”

“무슨, 억지 부리지 마. 너랑 이제 할 말 없어!”

성현은 버둥거리는 아연의 등을 쓸었다. 어리광 부리는 어린애 대하듯 조롱기 어린 몸짓이었다. 아연이 발작하듯이 몸부림을 쳤지만, 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등을 쓸던 손이 이미 지퍼가 벌어져 헐거워진 옷자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침대에 내려지기 직전, 벗겨진 원피스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그가 보내온 원피스를 몇 번이고 살펴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렇게 철없이 설레었던 게 고작 하루도 지나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바닥에 허물처럼 벗겨진 상아색 옷 무덤을 바라보며 아연은 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풀썩. 등에 폭신한 침대가 닿았다.

“너 정말 미쳤어?”

아연은 성현을 노려보며 절망에 찬 목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성현은 달콤한 노랫가락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느슨하게 미소 지으며 아연의 위로 올라왔다.

“몰랐어? 나 너한테 반쯤 돌아 있는 놈인 거 소문 다 났던데.”

잘생긴 낯에 떠오른 질 나쁜 미소가 소름 돋을 만큼 잘 어울렸다. 아연의 뺨이 희게 질렸다.

* * *

의식은 후미진 골목에 외로이 선 가로등처럼 깜빡깜빡 점멸했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뜰 때마다 굶주린 맹수 같은 새까만 눈동자가 아연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침실에서, 욕실에서, 또다시 침대로 돌아와서 하다가 기절하듯 잠이 든 것 같았는데, 눈을 뜨는 순간 미끄러지듯 파고드는 감각에 아래가 뻐근하게 벌어졌다. 흐릿했던 정신이 번쩍 뜨이며 도리 없이 앓는 신음이 흘렀다.

“잠들 정도로 지루했어?”

성기를 끝까지 삽입한 그가 배를 붙인 채 느긋하게 아연의 이마 위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며 말했다.

계속해서 이어진 짐승 같은 교접에, 욕실에서 한 차례 씻어 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아연은 도로 정액에 전 꼴이 되어 있었다. 안에 잔뜩 싸지르는 것으로 모자라, 그가 아연의 몸 바깥에 사정하고는 처덕처덕 문질러 정액을 펴 바르는 짓거리도 서슴지 않은 까닭이었다.

“내가 더 잘해야겠네. 안 그래, 아연아?”

관자놀이에 입술을 대고는 속삭인다. 아연이 치를 떨며 머리를 마구 가로저었다.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손이 양 뺨을 억세게 붙잡았다. 노여움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아연을 달래듯 그가 다정하게 키스했다. 성현은 아연의 젖은 눈가와 눈물이 말라붙은 뺨까지 쪽쪽거리며 살가운 입맞춤을 이어 갔다.

“미친놈. 나쁜, 새끼.”

아연의 목소리가 뚝뚝 끊어졌다. 얼마나 흐느꼈는지 목이 버석하게 말라 있었다.

기껏 한다는 말이 그것밖에 안 되냐는 듯 성현이 싱긋 웃었다.

“어떡하지. 네가 욕하니까 더 흥분되는데.”

“……변태. 양아치 새끼.”

“개새끼라고 해 봐. 한 마디만 더 하면 쌀 것 같으니까.”

네 말대로 해 줄 성싶냐는 얼굴로 아연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벌써 몇 번째 사정인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 저게 인간이기는 한 건지.

아래를 파고드는 어찔한 감각에 아연이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러자 기다란 손가락이 입술을 벌리며 들어왔다.

“하지 마, 그거. 박을 때 자칫하다가 깨물면 피 나.”

“너나, 하지 마.”

입 안에 손가락이 들어와 있어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말하고는 아연이 손가락을 콱 깨물었다. 꽤 온 힘을 다해 이를 악물었는데, 정작 성현은 마치 모기한테나 물린 것 같은 태평한 얼굴로 웃었다.

“그래. 물고 싶으면 내 거 물어.”

그에게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한 것에 기분이 상한 아연이 눈살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손가락을 뱉어 냈다. 손가락에 잇자국이 움푹 들어갔는데도 관심도 없다는 양 성현이 상체를 일으켰다.

붙어 있던 배가 떨어지니 진득한 액체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배뿐만 아니라 온몸이 미끄덩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가 질척거리는 골반을 양손으로 붙잡아 올렸다. 엉덩이가 침대에서 떨어져 허공에 붕 뜨며 허벅지가 적나라하게 벌어졌다. 박기 좋은 각도로 가져다 댄 성현이 허리를 치대기 시작했다.

“하으…….”

풀어질 대로 풀어진 음부가 흐물거렸다. 굵직한 성기가 자비 없이 푹푹 찧어 댈 때마다 안쪽에 고여 있던 정액이 꿀렁꿀렁 흘렀다. 만족할 줄 모르고 안에 싸 놓은 채로 삽입을 계속한 탓에 허옇게 인 거품이 여린 체모에 엉켜 있었다.

성현이 안을 얇게 쑤석거리며 아연의 발목을 붙잡아 양쪽으로 활짝 벌렸다. 질펀한 결합부 사이로 흘러내린 정액이 고환까지 적시며 침대 위로 뚝뚝 떨어졌다.

일부러 엉덩이를 반쯤 띄워 놓고 보란 듯이 성기를 쑤셔 넣는 의도가 선명했다.

몽둥이처럼 굵은 기둥이 속살을 빠듯하게 벌리고 안을 찌른 후 빠져나가다가 귀두의 굴곡이 질구에 턱 하고 걸렸다. 예민하게 달아오른 구멍이 색다른 자극에 빠끔거리며 페니스를 탐욕스럽게 오물거렸다. 아연은 노골적인 감각에 질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깜깜해진 시야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아연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가 정액으로 얼룩진 골반이 미끄러운지 다시금 고쳐 잡으며 낮게 혀를 찼다. 성현이 하체를 쳐올릴 때마다 가슴이 위아래로 미친 듯이 덜렁거리는 게 느껴졌다.

어지러워.

아연은 마구잡이로 뒤흔들리며 짓쳐들어오는 그를 받았다. 숨만 할딱이고 있는데 돌연 커다란 바위가 짓누르는 듯한 무게감이 몸 위로 쏟아졌다. 아연은 자신도 모르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곧장 부딪쳐 오는 시선이 매서웠다. 아니, 애달팠다.

뜨거운 불을 만진 사람처럼 아연은 흠칫 놀라 다시 눈을 닫았다.

“눈 떠.”

명령처럼 하는 말일 뿐인데, 어째서 애원처럼 들리는 것인지.

아연은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진저리 치듯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러자 성현이 아연의 턱을 붙잡고는 강제로 그를 보도록 돌렸다.

흔들림 없이 그녀를 직시하는 눈동자에서 푸른 불꽃이 선득하게 튀어 올랐다.

눈을 마주치고 나서야 다시금 깊게 밀려 들어오는 성현이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어디까지 몰아세울 작정인지. 간절한 눈빛에 베여 죽을 것만 같았다.

차라리 미친놈처럼 난폭하게 박아 대는 게 나을 것 같다. 이런 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트는 아연을 다시 붙잡아 제게 고정시킨 성현이 짧게 입을 맞췄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에 제 입술을 붙인 채로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눈 뜨고 똑바로 봐.”

제멋대로 굴고 있는 주제에 세상에서 제일 상처받은 듯한 눈이 아연을 옭아맸다. 아랫배에서 시작된 떨림이 점차 온몸에 퍼져 나갔다.

“그렇게 보지 마.”

아연의 말에 성현은 다 알고도 묻는 것 같은 오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보는 게 어떤 건데.”

사랑이라도 한다는 듯이.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어서, 아연은 그저 단단한 등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 * *

아연은 숨을 길게 몰아쉬며 눈을 떴다.

침침하던 시야가 점차 또렷해졌다. 방 안은 어둑했지만 암막 커튼이 쳐져 있는 창문 아래로 빛줄기가 가느스름하게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햇빛이 파고드는 것을 보면 하루가 지난 듯했다. 하지만 아침인지 낮인지도 구분되지 않았다. 흐릿한 기억 속에 방 안이 어스름하게 밝아지는 것을 느낀 것 같은데, 몇 시간 전의 일이 아니라 몇 년 전에 벌어졌던 일인 것처럼 정신이 아득하기만 했다.

권성현은 딱 돌아 버린 짐승처럼 막무가내였다.

따귀를 때리고 주먹을 날려도 소용없었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다 맞아 주면서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아연의 손에 얻어맞을 때마다 더 만족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해서 도리어 기가 막혔다.

제 가슴팍에 거미줄처럼 할퀸 흔적 위에 새로운 생채기가 더해지는 것을 기쁜 듯이 내려다보는 눈에 질려서 더 이상 손을 내두를 의지를 잃었던 것 같다. 그대로 등을 돌려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치다가 침대 끄트머리에서 그에게 붙잡혀 쭈욱 끌려갔다.

벗어났다고 착각할 때까지 내버려 뒀다가, 침대를 벗어나기 직전에 이르러서야 놀리듯이 사로잡는 게 지독하게 느껴졌다.

그는 먹잇감을 손바닥 위에서 굴리며 마음껏 가지고 놀다가 끝내 잘근잘근 씹어 먹고야 마는 성질 더러운 맹수와 다를 바가 없었다.

네 발로 엎드린 채로 뒤에서부터 난폭하게 쑤시고 들어오는 그를 받으며 신음을 흘리자, 못 견디게 다정한 손길이 아랫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머리 꼭대기까지 끝을 모르고 솟아오르는 쾌락에 아연은 이대로 펑 터져서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성현이 안을 거칠게 밀고 들어올 때마다 그의 정액으로 가득 찬 배 속이 출렁거리는 것만 같았다.

내내 커다란 성기가 처박혀 있던 아래에 기이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밤새 성현이 제 안을 꽉 채우고 있는 게 당연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일까.

그가 빠져나간 자리가 허전함과 동시에 아직도 무언가가 가득 들어와 있는 것처럼 지끈거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