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성현은 아연의 허벅지 옆을 두 손으로 짚은 채 몸을 일으키며 입술을 포갰다. 아래에서 위로 부드럽게 파고들어 오는 키스에 몸이 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입술이 빨리고 혀가 비벼질 때마다 아연의 몸이 뒤로 기우뚱 기울어졌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성현의 목에 팔을 두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아연의 허리를 받쳐 왔다.
질척하게 혀가 감겼다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여지없이 아랫배가 절절 끓어올랐다. 어째서 키스만으로 이렇게 되어 버리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아연은 울 듯한 얼굴로 얽혀 드는 혀를 기꺼이 받으며 성현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든, 결국 이렇게 되었으리라는 까닭 모를 확신이 들었다.
운명 같은 건 믿지 않는다던 성현이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허무맹랑한 소리를 한다며 놀려댈지 모르지만.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입술의 부딪침, 손끝의 마주침만으로도 저릿한 감각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가 혀를 비벼 올릴 때마다 저도 모르게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물기 어린 입맞춤이 이어지며 얇은 블라우스가 벌어지고 브래지어가 끌려 내려갔다. 키스만으로 이미 딱딱하게 곤두선 젖꼭지가 성현의 손가락 사이에 잡혀 비틀리자 더운 숨이 훅 터졌다.
“아흑!”
브래지어 밖으로 꺼내 놓은 가슴을 손으로 말아 쥔 그가 곧장 고개를 내려 입에 머금었다. 혀로 젖꼭지를 굴리다가 여린 살결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연은 허둥지둥 성현의 머리통을 부여잡았다.
가슴이 빨리느라 정신이 혼미한 사이, 성현의 손이 스커트 아래로 들어왔다. 허벅지를 쓸어 올리며 파고든 뜨거운 손은 단숨에 팬티를 끌어 내렸다. 그의 손에 벗겨진 속옷이 흠뻑 젖어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평소라면 혼자 벌써 적셨냐느니, 아연이 수치심에 바들거릴 만한 돼먹지 못한 소리를 지껄였을 그도 오늘만큼은 그럴 여유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속옷을 아무렇게나 던져 버린 성현은 아연의 다리를 양옆으로 넓게 벌렸다. 그의 숨소리가 몹시 거칠었다.
대충 밀어 올린 스커트가 잔뜩 구겨진 채로 허리에 걸려 있고, 방만하게 벌어진 허벅지는 달달 떨렸다. 아연은 성현의 단단한 어깨를 다급하게 붙들며 속삭였다.
“우리, 침대로 가.”
속속들이 비추는 욕실의 조명이 너무나도 밝았다. 이렇게 밝은 빛 아래에서 성현에게 속살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하는 거라 그런지 부끄러움을 감당할 길이 없었다.
“응.”
그런 아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은 잘만 하면서도 성현은 아연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애액으로 난잡하게 젖은 음부를 집요하게 응시하는 눈동자에 시뻘건 열감이 어려 있었다.
거친 숨을 뱉으며 성현이 벨트를 풀어 내렸다.
“침대로, 가자니까.”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밤새 침대에서 뒹굴 거야. 지금은 여기서 할 거고.”
어느새 바지 앞섶을 풀어 헤치고 브리프를 내려 페니스를 꺼낸 성현이 몸을 일으켰다. 결코 적응이 되지 않는 거대한 크기의 성기가 허공에서 유혹하듯이 크게 꺼떡였다. 그것 또한 며칠 만에 봐서 그런지 도무지 눈길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런 아연을 보고 피식 웃음을 흘린 성현이 이 사이에 콘돔을 물고 포장을 뜯었다. 아연은 그가 포장을 던지고 콘돔을 성기에 끼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유로운 듯하면서 동시에 숨길 수 없는 조급함이 느껴지는 그의 동작은 어쩐지 성감을 아찔하게 자극했다. 커다란 손이 기둥을 훑으며 콘돔을 씌우자 저도 모르게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깐 아연이 중얼거렸다.
“여기 너무 밝아서…… 민망해, 나.”
“그래서 좋은데, 난.”
천연덕스럽게 아연의 말투를 따라 하고는, 성현이 아연의 몸을 불쑥 들어 올렸다. 등 뒤로 서늘한 벽이 닿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아연의 등에 손을 겹친 채로 그녀를 벽에 붙였다.
등을 어루만지는 커다란 손이 너무도 뜨거워서 벽의 냉기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사소한 행동이 저를 위한 배려처럼 느껴져 한심하게도 눈가가 뜨거워졌다.
눈을 감고 눈물을 참으려 애쓰는데, 성현이 그녀의 허벅지 하나를 잡아 올리며 매끄럽게 삽입해 들어왔다.
“으응…….”
안을 미끄러지듯 짓치고 들어와 꽉 채우는 감각에 절로 아랫배가 꾸욱 조여들었다. 결합된 부분을 통해 조임이 그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지 성현이 낮게 신음했다. 그러면서도 천천히 허리를 밀어 넣으며 빠듯한 틈을 열고 그가 끝까지 들어왔다.
닿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곳까지 모두 연결되고 나서야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아연은 성현의 목을 그러안은 채 밭은 숨을 색색 내쉬었다.
한 템포 숨을 고른 성현이 괜찮냐고 묻는 것처럼 입술을 두어 번 쪽쪽 부딪치고는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굵직한 성기가 쑤욱 빠져나갔다가 한 번에 들이찰 때마다 허공에 달랑거리는 발끝이 저릿저릿 곱아들었다.
아연의 다리가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려 했다. 재차 쥐어 올리던 성현은 그녀의 양 허벅지를 붙잡아 제 허리에 감도록 했다. 발끝이 성현의 엉덩이 위에서 교차되기 무섭게, 등 뒤를 받치던 벽이 멀어졌다.
무게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그녀를 허공으로 완전히 들어 올린 성현이 허리를 격하게 쳐올렸다. 아래로 쏠리는 제 무게 때문에 그가 말뚝처럼 더욱 몸속 깊숙이 박혔다.
“흑! 아아!”
아무리 세게 성현의 목을 끌어안고 찰싹 매달리려 애써 보아도, 자꾸만 몸이 위쪽으로 훌쩍 솟아올랐다가 반동으로 뚝 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비명 같은 교성이 튀어 올랐다. 어찔한 환락이 너울지며 눈앞이 흐려졌다. 자극이 너무 강해 죽을 것만 같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배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손에 꼭 움켜쥐고 절대 놓아주고 싶지 않은 욕구가, 아니, 욕심이.
“성현아……! 흐읏.”
그를 부르는 음성이 제 것 같지 않게 아득히 멀게만 들렸다.
지금껏 성현과 몸을 섞는 동안에는 절정에 올라 무심코 터져 나오려는 그의 이름을 간신히 입 안에서 뭉개뜨리곤 했었다. 어쩐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연인에게나 허락된 행위 같아서. 그렇게 스스로를 단속해 왔기에, 이렇게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놀란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는지, 미친 듯이 성기를 박아 대던 성현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우뚝 멈추었다.
낭패감에 아연이 입술을 깨물자, 성현이 그녀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그 어느 때보다 까마득한 절정감이 온몸을 쥐어짜는 느낌에 아연은 흐느끼듯 신음했다. 그런 아연을 빈틈없이 당겨 안은 성현이 크읏, 낮은 신음을 흘렸다.
씨발……. 쌌잖아.
한아연이 제 이름을 부르는 순간, 등골을 따라 저릿하게 흘러내리는 사정감을 끝내 참지 못했다.
사정을 조절하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였기에 성현은 멍청한 기분을 느끼며 아연의 몸 안에서 성기를 빼냈다.
한 차례의 사정 후에도 단단함이 가시지 않은 페니스가 내벽을 훑으며 빠져나갔다. 그 감각에 아연이 어깨를 흠칫 움츠렸다. 그는 전신에 힘이 풀려 맥없이 휘청거리는 그녀의 허리를 한쪽 팔로 감아 제게 기대게 했다.
그러나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던 것도 잠시, 성현이 아연을 번쩍 들어 올려 아기처럼 품에 안았다.
고작 이름 한 번 불러 줬다고 곧장 싸 버린 치욕을 만회할 생각으로 성현의 눈빛이 희게 번뜩였다.
그런 그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아연은 이유도 모르는 채로 먼동이 틀 때까지 성현의 아래 깔려 달게 흐느껴야 했다.
밤새 이어져 있을 걸 각오하라던 그의 말에는 한 치의 과장도 없었음을, 어스름한 새벽이 창문 너머를 길게 비출 무렵에야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 * *
눈을 떴을 때는 정오가 지나 있었다. 방 안이 워낙 어두워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는데, 꼼꼼하게 창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열자 눈부신 햇살이 파고들어 왔다.
밝은 빛에 눈이 익숙해진 후에야 아연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침대 옆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은 눈을 뜬 직후에 이미 알았다. 등 뒤에서 저를 꽉 가두고 있던 커다란 몸의 온기가 사라져서, 때 아닌 한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이다.
아연은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시야를 가득 메운 창밖의 풍경이 푸르렀다. 시릴 정도로 맑은 하늘과 짙푸른 바다가 교차하는 광경이 어쩐지 비현실적이었다.
비현실.
어제의 하루를 표현하기에 몹시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꿈결 같기도 하고.
난생처음으로 반항 아닌 반항을 저지르고, 거짓말처럼 갑자기 제 앞에 나타난 성현에게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졸랐다. 현실에서 도망치듯이.
방금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무거운 눈꺼풀에 힘을 주며 아연은 몸을 움직였다. 절로 끙 하고 앓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허리를 짚고 발을 내딛던 아연은 문득 제 발가락이 눈에 들어와 뺨을 붉혔다.
귀여워서 빨고 싶게 생긴 발이라더니, 제 발을 가져가서 물고 빠는 것으로 모자라 성현이 저지른 온갖 저질스러운 짓거리가 떠올라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발바닥에 비벼지던 딱딱한 감각도 여전히 생생했다.
아연은 고개를 빠르게 휘저어 머릿속에서 아우성치는 기억을 몰아냈다. 욕실로 들어가 세면대에 차가운 물을 틀고 세수를 했다.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수건으로 훔치며 바깥으로 나온 그녀는 가방 속에 잠들어 있는 핸드폰을 꺼냈다. 전원을 켤까 말까 고민하는데, 호텔 방의 기다란 복도 너머에서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깥에 나갔던 성현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이어지는 인기척에 아연은 다시 핸드폰을 가방에 집어넣고 몸을 돌렸다.
“일어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