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96)

<31화>

“대체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길고 갈급했던 정사가 끝나고 성현은 아연의 안에 깊게 몸을 묻은 채 중얼거렸다.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잔뜩 밴 흥분으로 야릇하게 갈라졌다.

그가 등 뒤에서 바짝 끌어안은 탓에 꼼짝할 수 없어 아연은 고개만 겨우 돌렸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에는 말간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하아, 더운 숨결이 원망처럼 터져 나왔다.

“또 무슨 이상한 소릴 하는 거야. 내 몸에 온갖 야한 짓거리는 다 저지른 주제에.”

아연의 말에 성현이 장난기 많은 소년처럼 키득거렸다.

“가만 보면 넌 같은 말을 해도 참 꼴리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어.”

낮게 속삭이며 그가 아연의 눈물 맺힌 눈꺼풀 위에 몇 번이고 입술을 맞추었다. 아연이 귀찮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속눈썹 위를 더듬던 입술이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관자놀이와 귓가를 오가며 쪽쪽거렸다.

“네가 그냥 시도 때도 없이 세우는 거잖아. 내가 말을 어떻게 하든지와는 상관없이.”

아연이 앙칼지게 되받아쳤다. 성현은 아연의 목에 얼굴을 묻은 채로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엔 그가 ‘세운다’라는 말만 꺼내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낯 뜨거워 못 들어 주겠다는 양 눈매를 불만스럽게 일그러뜨리더니, 이제는 그의 막돼먹은 말본새가 저 귀여운 입으로 제법 옮겨 간 모양이었다.

정작 그녀 본인은 인식도 못 하는 듯했지만.

성현은 기진맥진해 축 늘어진 아연의 몸을 제 쪽으로 바짝 당겨 안았다. 품 안에 쏙 안겨 들어오는 낭창한 몸이 퍽 만족스러운 한편, 그가 달려들 때마다 기가 다 빨린 사람처럼 맥없이 나가떨어지고 마는 아연이 가련하고 안쓰러웠다.

체력이 이렇게 달려서야. 보양식이라도 잔뜩 먹여야지.

몸에 좋은 것을 먹여 튼튼하게 만들어 놓고 또 부지런히 잡아먹겠다는 음험한 계획을 세우며, 성현은 꼭 끌어안은 아연의 배를 느릿느릿 어루만졌다.

“문제의식 정도는 있지.”

“그것참 다행이네. 워낙 당당하고 뻔뻔해서 본인이 문제라는 생각조차 없는 줄로만 알았지.”

“아무래도 네 몸에 중독된 것 같아. 그게 지금 내가 가진 문제적 증상이고, 어쩌면 꽤 심각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성현의 말에 아연의 몸이 설핏 굳어졌다. 성현이 그녀의 목덜미에 붙이고 있던 입술을 떼어 냈다. 아연은 고개를 틀어 성현을 흘긋 바라보더니, 하고 싶은 말이 잔뜩인 얼굴로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냉랭한 대꾸가 돌아왔다.

“네가 섹스 중독이라는 말이 하고 싶은 거라면, 애석하게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고. 그런 소린 내가 아니라,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털어놓는 게 낫지 않겠어?”

아연의 차가운 대꾸에도 성현은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아연의 어깨에 느릿느릿 입술을 비볐다.

“네가 날 이렇게 만든 원흉이니까 너한테 하는 거잖아. 의사가 무슨 상관이라고 의사 앞에 가서 떠들어. 이건 다 한아연 네가 저지른 죄니까 네가 해결해 줘야지.”

무시무시한 책임을 전가하는 주제에 속살거리는 말투만큼은 나긋나긋하기만 했다. 이렇게 만들어 줘서 몹시 고맙고 즐겁다는 양 나직한 음성에는 숨기지 못할 희열이 배어 있었다.

다시금 목덜미로 옮겨 오는 입술의 온도는 또 얼마나 따뜻한지. 그가 뒤집어씌운 죄를 기꺼이 인정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이제 그만 빼.”

아연은 제 몸을 꽉 끌어안고 있는 성현의 품에서 벗어나려 어깨를 비틀었다. 여전히 자신과 빠듯하게 연결되어 있는 성현의 하체로부터 도망가려는 가련한 시도였다.

그러나 성현은 그녀의 안에서 빠져나가기는커녕, 오히려 아연이 도망간 만큼 더욱 허리 아래를 가까이 붙여 왔다.

그뿐인가. 심지어 안쪽에 박혀 있는 그의 물건이 다시 딱딱하게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만 빼라니까, 왜 더 커지는 건데!”

“이렇게 기분 좋은데 빼기 싫은 게 당연하잖아.”

어째서 저런 망측한 말을 뻔뻔하리만치 다정하게 지껄이는 건지. 듣기 좋은 목소리에 나른한 웃음기가 꿀처럼 흘러내렸다.

그는 흡사 덩치 큰 짐승이 아양을 부리듯 아연의 목덜미에 느긋하게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어쩐지 마음이 헤실헤실 풀어지게 만드는 간지러운 감각이었다.

성현의 품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리던 움직임은 맥없이 잦아들었다. 예상치 못한 그의 애교에 아연은 그저 속수무책이었다.

애교라니.

바로 이런 이중성 때문에 사람이 홀라당 홀린 듯한 기분이 드는 거겠지. 시종일관 무뚝뚝하고 시니컬한 권성현이 애교라니, 누가 그의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아연은 얼떨떨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성현이 그런 아연의 안에서 슬쩍 몸을 움직이며 말했다.

“그냥 이대로 꽂고 자고 싶은데.”

어떻게 한 사람 안에 이런 상스러움과 다정함이 공존할 수 있는지, 아연은 사뭇 경이로움을 담은 눈으로 성현을 돌아보았다.

“정말이지 네가 이렇게까지 변태인 줄은 꿈에도 몰랐어. 어떻게 눈 하나 깜짝 않고 잘도 그런 망측한 소릴 입 밖으로 하는 건지. 속으로만 생각해도 변태인데, 넌 정말 심각한 변태…….”

“알고 건드린 거 아냐?”

이제 변태라는 말 정도는 그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처음에도 변태란 말에 더 흥분해서 달려들기나 했었지. 새삼스럽게 놀랄 것도 없었다.

게다가 잊을 만하면 이 관계의 시작이 둘 중 누가 누굴 충동질한 결과인지 친절하게 되짚어 주는 용의주도함까지.

“알았다면, 안 그랬을 거야.”

이렇게 심각한 변태인 줄 진작 알았더라면 차마 건드리지 못했을 거라고 아연은 생각했다. 아무리 그 변태가 뒤집어쓴 껍데기가 훌륭하고 완벽하다 하더라도 말이다.

“난 좋아. 네가 날 건드려 줘서.”

성현은 뒤에서부터 아연을 꼭 끌어안은 채 납작한 아랫배를 야릇하게 쓰다듬었다. 느릿한 손길에 기분 좋은 노곤함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커다란 품 안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단단히 가둬진 구속감이 안온하기만 했다.

“내가 먼저 널 건드렸으면 천하의 개새끼가 됐을 텐데, 지금은 그냥 네 개새끼잖아.”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아연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질 나쁜 손길이 아랫배를 쓸고 올라와 가슴을 마음대로 움켜쥐었다.

“난 너처럼 욕심 많은 개 거둔 적 없어. 세상에 이렇게 손버릇 나쁜 개가 어디 있다고, 기가 막혀서…….”

아연이 그의 손등을 찰싹 때리고 새침하게 밀어냈다. 그러나 성현은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제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한 덩어리로 엉킨 손을 당겨서 아연의 손등에 입술을 문대며 그가 태연하게 대꾸했다.

“매일 네 아래에 고개 처박고 네가 주는 대로 받아 마시니까 네 개새끼지.”

능글맞게 받아치는 성현의 말에 아연의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누가 뭘 받아 마셔……?

이젠 웬만한 그의 음담패설에는 면역이 생겨서 더 이상 놀랄 것도 없으리라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했건만, 완전한 착각이었다. 도무지 한계를 모르는 음란한 표현에 말문이 턱 막혔다.

아연은 자동으로 머릿속에 소환되는 이미지들을 애써 몰아내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제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할짝거릴 때마다 어쩐지 덩치 커다란 개 같단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그걸 본인도 알고 있었단 말이지.

“알았어.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비켜. 숨 막혀.”

아연은 체념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어깨를 뒤척였다. 그제야 그녀의 몸 안을 가득 채우고 사방을 짓누르던 것이 내벽을 긁으며 쑤욱 빠져나갔다. 그 거대한 존재감이 안쪽에 남긴 이물감에 아연은 어깨를 흠칫 떨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당최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이었다.

허탈함. 허무함. 공허함. 성현과의 섹스 직후엔 온갖 종류의 한기가 그녀의 몸을 휘감는다.

하나인 것처럼 조금의 틈도 용납하지 않고 들러붙어 있던 몸이 홀연히 사라져 버린 공간에 냉랭한 현실감이 몰려드는 순간이었다.

비틀린 관계가 주는 쓸쓸함, 그 무기력한 감각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그녀만이 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기운을 소진한 채로.

잠시 욱신거리는 감각을 가만히 견디며 아연은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그때, 문득 제 아래를 스윽 파고드는 손길이 느껴졌다.

당연스럽게도 성현이 그녀의 젖은 곳을 닦아 주려 하고 있었다. 벌써 성현은 정액이 찬 콘돔을 정리하고 제 물건을 꼼꼼히 닦아 낸 후였다. 빠르기도 하지.

섹스 후의 성현은 특유의 무심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아연을 챙기려 들곤 했다. 어디서 배운 섹스 매너인지 쓸데없는 궁금증이 일어날 정도로 정성스럽고 성실한 태도였다.

젖은 아래를 부드럽게 닦아 주는 것에서 시작해 그녀를 아기 안듯 달랑 들어 옮겨 구석구석 씻겨 주는 것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당연하단 듯이 굴어서 지금껏 몇 번이나 분위기에 휩쓸리곤 했으나 부끄러움은 여전했다.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쾌락에 정신이 나가서 이미 온갖 수치스러운 자세를 다 해 보였다고는 하지만, 섹스가 끝나고 이성이 돌아온 상황에서까지 그의 코앞에 다리를 활짝 벌려 줄 정도로 낯 두꺼운 철면피는 아니었다.

“됐어. 하지 마.”

아연은 성현의 손을 살며시 밀어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씻을래?”

성현은 당장이라도 그녀를 욕실로 옮겨 놓을 기세로 되물었다. 아연은 덤덤하게 고개를 저으며 침대 밑에 떨어진 옷가지들을 하나씩 집어 올렸다.

“아니. 집에 가서, 알아서 할게.”

“그냥 자고 가지?”

거짓말처럼 서늘하게 바뀐 음성에 아연이 눈을 들었다. 성현과 시선이 마주쳤다.

단정하고 말끔한 얼굴에 그려진 비틀린 미소가 야릇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한낱 양아치 같은 속내를 드러낸 고고한 황태자의 얼굴.

갑자기 그의 심기가 뒤틀린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성현은 섹스 후 기어코 집으로 돌아가는 아연을 못마땅하게 여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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