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앞선 몇 번의 정사에서 그야말로 정신 나간 짐승처럼 굴던 성현은 이제야 평소의 이지적인 눈빛을 조금이나마 회복하고는 아연의 젖은 눈가를 응시했다. 엄지로 뺨에 얼룩진 눈물 자국을 훔친 그가 페니스를 그녀의 안에 깊숙이 찔러 둔 채로 낮게 속삭였다.
“일주일 내내, 계속 생각났어.”
지난 일주일이란, 그 일이 있고 난 뒤 아연이 그를 따돌리고 요리조리 피해 다닌 시간을 의미했다.
“네 안에 들어가 있을 때 느낌.”
아연은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성현이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그녀의 눈가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그가 나직하게 속삭이는 순간 아연의 안이 와락 조여들며 그의 성기를 쥐어짜듯 움찔거렸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격렬한 섹스의 여파로 발갛게 상기된 뺨이 부끄러움으로 화르르 달아올랐다. 저 역시 그가 제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몇 번이나 떠올렸던가. 무심코 헤아리던 아연은 제 속마음을 들킬세라 냉랭하게 대꾸했다.
“그냥 발정 났다는 얘기 아냐.”
“그럴지도.”
성현은 피식 웃으며 아연의 안에서 몸을 빼냈다. 내벽을 밀어내며 가득 차 있던 굵다란 성기가 쑤욱 빠져나가자 속살이 쩍쩍 달라붙으며 빨려 나갔다. 이윽고 간지러운 구멍 속을 양껏 채우던 거대한 물건이 완전히 사라지니 갑작스럽게 허전해진 질구가 욕심껏 벌름거렸다.
“으흣.”
이상한 상실감과 위화감에 어깨를 떠는 아연의 몸이 휙 뒤집혔다.
아연을 옆으로 누이고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은 자세로 자리 잡은 성현이 바짝 오므린 허벅지 하나를 움켜쥐고 제 허벅지 위에 넓게 걸치듯 들어 올렸다. 반항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앞선 섹스에서 몸소 체득한 아연은 그의 손아귀에 온몸을 내준 것처럼 다리에 힘을 뺐다.
방만하게 벌어진 허벅지 사이로 흠뻑 젖어 투명하게 번들거리는 질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수치심에 골반을 비틀어 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아연의 허리 아래를 뱀처럼 파고든 그의 왼손이 단단히 감겨서는 그녀의 납작한 아랫배를 지그시 짓눌렀다.
허벅지를 느릿하게 쓸고 내려온 커다란 오른손이 애액으로 질척해진 음순을 쓰다듬는다. 그리고 손가락 세 개를 모아 쑤욱 밀어 넣었다.
“물이 질질 흘러서 흐물흐물해졌네. 기특하게.”
대단한 칭찬이라도 되는 양 나긋하게 속살거리는 말투가 퍽 다정다감했다. 살가운 목소리로 줄줄이 내뱉는 말이라곤 죄다 천박하기 짝이 없는 음담패설에 불과했지만.
“흐으.”
손가락 세 개와는 비교하지도 못할 커다란 성기가 드나들었던 질구 안으로 뭉툭한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약간의 아쉬움으로 눈매를 좁히는 순간, 그가 내벽의 움푹 파인 곳을 꾸욱 내리눌렀다. 이젠 그녀가 유난히 느끼는 지점을 모조리 파악한 게 틀림없었다.
아연은 가는 신음과 함께 입술을 깨물었다. 허리를 들썩거리자 귓가에 짓궂은 웃음소리가 잔잔히 부서졌다. 손장난을 치는 것처럼 내벽을 치대던 성현은 애액을 퍼담듯 구부린 모양새로 빼낸 손가락을 입가로 가져와 길게 핥아 올렸다.
“그걸 왜, 더럽게…….”
아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헐떡거리는 숨 사이사이로 간신히 내뱉었다. 성현이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맛있어.”
“그런 게, 맛있을 리가.”
“직접 네 다리 사이에 얼굴 처박고 받아 마시는 게 물론 제일 맛있고.”
하아……. 아연은 긴 숨을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역시 제 말을 듣지 않는 게 분명했다.
성현은 아연의 귓가며 뺨, 머리카락 위에 보이는 대로 입술을 쪽쪽 가져다 붙였다. 그러고는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음순을 양옆으로 쫙 벌리며 귀두를 질구에 끼우듯 맞추고 허리를 단번에 밀어 넣었다.
“하읏.”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도무지 의연하게 반응할 수 없었다. 굵직한 구렁이가 제자리를 찾아들듯 꿈틀거리며 구멍 안으로 밀려 들어오자, 시야가 새하얗게 부서지며 전신이 발발 떨렸다. 삽입만으로 가벼운 절정에 오른 것이었다.
“이렇게 잘 느끼는 몸으로 잘도.”
“흐으, 으응…….”
“나랑 이런 야한 짓 할 생각 없다는 거짓말이나 늘어놓으면서 얌전 떨어 봤자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겠어. 네 아래는 이렇게나 솔직한데, 응?”
그래서 몹시 마음에 든다는 듯 웃음기를 잔뜩 머금은 목소리엔 놀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연은 아득한 쾌락으로 절로 벌어지는 입술을 간신히 다물며 이를 악물고 쏘아붙였다.
“네 아래도 만만치 않…… 흐읏, 잖아!”
“그래. 내 좆이야말로 진작에 너한테 박아 대고 싶어서 안달이 났고.”
애초에 숨기려는 노력조차 없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욕망이었다. 성현은 도리어 알아준 게 기쁜 것처럼 제 천박한 욕구를 선선히 인정하고는 더 깊이 짓쳐 들었다.
본능적으로 오므라드는 허벅지를 고쳐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고는 벌주듯 허리를 쳐올리는 움직임에 아연의 몸이 하릴없이 들썩거렸다. 문득 얕아진 삽입에 숨을 할딱이자, 성현은 안쪽에 박아 넣은 성기를 의도적으로 뭉근하게 돌리며 내벽을 자극했다.
그가 미친 듯이 허리를 흔들어 댈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아찔한 감각이 전신에 벼락처럼 떨어졌다. 절정의 문턱에서 아슬아슬하게 애태우는 느낌. 결국 아연은 애가 달아 온통 붉어진 눈시울로 성현을 바라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흐윽……. 차라리 빨리.”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아연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은 없는 듯 여유롭게 굴었다. 권성현은 그녀가 애원하면 애원할수록 흥분하는 변태가 분명했다.
“네 안쪽은 이렇게 환장을 해서는 내 좆을 맛있게 빨아먹는데, 입으로는 영 딴소리를 하는 게 괘씸해서 그래. 피차 부끄러워할 거 없잖아. 그냥 마음 편히 가져.”
“누가 그딴 상스러운 말에 마음이 편해진다고. 아무래도 넌 제정신이 아닌 것…… 하읏! 아아!”
성현은 저더러 제정신이 아니란 말에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상큼하게 웃음을 흘렸다. 살가운 미소와는 달리 아연의 아래에 박아 대는 속도가 버거울 만큼 빨라졌다.
굵직한 성기가 빠르게 드나드는 접합부에서 맑은 애액이 마구잡이로 튀어 올랐다. 견디기 어려운 감각과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이 전신을 감싸 왔다.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닌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연도 수치심 따윈 잊어버리고 어느새 그가 몸을 부딪쳐 오는 박자에 맞추듯 미약하게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이렇게 침대 시트까지 다 적셔 버렸으니 마음이 불편할 법도 하지. 오늘도 벗겨 가 보지 그래.”
처음 몸을 섞은 날, 몰래 침대 시트를 챙겨서 도망갔던 것이 적잖이 황당했던 모양이다. 이쯤 되면 그가 제게 어떤 억하심정이 있어 그저 괴롭히고자 하는 목적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솟아났다.
“으응……. 흐으.”
“그때 그건 귀엽기라도 했지. 사람 돌아 버리게 하는 짓은 다양하게 잘도 해, 한아연은.”
성현이 무언가 떠오른 듯 돌연 심사가 뒤틀린 목소리로 씨근덕거리며 읊조렸다. 그러고는 허리를 둥글게 말아 온몸 가득 아연을 압박했다.
“아흣!”
쏟아지는 압박감에 아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저도 모르게 몸을 바르작거렸다. 성현은 버둥거리는 아연을 뒤에서부터 더욱 세게 끌어안고는 그녀의 귓불을 물어뜯듯이 깨물었다.
“김준성이랑은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어?”
김준성? 우리 동창인 그 김준성?
집어삼켜진 귓불에서 퍼지는 쾌락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도 아연은 의문스럽게 되뇌었다.
꽤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이었을 뿐만 아니라, 침대 위에서 그와 몸을 섞고 있는 와중에 주고받기에는 몹시 불편한 이야기였다.
어쨌든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친구 사이이면서, 두 사람이 남몰래 흘레붙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를 인물. 그러니까 결국 찝찝한 기분만 불러일으키는 화제가 아니던가.
오로지 육욕으로 뒤엉켜 사고를 멈추고 뜨겁게 뒹굴던 침대에서 한순간 생생한 현실의 한가운데 던져진 듯한 기분이 들어 아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김준성 얘기는 왜…….”
“그러게. 너랑 신나게 붙어먹는 이 와중에 왜 그 얼빠진 낯짝이 떠오르는 건지 모르겠네. 아무래도 오늘 보니까 너랑 꽤 사이좋아 보이던 게 거슬렸던 모양이야.”
성현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한아연의 솔직한 몸에 집중하는 데도 아까운 시간에 유쾌하지 못한 얼굴을 떠올려 버린 자신이 몹시 짜증스럽다는 듯이.
모임에 한아연이 등장함과 동시에 엉덩이에 꼬리라도 달고 흔들어 댈 기세로 아부를 떨며 온갖 친한 척을 해대는 김준성 때문에 기분이 좆같았다.
옛날부터 한아연이라면 그 이름만 들어도 자동으로 침을 질질 흘리는 놈이란 걸 알았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눈치를 슬슬 살피며 몸을 사렸기에 내버려 뒀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미묘하게 뒤틀린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를 감지했던 건지, 준성은 아연의 옆자리를 보란 듯이 차지하고 앉아서는 성현의 신경을 마구 긁어 댔다. 성현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특유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도 속으로는 김준성을 패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테이블 위에 눕히고 주먹을 날릴까. 한아연이 놀랄 수 있으니 그냥 조용히 화장실로 끌고 가서 반 죽여 놓을까.
머릿속으로 애새끼나 할 법한 그런 유치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실없이 반복했다. 그러다 불현듯 그런 제 모습이 주인의 옆자리를 빼앗겨 안달복달 못 하고 주변이나 빙빙 도는 개새끼나 다름없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뭇 황당해졌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한심한 패배감. 심지어 무엇에 이기고 졌는지조차 불분명한 끝없는 자조.
늘 당연하다는 듯 군림하는 삶을 살아온 성현에게 낯선 감정을 심어 두고는 방임하는 무책임한 존재.
성현은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아연을 바라보았다. 아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흘끗 쳐다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작게 웃음을 흘렸다.
“별로 사이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고, 그게 널 거슬리게 할 이유도 없지만. 딱히 얼빠진 얼굴까지는 아니지 않나.”
성현의 매끈한 미간에 굵은 실금이 갔다.
끝까지 사람 돌아 버리게 한다 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