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96)

<3화>

성현은 제 앞에 바짝 붙어 앉은 아연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눈은 혼몽하게 풀려서는 감탄 어린 눈초리로 아랫배에 올라붙은 성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큰 좆을 밝히는 모양이었다.

‘근데 한아연이 언제부터 이렇게 좆을 좋아했지? 남자라곤 관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

어이없게도 삽시간에 기분이 가라앉았다. 어찌 됐든 작은 좆을 본 적이 있으니 비교가 가능한 거 아닌가?

제가 모르는 사이 어떤 놈팡이 같은 잡놈이 고작 좆만 한 좆도 꼴에는 좆이라고 한아연의 눈앞에다가 그 더러운 걸 세웠을 것을 상상하니 갑자기 목구멍이 껄끄러워졌다.

작은 가시가 목구멍 한가운데 턱 하니 걸려선 신경에 거슬리기 시작한 느낌. 이유 모를 불쾌감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원래 이렇게 커?”

“……어. 뭐.”

아직 완전히 발기한 것도 아니었지만, 성현은 대충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쩐지 귓등도 뜨거운 게,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배 속이 지글지글 끓어오르듯 더운 기운이 몸 안 가득 차올랐다.

어느새 가빠진 숨을 내쉬는 성현의 가슴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커다란 상체를 가둔 흰 티셔츠가 미어지듯 당겨졌다. 아연은 다른 곳에 온통 신경이 가 있는 바람에 그런 변화를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녀가 마음껏 감상에 빠져 있는 동안 성현은 점점 더 곤란해지고 있었다. 아연이 깜빡거리는 눈꺼풀의 움직임이 마치 길게 늘인 화면처럼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신기하다는 듯 요리조리 눈알을 굴리며 한아연이 쳐다보고 있는 게 제 좆이라니,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스멀스멀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아연은 귀두에서 새어 나온 쿠퍼액이 기둥까지 길게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감탄 어린 신음을 삼켰다. 실루엣만으로 짐작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길고 굵다란 성기의 자태에 머릿속이 그저 멍했다.

권성현의 어깨, 팔뚝, 손, 발, 그 몸에 붙어 있는 거라면 어느 것 하나 크지 않은 게 없다지만, 그중에서도 남다른 것을 꼽으라면 단연코 저것을 꼽아야 할 게 분명했다.

아연으로선 생전 처음 보는 남자의 성기였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인간 같지도 않게 흉흉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였으니까.

탄탄한 복근을 두드리듯 힘차게 꺼떡거리는 페니스의 기둥은 그녀의 한 손으로는 채 쥐기도 힘들 것처럼 두꺼웠다.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연의 빈주먹이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그 둘레를 거슬러 올라가듯 검붉은 핏대가 줄기처럼 감겨 꿈틀거렸다. 야성적인 느낌을 풍기는 핏줄을 제외하면 권성현의 성기는 전체적으로 맑고 예쁜 색깔이었다. 충격으로 눈이 번쩍 뜨일 만큼 거대한 크기였지만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색깔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 털 한 가닥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 때문…….’

그렇다. 성현의 성기 주변은 지저분한 터럭 한 올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제모되어 있었다. 덕분에 시선을 분산시키는 방해물 하나 없이 오롯이 그 중심에만 온 신경을 집중할 수 있었다.

‘근데 제모는 왜 했지? 전 여자 친구 취향이 깔끔한 걸 선호하는 쪽이었나?’

순수한 의구심이 치솟았다. 제가 아는 한, 권성현이 대외적으로 여자 친구를 사귄 적은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궁금했다.

두 사람은 같은 사립 유치원에서 시작해 동일한 재단에서 운영하는 초중고를 에스컬레이터식으로 지나 나란히 S대에 입학했다. 그동안 아연은 그에게 노골적으로 구애하는 용기 있는 여자들을 수도 없이 봐 왔다. 그러나 성현이 딱히 그들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보이는 대로 믿어 왔던 것이다.

‘뭐, 주변에 말 안 하고 조용히 사귀었을 수도 있긴 하지. 여자 친구 생겼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닐 만한 타입은 아니기도 하고. 하긴, 저 좋다고 먼저 다가왔던 여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는데 지금껏 여자 한 번 안 만나 봤을 리가…….’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떨어져 있던 공백기는 성현이 카투사에 복무했던 기간과 미국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온 2년에 불과했다. 사실상 군 복무 기간에도 휴가만 나오면 거의 아연과 만나곤 했기 때문에, 그가 저 모르게 여자와 사귀었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미묘했다.

나처럼 아직 마음에 드는 사람을 못 만났구나, 하는 동질감마저 느꼈었는데. 어쩐지 야트막한 배신감이 피어올랐다.

‘아, 유학 가 있는 동안엔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니까 그때 만나고 다닌 건가? 미국이나 유럽에선 남자들도 제모 많이 한다고 하더니, 권성현도 미국 물 들었나 보네.’

그렇게 생각하니 대충 이해가 됐다. 그녀가 모르는 누군가의 취향에 맞춰 주기 위해 천하의 권성현이 거기 털까지 밀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싸한 기분이 폐부를 감돌았지만, 아연은 얼른 부질없는 생각을 털어 냈다.

어찌 됐든 그녀의 눈에도 털이 없는 쪽이 보기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성기 주변의 매끄러운 피부 위로 불룩 솟은 굵직한 핏대가 색정적이기까지 했다.

만져 보면 맨질맨질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저도 모르게 손끝이 찌릿찌릿했다. 특히 선단 끝에서 질금질금 새어 나온 액체로 투명하게 젖은 모양새가…….

‘진짜 야하다.’

하마터면 입 밖으로 흘러나갈 뻔한 솔직한 속마음을 간신히 갈무리했다.

아연은 마른 입술을 축이기 위해 젖은 혀를 살짝 내밀어 입술 사이를 핥았다. 어디까지나 무심결에 나온 행동이었기에 성현이 내내 그것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고.

맞물린 입술 사이로 빠져나온 혀가 야릇한 움직임으로 훑고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성현은 일순 목이 졸린 사람처럼 숨을 멈추었다. 등줄기가 뻐근하게 당겨 왔다.

‘씨발. 기분이 왜 이래. 더 이상은 못 참겠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한 차례 쓸어내리고 침착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제 됐지?”

애석하게도 목구멍을 긁는 듯한 혼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머리 꼭대기까지 차오른 흥분이 깊게 배어 도리어 한껏 낮아진 음성은 언뜻 냉랭한 기색마저 띠었다.

“아, 아니. 잠깐만.”

“또 왜.”

그가 제 물건을 다시 바지 안으로 추슬러 넣으려는 기색이 느껴지자 아연은 얼른 말했다.

“만져 봐도 돼?”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빠직. 머릿속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그의 인내심이 허물어지는 소리였다. 성현은 미간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야, 한아연.”

“……응.”

“너 겁대가리 상실했지?”

“…….”

“내가 미친놈처럼 돌변해서 너한테 한 번만 박아 보자고 달려들면 어쩌려고 이래. 내가 너 어디까지 봐줄 것 같아.”

박…… 박아……?

아연은 귀를 의심하며 방금 들은 놀라운 말을 입 안에서 중얼거렸다. 도무지 그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천박한 소리까지 하는 걸 보니 적잖이 화가 난 모양이었다.

놀라서 굳어 버린 아연을 내버려 둔 채로 성현은 험상궂게 읊조리며 씨근덕거렸다. 씨발. 웬만해서는 한아연 앞에선 내뱉은 적 없는 거친 욕설이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튀어나왔다.

그는 여전히 뻣뻣하게 발기해 있는 성기를 욱여넣듯 신경질적으로 바지를 끌어 올렸다. 저절로 가라앉기를 바라며 최대한 옆으로 뉘어서 천으로 짓눌러 봤지만 소용없었다.

바지를 뚫고 나가고 싶은 것처럼 불룩 솟아오른 꼴이 한심하다 못해 헛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래서야 펄펄 뛰는 제 모습이 점점 더 우스워지기만 했다.

“등신 취급도 정도껏 해. 응?”

낮게 가라앉은 음산한 속삭임에 아연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 모습을 보니, 또 급격히 마음이 약해진다. 소꿉친구 앞에서 손쉽게도 발기해 버린 스스로가 어이가 없는 데다가, 그런 한심한 놈의 시커먼 속도 모르고 만져 봐도 되냐느니 하는 겁 없는 소리를 해 대는 한아연 때문에 순간적으로 울컥하긴 했지만, 진짜 겁줄 생각은 아니었다.

다시 소파에 털썩 몸을 기댄 성현은 팔을 들어 이마에 얹고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말려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게 뭔 짓거리야.

“이제 너네 집에 가.”

“…….”

“보다시피 너 현관까지 배웅해 줄 상태 아니거든? 알아서 문 닫고 가라.”

제발 눈치껏 사라져 줬으면, 하는 그의 바람과는 달리 맹랑한 목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난 너랑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

“해 볼래?”

성현은 눈을 가리고 있던 팔을 불쑥 내렸다. 아연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매서웠다.

“장난하지 말고 가.”

“장난하는 거 아니야. 누가 이런 장난을 쳐.”

아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도리어 장난치듯 성현의 팔뚝을 툭 건드렸다. 단단한 통나무를 건드린 것처럼 딱딱한 느낌. 툭 치고 떨어진 손끝이 괜스레 뜨거워졌다.

상기된 뺨을 감추듯 아연은 손등으로 뺨을 스윽 훔치며 눈꼬리를 길게 접었다. 어색한 기분에 손등에 닿은 볼이 잘게 떨렸다.

아연의 장난질에 성현은 기가 찬다는 양 허탈한 실소를 터뜨렸다. 냉랭한 헛웃음의 끝에는 또다시 싸늘한 정적이 찾아왔다.

숨 쉬는 것마저 민망해진 아연은 입 안의 살을 꾸욱 깨물었다. 성현은 괜한 벽만 죽일 듯 노려보며 몇 번이고 빈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아연. 진짜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말을 잠시 멈춘 성현은 제 성질에 못 이겨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그러더니 아연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듯 낮게 잦아든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중간에 싫다고 해도 못 멈출 것 같아서 그러는 거니까.”

“…….”

“좋은 말로 할 때 꺼지는 게 좋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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