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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있음에 (63)화 (63/63)

#63화

아무리 좋은 목재를 썼다 해도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집은 햇빛을 받지 못한 꽃처럼 쉽게 시들고 빠르게 삭았다.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는 건, 다 무너져 내린 지붕살과 썩어버린 볏짚들뿐. 밑동만 남은 장독과 새카맣게 그을린 벽 모두 예전과 다를 바가 없으니, 홍옥이 떠난 후로도 버려진 초가집은 새로운 주인을 들이지 못한 모양이었다.

뙤약볕 아래 아무렇게나 자란 잡풀들로 뒤덮인 마당은 이미 근처의 숲과 그 구분이 모호했다.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던 홍옥은 더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무너진 지붕을 내다보고 있었다.

“저어기, 절에서 내려오셨나 봐요.”

명랑하고도 앳된 목소리가 풀벌레 소리들을 뚫고 홍옥의 귓가에 닿았다. 홍옥이 고개를 돌리니 꾀죄죄한 행색의 웬 여자아이가 홍옥의 옆을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났다.

낡아빠진 장구를 둘러메고 뒤뚱뒤뚱 걸어가던 아이는 모두 썩어 흘러내린 초가집 아래에서도 유독 반질반질한 댓돌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찌 알았니.”

“향불 냄새가 나요.”

환하게 웃는 아이의 눈동자는 희미한 회색빛이라 그 시선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 지 홍옥은 알 수 없었다.

“스님이신가요?”

“아니란다.”

“음, 이 동네 사는 분 같진 않은데.”

아이는 눈을 감고도 골똘한 표정을 지었다. 한낮의 더위에 벌게진 두 볼과 땀에 푹 전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아이는 금방 싱글싱글 웃기 시작했다.

“여긴 그렇게 고운 말씨를 쓰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렇겠지.”

“어, 알고 계셨어요?”

아이는 눈을 감은 채로 눈썹을 한껏 치켜 올렸다. 홍옥은 그런 아이를 보며 슬쩍 웃음이 났다.

“어렸을 때 이곳에 살았거든.”

“아하.”

“지금 네가 앉아 있는 그 집말이야.”

“정말요?”

아이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멀뚱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이는 열 살 하고도 서넛은 더 되었을까. 어쩌면 이 아이는 그 옛날 어린 홍옥이 매상 보았던, 저 길가에 내버려진 갓난아이들 중 하나였을지도 몰랐다. 홍옥은 아이의 장구를 내려다보며 괜한 농담을 했다.

“자리 값은 해야지.”

“돈은 없는데, 소리 하나 할까요.”

둔탁한 장구 소리와 함께 아이는 망설임 없이 목청을 높였다. 홍옥이 산자에 머무르는 동안 요란스레 들리던 장단소리의 정체는 이 아이였던 모양이다.

“아효, 종일 굶었더니 목소리가 안 나오네.”

한참 소리를 내다 말고 아이는 주린 배가 당기는지 몸을 웅크리고는 헤헤 웃었다. 홍옥은 어쩐지 아이의 텅 빈 배에서 나는 고동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이 아이처럼 넉살좋게 웃지는 못했지만, 어린 시절의 홍옥도 저렇게 웅크려 앉아 굶주림을 참곤 했으니까.

“집이 없니?”

“있어요, 저기 강둑 아래에.”

“근데 왜 가질 않고.”

“좀 전에 노래 삯 받은 바가지를 도둑맞아서, 그냥 가면 아저씨한테 얻어맞아요.”

“…….”

“돌인지 돈인지 만져보진 못했지만, 바가지가 묵직하긴 했는데.”

아이는 아쉬운 목소리로 지친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손을 들어 이마에 땀을 훔치는데, 장구채를 든 주먹 아래로 드러난 아이의 얇은 손목이야말로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했다.

“그럼 그저 굶니.”

“어쩌다 동무 오면, 삶은 보리 한 줌 얻어먹기도 하구요.”

“동무?”

“얼마 전에 저 아래 지방서 올라왔다던데, 내 노래 한 번 듣더니 가끔 챙겨줘요.”

착하죠. 아이는 눈을 감은 채로 또 히죽 웃었다.

“이유 없이 잘해주는 사람만큼 무서운 게 없지.”

“이유라면, 제 노래 들은 값이라 생각하면 되지요.”

“바가지 훔친 사람이 혹 그 동무는 아니니.”

“에이, 그럴 애 아니에요.”

“성문 밖 어슬렁거리는 애들 중에 안 그럴 애가 있을까.”

“아씨도 참, 그런 말하니 정말 이 동네 사람 맞나 보네요.”

홍옥은 대답 없이 강둑 아래쪽을 내다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성문 밖의 모습은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집이 강둑 아래랬지?”

“저희 집이요?”

“노래 삯 쳐줄 테니 집 구경이나 시켜줄래?”

강둑 아래로 난 길을 홍옥이 앞서 걸어 내려갔다. 길을 지나는 동안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굶주림에 지친 흐리터분한 시선들이 따라붙었지만 홍옥은 조금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십여 년 전엔 어린 홍옥도 딱 이 길목만큼이나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우우 몰려다니는 거지 꼬마 애들 중 하나였으니, 벌써 까마득해지긴 했어도 이 모든 것들이 홍옥의 첫 기억들로 남아 있던 탓이었다.

“아씨, 길은 알고 가시는 거예요?”

손에 든 장구채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바닥을 짚던 아이가 홍옥의 뒤를 허겁지겁 쫓아왔다. 앞서 걷던 홍옥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자, 아이는 그대로 홍옥의 등에 이마를 박고 덩달아 걸음을 멈추었다.

“아씨?”

“…….”

홍옥은 강가 아래에서 사정없이 얻어맞고 있는 한 꼬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홍옥은 퉁퉁 부은 꼬마의 얼굴을 보며 흐릿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서서히 떠올리기 시작했다.

“이 생쥐 같은 년이!”

짝,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입 베어 물었던 떡은 바닥에 도로 뱉어졌다. 부엌 문턱에 쓰러지고도 아이는 흙투성이가 된 떡을 주워 도로 입에 욱여넣었다. 기부는 그 모습을 보고 기가 차 욕을 하며 바닥에 주저앉은 아이의 옷깃을 단번에 잡아챘다.

금방이라도 아이를 내던지려는 기부의 몸짓에 결국 보다 못한 부엌데기 하나가 달려와 기부를 말렸다. 기부의 손에 붙들려 있던 아이는 별안간 그 부엌데기의 품에 폭 안겨들었다. 그 바람에 주먹을 말아 쥐고 있던 기부가 멈칫했다.

“뭐야, 네 새끼여?”

“아…….”

기부는 눈을 부라리며 부엌데기를 쏘아보았다. 부엌데기는 갑작스레 안겨온 아이를 떼어내지 못하고 난처한 얼굴로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하려는 듯 아어, 하는 어눌한 소리만 내던 부엌데기는 결국 아이를 꼭 끌어안고서 연신 기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엌 밖으로 못 나오게 해. 어디 묶어놓던가.”

기부는 손을 탈탈 털고는 또 다시 욕을 중얼거리며 부엌을 나섰다.

부엌데기는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던 아이를 떼어내어 뒤주와 찬탁 틈에 앉혀두고는 약과 하나를 손에 쥐어주었다.

사흘을 내리 굶다가 기방 부엌에 몰래 숨어들어온 아이는 약과를 받자마자 얼른 입 속에 집어넣기 바빴다. 그런 아이를 보며 싱긋 웃던 여인이 발갛게 부어오른 아이의 뺨을 쓸어주고는 또 다시 어눌한 소리를 웅얼거렸다. 아이는 괴상한 소리를 내는 여인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여인이 하는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괜찮니 묻기에 괜찮아요, 하고 대답하듯.

“애가 있었어?”

옆에 있던 다른 부엌데기 하나가 여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걸어오자, 그 입모양을 물끄러미 살피던 여인은 약과를 다 먹고 손가락을 물고 있는 아이를 돌아보았다.

여인은 아이를 한참 보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이름도 없이 떠돌던 고아에게도 가족이 생겼다.

기방 사람들은 여인을 덕금이라 불렀다. 덕금은 성문 밖 강나루가 내다보이는 낮은 언덕에서 도개라는 사내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도개는 나라에 바칠 커다란 나무를 베는 나무꾼이었다. 아이는 덕금과 도개에게 스스럼없이 어머니, 아버지 하고 불렀다. 다행히도 도개는 그 소리를 듣기 좋아하여 덕금이 데려온 아이를 무척이나 귀여워했다.

“아가.”

“아버지, 어머니가 진지 잡수시래요.”

“오냐, 간다.”

덕금은 어릴 때 종살이를 했던 주인에게 호되게 맞아 귀가 멀었다고 했다. 소리를 거의 듣지 못하니 점점 말이 어눌해지고 결국 웅얼거리는 소리만이 남았다. 그래도 덕금이 아가, 하고 부르면 아이는 그 말뜻을 용케도 다 알아들었다.

덕금은 매일매일 정성스레 아이를 씻기고 기방에서 얻어온 깨끗한 옷감으로 아이를 입혔다. 비록 낳아준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태어나 걸식을 하며 살아왔지만, 애정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점차 비렁뱅이 티를 벗고 반짝반짝 빛이 났다. 때문에 천하게 태어나 천한 부모를 두었음에도, 귀하게 자란 아이는 스스로를 천하게 여기지 않았다.

성문이 닫히는 인정 무렵에 집으로 돌아오는 덕금을 기다리며 아이는 나무를 깎는 도개 옆에 앉아 도개가 흥얼거리는 노랫말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도개가 매끈하게 깎아놓은 나무통들은 성문 안으로 들어가 거문고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가야금이 된다고도 했다.

“아가, 너 엄니가 제일 좋아하는 소리가 뭔 줄 알어?”

“뭔데요?”

“네 엄니는, 이 애비가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를 제일 좋아해.”

“에이, 우리 집엔 거문고 없는데.”

“없기는. 여기도 있고, 마당에 잔뜩 쌓였는걸.”

도개가 아무것도 없는 기다란 나무통에다 대고 거문고를 타는 양 뚱뚜당 하며 우스꽝스럽게 소리를 흉내 낼 때면, 도개의 목청만큼은 귀에 들어오는지 옆에서 무명실을 꼬며 가만 귀를 기울이던 덕금도 뚱뚜당 하며 그 소리를 따라 했다.

그러면 아이는 두 사람을 보며 헤헤 웃다가, 덕금의 포근한 품으로 안겨들곤 했다. 아이는 이 포근한 소리와 따뜻한 냄새를 언제까지고 영원히 누릴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뜰한 손길로 촘촘히 엮어오던 시간들이 뜯겨져 나가는 것은 한순간 이었다.

어느 날엔가 나무꾼이던 도개는 조운선에 노를 젓는 조군으로 징집되었다. 조군으로 징집된 천민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조운선의 가장 아래에서 몇 달이나 내리 노만 저어야 했고, 고된 뱃길을 떠난 도개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도개의 소식만을 기다리던 덕금은 조운선이 강나루에 들어오던 날, 도개를 찾아 나루를 서성였다. 마침 지방에서 거둬들인 곡식을 가득 실은 수레는 잔뜩 낡아 있었고, 한쪽 바퀴가 주저앉아 쉽게 기울어졌다. 사방에서 외치는 고함소리를 듣지 못한 덕금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수레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그날, 아이는 돌아오지 않는 도개와 덕금을 기다리며 혼자 방안에 웅크려 밤새도록 알 수 없는 소리들을 노랫말처럼 웅얼거렸다.

어수룩한 부모와 달리 영리한 구석이 있던 아이는 몸을 의탁할 곳을 찾아 다시 성문에 들어섰다. 부질없는 인연에 매이지 않고, 스쳐 지나면 그만인 사람들만이 모여드는 곳. 아이는 그나마 한구석에 남은 미련처럼 거문고 소리를 따라 기방에 들어섰다.

“어머니.”

아이는 또 다시 자신을 보살펴줄 수 있을 것 같은 이를 찾아 어머니라 불렀다. 어머니 소리를 들은 행수도, 지난날 아이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쳤던 기부도 아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가 어머니라 부르는 말에 덕금만큼 다정하게 미소를 지어줄 사람은 이제 없었다.

아이는 봄 빛깔로 화사하게 움트는 얼굴빛을 하고서 홍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홍옥은 기방에 들어온 후로 단 한 번도 덕금과 도개를 떠올리며 울거나 슬픔에 잠겨 있던 적이 없었다. 본래 세상에 날 때부터 혼자였으니, 배곯지 않고 고운 옷 입으며 사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몸이 좋지 않아 내 잠시 요양 보냈던 것인데 도망이라니, 당치도 않지.”

장부에 이름을 올린 기생은 관아의 소유물과 다름없었다. 그런 관기가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에 기방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나장이 찾아왔다. 게다가 그 이름난 홍옥이 사라졌다니, 나장들이 혈안이 되어 쫓아 올 때마다 행수는 매번 코웃음을 치며 나장들을 돌려보냈다.

“험한 꼴로 끌려올까 걱정했다만, 이렇게 제 발로 멀쩡히 왔으니 다행이구나.”

“저를 걱정하셨습니까.”

“…….”

홀연히 사라진 홍옥이 어디서 머물다 온 것인지 행수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기생 팔자야 돌고 돌아 결국 기방이라고, 그 속에 난 불길이 잠잠해지면 언젠가 돌아올 것이라 행수는 조용히 기다린 것뿐이었다.

“얼굴이 상했을까 걱정했지.”

사라졌던 날처럼 홀연히 기방에 나타난 홍옥은 행수가 나장에게 대충 둘러대던 핑계처럼, 정말 요양이라도 다녀온 사람마냥 편안한 얼굴로 돌아왔다. 웬 여자아이 하나를 옆에 끼고서.

“그나저나 그 눈 먼 여자애는 또 무엇이야.”

“사람이, 노리개 하나 값이 채 안 되었습니다.”

“뭐?”

“저는 이곳에 팔려오질 않아서 몰랐는데.”

홍옥은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기방에 두고 일이라도 부리지요.”

“눈도 안 보이는 애를 어찌 부려.”

“제가 거문고 연주할 때 고수로 앉혀 두면 되지 않습니까.”

“여태 손발 맞춰온 장씨는 어쩌고.”

“아이가 더 나아요.”

기방에서 장구를 치는 장씨는 도성에서도 알아주는 고수였다. 홍옥이 이 기방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름이 나 있던 장씨보다, 구걸하기 위해 다 찢어진 장구를 두드리는 아이가 더 낫다 하는 말은 그저 홍옥의 고집일 뿐이라는 걸 행수는 알고 있었다. 다만 또 말없이 사라지기라도 할까봐 행수는 마음대로 하라는 듯 고개를 돌려 한숨을 내쉬었다.

“목소리도 우렁차니, 장구 병창을 잘한답니다.”

“길에서 잡가나 부르던 아이를 데려다 손 앞에 보일 셈이냐.”

“정 거슬리시면 제 딸이라 여기세요.”

“홍옥아.”

“유랑이 길어 여독을 풀고자 하니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홍옥은 사뿐히 일어나 방을 나섰다. 현경과 아란에 대한 소식을 듣고도 홍옥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마음 속 불길이 사그라질 틈도 없이 사라졌으니, 차라리 다행이었나. 행수는 도통 알 길이 없는 홍옥을 생각하며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랜만에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홍옥은 방 안에서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있는 아이를 보며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그 웃음소리에 전을 오물거리던 아이의 희미한 눈동자가 홍옥이 서 있는 쪽을 향했다.

“빈속에 기름진 것부터 들어가면 탈이 날 텐데.”

“여기가 기방이라던데 정말이에요?”

“그래.”

“저를 여기엔 왜…….”

“내가 거문고 연주할 적에 옆에서 장구 두드릴 사람이 필요해 데려온 것이니 걱정마라.”

“거문고를 탈 줄 아세요?”

“이 나라에서 제일로 타지.”

“그럼, 그런 아씨께서 어찌 저 같은 눈먼 계집을 구하십니까.”

“나도, 어딘가 멀어 버린 사람이라 매한가지다.”

“…….”

“그러고 보니 아까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배는 채웠을 테니 이젠 제대로 소리를 내야지?”

홍옥은 문갑 위에 놓아둔 거문고를 꺼내더니 돌괘를 돌려가며 줄을 고르기 시작했다. 복판에 금이 가 있는 거문고는 도개가 깎은 나무에 덕금이 꼬아준 부들이 달려 있었다. 어렵게 수소문하여 구한 거문고라 홍옥이 가장 아끼는 것이었다.

눈을 감은 채 멀뚱히 있던 아이는 홍옥의 거문고 소리를 듣더니 씨익 웃는다.

“목소리가 고우시길래, 고운 연주를 하시나 했더니 소리가 호쾌하시네요.”

아이는 홍옥의 거문고 가락에 맞추어 장구를 두드리기 시작했고, 그 가락에 구음을 얹어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거문고 산조에 구음이라니, 홍옥은 기가 차다가도 이내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날 밤, 홍옥은 아주 오래된 그리운 꿈을 꾸었다.

낡은 마루에 걸터앉아 홍옥이 거문고를 타고 있으니 덕금이 곁에 와 앉아 웅얼웅얼 노래하듯 소리를 내고, 마당에 앉아 나무를 깎던 도개가 그런 덕금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마당 앞 풀밭 위에선 눈먼 아이의 노랫소리에 맞추어 홍옥이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하고서 춤을 췄다. 펄펄 날아오르듯, 훨훨 털어내듯 그렇게 춤을 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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