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한 식경 정도 산비탈을 걸어 내려가니 마을 입구가 보였다. 부실은 무서워하지도 않고 잘만 산을 내려가는 현경을 보고 조금 놀라워했다.
현경은 장터에 오가는 사람들을 보니 자꾸만 옛날 생각이 나서 주먹을 꼭 쥐었다. 현경의 한숨소리는 왁자지껄한 상인들의 흥정하는 소리와 엿장수의 고함소리에 쉽게 묻혔다.
“포목점은 이쪽!”
현경은 미색 명주 천을 보자 무심코 손을 뻗었다. 포목점 주인이 눈치를 주든 말든, 도성에서 제 장난에 토라져 가버리던 아란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뭐 해요, 누비저고리 한다며.”
부실이 현경의 팔을 툭툭 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여기, 누비저고리도 합니까?”
“옷감 가져다 직접 해 입으셔야지요.”
“바느질을 할 줄 모르는데.”
현경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은 포목점에 웃돈을 얹어 주면 바느질하는 아낙들이 저고리를 지어준다고 들었다. 현경의 옷은 대부분 아란이 직접 지어 주었지만, 손이 많이 가는 옷의 경우 포목점에 맡긴다고 했다.
“언니, 바느질 못해요?”
깨엿을 쭉쭉 빨며 말하는 부실을 포목점 주인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현경이 어색하게 웃으며 얼른 포목점을 나왔다.
“어, 왜 안 사요?”
“넌 지금 내 차림 보고도 언니 소리가 나오니.”
그제야 부실은 아하 하고는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깨엿을 깨물었다.
“그럼 그냥 가요?”
“하는 수 없지. 집에 있는 옷들 껴입은 채로 겨울 나야지.”
“가여워라, 글 배우느라 바느질은 못 배웠나 봐요.”
“그러게, 옆에서 좀 배워둘 걸.”
“언니, 나 갱엿!”
현경은 주막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래지 않아 멀건 국밥 한 그릇이 나오고 현경이 크게 밥술을 떴다. 현경의 맞은편에 앉은 부실이 갱엿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근데, 언니 이름은 언제 가르쳐 줄 거예요? 우리 삼 년이나 봤는데.”
“이름 같은 거 없다니까.”
“아, 언니도 쌍놈이구나?”
“너 집에나 가라, 별당마님 말동무 해드려야지.”
“아 맞다, 언니 이거 진짜 안 볼 거예요? 장원 글인데?”
“됐어.”
“아이, 그러지 말구. 나 글 모르니까 읽어만 줘요 그럼.”
현경이 들은 체도 안하며 밥술을 마저 뜨는데, 옆에 앉은 선비들의 대화 소리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
“이번 망월장 장원이 어느 양반댁 규수라는 말이 있던데.”
“김생원 나리가 주인에게 돌려준다고 가져갔으면, 그 댁에 내려와 있다던 그 규수인가.”
“허면, 자네 어제 망월장에 갔었지? 어떻든가?”
“말도 마, 이 친구 어제 눈물까지 글썽거리더라니까.”
“사람 참, 자네가 그 사무친 그리움을 아는가.”
“자 들어봐, 문집에 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여 내 얼른 받아 적어 왔으니.”
부실은 알아듣는 말이 들려오자 선비들 쪽을 돌아보며 귀를 쫑긋 세웠다. 현경도 국물을 후루룩 삼키며 선비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선비 하나가 목을 가다듬으며 삐뚤빼뚤 받아 적은 글을 읽기 시작했다.
‘눈을 감아도 대나무 숲 보이거든
꿈이려나 하는데
눈 뜨면 캄캄히 드리울 마음에
오늘도 꿈속을 서성이네.’
햐, 좋구만. 걸쭉한 추임새가 곁들어지는 동안 주막 안의 사람들은 떠들기를 멈추고 선비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현경이 밥술을 들던 손을 내려두고 알 수 없는 기분에 눈을 가만히 깜빡였다.
‘그대에게 다시 들려주고픈 목소리는
그 옛날 대나무 숲에 가두어 놓았는데
들어줄 이 없이 홀로 찾아온 이곳에
그대 옷자락 스치던 바람이라도 남아 있을까
오늘도 꿈속에선 대나무 숲길 사이로
걸음을 늦추네.’
선비는 마지막 구절을 읽은 후 깊은 숨을 내쉬었다. 다른 선비들은 얕게 탄식하며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부실은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갱엿을 마저 입에 털어 넣었다. 다시 몸을 돌려 앉은 부실은 얼빠진 현경을 보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언니 표정이 왜 그래요?”
“너, 그 종이 이리 줘봐.”
“뭐요, 장원 글?”
“얼른.”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다그치는 현경에게 부실이 급히 품속에서 종이를 꺼냈다. 종이를 펼치는 현경의 손이 떨려왔다.
하얀 종이 위에 적힌 글자를 본 순간 붉어진 현경의 눈시울에 거짓말처럼 눈물이 뚝 뚝 흘러내렸다.
귀양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눈에 인이 박히도록 보았던 아란의 글씨였다. 글자 하나만으로도 첫 획만으로도 알아본 그 정갈한 글씨는 분명 아란이 써내려간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도성에서, 도성에서 왔다고 했지.”
“별당마님이요? 그렇긴 한데, 언니 왜 울어요?”
“혹시, 이름이.”
“우린 다 별당마님이라 불러서 이름은 몰라요, 왜 그러는데요?”
현경은 종이가 눈물에 젖을까봐 팔을 덜덜 떨면서도 눈물 닦을 생각도 못했다.
“이게 그렇게 슬퍼요? 아이, 그만 울어요.”
부실이 안절부절 못하고 현경을 달랬다. 현경이 헛것을 보았다, 눈을 깜빡여 보고 고개를 저어 봐도 그 바람에 눈물만 흩어질 뿐 더 선명히 아란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아란이 살아 있다면. 만약 아란이 이곳에 있다면…….
“언니, 내 말 듣고 있어요. 지금?”
“어? 어, 어.”
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조금 전까지 주막에서 바보처럼 한참을 우는 걸 진정시켜놨더니 현경은 집 앞까지 쫓아와서는 대문만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
“정신 차리고 집에나 가요.”
“자, 잠깐만.”
부실이 대문 쪽으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현경이 말까지 더듬으며 잡아 세운다.
“또 왜요, 말을 해야 알지?”
“별당마님이 이 안에 계시니?”
“별당마님이니 별당에 계시죠.”
“아.”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대체. 부실은 자꾸 엉뚱한 소리를 중얼거리는 현경을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헌데 대문이 닫히는 틈으로 현경이 앞을 서성이는 게 자꾸만 신경 쓰였다. 진짜 이상하네, 저 언니.
“부실아.”
아란이 웬일로 마당까지 나와 있었다. 부실은 깜짝 놀라서 얼른 아란에게로 달려가 무슨 일이시냐 물었다.
“그때 말한 숲길 좀 알려줄래?”
잠깐 산책이라도 갈듯이 묻기에 주인어른이 알면 기뻐하시겠다 싶어 기꺼이 따라 나온 것을, 부실은 금방 후회했다. 별당 안에만 있어서 걷는 법도 잊은 줄 알았던 별당마님은 전에 말했던 소나무를 보겠다며 산길도 마다하지 않고 걸었다. 소나무는 집 뒤에도 많은데.
별당마님은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어째 돌아가자는 말이 없다. 부실은 해지기 전에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했지만 어쩐지 평소와 달리 고집스레 앞만 보고 걷는 별당마님을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꽃신 신고 험한 산길을 올랐으니 기어코 탈이 났다. 발이 아파 잠시 비탈에 기대어 쉰다는 게 아란의 신 한 짝이 이리저리 구르다 바위에 튕겨 멀어진다.
“이 신발은 늘 탈이네.”
아란이 울적해하며 이젠 정말 돌아가야겠다 마음을 먹을 참이었는데. 다람쥐 같은 부실은 굴러 떨어진 꽃신을 찾겠다며 저만치 가버린다. 결국 꽃신만 보며 뛰던 부실도, 그런 부실만 뒤쫓던 아란도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사방이 캄캄하다.
산을 오를 때는 모르다가 막상 돌아가야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산속의 어둠은 순식간에 덮여왔다. 부실은 하는 수 없이 냇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현경의 폐가로 아란을 데려왔다. 부실도 이런 캄캄한 산길은 처음이라 덜컥 겁이 났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해가 지니 바람이 차네요, 그냥 안에 들어가 기다리셔요.”
“함부로 집 안에 들어가 있으면 실례될까 봐.”
“마님 고뿔 드시면 제가 혼쭐 나요, 그리고 이 깊은 산중에 실례고 뭐고, 으, 산짐승이라도 나올까 무서워 죽겠네.”
현경에게 횃불이라도 하나 만들어 달라 해서 돌아가야 하나 싶은 생각에 오긴 왔는데, 하필이면 현경이 방에 없었다. 방 안에 등잔불을 켜놓은 것을 보니 저 뒷길 텃밭에 묻어놓은 술독에 술이라도 푸러갔는지.
“이 산속에도 집이 있구나, 아는 분 집이니?”
“그때 말씀 드렸던, 도인이 사시는 집이에요.”
이 와중에 산속 폐가를 신기해하던 아란이 부실의 말을 듣고 크게 당황해 했다. 하긴, 부실이 전부터 그렇게나 우락부락하다고 강조했던 사내가 홀로 산다는 집에 와 있어서 그런지, 아란의 얼굴빛에 긴장이 어렸다.
어차피 험상궂은 사내라는 건 전부 거짓부렁이고 현경은 여인이니 상관없겠지만, 이렇게 밤늦게 별당마님을 산속에 데려온 걸 주인어른이 알면 호되게 혼이 날 게 뻔했다.
혼이 난다 뿐일까, 혹시나 횃불을 얻어다가 집에 돌아간다 해도 그 와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간 어미와 함께 집에서 내쫓길지도 모르겠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부실은 찔끔 눈물이 났다. 빨리 현경이 돌아왔으면 하는데, 바람도 차가워지고 별당마님을 밖에 세워두기도 불안했다.
“방 안에 들어가 계세요.”
“아니, 괜찮아.”
부실이 그래도 모시는 분이라고 의젓하게 거듭 청했지만, 아란은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옷소매로 들어오는 바람도 시리고 사방이 온통 컴컴한 산속도 무서웠으나 아무리 그래도 외간 사내가 홀로 지내는 방 안에 들어가 있기가 꺼려졌다. 그래도 부실과 친하다 하니 행여 무슨 일이야 나겠냐마는, 그래도 괜히 시린 손끝만 더 꽉 쥐게 된다.
근처에 냇가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마저도 점점 스산하게 느껴지고 맞은 편 숲에서도 자꾸만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 아란은 파랗게 질린 손을 살짝 떨었다. 부실은 더는 안 되겠는지 아란을 거의 떠밀다시피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제가 얼른 가서 데려 올 테니, 마님은 안에 계세요.”
“이 깜깜한데 어딜 가려구, 너도 이리 들어와 있어라.”
막상 방문을 나서던 부실도 아란의 말을 듣고는 다시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아 방 안에 도로 주저앉았다. 아란은 어색하게 앉아 좁은 방안을 둘러보았다. 세간살이라 말할 것도 없이 홑이불 두 채, 경상 하나, 등잔 하나 있고 바닥엔 술병과 종이가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방바닥은 불을 뗀 적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바깥과 다를 바 없이 냉골이었지만, 그래도 벽이 바람을 막아 주니 그나마 나았다. 궁색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에 아란은 방금 전까지 두려워하던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이 조금 짠하게 느껴졌다.
앉은 자리 주위로 널브러진 종이며 술병들을 집어다 정리를 하는 모습에 부실이 손을 내저었다.
“냅두세요, 원래 이러고 사는 사람이에요.”
“그냥.”
부실이 말려도 아란은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저, 혼인 후에도 워낙 술을 좋아하던 현경이 아란 몰래 사랑방에서 홀짝홀짝 마시다 마루 아래에 몰래 늘어놓은 술병을 치우던 옛 생각이 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혼례를 올리던 날 밤 이후로, 현경에게 술상 한 번 차려준 적도, 그 좋아하는 술 한 잔 따라준 적도 없었구나. 바닥을 치우다 말고, 아란은 그리움이 가득한 글들이 흩어진 종이와 빈 술병들을 내려다보았다. 그것들처럼 텅 비어 있는 얼굴로 뒤늦은 후회를 하던 아란이 애달프게 웃었다.
“보고 싶은 분이 있으신가 보다.”
“보고 싶으면 보러 가야지, 맨 집안에서 울기만 해서 전 도통 이해가.”
부실은 말을 내뱉다가도 아차 싶었다. 현경도 현경이지만 남편을 잃은 아란 앞에서 할 말은 아닌 듯 해 부실은 금방 입술을 다물었다.
아란의 얼굴에도 다시금 쓸쓸함이 비쳤다.
“그러게 말이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이렇게 간절히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날이 올 줄 알았더라면, 눈 감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한 번이라도 그 얼굴을 더 들여다 볼 것을. 아란이 현경을 보낸 뒤로 내내 후회하던 것들이었다.
그리는 마음 하나 마음껏 전하지 못하고 송구함만을 바람에 흘려보낸 이 사람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만약 그를 만난다면 한 가지 묻고 싶었다. 송구함마저 바람에 흘려보내고 싶어도 그마저도 닿지 못할 곳에 있는 이를 그리는 사람은 어떡해야 좋을지.
부실은 아란의 눈치를 조용히 살피다 문득 문 밖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후다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