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대가 있음에 (29)화 (29/63)

#29화

날이 밝자마자 아란은 마름질 해둔 종이 뭉치를 둘둘 말았다. 벼루와 먹, 연적을 챙겨 넣은 보자기도 매듭지어 꾹 묶었다. 잊은 것은 없나 한 번 더 확인하고 옥색 도포도 횃대에 가지런히 걸어두었다. 어릴 때부터 집에 과거를 준비하는 문하생들을 들이다 보니, 보고 들은 것이 있기에 아란은 과거시험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건넛방에서 현경이 이제 막 일어나려는지 이불소리가 들려왔다. 현경이 세수를 하고 몸단장하는 동안 시간을 가늠하던 아란은 안방에 앉아 여종을 불렀다. 시험을 앞둔 선비는 며칠간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였으니 시험 당일 아침에는 그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기 위해 입을 열지 않는다 했다. 하여 따로 말을 꺼낼 일이 없도록 빠짐없이 미리 준비를 해두어 대문 밖까지 잘 배웅하는 것이 아내의 도리라, 지난날 어머니가 어린 아란을 앉혀두고 매상 하던 말씀이었다.

아란이 여종에게 새로 지은 도포를 건네는 것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을 해주던 참이었다. 여종도 진지하게 아란의 말을 새겨들었다.

“주인나리께 따로 말씀 올리지 않고 문 앞에만 걸어 두고 나오는 것이다. 알았지?”

“예.”

“중한 시험을 앞두셨으니 아마 입을 열지 않으실 테니까, 되도록이면 눈치껏…….”

“부인, 저 들어갑니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안방 문이 활짝 열렸다. 아란의 주의가 무색할 만큼 쾌활하게 부인을 찾는 현경의 등장에 아란과 여종 모두 벙벙한 표정이었다.

“…….”

“이르긴 하지만 아침은 먹고 가야겠지요? 나중에 배가 고플지 모르니.”

허탈하게 숨을 내쉬는 아란을 보며 바지저고리 차림의 현경은 천진한 얼굴로 배를 쓸었고, 여종은 눈치껏 간단한 요깃거리를 내오겠다며 금방 안방을 나섰다. 어머니의 말씀은 어디까지나 별난 현경에게는 빗겨간다는 걸 아란은 쉬이 잊곤 했다. 그새 현경은 횃대에 걸어둔 옥색 도포를 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정말 이 작은 손으로 요술이라도 부리시는지.”

“아무리 집 안이라 해도 보는 눈이 있으니 겉옷은 걸치셔야지요.”

아란도 이젠 체념한 듯 도포를 어깨에만 걸친 채 히죽 웃고만 있는 현경에게 다가서 흘러내린 고름을 매어 주었다. 아란이 끈을 묶는 동안 그 시선이 맞닿을 때마다 현경이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어린아이가 아닌데도 먼저 옷을 입혀 주는 아란이나, 혼자 잘 매던 옷고름을 아란에게 얌전히 내어주고 있는 현경이나 두 사람 모두 굳이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무심결에 그리웠던 서로의 거리를 좁혔다. 아란의 평온한 얼굴이 웃을 듯 말듯 하기에 현경이 고개를 틀어 눈을 맞추려 하니 결국 아란의 눈매가 곱게 휘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서로의 얼굴이라 반가움을 숨기기가 어려웠다.

“경험 삼아 보는 시험이라 말씀 드렸는데도, 이리 철저하실 걸 알고 서둘러 왔지요. 오늘도 분명 얼굴 안 보여주실 것 같아서.”

“맑은 정신으로 곧장 가셔야지, 이러면 제가 배웅하기에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곱게 매듭지은 옷고름을 정리하고 아란이 돌아서려 하기에 현경은 일부러 갓을 삐뚤게 쓰고는 갓 끈도 엉망으로 묶었다. 아란을 보면 가슴이 떨려 마음이 흐트러진다는 것은 알면서도, 못 보면 불안하여 애가 탄다는 것은 모르는가 싶어 말로는 못하고 괜히 투정하는 마음이었다. 아란이 미간을 좁히며 갓을 벗기고 유건을 현경의 머리 위에 씌웠다.

“애도 아닌데 미운 짓을 하십니까.”

하지만 이렇듯 현경이 마냥 어리게 굴 때도 결국 져주고야 마는 아란이 그 마음을 왜 모를까. 잠들기 전에 건넛방에서 “주무십니까.” 조심스레 속삭이는 그 목소리가 안쓰러워 대답 대신 일부러 몸을 뒤척여 소리를 내곤 했다. 어디 안 가고 여기 있으니 얼른 주무시라 말하는 그 인기척에 현경이 겨우 잠들어 숨소리가 조용해지면 아란도 그제야 잠을 청했으니.

가을이 깊어가 이젠 바람이 찬데도 안방 문을 매번 덜 닫는 것 또한 홀로 글 읽는 것을 적적해하는 현경이 방문을 열면 저를 볼 수 있게끔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 물론 바느질하며 중얼중얼 현경이 글 읽는 소리 들으면 덜 지루하여 그런 것도 있지만.

이런 자신의 마음이야말로 이 사람이 다 알까 싶어 아란은 그 얄미운 얼굴 밑으로 유건 끈을 쭉 당겼다. 그에 현경의 얼굴도 쑥 딸려 왔다. 현경이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봤지만 아란은 모르는 척 끈을 묶는다. 턱 밑이 간지러워 현경이 눈을 찡긋거렸다.

“참, 스승님께서 시험 때 쓸 붓을 구해 주신다 했는데 제가 사양했습니다.”

“얻어다 쓰시지 그걸 굳이 사양하셨습니까.”

“부인께서 쓰시던 붓을 빌리려 했지요.”

“제 것은 긴 글을 쓰시기엔 모가 가늘어 적당하지 않은데요.”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했습니다.”

현경이 으스대며 말하자 아란이 핏 웃으며 현경의 살짝 비뚤어진 유건을 바로 잡았다.

“어서 가세요, 늦겠습니다.”

“시험 마치는 대로 달려올 테니, 저녁은 함께 먹어요.”

아란이 챙겨준 종이와 보따리를 양손에 들고서 현경은 가뿐한 발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 소반을 들고 나오던 여종이 바람처럼 사라지는 현경을 보고는 당황하여 아란을 돌아보았다. 과거를 보러 가는 것은 주인나리인데 어째 배웅하는 안방마님이 더 긴장한 얼굴이었다.

도성에서 가장 높은 기와지붕 아래를 지나며 현경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궁 안에 들어서는 동안 얼굴에 긴장한 빛이 역력한 형님들도 평소와 달리 말을 아꼈다. 큰 규모로 열리는 정기 시험까지는 아니라 해도, 웬만한 도성 유생들이 모였으니 널찍한 궁궐 앞뜰이 금방 들어찼다. 대강 둘러진 흰 가름막들로 자리 구획이 나누어져 있었고, 푸른 관복을 입은 사내가 우왕좌왕하는 유생들을 인솔하며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형님들과는 대충 고갯짓으로 격려를 보낸 후 현경도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종이를 펴고 아란이 아침에 챙겨준 보따리를 풀었다. 벼루 위에 아란의 붓을 올려놓으니 그제야 현경도 슬그머니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손끝이 시려오기에 현경은 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였다.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조금 차분해질 무렵, 마당 안쪽의 중문으로 시험관들이 들어섰다. 그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와 곧 주상전하께서 왕림하실 거라 말을 전했다. 그 말에 시험장이 술렁였다. 주상전하라는 말에 현경의 얼굴빛이 순간 굳었다.

“주상전하 납시오.”

중금의 청명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시험장 안의 모든 유생들이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렸다. 쥐죽은 듯 고요한 시험장 안으로 발자국 소리만이 들렸다.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에 단상 위로 올라서는 묵직한 발소리가 웅크린 현경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국본을 바로 세운 경사로운 달에, 그간 학문에 힘써온 유생들을 격려하는 자리니, 품은 뜻을 명명하게 밝혀 그 재목을 알아보지 못함이 없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근엄한 목소리가 시험장을 울리자, 마당 위에 꿇어앉은 유생들은 이마가 땅에 닿도록 머리를 조아려 목청껏 답하였다. 나이가 지긋한 유생들 중엔 감복하여 거의 목 놓아 우는 자도 있었다. 현경은 왕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질끈 감고 바싹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둥. 둥. 둥. 시험 시작을 알리는 세 번의 북소리가 울렸다. 이번 별시의 글제는 평이했다. 유생들은 먹을 갈며 종이를 채울 생각들을 정리해 가고 있었지만, 현경은 넋을 놓고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 근처에 앉은 박형의 헛기침 소리에 현경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느릿하게 먹을 갈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을 거란 생각과 달리 머릿속이 하얘졌다. 단지 한 나라의 왕이 주는 위압감과는 다른 충격이기도 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니 아예 없는 사람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탓일까. 전해 듣는 이야기만으로는 어렴풋하던 그 존재를 갑작스레 실감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버거운 일이었다.

현경은 붕 뜨려는 마음을 다잡으려 먹을 쥔 손에 다시 힘을 주었다. 서걱서걱 먹이 갈리는 소리에 그간 마르고 닳도록 읽었던 책 속의 글귀들이 현경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스치는 생각의 끝엔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입신양명을 꿈꾸었으나 그것은 그저 남들처럼 갈고 닦은 학문을 널리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지,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고 강씨 왕조의 녹을 받으며 살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관직을 얻는다면 궁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있을까. 만약, 정체가 탄로 난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혹시, 이 궁 안에 자신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현경은 먹을 갈던 손을 멈추었다. 모두가 바쁘게 글을 써내리고 있는 와중에 현경만이 홀로 멈춰 있었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어도 될까. 문득 들었던 생각 속에서 ‘여기’는 이 시험장인지, 이 세상인지 현경은 혼란스러웠다. 살짝 손이 떨렸다. 처음 느껴본 두려움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현경에겐 너무나 낯설었다.

아침에 시작된 시험은 해가 넘어가고 나서야 끝이 났다. 시험 종료를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고 궁 밖으로 유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아쉬움에 탄식하는 이들, 저린 팔을 털며 만족한 얼굴로 나오는 이들 틈 사이로 담담한 표정의 현경이 보였다. 목을 쭉 빼고 주위를 살피던 김형이 그런 현경을 발견하고 어깨를 걸어 왔다. 곧 앞서 나온 박형과 정형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게 보였다.

“뭐 얼마나 명문을 써내렸기에 얼굴이 그새 수척하냐, 현경이 이 녀석 지쳤네.”

“그러는 자네는 아직 기운이 팔팔한 걸 그래.”

“박형 얼굴 좀 보게, 저건 장원급제를 노리는 표정이야.”

형님들은 다들 만족할 만한 글을 써냈는지 표정들이 좋았다. 현경만이 편히 웃지 못하고 어두운 표정이었다. 시험장 안엔 수도 없이 과거에 낙방한 유생들 천지라며 현경을 위로하던 형님들은 오늘 같은 날엔 거하게 마셔야 한다고 소란을 떨며 주막으로 향했다. 현경도 술이 들어가면 어지러운 마음이 멈출까 싶어 터덜터덜 형님들을 따라가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이날 주막이며 기방이며, 시험을 마친 유생들이 후련한 마음과 헛헛한 후회를 술로 털어내느라 밤이 깊도록 도성 안이 시끌벅적했다.

자정이 다가오자 누각에 걸어둔 쇠북소리가 도성 안에 울렸다. 골목에 야간 순찰을 도는 순라꾼들은 길가에 널브러진 유생들을 깨우느라 진을 뺐다.

함께 저녁을 먹자던 현경의 귀가가 늦어지자 아란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마당을 서성였다. 쇠북 때리는 소리가 열 번쯤 울렸을까, 아닌 밤중에 이리 오너라를 외치는 정형의 목소리와 함께 현경이 박형의 등에 업힌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 이게, 지금.”

놀란 아란이 미처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박형은 순라꾼을 피해 얼른 돌아가야 한다며 잔뜩 취한 와중에도 현경을 아란에게 던져놓고 대문 밖을 뛰쳐나갔다. 밤이 깊었는데 실례가 많았다며 벌건 얼굴로 정중히 허리를 숙이는 김형의 옷깃을 낚아챈 정형도 박형을 따라 뛰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에 아란은 얼빠진 얼굴로 고주망태가 된 현경을 부둥켜안고 마당에 서있었다.

술에 전 현경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서 아란이 얼마 버티질 못했다. 집안 노복들이 달려와 현경을 부축해 겨우 안방에 눕히고 아란이 그 머리맡에 앉아 현경의 얼굴을 살폈다. 푸, 푸, 힘겨운 숨을 뱉어내는 현경은 유건이 벗겨져 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와중에도 한 손엔 보자기를 잡고 놓지 않았다. 힘주어 쥐고 있는 손을 아란이 잡고 살살 달래니 그제야 손에 힘을 풀었다. 흙투성이가 된 보자기를 치워두고 아란이 현경의 목에 걸린 유건을 풀고 있는데, 현경이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떴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

다정한 목소리에 느릿하게 끔뻑이던 현경의 두 눈이 허공을 헤매다가 아란에게 닿았다. 그리곤 몸을 틀어 천천히 아란에게 안겨오는데, 아란의 다리를 베고 누운 현경이 그 치마폭 안에서 웅얼웅얼 뭐라고 소리를 냈다. 아란이 그 말을 들으려 고개를 숙였다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 금방 포기했다.

“시험이 어려워 속이 상했나, 왜 이리 취하셨을까.”

아란이 걱정하여 혼잣말인 듯 물으니, 아란의 품을 찾던 현경이 또 다시 웅얼거렸다. 얼핏 알아듣기론 미안하다는 말이 들렸다. 무엇이 미안한가 싶어 아란이 얼굴을 좀 더 가까이 해서 귀를 기울였더니, 배고프다는 말을 한다. 아마도 그 말이 배가 고프냐고 묻는 말인 것 같아, 아란이 조용히 웃었다.

“괜찮아요.”

아란이 현경의 머리를 끌어안고 속삭이니, 그제야 현경은 절반도 못 뜨고 깜빡이던 눈을 얌전히 감는다. 아란이 옆으로 누운 현경의 뺨을 쓸어내리며 미소를 짓다가도 현경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싶어 그마저도 편히 웃지 못했다.

현경은 비탈진 숲길을 뛰어 내려가며 온몸으로 달려드는 바람을 허겁지겁 삼켰다. 온종일 먹은 거라곤 감자 한 알뿐인데도 삼킨 바람 때문에 배가 다 불렀다. 그러다 문득 뭔가를 잊은 느낌에 뒤를 돌아보는데, 순간 두 다리가 휘청이며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는다. 현경은 주저앉은 김에 그대로 맥없이 누워 나뭇잎 사이로 잘게 부서진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쁜 숨을 헥헥 도로 뱉어내다 보니 금방 다시 허기가 졌다.

흙 묻은 손을 씻어내려고 개울가에 쪼그려 앉아 있던 현경은 건너편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건너편 나무에 묶어놓은 빨랫줄 위로 무명천들이 기다랗게 걸려 있다.

“어? 어어.”

뭐가 그리 재미나는지, 포개어 놓은 빨랫감들이 개울에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깔깔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현경은 일단 떠내려 온 빨랫감부터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무릎 위까지 치맛자락을 걷어 올렸다. 막 발을 내딛으려는데 웬 낯선 목소리가 개울 너머에서 들려온다.

‘거기 누구시오?’

소리는 분명 빨랫줄에 걸린 무명천들 너머에서 홀연히 울리는 듯싶더니, 곧바로 현경의 뒷머리에다 대고 외치는 듯 생생해졌다. 어느새 빨래하던 여인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고 웃음소리도 멎었다.

언덕 위로 하얀 천들이 바람에 넘실대고, 그 뒤로 햇살을 등진 그림자 하나가 어른거린다. 얼핏 펄럭이는 천 틈으로 기다란 댕기머리 끝자락이 보이기에 현경은 그제야 저 개울 너머에 두고 온 동무가 생각난다. 이름을 부르려는데 말문이 막혀 도무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현경이 가만 서서 동무의 이름을 생각하고 있는데, 말아 쥐고 있던 치맛자락이 자꾸만 흘러내린다. 그러고 보니 옷차림이 왜 이러지. 치맛자락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던 현경의 귀에 이번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도성 간다더니 여기서 뭘 하고 있느냐.”

조금 전 현경이 건져 내려던 빨랫감을 들고 개울 한가운데에 서있는 강무는 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버지, 뭐 하세요! 옷 다 젖어요.”

현경은 옷이 다 젖어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물이 뚝뚝 흐르는 빨랫감을 끌어안고 있는 강무를 기이하게 바라보았다. 그때 강무가 안은 천 뭉치가 살아 움직이는 듯 꿈틀댔다. 그에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지르려던 순간, 현경은 눈을 번쩍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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