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현경이 마당에 나와 보니 노복들이 웬 꾸러미들을 노새의 안장 위에 잔뜩 올리고 있었다. 단출하게 다녀올 현경의 계획과는 달리 대문밖엔 어느새 작은 행상이 꾸려져 있었다.
“스승님, 이게 다 뭡니까.”
“처음 고향에 내려가는 것인데 빈손으로 보낼 순 없지 않느냐, 급히 준비하느라 얼마 안 된다.”
“언제 이런 걸 다…….”
“그리고 이건 아버지께 전해 드리거라, 그냥 몇 자 적었으니.”
제현이 서신 하나를 슬며시 건네며 말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면서도 은근히 초조해 하는 그 마음이 전해지기에 현경은 공손하게 서신을 받아 품 안에 넣었다. 아란에게 자신 있다 큰소리는 쳐놓긴 했다만, 이젠 정말 아버지께 엎드려 빌어서라도 허락을 받아와야 할 판이었다. 현경이 말에 올라 길을 떠나는데, 고삐를 쥔 두 손이 달달 떨렸다. 고향 가는 설렘이 참 살벌하기도 했다.
벌겋게 달궈진 호미는 대장장이 덕구의 묵직한 망치질에 깡, 깡 소리를 내며 원래의 모습을 찾아갔다. 마지막 담금질을 끝내고 물통에서 건져낸 호미를 내려놓기 무섭게 별안간 새끼줄에 꿰어놓은 편자들이 촤르륵 바닥에 쏟아진다.
“아이고, 반가운 손님이라도 오는갑네.”
그 말에 뒷짐을 지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강무가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오늘 누가 오기로 했는가?”
“하는 소리지, 편자 갈아줄 말 타고 먼 데서 누가 오나 싶어서.”
덕구가 껄껄 웃으며 수리를 마친 호미를 내밀었다. 강무가 멀쩡해진 호미를 받아들고서 이리저리 살피는데, 어쩐지 마을 입구 쪽이 소란스러웠다. 그러더니 곧 마을 청년 하나가 달려와 강무를 찾았다.
“강무 아저씨, 얼른 나와 보세요!”
“보부상단이라도 왔느냐, 노새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상단은 아니고 도성에서 현경이가 왔습니다.”
현경이 금의환향했다는 소문에 감자골 사람들이 모두 나와 현경을 반겼다. 짐을 내리면서 석구가 어사화는 어따 흘리고 왔냐 농담했더니 현경은 오다 엿 바꿔 먹었다고 능청스레 그걸 또 받아 쳤다.
“현경이 도성 가더니 얼굴 핀 것 좀 봐라.”
“이제 아주 고향에 내려온 것이냐?”
용래가 묻는 말에 현경은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러다 사람들 틈에서 강무의 모습이 보이자, 아버지! 부르며 강무에게 와락 안겨 들었다. 오는 내내 아버지의 얼굴을 어찌 보나 싶었는데, 막상 보니 그저 반가워 웃음부터 나는 현경이었다.
“어이쿠, 다 큰 녀석이.”
달려든 현경 때문에 휘청하여 들고 있던 호미를 놓친 강무도 웃으며 현경을 반겨주었다. 갓 씌워 줬더니 훌쩍 도성으로 떠난 지도 벌써 몇 달이 흘렀건만, 감자골을 떠날 때와 다름없이 여전한 현경이었다.
그렇게 반가운 재회를 마치고 오랜만에 언덕길을 오르며 집으로 향하던 현경은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딛으며 잠시 생각하더니 앞서가던 강무를 불렀다.
“아버지.”
“오냐.”
“나 혼인해요.”
별일 아닌 듯 웅얼거리는 그 말에 강무가 힐끔 뒤를 돌아보더니 피식 웃는다.
“그것도 도성서 하는 농담이냐.”
“아니, 농담 아니에요 아버지.”
“…….”
“이름은 이가에 아란이라는 분인데.”
“아란?”
“…….”
“너, 설마.”
“아버지 허락받으러 왔어요.”
“뭐?”
언덕을 오르던 강무는 걸음을 우뚝 멈췄다. 내딛은 발끝만 보고 걷던 현경은 부릅뜬 눈으로 돌아보는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저 아버지 손에 들린 호미를 보며 조금 이따 말할 걸 그랬나, 하고 뒤늦은 후회만 했을 뿐.
그 후로 언덕을 오르는 내내 강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집에 도착하여 조금 떨어져 걷던 현경이 막 싸리문을 지나는데 마당에 선 채로 한참 생각하던 강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란이 사내 이름 같지는 않고.”
“…….”
“그럼 가져온 짐 모두 그 집에서 보내준 것이냐.”
“예.”
“설마 재물이 탐나 사내인 척 꼬드겼느냐.”
“아뇨, 제가 뭐 그런 거에 흥미 있나요.”
“허면.”
“그 분은 제가 여인인 것을 알고 있는 걸요.”
“네가 누구인지도?”
“그건 아니지만.”
강무의 한숨에 마당이 푹 꺼질 것만 같았다. 예상을 아주 못한 것은 아니지만 냉랭한 아버지의 반응에 현경은 흙바닥이 아니라 살얼음을 밟고 선 듯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네가 여인인 것을 알고 겁박이라도 하드냐.”
“에이, 그런 거 아닙니다.”
“그럼 대체 왜?”
“그냥 함께 있으면 좋을 것 같은 분입니다.”
“현경아.”
“같이 있음 좋고, 또 지켜주고 싶고 그래요.”
“누가 누굴 지킨다는 말이냐.”
“그냥 그런 마음이 들어요, 아버지. 그다지 가엽지도 않고 나보다 잘난 사람인데도.”
“어찌 여인을, 너는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말이 안 될 건 또 뭐요, 그리 따지면 아버지가 날 살린 건 뭐, 말이 되나.”
“이놈이, 못하는 소리가!”
강무가 마당에 있던 빗자루를 쥐고 당장이라도 쫓아올 듯 발을 내딛자 현경은 얼른 싸리문 밖으로 달아났다. 화가 난 아버지는 무서웠지만 현경도 물러설 수 없으니 골이 났다.
“그러니까 그런 마음이 드는 걸 어째요, 아버지.”
“바른 대로 고해라, 다른 꿍꿍이라도 있는 것이냐?”
“꿍꿍이는 무슨, 아니라니까 그래.”
“여 마당에 있는 짐들 필요 없으니 내다 버려라. 그리고 계속 말도 안 되는 고집 부리려거든 다시는 도성 갈 생각하지도 말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굳게 닫힌 아버지의 방문을 보며 현경은 어깨를 축 늘였다. 전처럼 떼쓴다고 들어줄 나이도 지났으니 목청만 높인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된다 한들 그리 꾸역꾸역 억지 허락 받아내 기쁠 일도 아니었다. 현경은 비척비척 걸어가 평상 위에 앉았다. 간만에 오는 고향 마을이 참으로 포근하기만 한데 보고팠던 아버지는 저리 칼바람이 쌩쌩 인다.
해가 뉘엿뉘엿 지려니 현경은 은근히 허기가 졌다. 걸리적거리는 갓이며 도포자락 벗어두고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니, 그래도 물 끓여 밥상 차리는 솜씨는 녹슬지 않았다. 뚝딱 진지상 차려들고 아버지 방 앞을 기웃거리는데 방 안에 불은 있어도 작은 기척 하나 들리지 않는다. 주무시나?
“아버지 진지 드세요.”
“일없다.”
슬쩍 문을 열어 상 들여놓기 무섭게 서릿발 같은 대답이 곧바로 돌아온다. 현경은 소리 없이 얼굴로만 잔뜩 투덜거리고는 마루에 털썩 앉아 홀로 수저를 들었다. 밥숟갈을 입으로 집어넣는데 왜 밥이 들어갈수록 속이 허한지 모를 일이었다.
간만에 딸내미 왔는데 밥상머리에 마주 앉아 두런두런 말 나누며 한 끼 하면 좋으련만, 현경은 마음이 급해 말을 서둘렀나 싶어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제현이 선물로 보내준 짐 꾸러미에 햇곡식으로 찐 떡이라도 들일까 하니 대답 없고, 귀한 술도 있다 하니 묵묵부답이다. 현경이 하릴없이 가만 앉아 있다 문득 제현이 전한 서신이 생각나 봉투를 꺼내 들었다.
“아버지, 밥 상 치웁니다?”
“…….”
“이거… 스승님께서 보낸 서신인데, 여기 둘게요.”
손도 대지 않은 밥상을 도로 물리며 그 자리에 서신만 두고 방을 나서는데, 아버지는 어째 밥상 들일 때 그 자세 그대로 이마를 짚고 앉아 있다. 맨 저더러 황소고집이라 하지만 누굴 닮았는지 말할 것도 없었다.
배움에 워낙 욕심이 있는 아이니 좋은 스승 만나 학문도 하고, 평생소원이라던 도성에 가서 경험 삼아 과거 한 번 치러 보는 것도 백 번 천 번 고민하고 양보하여 눈감아 줬건만.
현경이 말도 없이 도성으로 떠난 후로, 여인인 것을 들켜 곤경에 처하진 않을까 강무는 며칠간 잠도 못 이룰 정도로 걱정을 했었다. 헌데 들키기는커녕 아주 잘 지내다 못해 도성에서 혼담이 다 들어올 줄이야. 상대는 여인인데다 현경이 여인인 것도 안다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강무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말 못할 다른 사연이라도 있는가, 혹 현경이 도성에서 어려움에 처한 것은 아닌가. 온갖 걱정이 강무의 머릿속에 들어찼다. 현경과 함께 마을로 들어서던 말꾼들 중에 수상한 자는 없었는지 되새기던 강무는 현경이 두고 간 서신을 집어 들었다. 꼼꼼하게 봉해진 겉봉투 위로 “예를 올리어 보냅니다.” 하고 정중히 쓰인 필체가 어딘가 익숙했다. 그러고 보니 현경이 어느 유명한 학자를 따라갔다는 말만 들었지, 그가 누구인지도 아직 모르던 강무였다.
봉투를 열자 겹겹이 접은 장문의 편지가 두툼했다. 강무는 편지의 첫 줄을 읽자마자 깊은 탄식을 했다. 설마.
‘강현경 유생의 부친께 예를 올려 인사드리니, 아란이 아비 되는 이제현이라 합니다.’
벌써 아득한 옛 일이라 그만 잊었다 생각한 이름이었다. 눈길 한 번 준 적 없는 선대왕보다 더 아버지 같았던 옛 스승의 겸손한 인사말은 강무에게 낯설었다. 마치 십 수 년을 거슬러, 강무가 마지막으로 제현에게 남기고 떠났던 글의 답장을 받은 것 같아 강무는 울컥하는 마음에 목울대가 아렸다.
삶의 험한 비탈을 지나다 보면 그 길이 평탄치 못해 앞길을 알 수 없으니, 무심코 마주하는 인연이 생기는 법이었다. 하여 아무리 쫓아도 떠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기다려도 오지 않는 이도 있고, 그렇게 잊었으나 금세 돌아와 마주치는 이도 있기 마련이었다.
강무의 기억 속에서 스승 제현은 무척 엄한 스승이자, 대쪽보다 더한 돌 같은 사내였다. 단 한 번도 시강 시간에 늦거나 일찍 끝내 주는 법이 없었고 늘 굳게 다문 입술로 표정이 없었다. 앉아 있는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어, 입고 있는 관복의 주름마저도 그의 눈빛처럼 칼 같았던 스승 앞에서 왕세자와 청년 강무는 언제나 바짝 긴장해야만 했다.
그런 제현에게도 의외의 면모를 느꼈던 강무의 선명한 기억이 하나 있으니, 지금은 먼 옛날의, 여느 때처럼 시강이 끝나갈 즈음이었다.
당시 제현은 시강을 마친 후 왕세자에게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을 여쭈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잔소리를 들은 왕세자가 벼르고 별러 트집을 잡고자, 티 없이 단단한 돌덩이 같은 스승을 샅샅이 살피던 중이었다. 제현의 관복 허리띠에 오색실이 비죽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옳거니 하며 왕세자는 제현더러 의복이 정갈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였다.
늘 질문 대신 예상 밖의 발언을 꺼내던 왕세자라, 평소 같으면 눈 하나 깜짝 안 할 제현이 그날만큼은 의외로 잠시 당황하는 듯 보였다. 이내 자신의 허리띠에 매인 오색실을 보고도 선뜻 털어내질 못하고 아뢰길,
“소신의 여식이 아마 실을 가지고 놀다 매어 주었나 봅니다.”
“관복에 실 뭉치가 묻어 있으니 흉하지 않은가.”
“오색실은 액운을 막고 건강을 기원하는 것이라 하여, 늘 지니고 다니기로 소신의 여식과 약조하였으니 부디 헤아려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왕세자가 퉁명스레 내뱉는 말에도 제현은 여태껏 본 적 없던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했다. 관복에는 티끌하나 묻는 것도 용납하지 않던 제현이 허리띠에 딸아이가 엉기성기 매어준 실 가락을 보며 바보 같은 웃음을 짓고 있는 꼴이라니. 처음 보는 스승의 그 모습이 해괴하여 황당한 얼굴이던 왕세자와 강무는 제현이 물러 간 후에 한참을 웃었었다.
그러니까 강무의 기억 속 제현은 그 누구보다 딸을 아끼던 아버지였고, 아란은 제현에게 그만큼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딸이었다.
그런 아란의 손을 현경이 잡아 주기를 서신 속의 제현은 바라고 있었다. 분명 제현은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써내려 갔을 글임에도, 어쩌면 자신 때문에 딸이 평생을 별당 안에 숨어 살다시피 해야 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그 누구보다 딸이 행복하게 사랑 받으며 살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고스란히 적어 내렸다. 그리고 그 마음이 한 자 한 자 강무의 마음에도 박혀 왔다.
현경은 아란과 함께 글을 읽고 별당 밖을 함께 거닐었다고 했다. 그리 유별난 일도 아니건만 현경은 제현이 그동안 봐왔던 그 어떤 사내보다 아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던 사람이었다고, 아비로서 제 딸의 손을 잡아줄 사내는 꼭 그런 사람이었으면 하고 늘 바라왔었다고, 제현은 말하고 있었다.
결코 딸아이가 부족한 것이 아님에도 혼사가 이어지지 못했던 지난 일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란이 얼마나 귀한 아이인지를 말하는 그 애틋한 마음과 진심어린 속내는 절절했다. 서신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강무는 상 위에 서신을 올려둔 채로 먹먹한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그 마음이 다르다 할 수 있을까. 강무가 현경에게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꼭 제현의 글과 같으니. 강무가 붉어진 눈시울로 무거운 한숨을 소리 내어 뱉었다. 그러자 잠잠하던 마당 쪽에서 현경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