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세자저하를 위한 일이네.'
강무는 이제현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굳이 이 일을 자신에게 맡긴 것은 무슨 의미인가에 대해서도 곱씹었다. 왕실의 보이지 않는 눈엣가시인 자신이 왕세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해야만 할 뒤치다꺼리인가 아니면, 이마저도 누군가 자신을 시험하는 과제인가.
강무는 궐 안에 들어와 지내는 동안에도 늘 불안함을 떨치지 못했다.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불편한 감정들은 단 하루도 강무를 마음 편히 잠들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일을 끝낸다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왕실의 신뢰를 얻는다면 이곳에 마음을 두고 살아갈 수 있을까. 강무는 유난히 차고 무겁게 손에 닿는 검집을 내려다보았다.
강무는 그 길로 궁궐 밖을 나와 빠른 걸음으로 도성 외곽 쪽으로 향했다. 소문의 여인이 살고 있다는 허름한 집은 마을 외곽 쪽에서도 더 외진 산비탈에 기대어 있었다. 스산할 만큼 초라한 마당에 들어서니 불 꺼진 방문 안에서 아주 작게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강무는 잠시 멈칫하여 손을 살짝 떨었다.
지금 자신은 훗날 강씨 왕조에 누가 될지 모르는 걸림돌을 미리 정리하러 이곳에 온 것이다, 강무는 그런 생각을 계속해서 되새겼다. 꼭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또 이곳에 보내어졌을 것이다. 이 방 안에 있을 어리석은 여인과 갓난아이는 스스로 원하지 않더라도 권력에 눈 먼 어떤 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얽히고 이용당할 것이다. 강무는 방문 앞에 서서 한참을 그렇게 복잡한 마음을 다잡았다.
“밖에 계십니까.”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강무는 들고 있던 검 자루를 꽉 쥐었다. 어렴풋이 들려오던 노랫소리는 이미 멈췄고 바람 소리조차 없는 적막이 흘렀다. 강무는 칼을 뽑아 들고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어두운 방 안에 열린 문틈으로 달빛만이 먼저 들어섰고, 그 발치에 한 여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낯선 이의 침입에도 여인은 놀라지 않고 그렇게 가만히 앉은 자세 그대로 갓난아기를 토닥이며 재우고 있었다.
“······.”
돌아앉은 여인을 보며 강무는 순간 말을 잃었다. 지금도 눈에 선한, 새벽녘이면 홀로 방 안에 앉아 기도를 드리시던 어머니의 그 마른 등이 여인에게서 겹쳐 보였다. 그 고집스레 한 방향을 향해 돌아앉아 있던 애처로운 어깨를, 강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여인은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듯 강보에 싸인 아이를 한 번 더 쓰다듬다가, 아이를 방바닥에 내려놓고 강무를 향해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여인의 창백하고도 고운 얼굴이 달빛에 드러났다.
'형님, 궁 안의 꽃보다 아리따운 여인이 있소.'
강무는 까마득한 지난 날, 왕세자가 스치듯 혼자 중얼거렸던 말을 떠올렸다.
“높으신 분을 몰라 뵙고 함부로 마음에 품은 죄입니다.”
여인은 마치 강무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잠든 아이를 바라보더니 이내 왈칵 울음을 참지 못하고,
“아이는 죄가 없으니 아이만큼은 살려주십시오.”
여인은 아이가 깰까봐 간신히 숨죽여 울었다. 강무는 이 불쌍한 여인을 보며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몇 번이나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지만 이내 힘이 풀렸다.
“나를 베거든 아이는 강물에 떠밀어 주십시오, 강 아래에 마을이 있으니 물에 빠져 죽든 강가에 닿아 살든 아이의 명대로 제발 그렇게 떠밀어만 주시오. 그렇게만.”
“자네와 아이의 명이 여기까지인 것을 어찌하겠는가.”
“부디, 흙 한 덩이 풀 한 포기 한 번이라도 쥐어볼 수 있게······. 아직 이 방문 밖을 나가본 적도 없는 아이입니다, 가엽게 여겨주시오. 제발.”
간절한 여인의 목소리는 울음을 꾹 참느라 듣는 이마저 숨 가쁘게 만들면서도 결코 소리가 높아지지 않았다. 고작 갓난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을 리도 만무하건대 혹여 아이가 들을세라, 숨죽여 말을 잇는 어미의 간청은 강무를 충분히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결국 숨을 크게 들이쉰 강무가 검을 쥔 손을 들었다. 눈물범벅인 얼굴로 아이의 강보 끝만 쥐고 있던 여인은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숙였다. 강무는 여인의 머리에 검을 겨누고도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다.
“왜 혼자 가시오, 이 비통하고도 처절한 세상에 혼자 둘 바에야 아무것도 모를 때 내 숨부터 거두어가시지.”
“······.”
“내가 저 아이라면, 그리 말할 테지.”
자신과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강무는 애초에 모든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그 이유를 잃어버린 후에 겨우 마음이라도 기대어 살던 어머니마저도 자신을 혼자 두고 떠났다. 스스로가 죽지 못해 지금껏 살아있는 것은 다만 자신을 버린 세상을 등질 용기가 부족해서일 뿐이니.
“날이 밝기 전에 어서 도성을 떠나시오.”
강무는 검을 거두었다. 여인은 강무의 말을 듣고서도 별다른 반응도, 말도 없었다. 강무가 검을 거두어 검집에 넣을 때까지도 여인의 애처로운 떨림 또한 멈추지 않았다.
“난 웬 어리석은 여인 한 목숨 거두러 왔으나, 사특하게도 도망쳤으니.”
“부탁합니다, 어서.”
“도망쳤다 한들 멀리 가진 못했을 것이고, 산속 어딘가 싸늘히 구를 시체를 굳이 찾아 나서진 않을 거요, 그러니 서두르시오.”
“어서 내 숨을 거두고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산파 없이 홀로 난산하여 다리를 못 쓰오. 도저히 아이를 안고 뛸 수가 없습니다.”
뚝뚝. 여인의 눈물이 방바닥에 달라붙는 소리가 들리는 고요한 밤이었다. 울음을 참느라 잔뜩 숨이 엉긴 목소리를 내뱉는 여인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는 강무는 눈을 질끈 감고 여인을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렸다.
“아이 목숨은 낳은 어미가 직접 거두시오. 난 모르는 일이니.”
그대로 강무가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오는데, 등 뒤로 무거운 한숨소리가 흘렀다. 그리곤,
“꿈에 하얀 새가 옥돌을 감싸 품으니 빛이 나더이다. 부디 아이를 부탁합니다.”
나지막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강무가 놀라 뒤를 돌아보니 여인은 단도를 쥔 채 옆으로 쓰러져있었다. 단말마의 비명도 없이, 억 소리도 내지 않고 독하게 앙다문 여인의 입술에 강무는 망연자실하여 그 자리에 꼼짝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이 걸린 달 주위에 뿌연 달무리가 지었다.
숨을 거둔 여인을 집 바로 뒤켠에 묻고 방 안으로 돌아와, 강무는 아이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미가 없어진 걸 아는 건지 아이는 어느새 잠에서 깨어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다행히 울며 보채지는 않았지만 저도 살고자 하는지 쉼 없이 팔다리를 움직이는 모습을 강무는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너도 쓸데없이 명줄 하난 긴 모양이구나.”
강무의 까맣고 거친 손끝으로 아이의 꼬물대는 움직임이 닿아왔다.
이튿날 아침, 입궐을 위해 의관을 갖추고 있던 이제현의 앞으로 서찰이 도착하였다.
‘일은 잘 처리되었습니다. 궁으로 돌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세자저하께는 송구하기만 합니다.’
강무가 떠났구나. 제현은 서찰을 읽고 깊이 탄식하였다. 강무에게 일을 맡긴 자신의 생각이 짧았던 게 아닐까 후회가 밀려왔다. 자신은 강씨 왕조와 왕세자를 지켜야 했고, 그리고 강무를 가장 신뢰했다. 두 사람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헤아릴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의 끝에도 제현은 무거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옆에선 여섯 살배기 늦둥이 딸아이가 아끼던 서책을 들고서 다가왔다. 아버지, 하고 부른다.
“오냐, 아란이 책을 읽고 있었느냐.”
“끈이 끊어져 버렸어요.”
“······.”
“아끼는 건데.”
“끊어져 버렸구나.”
“히잉.”
“그래, 끊으려 한 것은 아닌데, 그러려던 게 아닌데.”
제현은 울상을 짓고 있는 딸아이를 보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난밤 잠을 이루지 못한 왕세자는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시강을 진행하는 내내 왕세자는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 제현은 덤덤하게 시강을 마치고 나오면서 그저 강무가 송구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는 말만을 간단히 전했다. 세자 또한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시각, 한 사내가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서 도성 문을 지나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십 수 년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가슴에만 쌓아둔 이야기를 꺼내는 강무의 목소리는 아주 먼 옛날이야기를 하는 듯 덤덤했다. 물론 몇 번이나 되새긴 기억일지라도 가슴이 미어지는 때는 말을 멈추고 한동안 숨을 골랐다.
강무가 기나긴 기억을 꺼내는 동안 경이는 말없이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과거 시험을 보게 해달라 떼를 쓰는 자신을 그저 단념시키기 위해 꺼낸 변명이라 하기엔, 그 옛날 책 속에 쓰인 선인들의 고사처럼 ‘어떤 한 사내가 있었다.’로 시작된 이야기는 다름 아닌 강무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경이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아이를 안고 먼 길을 떠났던 그 사내는 자색 감자꽃이 흐드러지게 핀 언덕에서 내려다본, 어느 조용하고 아담한 마을을 발견하고 그곳에 정착하기로 했다.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한동안 이어진 침묵에도 경이는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고개만 몇 번 끄덕였다. 고개를 숙인 경이는 조금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너를 키우면서 내 죄를 씻으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죄는 깊어지기만 할 뿐 씻어지는 것이 아니더구나.”
“······.”
“아둔했던 나를 원망하거라. 다만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던 이들은 부디 헤아려줄 수 있겠느냐, 너의 모든 원망과 분노는 그저 나를 향해야 옳으니.”
“잠깐, 잠깐만 아버지.”
“이게 지금 곧바로 숨이 끊겨도 시원치 않을, 옹졸하고 못난 나의 마지막 청이다.”
강무도 이젠 참은 숨을 토해내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로 말했다. 가만히 이마를 짚고 있던 경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깊은 회한에 잠긴 아비의 표정을 지켜보기가 괴로웠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밤이 늦었어. 아버지, 나 먼저 자요.”
“······.”
“아버지도 주무세요.”
“그래.”
강무는 경이가 홀로 들어간 방문을 하염없이 돌아보고 있었다. 경이가 저 방 안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을까 두려웠지만 기다려 주기로 했다,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과 달리 쏟아내 버린 이야기를 아이가 쉽게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경이가 어느덧 열여섯이었다. 끝까지 숨겼어야 했을까 싶다가도 아마 그럴 수 없었으리라 강무는 생각했다. 총명한 아이는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이미 많은 것들을 의심하고 있었기에. 강무가 애써 못 본 척 외면해 왔을 뿐이다.
강무는 마루에 걸터앉아 지친 얼굴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에 하얗고 커다란 새가 날아와서는 반질반질한 옥돌 위에 살며시 내려앉아 옥돌을 품는다. 새가 품은 옥에선 빛줄기가 새어나와 금세 환한 빛으로 사방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