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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190화 (190/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190화

“제 아내는 그 때문에 넋을 놓았습니다. 우리에겐 소중한 아들이었어요. 그걸 토로하기 위해 바제트 님께 갔지만, 이렇게 갇혔죠. 전 아카데미의 조교수입니다. 언젠가 이 악행에 대해…….”

“맞아! 나도, 나도 전쟁의 피해자야!”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옆방의 늙은 사내가 창살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것 봐, 내 팔을 보라고! 난 이번 전쟁 때문에 팔을 잃었어! 그 빌어먹을 바제트인가 뭔가 하는 장군이, 로톤 지방을 공격해서! 난 그저 거기서 장사하는 제국인이었을 뿐인데, 바제트와 머리카락이 닮았단 이유로 내쫓겼단 말이다! 내 팔까지 잘라갔어!”

세 번째 방에 있던 건 여성이었다.

“아저씨! 혹시 바제트 님이랑 아는 사이예요? 바제트 님 좀 불러 봐요, 네? 저랑 아는 사이라니까요? 분명 체른 성을 정복할 때, 제게 보상을 약속했다고요! 난 그분께 잘 보이려고 그 더러운 병원도 다 불태워줬단 말이야!”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이들 모두가 바제트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모두 바제트가 아닌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자들이었다.

바제트를 원망할 근거는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분노를 받아내야 할 대상이 필요했다.

내 가족이 죽어버린 이유. 내가 불구가 되어버린 이유. 내 실수로 고향을 불태운 이유…… 그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 바제트란 영웅의 존재가 필요했다.

갈 곳 잃은 분노를 풀 대상을 찾는 것이다.

끔찍했다. 카온은 처음으로 인간의 이기심에 구역질이 일었다. 그럼에도 화를 낼 수 없는 것은, 이들도 피해자일 뿐이란 사실이었다.

누굴 탓해야 하는가?

바제트란 대상이 없다면, 이들은 누굴 탓할 수 있을까?

그나마 바제트를 욕했기에 이 감옥에 수감되었지, 황태자를 모욕했다면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바제트란 필요악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카온은 눈앞에 캄캄해졌다. 이들의 악의와 분노가 피부에 닿자, 아직 어린 그는 감당해낼 수 없었다.

“어이쿠, 괜찮냐?”

그때, 누군가가 쓰러질 듯한 카온을 일깨웠다. 카온의 어깨를 두드린 그는, 다름 아닌 3연대의 연대장, 홉킨스였다.

그는 쓰게 웃으며 카온의 팔을 잡고 바깥으로 이끌었다.

“그, 그 제복! 당신, 당신 바제트의 부하지!”

“이봐! 이쪽을 봐!”

“자자, 귀 막고 나가자.”

홉킨스는 재빠르게 카온을 감옥 바깥으로 이끌었다.

지하실의 농밀한 증오가 사라진 지상에 올라오자, 카온은 방금 전까지 훈련이라도 한 것처럼 땀을 흘려내며 거세게 호흡했다.

“나참, 이런 걸 보라고 수도로 보낸 게 아닌데 말이야. 괜찮아?”

“괜찮습니다.”

“안색은 당장에라도 관 뚜껑 닫을 수준인데?”

홉킨스는 제복에 호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을 내밀었다. 식은땀을 닦으란 그의 말에 카온은 잠자코 그의 명령에 따랐다.

“저들을…… 가주님도 보셨습니까?”

“당연하지. 저들은 가주님의 집 앞에서 시위까지 한 사람들이야. 내 아들 살려내라, 이 전쟁 범죄자야, 살인마, 그런 욕을 하다가 한 달 만에 체포되었지.”

“한 달? 바로 잡힌 게 아니란 겁니까?”

“저들을 부추긴 게 귀족이란 소문이 있어. 가주님의 정신력을 갉을 만큼 갉아놓고, 꼬리가 잡히기 전에 뺀 거겠지.”

끔찍한 방법이었다. 방식은 유치했지만, 효과는 대단했을 것이다.

“가주님은…….”

저들을 벌할 리 없다. 카온은 이를 악물었다. 기사도를 중요시하는 그녀가 백성을 상대로 검을 들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바제트도 저들의 사정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저들의 갈 곳 없는 분노를 받아줄 상대가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겠지.

“……돌아가자.”

홉킨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적당히 상황파악은 했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용인 부족 쪽에서도 성인식 때문에 널 찾고 있으니까, 돌아가자.”

“…….”

“고집부리지 마. 본가도 상황이 안 좋아. 제니트 가주의 영향력이 너무 커진데다, 미카일 부단장도 계속 이상한 인간들을 데려오고 있거든. 괜한 틈을 보이면…….”

“한 달만.”

“뭐?”

“딱 한 달만, 더 있다 가겠습니다.”

카온이 고개를 돌려 홉킨스를 바라보았다. 카온의 눈동자에서 보이는 결연한 감정에 홉킨스가 혀를 찼다.

“대체 뭘 더 하려고? 관찰 말고 할 수 있는 게 있긴 해? 가주님이 반란이라도 할 셈으로 뒤엎지 않는 이상, 우리가 먼저 움직일 수는 없어.”

“이야기해 볼 겁니다.”

“가주님과?”

“예.”

“무슨 말을 해보려고?”

카온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이 분한 마음을 풀기 위해 바제트를 설득해 보겠다는 이야기였다.

홉킨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막기 어려운 어린아이의 고집이었다.

“좋아, 그럼 딱 한 달이다. 한 달 지나면 곧장 돌아와.”

“예.”

“그리고 가주님께 뭔 말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탓하지는 마. 그분도 짊어진 게 많아.”

홉킨스는 그 말을 끝으로 카온의 곁을 떠났다.

카온은 이번엔 그의 뒷모습에 경례를 하지 않았다.

그저 무력한 자신을 떠올리며, 굳은 얼굴로 눈을 감았다.

한 달,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 * *

“오늘 저녁 순찰에서 빠져라.”

“……예?”

“저녁 순찰은 다른 기사단에서 해준다. 우린 모두 정시 퇴근이야.”

카온은 인상을 찌푸리며 선임 기사를 바라보았다. 홉킨스가 떠나고 나서 일주일, 드디어 카온은 혼자서 순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동료 기사가 휴가를 나간 덕에, 혼자 근무를 하게 된 카온은 바제트의 집에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선임 기사는 오늘 근무가 모두 백지화되었다고 말했다.

“황실 연회장에서 행사가 있다. 그걸 위해 황실 기사단이 직접 움직일 거야. 우리 같은 떨거지는 괜히 보이면 욕만 먹어.”

“무슨 행사입니까?”

“어? 너 몰라?”

카온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던 선임 기사는 카온이 도통 모르겠단 표정을 짓자,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찼다.

“오늘 바제트 님의 가주 취임식이잖아?”

“……예?”

카온이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가주 취임식을 왜 황실에서 한단 말인가?

게다가 당장 오늘 취임식을 한다니, 최근 한 달간 가문의 기사단은 수도를 방문한 적이 없었다.

가신과 기사단이 없는 가주의 취임식이라니, 말이 되지 않는다.

“언제 정해졌습니까?”

“나도 몰라. 오늘 긴급 명령으로 떨어진 거라.”

다분히 의심스런 상황이었다. 카온은 우선 선임 기사에게 알겠다고 대답한 후, 숙소를 빠져나갔다. 향하는 곳은 취임식이 열린다는 연회장이었다.

연회장 주변엔 황실 기사단으로 보이는 기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금박이 박힌 제복은 멀리서도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기사들의 눈을 피해 연회장 근처까지 다가간 카온은, 건물 내부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병사?”

연회장 안엔 장비를 갖춘 병사들이 즐비해 있었다. 당장 전쟁이라도 나갈 것처럼 분대를 갖춘 병사들은 기사로 보이는 이의 명령에 따라 특정 장소로 향했다.

카온은 천천히 병사들의 행보를 따라갔다.

‘연회장 복도, 입구, 도로…… 가주님의 저택.’

그리고 병사들이 전방을 주시하는 자세를 확인하고, 이들이 무슨 의도로 모인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가주님을 감시하고 있어.”

바제트가 연회장으로 향하는 길에 드문드문 배치된 병사들의 의미는 뚜렷했다.

일반적인 경비라 하면, 내부에서 바깥을 주시하는 게 올바른 자세다. 하지만 이 병사들은 반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바제트를 ‘향해서’ 경비를 서고 있다.

카온은 등줄기에 소름이 타고 오르는 걸 느꼈다.

이 병사들은 바제트가 다른 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연회장으로 향하도록 만드는 길잡이다. 병사들로 하여금 막다른 길을 만들어낸 것이다.

도로 곳곳에 숨어 있는 병사들이었기에 일반인들은 알 수 없을 테지만, 기사 수준의 실력자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바제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건 너무 뻔했다. 연회장이 곧 함정이라고, 모든 상황이 말해주고 있었다.

카온은 곧장 저택으로 달렸다. 주변 병사들이 의심스러운 눈길로 카온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카온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제트를 찾아 나섰다.

시간은 노을이 질 무렵이다.

저녁에 취임식이 시작한다면, 바제트가 집을 나서기 전에 이게 함정임을 알려줘야 했다.

“헉, 헉!”

멀리서 저택이 보였다. 다가가려던 순간, 문이 열리고 바제트가 걸어나왔다.

물이 빠진 기사단 제복을 입고 있었다. 여전히 초췌한 안색이었고, 눈동자엔 힘이 보이지 않았다.

“…….”

카온을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 바제트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시선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경계와 공포, 그리고 적의.

바제트는 체념 어린 얼굴로 문을 닫고, 앞으로 걸어나왔다.

“바제트, 경.”

로드라고 말하지 못하고, 처음으로 주군의 본명을 입에 담았다. 바제트는 자신의 앞길을 막아선 카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직 성인식을 하지 못했지만, 이미 성장이 끝난 카온의 신장은 바제트보다 한 뼘 이상 컸다.

투구로 가려져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바제트는 카온이 이 주변을 순찰하는 치안 기사라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카온은 어정쩡한 태도로 경례했고, 바제트는 저번과 똑같이 차분히 경례를 받았다.

“고생이 많아.”

그리고 카온을 지나치려 했다. 평소에 입던 튜닉이 아닌 제복과 구두를 갖춘 그녀가 향하는 곳은 뻔했다.

카온은 발걸음을 옮겨 바제트의 앞을 막아섰다.

“……경?”

“가시면 안 됩니다.”

카온은 다짜고짜 바제트에게 말했다.

“심상치 않습니다.”

“…….”

바제트는 가만히 카온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투구 사이로 비춰지는 붉은 눈동자에 얽힌 복잡한 감정을 읽은 것인지, 바제트는 그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비키게, 경. 난 초대를 받았어.”

“주변을 보시면 아시잖습니까?”

“비켜.”

“지금 연회장엔 병사가…….”

“알고 있어.”

“……예?”

바제트에게 연회장의 위험성을 알리려던 카온은, 그녀의 짧은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바제트는 건조한 회색빛 눈동자로 카온을 마주했다.

“모두 알고 있어, 경. 그러니까 비켜.”

“……알고, 계시다, 하면.”

“그래. 이게 마지막이야.”

그녀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려 한다.

카온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설마 이토록 허무한 결심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당신은 이런 곳에서…… 그딴…….”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그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말을 꾸며낼 능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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