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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187화 (187/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187화

외전- 카온의 성인식

카온의 아침은 언제나 빠르다.

숙소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그는 세안을 끝내고, 복도의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후, 곧장 식당으로 향해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쌀을 안치고, 국을 끓인 후, 어제 손질해 놓은 재료로 반찬을 만든다. 반찬은 매일 다르지만, 볶음 하나와 나물 하나씩은 항상 들어가곤 했다.

숙소의 단원 중에선 단장을 제외하곤 편식을 하는 사람이 없어 메뉴를 짜긴 어렵지 않았다.

국간이 얼추 맞자, 그는 배식대에 음식을 옮기고 식당 바깥으로 나섰다.

“좋은 아침이에요!”

“그래.”

마침 제일 먼저 씻고 나온 청하가 다가오고 있었다. 성장기에 들어서며 키가 훌쩍 자란 청하는 어느새 카온의 가슴께까지 머리가 올라왔다.

방학인데도 빨리 일어난 청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한 그가 턱짓으로 식당을 가리켰다.

“밥 퍼둬.”

“누나 깨우러 가세요?”

“어.”

요새 잠이 는 진희는 아침에 깨워주는 사람이 없으면 좀처럼 오전에 일어나는 일이 없었다. 청하를 들여보낸 카온은 곧장 진희의 방으로 향했다.

가던 길에 마주친 단원들의 인사를 받아준 그는, 마침 방문 앞에 서 있던 서한과 마주했다.

“좋은 아침.”

“…….”

카온은 인상을 찌푸리며 머쓱한 표정의 서한을 바라보았다.

서한은 대화를 피하기 위해 작게 헛기침하곤 카온을 지나쳐 식당으로 향했다.

‘케네스.’

아직도 서한에게서 황태자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도 가끔 서한과 진희가 대화를 나누는 걸 볼 때마다 불편한 기분이 드는 건 그 때문이었다.

카온은 한숨과 함께 문을 두드렸다.

“마스터.”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두 번의 노크 후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카온은 익숙한 듯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 위에 진희가 몸을 둥글게 말고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침 식사 시간입니다.”

“……응.”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말을 걸자, 진희가 게슴츠레 눈을 뜨고서 고개를 돌렸다. 내려다보고 있는 카온의 얼굴에 손을 올린 그녀가 하품을 했다.

“일어날게.”

그러곤 카온의 턱살을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살 안 쪘습니다.”

“그러게. 살이 좀 있었으면 만지작거릴 때 기분이라도 좋을 텐데.”

“기사에게 살은 불필요합니다.”

“누가 뭐래? 그래도 턱살 정돈 있는 게 귀엽잖아.”

“기사는 귀여울 필요 없습니다.”

“아냐, 귀여우면 좋아. 청하 좀 봐봐.”

“녀석도 곧 정식단원입니다만.”

“맞아, 젖살 빠지더라. 미소년이었는데 미청년이 되고 있어. 재미없게.”

잠이 덜 깨다 보니 별말이 다 튀어나왔다. 시시껄렁한 농담에 조금도 웃지 않던 카온이 진희를 억지로 일으켰다.

머리를 세우니 이제야 정신이 드는 듯, 눈에 초점이 돌아온 진희가 또다시 하품했다.

“카온도 어렸을 땐 젖살 좀 있었겠다.”

“없었습니다.”

“정말? 턱 굵은 거 보니까, 근육 붙기 전까진 통통했을 것 같은데.”

“…….”

대답해 줄 생각 없던 카온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말재간이 없는 카온은 진희가 짓궂은 장난을 칠 때면 곧잘 대답을 피했다.

맞받아치는 현성이나 순진하게 당해주는 서한과는 다르게, 가장 재미없는 반응이 나오자 진희가 장난스레 혀를 찼다.

“세안하시겠습니까?”

“아냐, 밥 먹자. 오늘 나갈 일도 없으니까, 나중에 씻을래. 이 닦고 나갈게.”

“예.”

카온은 방을 나섰다. 단장을 깨웠으니, 단원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할 시간이었다.

“그건 그렇고, 카온은 성인식 했어?”

식사가 끝나고, 진희는 샤워 후 젖은 머리를 카온에게 맡겼다.

진희의 머리카락을 말리고 있던 카온은 뜬금없는 진희의 물음에 멈칫했다.

성인식이란, 용인이 보호받아야 할 아이에서 자립을 인정받는 전사로 거듭나는 의식을 뜻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용인은 성인식을 무사히 마치는 순간, 부모에게서 자립하여 자신의 주군을 찾아 나선다.

이런 용인의 보편적인 성향이 유일하게 통하지 않던 장소가 바로 드라노이드, 바제트의 가문이었다.

“나 죽기 전에 성인식을 감독했던 기억이 없거든.”

“치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성인이 되었을 때, 마스터께선 이미…….”

“아, 수도에 있을 때구나. 하긴, 제니트 녀석이 용인들을 챙길 리 없지.”

바제트가 수도방위 기사단장이 되고 난 후, 그녀는 가문의 전통과도 멀어져야 했다.

연례행사는 물론이고 기사단의 의식이나, 용인의 관리에서 손을 놓게 되었다.

중앙 귀족과 제니트의 음모였지만, 반쯤은 자신의 의지였다. 더는 가문과 연관되기 싫었던 바제트의 나태한 반항이었다.

“……그러고 보니, 카온의 어린 시절에 대해선 들은 게 없네. 우리 가문에서 태어난 건 맞지?”

“예, 부모님은 3연대의 용인 분대의 분대장이셨습니다.”

“3연대라면 홉킨스가 있던 곳인가?”

“맞습니다.”

진희는 어렴풋이 홉킨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평범한 외모의 사내였지만, 달관한 듯한 묘한 말투가 인상적인 기사였다.

전투 능력이 뛰어난 건 아니지만, 워낙 용병술이 탁월해 3연대의 연대장이라는 주요 직책을 맡았다.

그의 아래엔 꽤나 많은 용인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용인들의 고지식함을 홉킨스만이 부드럽게 넘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렸을 땐 어땠는데?”

“……더 말씀드려야 합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는 카온의 눈빛에 진희가 고집 있는 상관처럼 과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내가 묻는 건 어디서 태어났느냐가 아니야. 카온의 어릴 적이 궁금한 거지. 청하처럼 귀여웠을지, 시영이처럼 앙칼졌을지.”

“둘 다 아닙니다.”

“그럼 더 궁금하네. 말해봐. 그리고 그때 본 바제트의 모습이 어땠는지도 궁금해.”

“마스터는 한결같았습니다.”

“그런 대답보다, 날 본 네 감상이 어땠는지 궁금하다니까. 요즘 들어 사람이었을 적 내가 그립거든.”

“……예?”

“얼른, 이야기 시작해. 명령이야.”

얼추 머리가 다 마르자, 진희는 그대로 카온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얼떨결에 방금까지 진희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게 된 카온은 곤란스러운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무표정이 아닌 그의 난감한 표정은 그것만으로도 감상할 가치가 있었지만, 진희는 봐주는 일 없이 턱을 괴고 경청의 자세를 잡았다.

한참 동안 진희가 말없이 자신을 노려보자, 이내 카온이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명령이라면 따라야만 한다. 용인은 그런 종족이니까.

* * *

홉킨스가 이끄는 3연대는 전쟁의 선두에 서는 1, 2연대와 달리 물자나 병력을 보급하는 보급 부대였다.

그중엔 드라노이드 가문을 따르는 용인 부족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용인은 대체로 개인주의적이다. 부부라는 개념이 없어 가족이란 공동체가 성립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주군만을 위해 살아가는 종족이다.

그들이 주군이 아닌 누군가를 지키는 때는 바로 자식을 낳았을 때였다.

아이를 낳은 두 용인은 아이가 성인식을 치르기 전까지 아이를 보호한다.

그리고 아이가 성인이 되는 즉시 아이와, 그리고 배우자와 헤어져 다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아이는 성인이 됨과 동시에 주군을 찾아 떠난다.

결국 용인이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주군을 위해 살아가는 게 당연한 종족이었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이들은 혈연관계를 모두 끊어내고, 주군이란 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렇기에 세상에서 용인은 신뢰할 수 있는 부하이기도 했고, 동시에 다루기 힘든 병사였다.

자신의 정의, 주군의 말씀을 거역하는 이를 과격하게 배제하고, 조금의 융통성도 발휘하지 않는 그들의 일 처리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용인을 멀리했다.

그런데도 용인이 언제나 귀족들에게 각광받는 사용인인 이유는, 그들의 독보적인 전투 능력 때문이었다.

전투 훈련을 받지 않아도 평기사 수준의 힘을 발휘하는 종족이라니,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무력에 욕망을 드러내는 늙은 귀족들에게 용인이란 꿈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용인은 섣불리 주군을 정하지 않았다. 진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이상, 그들은 목에 칼이 들어온다 해도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

바라는 자는 많지만, 막상 손에 넣은 후엔 사용하기 꺼려지는 병사란 뜻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유일하게 용인을 군대로 부리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드라노이드 가문이었다.

“떠나겠느냐?”

“남겠습니다.”

드라노이드 가문에서 태어난 용인들은, 어쩐 일인지 성인이 되고서도 대부분 가문에 남곤 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은 변하지 않음에도, 그들은 가주를 보고 충성을 맹세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혹자는 드라노이드 가문에 남은 용의 피가 용인의 충성을 이끌어내는 요인이라고 말했지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카온도 다른 드라노이드 가문의 용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직 소년일 적, 그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가주 바제트를 보고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나 카온은 가주의 정의, 제국의 안녕을 위해 충성을 다한 다른 용인들과는 달랐다.

그는 승전가를 노래하는 행렬 사이에서 홀로 땅바닥을 내려다보는 바제트를 보고 동정을 느꼈다.

모두의 칭송과 다르게 그녀는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대륙 최고의 기사라는 수식어가 무색하게 공허한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카온이 생각했던 가주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가문에 남을 것인지, 혹은 새로운 주군을 위해 떠날 것인지 묻는 부모에게 카온은 결심 어린 표정으로 답했다.

“로드를 섬기겠습니다.”

모든 용인이 그렇듯, 카온은 이 한마디로 결정된 자신의 운명에 아무런 후회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을 낳아준 부모와, 부족에 대한 원망과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다.

주군이 저런 안타까운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어른들의 무관심에 대한 반항이었다.

* * *

“넌 다른 용인과 다르네.”

“안녕하십니까, 연대장님.”

“경례는 안 해도 돼.”

부족의 막사에 연대장이 찾아왔다. 훈련 도중이었던 카온은 땀을 훔치며 연대장 앞에 섰다.

경례하려던 카온을 막아선 그는 막사 가장자리에 있던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껄렁한 자세의 홉킨스 연대장의 앞에 카온이 차렷 자세로 섰다.

“이야기를 듣고 왔다. 가주님 곁에 호위로 서고 싶다고?”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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