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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168화 (168/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168화

카르나와 레인이 공격을 취하려 하자, 이영한이 주변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진영을 갖추어라! 지금부터 반격한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헌터들이 이영한 주위로 몰려들었다. 시영도 마찬가지였다.

“아, 아버지. 피가…….”

“앞을 봐라.”

시영의 걱정 어린 눈동자를 무시한 이영한이 카르나를 바라보았다. 괜한 참견을 한 듯해 시선을 내리려던 시영은, 문득 어깨에 느껴지는 감촉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영한이 시영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가자.”

“……네!”

시영은 굳은 얼굴로, 그러나 열기 어린 눈동자로 크게 대답했다.

* * *

“진희 씨! 어딥니까!”

헌터 길드의 길드장, 조혜수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 너머의 진희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곧 도착해요.

“언제요! 지금 무지 급해요!”

-길드장님은 어디 계세요?

“강남 초입이긴 한데, 발이 묶였어요! 웬 이상한 헌터들이 나와서 우릴 막아요!”

-혹시 그 헌터들이 팔이 잘리고 머리가 잘려도 살아 움직이는 인형 같은 애들이에요?

“마, 맞아요! 그래서 돌파할 수가 없어요!”

-정령왕이 있는데도요?

“이 사람들 수준이 모두 A급 이상이에요, 지엑스 때와 비슷해요.”

진희가 허,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거 테러범들의 마법이에요. 남편분께 처치가 아닌 제압을 목적으로 움직여 달라고 말해줘요.

“진희 씨는 어떻게 하려고요?”

-전 이미 돌파했어요.

“네, 네? 어떻게…….”

-아예 번개로 태워버리면 문제없거든요.

A급, S급 수준의 헌터를 한 줌 재로 만들었다는 진희의 말에 조혜수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단순한 대답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파란 기사단의 수준이 짐작이 갔다.

길드의 헌터는 이토록 고전하고 있는데, 진희는 파란 기사단은 어려움 없이 난관을 돌파했다.

-먼저 가 있을게요.

진희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걔는 어디까지 강해지려고 그런다냐?

곁에서 전화를 엿듣고 있던 김방인이 허탈한 목소리로 물었다.

조혜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 * *

“허억, 허억…….”

이영한은 시영의 앞을 막아선 채로,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앞엔 피칠갑이 된 레인과 카르나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놀랍네, 이렇게까지 버틸 줄은 몰랐어.”

카르나는 진심으로 놀란 얼굴이었다.

이영한의 능력은 대단했다. 그는 분명 영웅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언령 한 마디에 땅이 갈라지고, 산이 무너져내렸다.

마법을 파훼시키는 카르나의 능력만 아니었다면, 파괴력 면에선 카르나를 아득히 앞섰을 것이다.

심지어 그는 노쇠한 몸으로 뛰어난 무술을 보여주었다. 어지간한 S급 전사들보다도 빠른 몸놀림으로 카르나에게 맞선 그는, 모든 헌터가 쓰러질 때까지 버텨냈다.

“괴물 새끼…….”

“내가 할 말이야. 이렇게 강한 인간은 나도 오랜만에 보네.”

“단장님.”

“걱정 마. 살려 보낼 생각은 없으니까.”

카르나가 괜한 동정심으로 일을 그르칠까 싶었던 레인이 질책했다. 자신이 그렇게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인가, 카르나가 쓰게 웃으며 레인에게 손사래를 쳤다.

“고생했어, 협력하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다른 타깃도 있으니까.”

“빨리 끝내야 합니다. 제 인형들도 대부분 쓰러졌어요.”

“알았어, 재촉하지 마.”

카르나가 검을 들고 다가왔다. 한 번에 목을 치겠다는 뜻인 듯, 검을 높게 들었다.

“안, 돼…….”

탈진해 있던 시영이 이영한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영한은 시영의 머리를 잡아 눌렀다. 다가오지 말란 뜻에, 시영의 발버둥이 멈췄다.

처음으로 자신의 아버지와 뜻이 통한 날이었지만, 동시에 이별하게 될지도 모르는 날이었다.

“눈물겨운 부자 관계 잘 봤어. 그럼 잘 가.”

더 이상 언령을 사용할 마력도 남아 있지 않다. 이영한은 비통한 표정으로 눈을 감으려 했다.

[……바람 지뢰.]

“어?”

하지만 그때, 예상치 못한 마법이 카르나의 발아래에서 터졌다.

카르나가 미처 마법을 막지 못하고, 바람의 지뢰에 날아갔다.

“아버지!”

그리고 시영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주머니에 있던 아티팩트를 사용했다. 아티팩트 안에 들어 있는 건 은신 효과를 가진 마법이었다.

그것을 통해 이영한과 함께 탈출하려던 시영은, 이내 자신의 어깨를 잡아챈 인물 때문에 아티팩트를 사용하지 못했다.

“이거 놔!”

“꼬맹이 주제에!”

시영을 바닥에 내팽개친 것은 레인이었다. 그는 바닥에 처박힌 카르나를 대신해 시영을 제압했다.

“와, 대단하네. 어떻게 한 거야? 마력을 감추고 마법을 외워?”

“으윽!”

“애기가 재능이 엄청나네.”

먼지를 털고 일어난 카르나가 감탄했다. 카르나마저 속인 마법은 위력은 별 볼 일 없었지만, 그 발동은 놀랍도록 세련되었다.

유나와 민혁에게 배운 마법이 통했다는 사실은 기뻤지만, 조금의 피해도 입히지 못했기에 시영은 분한 얼굴로 눈물을 흘렸다.

“정말 아쉽네. 재능이 좋은 아이는 살려두고 싶은데.”

“죽일까요?”

“으음, 잠깐만. 이봐, 회장님. 당신 막내아들이 죽기 전에 내 부탁을 들어주는 게 어때?”

신사적으로 물었지만, 내용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카르나는 이영한이 전투 내내 시영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섰음을 알고 있었다.

아닌 척해도 그에게 자식이란 지켜야 하는 가족이었음을 뜻했다.

“금강을 넘겨줄 순 없다.”

“내가 듣고 싶은 건 그게 아닌데.”

카르나가 손짓하자, 레인이 잡고 있던 시영의 팔을 사정없이 꺾었다.

“으아아아악!”

고통에 내성이 없던 시영은 비명을 질렀다.

“안 부러졌어. 엄살떨지 마.”

“으, 으윽…….”

시영이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으려 했지만,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는 레인의 힘에 고개가 들리지 않았다.

“네놈…….”

“당신 생각보다 정 많은 사람인 거 알아. 이번이 정말 마지막 기회야.”

“…….”

“아, 안 돼요. 아버지.”

시영이 사력을 다해 이영한을 말리려 했지만, 이윽고 레인의 고문에 다시 한번 비명을 질렀다.

막내아들의 고통 어린 얼굴을 보며 이영한이 분노에 찬 얼굴로 카르나를 노려보았다.

“천벌받을 것이다.”

“하하, 당신도 나쁜 짓 많이 했으면서.”

“그래, 내가 죽을 땐 반드시 네놈도 지옥의 바닥까지 끌고 가주지.”

“힘들걸. 지옥에도 아는 사람이 많아서 말이야.”

“아아아악!”

“시간이 없어. 10초 내로 대답 안 하면 그냥 죽이고 갈 거야. 자, 어떻게 할래? 귀여운 막내아들을 살릴 거야, 아니면 둘 다 죽고 지옥 갈래?”

이영한은 씹어 죽일 듯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음에 나올 말은 정해져 있었다. 카르나가 반가운 미소를 짓고 승낙하려던 그때.

“남의 동생은 왜 깔아뭉개고 지랄이야.”

새하얀 번개가 그들 사이를 갈랐다.

“왔군.”

“왔군은 무슨, 너 방금 번개 보고 놀랐잖아. 예상했다는 것처럼 허세 부리면 못써.”

파란 기사단이 도착했다.

가장 선두에 섰던 단장, 진희는 주변을 살피곤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늦고 말았다. 일면식이 있던 박준을 비롯한 금강의 헌터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오랜만이다, 제니트.”

“그렇네, 바제트 누님.”

“바제트라고 부르지 마. 그리고 난 네 누나도 아니란다, 가문 말아먹은 호로 자식아.”

진희는 불량스런 자세로 검을 들며 말했다.

자신의 누나가 저런 말투를 구사할 줄은 몰랐는지, 카르나가 잠시 할 말을 잃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장님!”

번개 때문에 물러났던 레인이 황급히 다가오려 했지만, 그의 앞엔 서한이 자리 잡았다.

그는 살기 어린 눈으로 레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악연이 참 깊네. 남의 가족을 두 번이나 테러하다니,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저리 비켜!”

레인의 마법이 서한을 향해 날아들었다. 수많은 검은 화살이 저주를 머금고 그를 노렸지만, 서한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항마력이 점철된 그의 검은 레인의 마법을 사정없이 반으로 갈랐다.

“어, 어째서?”

저주가 담긴 레인의 마법은 쉽사리 막아낼 수 없었다. 궤도를 비트는 것이라면 모를까, 정면에서 마법을 없애버린 서한의 힘에 레인이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서한이 레인의 마법을 막아낸 이유는 단순했다.

레인의 마법은 그 성질이 민혁이 휘두르는 이능력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민혁이 마법보단 강하긴 하네.’

손이 저려오는 걸 숨기며, 서한이 혀를 찼다. 그리고 진희를 돌아보았다.

카르나 앞에 선 진희는 알아서 하라는 듯 손을 흔들었고, 서한은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려 레인을 내려다보았다.

레인의 눈엔 공포가 아닌 깊은 증오와 열등감이 서려 있었다. 어린아이의 눈이라 하긴 몹시 이질적이었다.

레인은 곧장 뒤로 도약해 지팡이를 잡았다. 다시금 공격하려는 태세다. 서한 또한 검을 털고 레인을 향해 돌진했다.

“안 가 봐도 돼? 우린 애라고 봐주지 않아.”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예전 누님이라면 아이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생포했을 텐데.”

반면, 진희와 대치하고 있던 카르나는 새삼스러운 얼굴로 감탄했다. 바제트 때라면 상상할 수 없는 말투와 결정이었다.

바제트는 전쟁에 참여한 소년병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명령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대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옛날얘기만 할까, 진희는 한숨과 함께 중얼거리며 검을 들었다.

서한과 진희의 뒤를 이어 파란 기사단이 모두 도착했다. 이영한 회장과 시영이를 보호하는 라이샤를 보며 카르나가 중얼거렸다.

“특이한 아이네. 신성력이 느껴져.”

“우리 애한테 눈독 들이지 마, 변태 자식아.”

“…….”

진희의 독설에 카르나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카르나 주변으로 단원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도망칠 구석을 막기 위해 주위를 에워싼 그들을 살펴본 카르나는 감탄 어린 얼굴로 말했다.

“미카일이 왜 고전했는지 알 만하네. 하나같이 실력이 대단해. 누님은 세계 정복이 꿈이야?”

“그런 귀찮은 걸 왜?”

“한낱 기사단이라기엔 과분한 전력이야.”

“네가 알 바 아니란다. 그리고 누님 소리 작작해.”

진희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툴툴거리며 검을 휘둘렀다. 가볍게 휘두른 것치곤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강력한 번개가 카르나를 향해 날아갔다.

카르나는 그것을 손쉽게 피하고선 휘파람을 불었다.

“정령인가? 이것도 대단하다. 이런 삭막한 세상에 정령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는데.”

“넌 어디 시골 촌놈이니?”

“읏차, 그러게, 내 생각보다 신기한 세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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