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167화
이영한의 외침과 동시에 그의 주변에 있던 헌터들이 카르나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과연 S급의 마법사들이다. 한발 한발이 산을 무너뜨릴 수준의 강력한 마법들이었다.
불과 번개가 뒤섞인 마법들을 바라보며 카르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몇 번이고 받아친 마법인데, 포기하지 않고 공격하는 걸 보니 항복할 의사는 없어 보였다.
“그만하지?”
카르나가 손을 휘두르자, 수많은 마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마치 지우개로 지우듯이 사라진 마법을 보고 이영한이 이를 악물었다.
그가 곁에 있던 마법사를 돌아봤지만, 마법사 또한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창백한 안색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까부터 계속 이런 식이었다.
카르나에겐 어떤 마법도 통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간 마법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가 어떤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에게선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말했잖아, 마법은 안 통해. 덤빌 거면 직접 덤벼.”
“닥쳐라.”
“이래서 머리가 굳은 아저씨들은 문제야.”
카르나의 진심 어린 걱정에 이영한이 가증스럽다는 듯 욕을 내뱉었다.
마법이 소용없다고 해서 달려드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병원에서 카르나에게 덤벼 쓰러진 수많은 헌터가 떠올랐다.
그의 무술은 이영한마저도 놀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헌터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무슨 술수를 쓴 것이냐?”
이상한 점은, 그렇게 수많은 전투를 치렀음에도 카르나에게선 조금의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방과의 마력 수준의 차이가 커서 실력이 짐작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마력을 티끌만큼도 사용하지 않고서, 모든 헌터를 제압했다.
“마력? 그런 거에 집착하니까 약한 거야. 마력은 편법이야.”
“개소리를.”
“정말이라니까? 물론 나는 못 쓰는 거지만, 마력에만 의지하는 멍청이를 상대하는 건 쉽지. 마력은 민감하고 간섭하기 쉽거든.”
예를 들자면, 하고 카르나가 허공에 손가락을 찔렀다. 언뜻 보기엔 아무런 변화도 없어 보였지만, 이영한과 마법사들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사방에 존재하는 마력이 카르나가 찌른 지점을 향해 모이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마나는 주인이 없어. 인간이 직접 휘두르는 마력이 아닌 이상, 자연계에 존재하는 마나는 약점만 알고 있다면 이렇게 풀어버리거나, 묶는 게 가능하지. 그래서 내게 마법이 소용없다고 한 거야.”
마법이란, 마력으로 특정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형태를 만들어내는 기술과 숙련도는 개인마다, 학파마다 다르지만 본질은 마력의 집약체란 점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마법은 술사의 손을 떠난 순간 그 형태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술사에게서 마법이 멀어질수록, 그리고 지속할수록 위력이 약해지는 게 이 때문이다.
그렇게 마법이란 술식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틈을 카르나는 노릴 줄 알았다.
아무리 단단한 그물이라도 한 올이라도 엇나가 있으면, 결국 풀어지게 마련이다.
“그, 그런 방법이 가능할 리 없어. 신이 아닌 이상…….”
마법사가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론으론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론이 모두 실전으로 응용된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마법의 흠을 찾아서 무효화시킨다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도 마법이 자신에게 도착하기 직전에 모든 과정을 끝낸다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가능해. 이미 잘 봤잖아.”
그렇지 않고서야 마법이 사라진 그 광경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마법사들은 할 말을 잃었고, 무기력해진 그들을 뒤로 물린 이영한이 혀를 차며 앞으로 나섰다.
“금강을 빌려 뭘 하고 싶은 것이냐?”
애당초 기업을 하루 빌려달라는 허무맹랑한 요구가 가능할 리 없었다. 하지만 그가 들어줄 수 있는 수준의 요구라면 재고해 볼 수 있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편한 변명은 할 생각도 없었다. 괴물을 물리치는 데 희생을 줄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드디어 대화할 마음이 들었냐며 카르나가 웃으며 대답했다.
“괴짜, 니케 로만의 정보를 알고 싶어. 그리고 파란 기사단에 대한 정보도. 될 수 있다면 단원들 인적사항 모조리.”
“……그걸 알아서 무얼 하려고?”
“물리쳐야지. 나랑 원한이 좀 있거든. 양쪽 다.”
이영한은 침묵했다. 파란 기사단이라 하면, 자신의 아들인 서한과 세영이 연관된 단체였다. 심지어 서한은 그 파란 기사단의 단원이다.
“아버지.”
가장 뒤에서 박준의 보호를 받고 있던 시영이 다가왔다. 다급한 막내의 얼굴을 본 이영한이 굳은 얼굴로 카르나를 노려보았다.
“파란 기사단은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무슨 원한이 있나?”
“거기 단장이 나랑 사이가 안 좋아. 가만 놔두면 분명 내 일을 방해할 거라서, 그 전에 치워두려고.”
“서진희만 죽이겠다는 이야기냐?”
“아버지!”
“조용해라!”
시영이 이영한의 소매를 잡고 늘어졌지만, 그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시영을 뿌리쳤다.
카르나의 여유는 변함없었다. 자신이 칼자루를 쥐고 있음을 알고 있는 그는, 이영한의 뻔한 질문에 거짓 없이 대답했다.
“그래, 그녀만 없으면 되니까, 다른 단원들은 아무래도 좋아.”
“……후우.”
이영한이 고민의 한숨을 내쉬자, 시영이 다시 그에게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박준이 시영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도련님.”
박준의 냉정한 말에 발버둥 치던 시영이 이를 악물고 물러섰다. 힘이 없다는 게 이토록 뼈아프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종혁이 형…….’
파란 기사단엔 시영의 소중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시영의 발버둥이 끝나자, 이영한은 참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금강엔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냐.”
“물론이야. 우린 오히려 당신들이 더 커지길 바라거든. 헌터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아마 운명에 대한 이야기겠지. 이영한은 카르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렇게 된 이상 협력하지.”
“말이 잘 통해서 좋네. 아까 욕한 건 취소할게. 미안.”
“되었다.”
이영한이 카르나에게 다가갔다. 다른 헌터들에게 무기를 내리라는 수신호를 내린 후, 그는 카르나 앞에 섰다.
“하나만 맹세하게. 파란 기사단 중, 이서한이란 단원은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난 거짓말하지 않아.”
“좋다, 본부로 가지.”
설마 이영한이 제안을 받아들일 줄은 몰랐는지, 헌터들이 경악한 얼굴로 뭐라 말하려 할 때였다. 박준은 손을 들어 조용히 만들고는, 사태를 관망했다.
카르나가 뒤돈 순간, 이영한이 그의 곁에 빠르게 다가갔다.
‘언령.’
이영한의 마법, 능력은 언령이었다. 강한 의지가 담긴 말은 그것만으로도 기적을 만들어내게 마련이다.
이영한은 이 언령을 통해 금강을 설립했고, 또 최강의 헌터로 이름을 알렸었다.
[얼어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르나의 발끝부터 일어난 푸른 얼음이 그를 가두기 시작했다. 단순하지만 어마어마한 마력이 깃든 언령은 순식간에 카르나를 감쌌다.
카르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얼어버린 자신의 다리와, 무표정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는 이영한을 번갈아 보았다.
“예상하긴 했지만, 너무 뻔한 공격이다.”
카르나는 다시 한번 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영한이 그의 팔을 막아냈다. 카르나의 손목을 가로챈 이영한이 아까와는 다른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을 휘두르는 척 수인을 맺더군. 그게 마법을 없애는 방법이겠지.”
“윽!”
“그렇다면 손가락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그만이다.”
[얼어라.]
또 한 번의 언령에 카르나의 손이 얼어가기 시작했다. 서리가 낀 자신의 팔을 바라보며 카르나가 헛웃음을 지었다.
“대단하네. 그 짧은 사이에 파훼법을 알아내다니.”
아무 의미 없이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영한은 모든 게 속임수란 걸 눈치챘다. 의도적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며, 수인을 맺던 손가락을 못 보게 할 셈이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봉인 당하면 마법을 막아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금강을 무시한 죄, 목숨으로 물으마.”
“멋진 대사네. 하지만 그거 너무 뻔한 복선이야, 알아?”
카르나는 목 끝까지 올라온 얼음을 의식하며, 고개를 들어 외쳤다.
“레인!”
“무슨!”
그가 소리침과 동시에, 박준의 곁에 있던 헌터 한 명이 달려 나왔다. 시영의 호위였던 그는, 한달음에 달려와 허리춤에서 오브를 꺼내 들었다.
오브는 빛을 발하며 열렸고, 감춰두었던 공성추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크윽!”
이영한은 황급히 카르나에게서 떨어졌다. 하지만 완벽히 피하진 못해, 지팡이의 끝에 어깨를 당하고 말았다.
이영한이 어깨를 움켜쥐고 물러나려 하자, 사내는 지팡이를 들어 주문을 외쳤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세계의 마법은, 한 발의 검은 화살이 되어 이영한을 향해 날아들었다.
[마, 막아…….]
[바람 지뢰!]
이영한이 미처 언령을 외우지 못해, 화살에 가슴이 꿰뚫리기 직전.
사내가 뛰어나간 순간부터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시영이 이영한 앞에 마법을 날렸다.
시영이 만든 바람 지뢰는 화살이 닿자마자 폭발해, 화살의 궤도를 흘려냈다. 그럼에도 파괴력이 줄지 않은 화살은 이영한의 옆에 박혀, 땅에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냈다.
“크윽…… 배신인가!”
“아니, 변장이야.”
사내가 가면을 벗었다. 특수분장처럼 피부를 흉내 내던 가면이 떨어져 나가자, 그곳엔 탁한 눈동자의 레인이 이영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야, 만일을 대비해서 레인을 숨겨두길 잘했네. 자칫 잘못하면 얼어붙을 뻔했어.”
“조심하셨어야죠.”
“미안, 솔직히 저 늙은이가 이렇게까지 약은 수를 쓸 줄은 몰랐거든.”
이영한의 얼음은 천천히 부서졌다. 이윽고 잔해만 남은 얼음을 털어낸 카르나가 한숨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날 도와줄 생각 없어?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받아줄게.”
“우습게 보지 마라. 너 같은 변질자에게 자식을 팔 만큼 어리석지 않다.”
“네 자식은 살려주겠다니까?”
“내 자식이 사랑하는 이를 해하려는 것도 다르지 않다.”
“하하, 대단한 가족애네.”
설마 냉혈한이라 불리던 이영한이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듯, 시영과 박준마저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이영한은 피가 흐르는 어깨를 누르며 자세를 잡았다.
“진짜 괜찮아? 그 팔은 저주받아서, 지금이라도 해주받지 않으면 몇 시간 안에 죽고 말걸?”
“내 죽음은 네 알 바가 아니다.”
“아니, 내가 금강이 필요하니까 하는 말이야.”
“마찬가지다. 금강은 도적에게 줄 만큼 호락호락한 보물이 아니야.”
“……말이 안 통하네.”
카르나가 볼을 긁적이다, 이내 주먹을 쥐었다. 그의 손아귀에 한 자루에 검이 나타났다.
공성추처럼 검은색을 띠는 불길한 검이 날카롭게 빛났다.
“난 기회를 줬어. 원망하진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