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166화
38. 다이아몬드는 영원하지 않았다
“으아, 요즘 돌아다니기 너무 힘들어요.”
소라가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침 기사단 숙소에서 훈련을 봐주고 있던 진희가 소라를 반겼다.
“왜?”
“다들 알아봐요. 파란 기사단이라면서.”
특별 관리형 던전을 정복하는 방송이 나간 후, 파란 기사단의 유명세는 하늘을 찔렀다. 잠깐 출현했던 삼인방은 물론이고, 진희의 곁에 있던 라이샤와 카온은 종일 SNS에서 화제가 될 정도였다.
“유명인 되니까 좋지 않아?”
“언니는 좋아요?”
공적인 자리가 아니라면 편한 호칭을 쓰는 소라가 헛웃음을 지으며 묻자, 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한 인기는 기분 좋잖아.”
“언니, 요즘 사람 많은 곳 가본 적 없죠?”
“시장은 갔는데?”
카온이 장 보러 간다고 할 때 따라간 적은 있었다. 역시나 그렇구나, 하며 소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시내라도 나가면 난리 날 걸요. 아마 알아보는 사람들로 길이 막힐 지경일 거예요. 저희도 그랬는데 언니는 더 심할 테니까.”
“우리고 무슨 연예인이야?”
“그것보다 더할걸요.”
헌터가 연예인처럼 활동하는 경우도 많은 판국에, 파란 기사단은 그야말로 대중의 우상이 되고 있었다.
“하긴, 우리 애들이 연예인스럽긴 하지.”
“왜, 왜 그렇게 봐요?”
진희와 소라가 고개를 돌려 청하를 바라보았다. 숙소에 찾아와 수련을 하고 있던 청하가 당황한 얼굴로 더듬거렸다. 진희와 소라의 눈빛이 심각하게 진지했다.
“꾸미면 아이돌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이 생각하면 아역 배우가 맞지 않아요?”
“시영이랑 듀오로 해도 인기 좋겠네.”
“저 그런 거 안 해요!”
진희와 소라의 사심 섞인 대화에 청하가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피했다.
곁에서 같이 수련을 하고 있던 종혁이 쓰게 웃으면서 그만 놀리라며 청하를 따라갔다.
“그래서 라이샤는 뭐라고 해?”
진희는 서혁에게 호출기로 신호를 받은 후, 곧장 조사를 시작했다. 이윽고 찾아낸 건 어떤 게이트의 흔적이었다.
방금 전까지 열려 있었으나, 지금은 찢어져 형태를 알 수 없었던 게이트엔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걸 보고 라이샤는 이 게이트 주변에서 신의 기운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신의 곁에서 지냈던 그녀였던 만큼 신성력에 민감했기에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진희는 라이샤에게 주변 조사를 맡겼다. 소라는 라이샤에게 조사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나갔다 온 참이었다.
“신이 맞대요. 강하진 않지만, 분명 신성력이 사용된 흔적이 남아 있었대요.”
진희의 정령, 바르그도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바르그는 그 신성력의 행방까지는 알 수 없었다.
“잔향이 남아 있는 거 보면 확실히 근방에 있을 거라고 했어요.”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고?”
“네.”
“나이아가 나타난 게 맞긴 하네.”
어떤 경위로, 무슨 방법으로 나이아가 출현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려가 현실이 된 건 사실이었다. 나이아를 부활시킨 건 괴짜가 벌인 일이었다.
‘뭘 원하는 걸까?’
나이아와 카르나는 대립할 것이다. 진희는 자신을 방해한 무리를 모두 정리할 셈이었다.
괴짜는 대체 누굴 이기게 하고, 누굴 패배하게 만들려는 것인지, 진희는 그게 가장 궁금했다.
“라이샤 언니에게 더 조사해 달라고 전할까요?”
“아냐, 돌아오라고 해. 굳이 더 찾아봐야 단서가 나올 것 같지도 않고.”
진희는 소라에게 라이샤의 복귀 명령을 내린 후, 마야가 갇혀 있는 방으로 향했다.
마야의 방엔 PD가 앉아 있었다. 책을 읽으며 마야를 감시하고 있던 그녀는, 진희가 나타나자 자리를 비켰다.
“별일은 없었어요.”
“그래.”
마야는 진희가 방으로 들어오자 눈살을 찌푸렸다.
“또 뭔데. 아는 건 다 말했다고 했잖아.”
“그것 때문에 온 게 아니야. 권유하기 위해서 왔어.”
“무슨 권유?”
진희는 PD가 앉았던 의자를 당겨 앉으며, 마야를 바라보았다. 진희는 그저 다리를 꼬고 지켜보고 있는 것뿐인데, 그녀의 앞에 서면 괜히 주눅이 들었다.
“네게 선택지를 줄 거야. 싫으면 선택하지 않아도 돼.”
“그럼 포기할래.”
“괜찮겠어?”
“어차피 너희들 유리한 제안만 할 거잖아.”
오, 잠깐 사이에 똑똑해졌는걸, 진희가 웃었다.
“내 권유는 말이야.”
“거봐, 결국 내가 싫다 해도 말할 거면서…….”
“네 능력을 날 위해 사용해.”
“……뭐?”
“거절하면, 괴짜와 카르나 둘 다 죽어.”
“너,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진희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난 더 이상 귀찮게 돌아다닐 생각 없어. 듣자 하니 나도 유명해져서 어디 쉽게 나다니기 힘들 것 같고, 편하게 게이트 타면서 이동하고 싶거든. 근데 네 능력이 편리해 보이더라.”
“거, 거절하면 죽인다는 건…….”
“진심이야. 네가 날 도와서 일을 편하게 풀어준다면, 굳이 카르나와 미카일까지 죽이진 않을게. 원래 있던 세상으로 추방하는 정도까지로 봐줄 테니까.”
뻔뻔하고 오만한 조건이었다. 마야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진희를 바라보았다.
카르나의 힘은 감히 마야나 미카일, 레인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세상을 멸망시킨 악당, 악마의 호칭이 괜히 붙는 게 아니다. 오죽하면 진희의 무력을 보고서도, 미카일이 카르나만 부활하면 해결될 거란 낙관적인 예상을 했겠는가.
그럼에도 진희는 태연하게 카르나를 죽일 것이라 말했다.
“카르나 단장님이 쉽게 당해줄 것 같아?”
“응. 내가 이길 것 같아.”
진희는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아직도 모르겠니? 내가 지금껏 어떤 녀석들이랑 싸워왔는지, 넌 잘 알잖아?”
S급조차도 당해내기 버거웠던 미노타우로스.
영웅이자 검성으로 이름난 바제트.
그리고 성기사로서 S급 이상의 힘을 가졌던 클로이.
모두 진희의 검 앞에 무너졌다. 마야는 문득 미카일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신의 가호를 받은 영웅은 그 어떤 적이라도 이길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신의 가호마저도 소용없게 만든 것이 카르나의 힘이었다.
카르나라면 진희를 이길 수 있다. 그는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진다면? 마야는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진희를 살폈다.
진희의 표정엔 조금의 의혹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만만했다. 자신이 패배하지 않으리라고, 괴짜고 카르나고 모두 죽일 수 있으리라 장담하고 있다.
카르나에 대한 믿음은 변치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그간 진희의 행보를 떠올려 보니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인 서혁 또한 말한 적 있었다. 그녀는 지금도 계속 강해지고 있다고.
‘무리한 이동만 거절하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진희는 마야의 능력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카르나와 미카일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만 능력을 사용한다면, 만에 하나 패배하더라도 동료를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이를테면 보험을 두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 안전을 두고 배팅하는 거래였으나, 어차피 이들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마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당연하지만 수락의 단어였다.
* * *
“진짜 바보긴 하네.”
마야의 방에서 나온 진희가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마야를 압박하기 위해 일부러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긴 했지만,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 도망도 안 치겠네요.”
“그렇지. 쟤 마음속에선 내가 이미 카르나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 자기가 내 곁에 있지 않으면 동료들이 위험에 빠진다고 생각할걸?”
상황을 지켜보던 PD가 묻자, 진희가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렸다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능력을 통해 날 억제하려 할 거야. 뭐, 예상한 수준이긴 한데.”
마야는 위험인물인 진희를 방해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진희는 알고서 당해줄 인물이 아니었다. 단물은 쪽쪽 다 빨아먹겠다는 심산의 진희를 보며 PD가 한숨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꼭 우리가 악당 같아요.”
“정의라니까 그러네. 기사단은 그런 법이야.”
“제가 소설 속에서 본 기사단은 안 그랬는데.”
“내가 다니던 기사단은 안 그랬어.”
유치하게 변하는 대화에 질린 PD가 고개를 젓고는 다시 마야의 방으로 돌아갔다.
마야를 이용해 특별관리형 던전을 모조리 정리하고, 이후엔 서혁의 흔적을 쫓아보자고 생각하며 수련장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복도 반대편에서 현성이 다가왔다.
“찾았습니다.”
“뭘요?”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찾았다고 말한 현성이 진희의 어깨를 붙잡고 복도 구석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카르나라는 단체가 금강을 습격했습니다.”
“……네?”
“급합니다. 이영한 회장이 있는 병원이 순식간에 파괴되었어요. 지금 이영한 회장이 습격을 피해 달아나고 있습니다만, 속수무책입니다.”
“그렇게 쉽게 습격받았다고요? 금강의 호위는요?”
“모두 당했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입니다.”
이영한 회장의 호위를 맡은 헌터들은 하나같이 S급이었다. 게다가 브리온이나 다른 기업의 S급과는 달리 서한과 현성마저도 경계해야 할 수준의 진짜배기 강자들이었다.
그런 헌터가 지키는 이영한 회장이 습격을 당했다니,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지금 이영한 회장은 가족들과 함께 강남 쪽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브리온 지점 있는 곳이군요.”
“예, 지원을 불러야 하니까요.”
“잠깐만, 가족들이라고 하면 설마 시영이도 거기 있어요?”
현성이 암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영이는 마침 이영한 회장의 호출로 돌아가 있는 상황이었다. 평소라면 보육원이나 숙소로 나와 같이 수련을 했을 시영이 하필 오늘 같은 날 병원에 간 것이다.
“나갈 준비해요.”
“서한 씨는 이미 준비가 끝났습니다. 진희 씨만 나오면…….”
“마야는 삼인방이 감시하라고 해둬요. 그래 봤자 B급 실력이라 큰 문제 없을 거예요.”
진희는 빠르게 명령한 후, 장비를 챙겨 숙소 바깥으로 나갔다.
서한을 비롯한 파란 기사단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정합니다.”
진희는 가타부타 말없이 출정을 명령했다. 사정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서한에게 간략한 상황을 전해 들은 단원들은 각자 무기를 들고 이영한 회장이 있는 강남으로 향했다.
* * *
“내가 누군지 아느냐!”
“알지.”
이영한 회장의 일갈에 카르나는 쓰게 웃었다. 저런 높으신 분들의 분노는 언제 들어도 레퍼토리가 똑같았다.
“그러니까 잠깐만 도와주면 된다니까? 딱 하루만 당신네 힘을 빌려줘.”
“감히 금강을 능멸하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