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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164화 (164/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164화

그때 신은 나이아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여러 인간의 운명을 뒤바꿔, 신의 기적을 선보인 그녀는 세상에 자신의 신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신전의 목적은 악신 솜니움을 봉인하고, 그의 사제인 카르나를 처단하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유치한 전개에 진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됐나?”

“당시의 나이아는 인간에 가깝다고 부단장님이 말씀하셨어. 그리고 종교가 있는 게 운명을 통제하는데 더 효과적이니까.”

당시의 나이아는 인간적인 집착, 인간적인 분노, 그리고 힘에 도취된 인간이었다.

막 태어난 아이가 감정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을 누리게 되었을 때 벌어질 일들은 뻔했다.

나이아는 그녀의 종교 아래에 모든 인간의 운명을 개변했고, 더 완벽한 운명을 만들기 위해 세상을 다시 정립하기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운명이란 뜨개질마냥 풀고 다시 짜낼 수 있는 손쉬운 물건이 아니었다.

“나이아의 종교는 점점 망가져 갔어. 솜니움과 카르나 단장님을 노리던 사람들은 결국 대중의 운명에도 간섭했고, 기적을 등에 업은 신전 세력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

그때, 신에게 강제 받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간들의 반역이 시작되었다.

그 구심점엔 카르나가 있었다.

그는 솜니움의 기적과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세력을 키웠다.

그곳에서 그는 부단장 미카일을 만났다. 영혼을 분할해 재능을 부여하는 미카일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카르나’를 세운 그는, 이윽고 나이아를 몰락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세상을 잃은 신은 죽게 마련이야. 존재할 가치가 사라지니까. 단장님은 세상의 성벽을 무너뜨리면 나이아도 죽으리라 생각했어. 그리고 나이아가 다스리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게이트를 열었지.”

“솜니움이란 녀석도 신 아니야? 본체가 죽으면 같이 죽지 않나?”

“이미 당시엔 솜니움과 나이아는 별개의 신이나 다름없었어.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분리되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솜니움도 이미 신의 힘은 대부분 잃었거든.”

솜니움은 자신의 힘 대부분을 카르나에게 건네주었다. 카르나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세상을 정복했던 건 그 덕분이었다.

하지만 마야는 뒷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았다. 카르나와 나이아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 줄 뿐, 카르나의 세세한 능력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쯤이라면 미카일이 카르나를 부활시켰을 것이다. 마야는 반격의 기회가 올 것이라 여기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우선 살아남는 게 중요했다.

“게이트가 열리자 성벽은 무너졌고, 나이아는 신의 권위를 잃었어. 하지만 나이아가 권위를 잃었을 뿐, 힘을 잃은 건 아니었어.”

한때 주신이었던 나이아는 온 힘을 다해 카르나를 저주했다. 카르나의 영혼을 영멸하기 위해 카르나가 환생할 때마다 자신이 그 세상에 나타나도록 서로의 운명을 연결했고, 그를 찾아내기 위해 저주가 담긴 그녀의 보물을 온 세상에 뿌렸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기억의 회랑. 한 번 들어가면 특수한 조건을 만족하지 않는 이상 나오지 못하는 영혼의 감옥.

모두 진희가 겪어본 일들이었다.

“영혼을 다룰 줄 알던 미카일 부단장님은 환생을 되풀이하며 카르나 단장님을 부활시키기 위해 애썼어. 비록 저주받은 단장님이 불행한 환생과 죽음을 되풀이한다 해도, 부단장님은 꼭 단장님을 찾아 부활시켰지.”

“지금껏 계속?”

“응.”

진희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마야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마야의 증언에서 느낀 궁금점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지금 카르나는 부활했는가.

두 번째, 카르나를 부활시킨다는 미카일의 염원과 성벽을 부수겠다는 그들의 목적은 무슨 관계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르나란 작자가 바제트의 동생이 맞는가.’

바제트의 기억 속에서 미카일은 제니트를 보고 말했다. 흐려지는 순간, 진희는 미카일의 말을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언젠가 당신도 알 수 있을 겁니다.그야, 당신은 그녀를 만날 때까지 살아갈 테니까요.’

그녀라 함은 솜니움을 뜻하는 것일 테지.

“솜니움은 어떻게 됐어?”

“나이아의 저주를 받은 후 이별했다는 것 말곤 몰라. 단장님은 솜니움을 찾기 위해 여행을 다니고 있는 거고, 우린 단장님을 돕기 위해 일하니까.”

“카르나가 너희에게 대체 무슨 존재인데?”

카르나의 업적은 부단장인 미카일과 그의 수하들이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반신의 저주를 받아 환생할 때마다 불우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카르나를 발견해 보호하거나, 부활시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야는 그렇다 치고, 그토록 약았던 미카일이 환생을 거듭하며 섬기는 주인이라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진희의 말에 마야가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 쳤다.

“너 같은 축복받은 사람은 모르겠지! 우린 단장님, 그리고 부단장님이 구해주신 인생이란 말이야!”

“구해줘?”

“그래! 우리 모두, 신과 운명에 버림받은 사람들이야. 아무리 노력하고, 빌어봐도 빌어먹을 운명 때문에 무엇 하나 이룰 수 없었다고!”

라이샤를 구원해 준 카사처럼, 카르나는 이들의 운명을 변화시켜 준 인물이었다.

거짓 신으로 추앙받으며 제물이 될 소년을 구해주었고, 미움받으며 살아갔던 소녀를 도와주었다.

불가피한 운명에서 구해준 카르나를 위해, 부하 모두가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있었다.

카르나를 무시하는 진희를 향해 마야가 이를 악물고 항변하려 했다. 곁에 있었던 카온이 어떻게 하냐고 눈짓하자, 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아무리 대단한…… 윽!”

목 뒤를 가격당한 마야가 기절했다. 진희는 물끄러미 바닥에 쓰러진 마야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해?”

“거짓말은 아닌 듯싶습니다.”

“흠.”

진희가 생각하기에도 그랬다. 마야는 누굴 속일 정도로 영리해 보이진 않았다. 카르나와 미카일에 대해 숨기려는 듯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단서를 흘리는 걸 보니 이런 대화에 익숙한 편은 아니었다.

“카르나는 운명을 바꾸는 능력을 가졌고, 미카일은 카르나를 찾기 위해 환생을 거듭한 거겠지. 카르나의 능력을 통해 라이샤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구해주고 포섭했고.”

“카르나란 작자는 부활한 것 같습니다.”

“아마 그렇겠지. 이 녀석의 태도도 그렇고, 미카일의 태도도 마찬가지야. 힘은 부족한 주제에, 믿는 구석은 확실히 있었으니까. 문제는 괴짜야.”

“아버님을 납치한 것 때문입니까?”

“응? 아니, 그게 문제는 아니야. 물론 아빠도 큰일이긴 하지만, 내가 생각한 건 괴짜의 목적이거든.”

괴짜가 그저 재밌으려고 이런 복잡한 일을 계획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무언가 목적이 있는 건 확실한데, 그게 진희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카르나를 향한 것인지 모르겠다.

“예전 미국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괴짜는 우리와 카르나를 떨어뜨리려 한 게 분명해. 이미 카르나 일행과 알고 있었던 괴짜라면, 그 괴상망측한 마법을 사용하는 꼬맹이(레인)의 존재를 녀석이 모르고 있었을 리 없을 테니까.”

미국에서 미노타우로스를 소환한 그때, 괴짜는 진희에게 레인에 대한 어떤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다.

마치 레인의 테러가 신기한 듯이 감상하고 있을 뿐, 자신은 진희의 편이라고 한 주제에 조금의 귀띔도 해주지 않았으니까.

“나이아란 신이 카르나를 따라다닌다고 했지?”

“예.”

“으음.”

흐름을 생각하면 나이아란 신도 등장하게 되는 건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카르나와 나이아.

괴짜와 미카일.

그 사이에 파란 기사단, 서진희.

“누구를 먼저…….”

진희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잡아볼까?”

애당초 두 단체 모두 아군인 것 같진 않았다.

원한 때문에 미쳐버린 신이나,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세상 멸망시키겠다는 놈이나 제정신은 아닐 테니까.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발 뻗고 자기 위해선 이 개싸움을 멈춰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한참 고민에 빠진 진희를 보며 카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스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버님이 납치된 지 한 달이 넘었습니다만, 아버님의 수색이 최우선이 아닐까요?”

“그건 괜찮을 거야.”

카온의 걱정에 진희가 웃음 어린 목소리로 단언했다.

“아빠는 무사할 거야.”

“근거가 있습니까?”

“없어, 아니, 있지만 대단한 건 아니야. 하지만 아빠는 늘 그래왔거든.”

서혁이 직업을 숨기고 돌아다닐 때도, 그는 언제나 무사했다.

서혁은 속였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눈썰미가 좋던 어린 날의 진희는 그가 때때로 만신창이로 집으로 돌아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그저 서혁이 숨기고 싶어 하기에 말을 꺼내지 않았을 뿐이다.

진희의 낙관적인 말에 카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본 그의 진심 어린 충고에 진희가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아. 하지만 우리 가족은 내가 더 잘 알아.”

묘한 믿음이었다. 서혁이 진희가 패배하는 걸 상상할 수 없듯이, 진희 또한 서혁이 죽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런 가족이었다.

“얘 좀 챙겨. 게이트 사용 못 하게 감시 붙여두고.”

“예.”

“그리고 서한과 현성 씨도 불러. 괴짜가 굳이 세영 씨한테 빌붙어 있던 게 수상해. 조사해 봐야겠어.”

마치 서혁이 그러했듯이, 진희 또한 작은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방향을 정해 나갔다.

자신의 하는 행동이 가장 올바른 답이란 걸 알고 있듯이.

* * *

“이제 날 풀어줄 거냐?”

“몰라. 사실 당신에게 얻을 건 다 얻었는데, 묘하게 거슬린단 말이야.”

괴짜는 히히, 하고 경박하게 웃으며 말했다.

시간은 밤이 되었다. 잠이 많은 나이아는 이야기가 끝난 후 침실로 향했고, 괴짜와 서혁은 둘만의 저녁 식사 시간을 갖게 되었다.

간단한 야채와 빵으로 허기를 채운 서혁이 팔짱을 끼며 괴짜를 노려보았다.

“죽이든가, 놔주든가. 빨리 정해.”

“죽이긴 힘들어. 난 서진희가 나만 노리는 상황은 피하고 싶거든.”

서혁을 죽이고, 그걸 진희가 알게 된다면 그녀는 분명 괴짜를 최우선 순위로 두고 추적할 것이다.

그건 괴짜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괴짜는 진희와 카르나, 나이아가 서로 싸우는 걸 보고 싶었다.

자신이 대상이 되는 건 바라지 않았다.

“그렇다고 놔주기엔…… 찝찝해.”

“뭐가?”

“당신 좀 이상해. 으음, 내가 예전처럼 운명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당신의 영혼엔 분명 추적이나 추리 같은 능력이 붙어 있을걸?”

“난 헌터가 아닌데?”

“인간이 가진 재능을 말하는 거야. 특출한 재능은 그 자체로도 운명이 되곤 하니까. 축구를 너무 잘하는 재능을 타고났으면, 당연히 축구 선수가 되는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괴짜가 본 서혁은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렇게 마주하기 전까진 그저 능력 있는 정보상인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어지간한 헌터보다 다루기 어려운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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