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160화
“소송 건 기업은 어디야?”
“타이카 그룹이요. 작년에 건 소송이 마침 올해 초에 결과가 나왔군요. 항소했지만, 모두 패배했습니다.”
김대만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평소라면 윽박지르면서 무시할 근거였지만, 이게 생방송으로 전국에 퍼져나가고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게다가 PD의 자료는 모두 정확했다. 헌터 길드와 방위대의 검수를 받은 자료가 틀릴 리가 없었다.
“이런데도 이 던전이 계속 열려 있어야 한다고요?”
“그, 그건…….”
김대만이 좀처럼 대답하지 못했다. 평소 다혈질인 그답지 않게 말을 고르는 기색이 보였다. 호기롭게 일행을 막아선 건 좋았지만, 그는 말솜씨가 뛰어난 편이 아니었다. 너무 생각 없이 나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법, 명분 모두 파란 기사단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당장 방위대가 저쪽에 있는데 무슨 말이 통하겠는가.
가장 강하다는 이유로 김대만을 대표로 내세웠던 다른 기업의 헌터들은 눈에서 불이 튀었다.
나름 대의를 가지고 뭉친 이들이 김대만의 멍청한 대응 때문에 악당이 되고 있었다.
그때, 김대만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던 진희가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긴, 이 던전이 폐쇄되면 타이카 그룹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도 일자리를 잃겠죠?”
“그, 그래!”
“저 던전 하나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어마어마하니까요. 그걸로 타이카 그룹의 직원들을 돌봐줘야 하는데, 제가 저 던전을 없애버리면 곤란하겠어요.”
“내 말이 그거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김대만 뒤에서 다른 헌터들이 그의 입을 막으려 나서려 했지만, 이미 대화는 그들의 손을 벗어났다.
“그렇죠? 고작 사람 마흔 명 죽고 다친 것쯤이야, 타이카 그룹 직원 수에 비하면 별로 많지 않으니까요.”
“그래, 이런 동네에 사는 비루한 인간들보다야…….”
“야, 이 멍청한 아저씨야!”
결국 김대만이 선을 넘는 발언을 하자, 곁에 있던 다른 헌터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막아섰다.
하지만 이미 방송 하이라이트는 뽑힌 뒤였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바뀐 진희가 혀를 차며 말했다.
“들었지?”
“네.”
PD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실시간 송출을 담당하는 PD의 방송 스탭이 ‘타이카 그룹의 S급 헌터 김대만, 그깟 하층민들의 목숨보단 그룹의 미래가 중요하단 폭탄 발언!’이라고 큰 자막을 방송에 걸어둔 뒤였다.
“족쳐.”
진희의 손짓에, 곁에 있던 단원들이 앞으로 나섰다.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김대만은 왜 자신이 욕먹는지 모른다는 눈빛이었고, 다른 헌터들은 이를 악물며 무기를 빼 들었다.
이미 설득은 불가능했다.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대중이나 정치인들의 동정표를 얻는 것도 실패했다. 이 정도로 깔끔하게 망하면 돌이킬 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여기서 기사단을 죽이고, 저 입을 나불대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헌터들이 덤벼들기 시작했다.
“근데 저런 인간도 S급이라니, 강하다고 다 머리가 좋은 건 아닌가 봐.”
“저 아저씨가 이상한 거야. 일반화시키지 마.”
진희의 중얼거림에 서한이 어이없다는 듯 받아쳤다.
“저런 인간이 어떻게 지금껏 활동했대요? 멍청한 데다 선민사상까지 있는데?”
“헌터는 실력이 최우선이니까. S급 정도 되면 신분제를 옹호해도 쳐낼 수 없는 사회야.”
“……갑자기 세영 씨의 이상에 동의할 것 같네요.”
“그러지 마라. 안 그래도 나도 허탈한 와중이니까.”
높은 등급의 헌터는 그만큼의 사회적 책임과 직무를 다해야 한다는 세영의 주장이 떠올랐다.
김대만에게 달려드는 라이샤가 보였다. 그녀는 화려한 검술을 뽐내며 김대만을 몰아붙였다.
최근 수련에 맛들린 그녀는 진희가 가르쳐 준 검술을 다양하게 펼쳐 보였다. 이곳은 던전이 아니다 보니 송출되는 방송도 고화질이었고, 라이샤의 활약을 모두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저리 꺼지지 못해!”
김대만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라이샤를 밀어내려 했지만, 라이샤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어, 어어?”
김대만은 오히려 자신이 밀리기 시작하자 당황한 듯 보였다.
허술했다. 진희는 김대만의 수준 낮은 무술을 보며 혀를 찼다. 브리온의 S급보다도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저런 사람도 베테랑 S급이라고 대우해 주었던 타이카 그룹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다른 헌터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카온이나 유나, 이선에게 하나둘씩 잡히기 시작한 헌터들은 결국 기사단에게 패배를 맞이했다.
“죽일까?”
어느새 김대만을 제압한 라이샤가 물었다. 작은 상처조차 없는 라이샤와 달리 김대만의 온몸엔 크고 작은 자상이 남아 있었다.
진희는 목을 잡힌 채 꺽꺽 신음을 흘리고 있는 김대만을 바라보았다.
“놔줘.”
“커헉!”
김대만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고개를 들었다.
주변은 아비규환이었다. 자신의 뒤를 따르던 수많은 헌터도 자신처럼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럼 지나가겠습니다, 김대만 씨.”
“헉, 허억, 너희 내가, 다음에 만나면 가, 가만…….”
“걱정 말아요. 다음에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진희는 피식 웃고는 김대만의 곁을 지나쳤다. 굳이 죽일 필요는 없었다. 저들을 심판하는 건 파란 기사단이 아니라, 분노한 대중들이니까.
그가 아무리 S급의 힘을 가졌다 한들 소용없었다. 앞으론 그보다 강한 힘이 그를 억제할 예정이었다.
“나중에 제가 체포하죠.”
방위대의 업무가 바로 저런 자들을 잡아들이는 것이다. 현성의 말에 진희가 알아서 하라는 듯 손사래를 치고, 산에 올라갔다.
PD는 산에 올라가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김대만의 모습을 촬영했다.
[타이카 그룹의 S급 헌터 김대만, 정의의 심판 앞에 무릎 꿇다.]
유치하지만 대중의 감성을 자극할 권선징악의 표어가 자막으로 따라붙었다.
이제 시작이다. PD는 흥분 어린 안색으로 카메라의 앵글을 돌렸다.
파란 기사단이 드디어 모두의 머릿속에 각인될 순간이었다.
* * *
[파란 기사단, 골칫거리였던 특별 관리형 던전을 공략!]
[신입 헌터, 장소라는 누구인가?]
[타이카 그룹, 김대만 헌터의 존재를 부정!]
[위선적인 기업은 누구인가?]
[헌터 관측 방위대의 화려한 부활. 그리고 헌터 관리본부의 뒤늦은 참견.]
[금강의 세 번째 후계자가 파란 기사단을 따르고 있다는 소식이…….]
파란 기사단의 실시간 방송은 어느새 반나절 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가는 길에 사람들이 몰려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요구하기도 했고, 모든 언론에선 그들의 행보를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중의 관심이 기업 쪽으로도 튀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지켜주었던 헌터에 대한 의심까지 갖게 된 것이다.
“좋은 방향이군요.”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세영이 모니터 속의 대중들 반응을 보며 중얼거렸다.
한국은 그동안 헌터들, 그리고 기업들의 행태에 너무 관대한 편이었다. 한 번쯤은 대중도 힘이 있다는 걸 헌터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이 기회로 상위 등급 헌터와 기업들에게 경각심을 가지게 해야 한다.
“지부장님, 준비되었습니다.”
그때, 문을 열고 비서가 들어왔다. 그답지 않게 피곤한 모습에 세영이 고생했다며 쓰게 웃었다.
“말년에 일만 시키는 것 같아 죄송하네요.”
“괜찮습니다.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니까요.”
세영은 파란 기사단이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 기사단이야말로 세영이 생각하는 모범적인 헌터, 영웅이었다.
대중들의 인식을 탈바꿈하기 위해선 이런 우상적 인물이 필요했다.
“시작해 주세요.”
세영의 말에 비서가 결심 어린 얼굴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언론에 터뜨릴 건 세 가지.’
첫 번째, 헌터 시장에서 행해졌던 불법 거래들의 진실.
두 번째, 불법 거래를 일삼던 기업들의 목록.
마지막은, 브리온과 금강의 관계.
‘두 번째까진 먹혀들 거야. 진희 씨의 행보에 편승할 수 있는 정보들이니까.’
진희는 던전을 점거하던 게 ‘특정 기업’이라고만 말했을 뿐, 어느 기업이 잘못되었다고 언급하지 않았다. 대중들은 그 기업이 어느 기업인지 알아내려 성화였다.
그런 대중의 바람을 이뤄줄 수 있는 두 가지의 증거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겠지.
하지만 마지막, 금강과 브리온의 연관성은 아직 대중이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문제였다.
금강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다른 기업과 비교할 수 없다. 실제로 금강에선 꼬리가 잡힐 패악을 한 번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 브리온이나, 다른 기업을 통해 활동했으니까.’
그럼에도 세영은 지금이 금강과 브리온의 관계를 알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영한 회장은 아직 침묵 중이고, 브리온은 큰 타격을 받아 대응할 상황이 아니다.
선수를 쳐야 이길 수 있다. 세력이 약한 세영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문제는…….”
세영이 피곤한 안색으로 한숨을 내쉬며 천장으로 고개를 들었다. 눈을 감은 그는 짜증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니케인데.”
진희가 유무브에 괴짜와 테러범의 인상착의를 공개하는 강수를 두었음에도,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괴짜가 쉽게 잡히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벌써 한 달이 지나가는 와중에 자그마한 단서조차 잡지 못할 줄은 몰랐다.
어지간히 잘 숨고 다닌다며 세영은 혀를 찼다.
“대체 목적이 뭐지?”
세영에게서 도망치고, 파란 기사단을 적으로 돌린 괴짜의 행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브리온 연구소 사태가 벌어진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는 지금, 괴짜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일을 벌이고 있는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세영은 이주민 박영에게 들었던 정보를 떠올렸다.
테러범의 목적은 성벽을 부수는 것이다. 그와 대적하는 파란 기사단은 세상을 지키는 단체다.
그렇다면 이 단순한 권선징악의 이야기에서, 괴짜가 차지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조연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간 봐왔던 괴짜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는 조연보단 익살맞은 주연을 선택할 인물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세영이 결국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고개를 다시 내렸다.
모니터를 바라보자, 온갖 언론에서 새로운 뉴스가 떠오르고 있었다.
[특별 관리형 던전을 점거하던 기업들의 목록 공개!]
[불법 헌터 시장, 그곳에서 일어나는 인신매매와 마약 거래, 현대 사회의 악의 온상.]
[모든 것은 금강의 계획이었다.]
“자, 끝까지 가보죠.”
세영은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미 방아쇠는 당겨졌다. 더 이상 물러날 길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