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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159화 (159/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159화

유럽에서 인재를 긁어오지 않는 이상, 브리온의 국내 전력은 중견기업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바, 바오란 팀장님!”

바오란이 걸음을 옮기던 도중, 그를 멈춰 세우는 사람이 있었다.

바오란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복도 건너편에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이가 보였다.

백금발의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소년, 클로이의 쌍둥이 동생인 에반이었다.

에반은 초췌한 안색으로 바오란 앞에 섰다.

“누, 누나 수색은 어떻게 됐나요?”

“…….”

평소라면 동정 어린 위로라도 건네주겠지만, 지금은 바쁜 상황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에반을 지나치려 했다.

“아직 안 나왔어. 조금만 더 기다려.”

“거짓말이죠? 알아보니까, 수색조로 들어간 헌터가 한 명도 없었어요! 누나 수색하고 있는 거 맞아요?”

에반이 바오란의 팔을 붙잡았다.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강하게 움켜쥔 팔을 내려다보고 바오란이 한숨을 내쉬었다.

“찾고 있으니까 기다리라고 말했어, 이거 놔.”

“하지만 정인 누나가 그랬어요, 지금 브리온이 이상하다고……!”

“놓으라 했다, 에반!”

바오란이 에반을 거세게 밀쳐냈다.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은 에반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오란을 올려다보았다.

에반에게 있어서 바오란은 언제나 친절한 형이었다. 그렇게 보이도록 바오란이 연기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바오란은 평소와 달랐다. 차갑고 건조한 눈동자엔 짜증과 경멸만이 엿보였다. 에반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를 올려다보자, 바오란은 혀를 차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음, 조금만 기다리렴, 알았지?”

그리고 다시 평소처럼 가면을 쓰고 웃었다. 소름이 돋은 에반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떨궜다.

바오란이 복도 건너편으로 걸어갈 때까지, 에반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모든 게 바뀌었다. 친절하던 바오란이 냉정해졌고, 언제나 믿음직하던 쌍둥이의 후원자인 박정인은 그저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껏 자신을 도와주던 누나, 클로이마저도 사라졌다.

주변에선 실종이라고 했지만, 에반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그의 누나는 살해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에반이 주저앉은 채로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참던 그때.

“아하, 여기 있었네?”

누군가가 다가왔다.

브리온의 유니폼을 입고, 어울리지 않는 작업모를 뒤집어쓴 그 사람은 에반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에반과 시선을 맞추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찬란한 에반의 백금발과 다른, 녹슨 금발의 인물이 말했다.

“안녕, 에반? 혹시 복수라는 단어에 흥미가 있니?”

괴짜, 니케 로만이었다.

* * *

“헉, 허억. 쉬, 쉬는 시간 없어요?”

“없어, 종혁아. 얼른 일어서.”

벌써 다섯 번째 던전을 공략했다. 던전을 이동할 때도 교통수단을 일절 이용하지 않고 뛰어 움직였기에, 체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이 지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희는 봐주지 않았다. 카온이 종혁을 부추기려 하자 진희는 그것을 막아서고, 자신의 힘으로 일어나라 명령했다.

이런 때의 진희는 결코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종혁은 이를 악물고 섰다.

[내 마력 좀 가져다 써도 돼.]

아직 멀쩡한 소라가 텔레파시를 통해 말해왔지만, 종혁은 고개를 저었다. 삼인방은 아무도 이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혼자 능력을 사용해 반칙하고 싶진 않았다.

종혁은 진희가 던져준 물통을 들이키며 천천히 일행을 뒤따랐다.

“형, 괜찮아?”

뒤에서 파티를 서포트하고 있던 시영이 다가와 물었다. 시영은 기사단원은 아니었지만, 방송이 시작된 직후 따라와 기사단과 함께하고 있었다.

이 방송에 나오면 금강에서 입지가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서한의 말에도 시영은 괜찮다며 스피드런에 참가했다.

종혁은 시영의 걱정에 쓰게 웃으며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원 중 가장 체력이 약한 종혁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시영은 선두의 진희를 흘끔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뒤를 돌아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더 할 수 있어.”

“……응원할게.”

“고마워, 시영아.”

종혁은 시영의 머리를 두드린 후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시영은 한숨을 내쉬며 그 뒤를 따랐다.

“정말 안 쉴 거야?”

가장 선두, 진희의 곁에 서 있던 서한이 말했다. 누굴 위해 하는 말인지 아는 진희는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안 돼요. 분명 시작할 때 말했으니까.”

“슬슬 한계일걸?”

“그럼 낙오되는 거죠. 숙소로 돌아가면 돼요.”

“쟤들 성격에 가만히 돌아갈 리 없잖아.”

“그럼 어쩔 수 없죠.”

진희의 무신경한 대답에 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서한이 아이들에게 시키는 수련 방식도 호락호락하진 않았지만, 진희의 방식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녀의 수련은 한계가 없었다. 본인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시키는 게 그녀의 방식이었다.

중간에 포기해도 타박을 하지 않았지만, 기사단원 중 의지가 약한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내일 몸살은 확실하겠군, 헉헉거리며 쫓아오는 종혁을 보며 서한이 중얼거렸다.

“PD, 다음 던전은 어디야?”

“음, 여기서 5㎞ 떨어진 곳이에요. 작은 산 중턱에 있네요. 2급이네요.”

2급이라면 B급에서 A급 헌터가 드나드는 곳이었다. 높은 등급이지만 파란 기사단에겐 어려운 장소는 아니었다.

“근데 정말, 빠르네요. 5개의 던전을 공략하는 데 고작 4시간이라니.”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이선이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서 공략한 던전들도 결코 낮은 등급이 아니었다. 하지만 S급 헌터들이 길을 뚫고, 그 뒤를 다른 단원들이 정리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다 보니 던전 하나 공략하는 데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야 길이가 짧은 던전만 골랐으니까. 너무 큰 던전은 온종일 돌아도 모자라잖아.”

진희가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오늘 스피드런에 집어넣은 던전들은 모두 던전 내부가 넓지 않은 던전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 이선이 쓰게 웃었다.

그녀가 감탄한 건 달리는 속도가 아니라, 던전 보스를 순식간에 잡아내는 기사단의 실력이었다.

진희와 그 주변 간부들의 무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던전 공략마저도 이렇게 완벽하게 해낼 줄은 몰랐다.

현성이 보스로 이어지는 길을 찾고, 서한이 노하우로 던전 공략 방법을 도출해 낸다. 그리고 진희가 단숨에 보스의 목을 따낸다.

이 단순한 작업을 다섯 번이나 반복하고 나자, 이들의 호흡이 한 몸처럼 자연스럽다는 걸 새삼 알 수 있었다.

“반응은 어때?”

“폭발적이에요. 음, 제 채널 중계방만 백 개가 넘네요.”

“광고 안 넣었지? 이건 수익이 목적이 아니야.”

“당연하죠.”

PD는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펴며 말했다. 그녀의 방송은 이제 시청자를 집계하는 게 무의미할 수준으로 거대해졌다.

시청자 수가 그녀의 채널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자, 온갖 중계 방송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해외에선 심지어 실시간 자막까지 달며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화질로 단장님을 담는 게 아쉬울 지경이네요.”

PD가 입맛을 다셨다. 고화질로 볼 수만 있다면 진희의 화려한 검술을 방송에 담아낼 수 있었을 텐데, 생방송이다 보니 화질에 문제가 많았다.

오히려 그 덕택에 시청자들은 진희의 힘이 초자연적인 수준이 아닐까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지만, PD는 콘텐츠가 하나 줄었다며 아쉬워했다.

“응?”

PD가 안내해 준 산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기사단을 막아서는 무리가 보였다.

인적 드문 숲속에서 나타난 그들은 하나같이 개성 없는 복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뭐야, 쟤들은? 어디 악당 졸개야?”

그 모습을 본 유나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거기 멈춰라, 서진희.”

복면의 무리 중 대표가 앞으로 나섰다. 진희는 그의 수준을 눈으로 훑었다.

“S급이네. 제법인데?”

흥미롭다는 진희의 눈에 복면의 사내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과연, 알아보는가. 그렇다면 경고하지. 더 이상의 무분별한 공략을 멈춰라.”

아무래도 공략을 막아야겠다고 판단한 기업에서 헌터를 파견한 듯싶었다. 진희는 그의 곁에 있는 다른 헌터들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A급, 간혹 B급이 있었지만, 평균적으로 대기업의 간부에 버금가는 실력이었다.

[기업들이 연합한 것 같습니다.]

종혁의 이능력을 통해, 현성이 진희에게 말했다.

금강과 브리온이 아닌 이상에야, S급을 필두로 한 A급 헌터들을 저렇게 많이 보유하고 있을 리 없었다. 아마 각기 다른 기업에서 온 헌터일 것이라 현성은 덧붙였다.

[S급은 아마 타이카 그룹인 것 같군요. 깨끗한 기업은 아닙니다.]

방위대 출신이다 보니, 유명한 A급과 S급들의 인상착의는 모두 외운 그였다. 그는 목소리와 체구만으로 그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사내에 대해서 듣게 된 진희는 팔짱을 끼며 복면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봐요, 김대만 씨.”

“누, 누가 김대만이란 거냐!”

“변장을 그렇게 해놓고 숨기는 게 가능할 것 같아요?”

“크, 크흠!”

S급 헌터, 김대만은 연신 PD의 카메라를 의식하며 진희의 말을 부정했다. 이미지를 망치고 싶지 않았을 테지만, 이미 늦었다. 설마 복면으로 가린 자신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릴 줄은 몰랐다.

“김대만 씨가 나서는 걸 보면, 이 산 위에 있는 던전은 타이카 그룹이 점거했나 봐요?”

“…….”

김대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뭐라고 대답한들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 무분별한 던전 공략을 멈춰라. 이 이상의 던전 공략은 한국 기업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다.”

“무슨 영향이요?”

“이 던전 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계가 달려 있는지 아는가! 자네의 위선으로 경제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단 말일세!”

“언제부터 던전 방치가 경제를 살리는 길이 됐죠?”

“귀중한 자원을 얻기 위한 필수불가결인 방법이야. 자네 같은 어린 친구는 모르겠지만, 이 던전으로 탄생한 재화가 얼마나 큰 낙수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

뻔한 변명이었다. 실제로 많은 헌터 기업이 저 논리를 펼쳐가며 온갖 패악을 일삼았으니까.

진희가 혀를 차며 PD에게 턱짓했다. 그녀는 재빨리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재봉산 2급 던전, 3년 전에 게이트가 열려, 현재까지 총 42명의 사상자가 발생. 사망 20명, 중상 22명.”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잘도 낙수효과란 말씀을 하시네요?”

산 위의 던전으로 인해 벌어진 사상자는 적은 수준이 아니었다. 가끔 일어나서 이슈가 안 되었던 것뿐이지, 마흔 명의 피해자란 좌시할 수 없는 숫자였다.

김대만이 연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 그건 출입금지를 한 산에 등산객이 함부로 올라갔기 때문에…….”

“등산객은 42명 중 5명뿐이네요. 나머지는 모두 이 산 아래의 달동네에서 나온 사상자예요. 평균 1억 2천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고요. 돈을 받지 않고 자식을 돌려 달라 하신 분도 계셨지만, 해당 기업에서 소송을 걸었어요. 민간인이 패배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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