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와 헌터의 겸직-158화 (158/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158화

“방송할 거예요. 전 국민 앞에서.”

진희는 그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길 원했다.

“그러니까 뭘 어떻게 알리냐고.”

“방위대가 새롭게 개편되었다는 사실과, 파란 기사단이 방위대처럼 정의를 위해서 활동한다는 사실을요.”

이미 계획은 짜졌다는 듯 진희가 음흉한 웃음으로 지어 보였다.

“대중이 제일 원하는 건 사이다 영상 아니겠어요?”

“너 또 뭔 짓 하려고.”

제발 더 이상 일을 벌이지 말아달란 얼굴로 서한이 말하자, 진희는 쯧쯧 하고 혀를 찼다.

“걱정 말아요. 이미 준비는 끝났으니까, 다들 몸만 오면 돼요.”

일말의 불안을 남긴 채, 진희는 입을 다물었다. 마치 그때가 되면 알아서 알게 될 거란 듯이.

서한과 현성은 불안한 눈빛으로 진희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단장은 오늘도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 * *

대망의 방위대 개편의 날.

진희는 단원들을 모두 모았다. 삼인방을 비롯해, 모든 단원을 숙소 앞으로 집합시킨 진희는 보기 드물게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현성 씨가 드디어 방위대 대장으로 발령 났습니다. 발령식은 없었지만, 이제 어엿한 대장님이세요. 모두 축하의 박수를 보내줍시다.”

단원들의 박수가 이어지자 현성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고로, 오늘은 대망의 단체 던전 공략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단원이 참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모든 단원이 공략에 참가했다. 실력의 수준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혼잡한 파티였다.

진희는 PD에게 눈짓했다. 그녀는 작게 헛기침을 하고선 진희의 앞으로 나섰다.

“음음, 그럼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그녀는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는 단원들을 향해서 말했다.

“오늘의 목표는 특별 관리형 던전 공략입니다. 주변에 피해를 끼치고 있는 던전들을 공략하는 게 이번 출정의 목표예요.”

“어? 던전‘들’이요?”

그때, 유일하게 이상한 점을 깨달은 종혁이 질문했다. PD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오늘은 하나의 던전을 공략하는 게 아닙니다.”

PD가 손가락을 튕기자, 단원들의 머리 위에 마법으로 만들어진 한 지도가 떠올랐다. 유나의 작품이었다.

“여기 있는 모든 던전이 공략 대상입니다.”

지도에 찍힌 점은 대충 봐도 십 수 개가 넘었다. 모든 단원이 넋을 잃고 그 지도를 보고 있을 때, 진희가 덧붙였다.

“이 던전들은 특정 기업들이 몰래 독점하고 있는 던전들입니다. 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몬스터가 튀어나와 주변 사람들을 해치고 있는데도, 그곳에서 나오는 마석이 순도가 높기에 일부러 방치하는 던전들이죠.”

알게 모르게 기업들이 일삼는 패악이었다.

과거 진희가 정령의 던전을 공략했을 때와 흡사하다.

그 던전에서 나오는 자원들로 수익을 짭짤하게 챙기는 기업들이, 일부러 던전을 공략하지 않고 놔두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길 ‘위험성 때문에 공략이 불가능했습니다’고 하지만, 베테랑 헌터들은 그 말이 모두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돈이 되니까 놔두는 것뿐이다.

주변 사람들의 피해쯤이야, 수익에 비하면 푼돈으로 보상할 수 있는 문제였다.

“지남 초등학교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진희는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남이란 초등학교에서 나타난 던전으로 인한 재앙은 헌터 기업의 업무 태만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었다.

5년 전, 지남 초등학교의 운동장에서 특별 관리형 던전이 출몰했다. 학교는 휴교령을 내리고, 그 던전을 공략하겠다 나선 기업이 헌터를 파견했다.

던전 공략은 성공적이라고 해당 기업은 말했다. 공략은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으며, 휴교령을 철회시켜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운동장에 항상 헌터가 지키고 있으니 괜찮으리라 생각하고 교장은 휴교령을 거둬들였고, 사건은 벌어졌다.

“지남 초등학교의 던전 또한 일부러 방치된 던전이었습니다.”

해당 던전에서 나오는 특수한 자원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녔다고 한다. 그 자원에 눈이 돌아간 기업은 공략 완료해 게이트를 닫을 수 있으면서도, 일부러 방치했다.

겉으론 공략이 마무리되어간다고 말하면서, 실상은 게이트 안의 자원들을 모두 회수하기 위해 시간을 번 것이다.

이윽고 게이트를 지키고 있는 헌터가 한눈을 판 사이,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 한 마리가 학교 내에 침입한다.

헌터에게 걸리지 않도록 은신하고 있던 그 몬스터는,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이 등교를 시작하자 활동을 개시했다.

그렇게 기업의 욕심으로 인해, 사상자가 서른 명에 달하는 끔찍한 결과가 초래되었다.

더 큰 문제는 사후 처리였다. 피해 학생의 학부모들은 보상금보다도 기업이 처벌을 받길 원했으나, 정부(헌터 관리본부)에선 벌금형에 처할 뿐, 여타 다른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

기업의 관리 소홀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학부모들은 연일 시위를 했지만, 돌아오는 건 친기업 정치인과 대중들의 모멸 어린 비난뿐이었다.

아이들을 이용해 보상금 더 타 먹으려는 학부모들이란 기사가 나올 지경이었으니까.

“우리 파란 기사단은 그런 사태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정 기업의 이기적인 던전 공략 및 점거, 시민의 안전을 좌시하는 정부 기관의 무능함, 이 적폐를 타파하기 위해 움직이겠습니다.”

진희는 PD의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파란 기사단의 올해 목표는, 서울 및 경기도의 모든 ‘특별관리형’ 던전의 공략 및 폐쇄입니다.”

그리고, 하고 그녀는 덧붙였다.

“오늘 이 목표를 위한 첫걸음으로, 던전 스피드런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제야 단원들은 진희의 말뜻을 이해했다.

“지금 이 시각부터 지도에 찍힌 모든 던전을 공략할 때까지, 파란 기사단은 쉬지 않습니다.”

마라톤이었다.

목표로 한 던전을 모두 공략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마라톤. 서울과 경기도에 등록된 특별 관리형 던전의 수는 백 개가 넘는다.

지도에 찍힌 던전은 그중 1할도 되지 않지만, 열 명 남짓한 파티로 클리어하기엔 너무나 많았다.

그럼에도 진희는 공략을 장담했다.

“방송 또한 계속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스피드런을 끝낼 때까지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참고로 참여하는 분들은 상단에 목록이 작성되어 있으니, 확인 부탁드려요-”

진희의 말이 끝나자 PD가 시청자들에게 안내하고, 현성을 향해 다가갔다. 방위대로 참가하는 현성을 인터뷰하기 위함이었다.

한 차례 연설이 끝나 심호흡을 하던 진희에게 카온이 다가왔다. 묘하게 상기되어 있는 카온은 감동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멋지십니다.”

아마 과거 바제트 시절을 떠올린 것이겠지. 진희는 카온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다시 한번 반했어?”

“네.”

귀여운 녀석, 진희가 웃음을 터뜨리며 카온을 지나쳤다.

카온은 그런 진희의 뒷모습을 감개무량한 듯 바라보고 있던 도중, 매서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

그곳엔 서한이 무표정한 얼굴로 카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

카온도 서한의 눈을 피하지 않고서 같이 노려보았다.

한참 동안 이어진 둘의 시선 교환은, 이윽고 둘 사이를 파고든 소라에 의해 멈췄다.

소라는 둘을 떨어뜨려 놓으며 말했다.

“둘 다 적당히 해요. 우리도 나가야 하는데 길 막히잖아요. 둘이 덩치는 이따만 해가지고.”

“살 안 쪘거든?”

“누가 뭐래요?”

지금 찔려요? 하고 소라가 덧붙이자 카온과 서한은 동시에 헛기침을 했다.

* * *

파란 기사단의 채널은 수십만 명의 시청자가 몰렸다. 하늘 모르게 치솟기 시작한 시청자 수는, 이윽고 공중파 채널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수가 되었다.

화기애애한 파란 기사단의 영상 속 모습과 다르게, 진희가 언급한 ‘특정 기업’의 간부들은 난리가 났다.

개중엔 당연히 브리온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서진희…….”

브리온의 패스파인더 팀장, 바오란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바쁜 발걸음을 옮기며 휴대폰의 액정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파란 기사단이 첫 번째 던전으로 입장하는 게 보였다.

PD가 특수 제작한 카메라는 던전에 들어가도 저화질로나마 생중계가 가능한 모델이었다.

이윽고 몬스터를 몰살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여실히 담기기 시작했다.

“젠장, A급 심사 때 통과시켜 주는 게 아니었어!”

진희가 A급 심사를 볼 때 참가했던 브리온의 인사가 바오란이었다. 그때까진 아직 적이라 생각하지 않아 좋은 인상으로 통과시켜 주었는데, 이렇게 커서 방해가 될 줄은 몰랐다.

‘회장님께선 연락도 없어.’

바오란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말하자면 이영한 회장 라인의 헌터였다.

브리온의 간부로 임명되면서 이영한 회장의 지시를 받아 온갖 일을 도맡아 했는데, 최근 큰 사업이 실패하자 회장에게서 오던 지시가 모두 끊겼다.

‘카트리지가 문제인가!’

애당초 바오란은 비인증 헌터를 양산하겠단 계획에 반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회장은 프로젝트를 강행했고, 그 후유증이 나오는 중이었다.

‘우리 쪽 애들도 혼란스러워하고 있어.’

브리온이 금강의 자회사라는 건 간부들만이 아는 기밀이었다. 대부분의 직원은 브리온을 유럽계 기업이자, 진보적이고 경쾌한 단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PD의 채널에서 브리온으로 짐작되는 자료가 나오기 시작하자 사내 분위기가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니라고 치부하기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증거들이었고, PD가 헛소리하는 인물이 아니란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파란 기사단이 이번엔 기업들이 장악했던 던전들을 모두 공략하겠단다.

‘막아야 하는데, 명분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진희의 말은 정론이었다.

기업의 이윤 창출은 어디까지나 법 안에서, 그리고 도덕적인 행위에 한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에선 이 정의를 무시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관리본부가 있었으니까.’

그들의 행위를 정당하게 꾸며줄 기관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헌터들이 한국의 인재 취급에 화가 나 해외로 나가도, 기업들이 굳이 한국을 고집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관리본부처럼 기업의 활동을 보장해 주는 기관이 다른 나라엔 드물었다.

하지만 그 관리본부가 무너졌다. 그 원인이야 뻔하다.

파란 기사단. 그들 때문이다.

“더럽게 계획적이군.”

관리본부의 몰락과 동시에 시작된 브리온 공격, 그리고 이어진 파란 기사단의 출범과 길드의 부흥. 이윽고 방위대 장악과 이번 방송까지.

일련의 과정이 장애물 하나 없이 너무나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클로이는 왜 그따위로 죽어선……!’

새로운 간부 후보이자 떠오르는 신성이었던 클로이는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프로젝트 도중에 진희에게 죽은 클로이는, 공식적으론 현재 실종상태였다. 그녀의 죽음을 밝히기엔 브리온도 숨겨야 할 비밀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분위기를 쇄신할 방법도, 유능한 인재도 없다. 프로젝트 때 진희에게 살해당한 헌터도 열 명이 넘는 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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