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153화
가운데에 있는 면접관이 불편한 침묵을 깨고 면접을 진행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헌터로서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질문의 대부분은 인성 검사의 항목과 유사했다. 사실 자격 요건만 되면 자동으로 승급이 가능한 B, C급 시험이었기에 면접은 허울 좋은 과정에 불과했다.
비인증 헌터나 헌터 부적격자를 눈으로 걸러내기 위한 간단한 면접이었다.
그러나 면접이란 게 워낙 주관적이다 보니, 기업 간의 알력 싸움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유진 기업에서 오래간만에 B급이 나왔군. 근데 이상하단 말이야, C급이 되고 3년 만에 B급 승급인데, 보아하니 3급 던전에서 활동한 업적이 많아. 지금껏 등급을 속인 건가?”
“응? 방위대에 체포된 경력이 있어? 어허, 타이카 그룹 그렇게 안 봤는데, 마석 밀수입 때문에 벌금 문 적이 있었군.”
“이러시면 안 됩니다. 업적 등록도 안 하신 상태에서 B급 승급이시라니, 눈 가리고 아웅 아닙니까? 미등록된 던전으로 수익을 내신 건가요?”
면접관들은 신이 나서 이력서에 적힌 빈틈을 노렸고, 헌터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을 했다. 개중엔 화가나 맞받아치는 이도 있었지만, 이내 ‘과격한 행동은 면접에서 감점으로 작용합니다’는 말에 고개를 숙였다.
면접에서 탈락하면 무려 1년간 시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헌터들은 면접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흠, 그리고 파란 기사단.”
이윽고 파란 기사단의 차례가 돌아왔다.
“업적은 뭐, 평범하군. 대부분이 4급 던전, 3급이 두 번이라……. 대단찮은 인솔자였나 봐? 난 또 2급 던전이라도 공략한 줄 알았는데.”
“……그렇습니다.”
소라가 입을 열려 하자 민혁이 가로막았다. 소라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먼저 나선 것이다.
“근데 뭐지? D급에서 B급으로 승급? 등급을 속였군.”
“아닙니다. 소라의 경우 마력의 각성이 다소 늦었던 것뿐입니다. 그녀가 가진 본래의 재능입니다.”
“허어, 각성이 늦는 사람이 간혹 있다지만, D급 헌터가 B급으로 바로 승급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당시 D급 심사는 관리 본부에서 직접 실행했습니다. 자세한 자료는 저희도 알 수 없습니다.”
“끝까지 등급을 속였다는 이야기는 안 하는군?”
“그런 적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인정하는 순간 승급 시험이고 뭐고 벌금형에 처할 것이다. 등급을 속이는 행위는 엄연한 범죄행위였기 때문이다. 그걸 아는 사내도 계속해서 소라의 성장에 대해 꼬투리를 잡았다.
치졸한 방법이었다. 파란 기사단이란 단체를 견제할 방법이 없으니, 말단 신입에게 불편한 질문을 해서 기를 죽이겠다는 뜻이었다.
민혁이 딱딱하게 대답하자 사내가 이죽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하, 애들 소꿉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왕자님이 공주님 지키는 꼴이군.”
“이……!”
물어뜯을 게 없으니 그들의 관계를 비꼬는 사내의 태도에, 참을 수 없었던 소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소리 하려고 하던 그때.
“어? 당신 누구야?”
벌컥,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요즘 논란이 된 헌터 시험의 실상을 알아내기 위해, PD가 찾아왔습니다-”
PD가 특유의 늘어지는 말투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손엔 캠코더가 들려 있었다.
“누가 들어오라 그랬나! 당장 나가!”
“응? 이상하네요, 전 분명 헌터 길드에서 면접 참관해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는데요?”
“길드 따위가 지금 어디서…….”
“아차, 지금 촬영 중이니까 험한 말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큭…….”
이제 헌터 시험마저도 길드에서 관리하는 상황이 되었다. 헌터 길드가 무시당했던 세월이 길다 보니, 기업에서도 길드의 권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유나 언니다.’
길드에서 허락을 내준 거라면 누군지 뻔했다. 소라는 헌터 시험으로 향하기 전, 유나가 어디 가느냐고 물어보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같이 참관하기로 한, 서진희 단장님을 모시겠습니다-”
“헉!”
면접관 대부분이 눈을 크게 뜨고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느긋한 발걸음으로 한 여성이 걸어오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검은색 티셔츠에 청바지라는 편한 옷차림을 한 그녀는 PD가 열어놓은 문으로 들어와 인사했다.
분명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고 있는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눅이 들게 만드는 박진감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면접을 참관하게 된 서진희입니다. 잠깐 실례할게요.”
“다, 당신이 왜…….”
“헌터 길드에서 의뢰가 들어와서요. 최근 압박 면접이 과도하게 벌어진다는 제보가 많아, 제삼자에게 조사를 의뢰했습니다. 우리 파란 기사단은 언제나 정의의 편에서 일하는 기사단이기에, 그 의뢰를 흔쾌히 받아들였죠.”
“그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면접은 어디까지나 면접관에게 위임된…….”
“그럼 제가 면접 진행할까요? 저도 자격은 있을 텐데요.”
A급 이상의 헌터이자 헌터 길드가 인정한 그녀였다면, 당장 면접관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유치하게 나온다면 맞받아치는 말도 유치하게 해주면 그만이다. 진희가 뻔뻔한 얼굴로 말하자 사내가 할 말을 잃었다.
진희의 의도는 뻔했다. 파란 기사단의 신입이 시험을 보고 있으니, 괜히 이상한 질문 하지 말라고 감시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진희는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과장스럽게 윙크하곤, 면접관들의 뒤편으로 걸어갔다.
“자.”
그리고 의자를 하나 당겨와, 면접관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자리에 앉았다.
“면접 계속하세요. 전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마력도 흘리지 않았고, 별다른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면접관들은 뒤통수에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진희에 대한 일화는 이미 기업에서도 유명했다.
A급 헌터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압살해버린 실력이나, 누구도 통과한 적 없는 등대 던전을 최초로 해결한 헌터. 그녀가 보여준 호전적인 성격은 중견 기업이 무시하긴 어려웠다.
“말씀하시라니까요?”
“그, 그럼 다, 다음 질문 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희의 재촉에 면접관이 더듬거리며 질문을 시작했다. 고자세였던 면접관들이 허리를 펴고 긴장 어린 표정으로 면접을 진행했다.
그녀 앞에서 아까와 같은 질문을 할 순 없었는지, 면접관들은 평범한 질문만을 하게 되었다.
‘단장님도 참…….’
소라가 쓰게 웃으며 건너편의 진희를 바라보았다. 진희는 계속되는 뻔한 질문에 지루해졌는지 하품을 하다, 소라와 눈을 마주치고 피식 웃었다.
소라가 누구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면접관들은 의도적으로 그녀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이윽고 면접은 시작과 달리 평온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되었다.
김민혁, 정종혁, 박청하, C급 헌터로 승급하였고, 장소라는 B급 헌터가 되었다.
면접관들이 배가 아프단 표정으로 아이들을 흘겨보았지만, 결국 PD의 캠코더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약 한 달 뒤, PD의 영상으로 인해 면접 방식이 비효율적이란 게 탄로 나, 승급 시험의 과정이 바뀌게 되었다.
물론 헌터들에게 압박 면접을 가했던 면접관들 또한 징계 대상이 되어, 헌터 길드에게 제재를 받았다.
압박 면접을 받아 기분이 상했던 헌터들은, 이 일 이후 파란 기사단에 대한 신뢰가 더 늘었다고 한다.
* * *
“성벽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세상엔 ‘영웅’이 등장합니다. 표현은 우습지만, 말하자면 성벽을 지켜 세상을 구해낼 인간을 뜻합니다.”
미카일의 설명에 주변을 정찰하고 있던 레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도 운명인가요?”
“네. 일개 인간의 운명이 아니라, 세계의 운명이지요. 신이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해 만들어낸 화신(化神)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내세의 일에 신은 간섭할 수 없다. 신이 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는 건, 곧 성벽을 자신의 손으로 부순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렇기에 자신의 뜻을 대변할 화신, 영웅을 만들어 세계를 지키려 한다.
만화와도 같은 고리타분하고 뻔한 전개였다.
“세상이 위험에 빠지면, 그 위험을 해결할 영웅이 나타난다는 클리셰군요.”
마침 마노가 다가왔다. 이곳은 경기도 외곽의 폐허였다. 게이트의 출몰로 주민들이 떠난 이곳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을 확인하고 온 마노가 미카일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오고 있다고 합니다. 곧 볼 수 있겠군요.”
“고생했어요.”
삼라만상의 필자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곳이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오느라 일주일이나 걸리고 말았지만, 헛걸음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미카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 세계의 영웅은, 서진희인가요?”
“그럴 거예요. 시기가 공교로우니까요.”
진희가 미노타우로스를 잡던 그때, 미카일은 그녀가 이 세계를 지키는 영웅이라 확신했다.
“그녀의 전생인 바제트 또한 영웅이었어요. 그 영웅을 몰락시키기 위해서, 전 단장님의 환생과 괴짜에게 협력했습니다.”
미카일의 상관이자, 단체를 만든 단장. 그는 반신의 저주로 인해 기억을 잃고, 의미 없는 환생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바제트의 동생인 제니트가 단장의 새로운 환생체였다. 그는 누나를 증오하고 있었고, 마침 바제트가 영웅임을 눈치챈 단장은 그를 도와 바제트를 몰락시켰다.
“바제트의 환생이니, 서진희가 영웅인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니까요.”
“그들이 영웅이면 우린 악당이 되는 겁니까?”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있다면, 당연히 그와 반목하는 ‘악당’ 또한 존재했다. 애당초 악당이 탄생하지 않으면 영웅 또한 나타나지 않으니, 둘은 바늘과 실처럼 공존하는 관계였다.
“너희나 괴짜가 악당이겠지.”
그때,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레인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목소리의 주인을 가리켰다.
“진정해. 나도 그 지팡이로 맞으면 아프단 말이야.”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한 사내가 폐허를 해치고 다가왔다. 폐허에 어울리지 않는 반듯한 정장과 큰 키가 인상적인 사내는 일행을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성벽을 무너뜨리려는 정체불명의 단체, 혹은 대기업을 붕괴시키고 사회에 혼란을 주려는 미친놈. 둘 다 악당으로 잘 어울리네.”
“당신이 이야기꾼인가요?”
미카일의 질문에 사내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카르나의 부단장. 내가 현상을 기록하는 삼라만상이다. 잘 부탁해.”
“다른 기록자는 어디 있죠?”
“제이미? 걔는 미국에 있을걸. 나도 잘 몰라. 연락하고 지내진 않아서.”
삼라만상의 기록자는 두 명이다. 사물, 인물에 대해 기록하는 관찰자와, 원인과 결과, 사건에 대해 기록하는 이야기꾼.
“제이미란 분은 괴짜의 편인가요?”
“아니겠지. 사본을 넘겨주긴 했지만, 딱히 호감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닐 거야. 흥미 위주겠지.”
제이미는 괴짜에게 삼라만상을 만들어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레인은 미국에서 봤던 여성에 대해 떠올렸다. 괴짜의 곁을 지키고 있던 인물이었다.
“제이미가 괴짜를 도와준 것처럼, 당신도 우릴 도와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