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와 헌터의 겸직-144화 (144/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144화

“익, 이이익!”

“쌍검 정말 못 쓴다. 라이샤! 검 하나만 던져줄래?”

진희의 외침에 라이샤는 얼떨결에 들고 있던 검을 진희에게 던졌다. 진희가 가진 검보단 좀 더 길이가 긴 롱소드였지만, 진희는 낚아챈 검을 능숙하게 손에 쥐었다.

그리고 클로이의 검술을 똑같이 재현해 냈다. 클로이의 폭풍보다 폭력적인 검이 주변을 휩쓸었다.

실력과 재능의 차이다. 한 번 보고 검술을 재현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그녀에게, 이 정도 경지의 쌍검술을 따라 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결국 자신의 검술에 밀려나던 클로이는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바제트 경, 일어나세요! 그런, 그런 악당에게 지면 안 돼요!”

악당이라, 진희는 킥킥 웃으며 클로이의 검을 높이 후려쳤다. 강한 힘에 이기지 못하고 검을 놓아버린 클로이의 허망한 표정을 보며 진희가 말했다.

“정의의 악당은 승리하는 법이야.”

그리고 망설임 없이 검을 찔러 넣었다. 모든 방어가 사라진 클로이는 허망하게 진희의 공격을 허락하고 말았다.

마력의 갑옷도 소용없었다. 번개가 담긴 진희의 검이 클로이의 마력을 꿰뚫었다.

“아악!”

바제트라는 소망을 품으며 살아온 클로이의 심장을 진희의 검이 사정없이 꿰뚫었다.

바제트에겐 죽어도 좋다는 클로이의 기도는, 바제트를 죽인 진희에 의해서 실패하고 말았다.

“바제트…… 경…….”

마지막 유언마저도 사랑과 애틋함을 담은 클로이가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그녀를 어깨에 받으면서 진희는 한숨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음 환생에선 정상적인 사랑을 하길 빌게. 클로이, 루아.”

* * *

일단락되었다. 카온은 상처가 대충 치료된 현성을 부축했다.

“여기 안에 있는 애들, 모두 죽었지?”

[그래, 안타깝게도.]

진희는 카트리지 추출기 안에 담긴 단원들을 보며 바르그에게 물었다. 바르그는 한숨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혼은 회복하는 성질을 가졌다지만, 이건 정도가 심해. 흉터가 너무 많아서 수정에 나오는 순간 영혼이 고갈될 거다.]

짐작했던 이야기였다. 기사단원들의 얼굴을 가만 보고 있던 진희는 기사의 경례 자세를 취하며, 그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커다란 폭발음이 울리고, 방에서 걸어 나온 진희를 보며 현성이 물었다.

“괜찮습니까?”

“…….”

진희는 대답하지 않고 쓰게 웃었다. 모든 추출기를 파괴하고 시체들을 한곳으로 모아 불태운 진희는 일행에게 이 던전을 나가자 선언했다.

“PD, 영상은 다 찍었지?”

“아, 네.”

“브리온이 나쁜 녀석들이란 인상을 주게 편집해. 나나 클로이의 전생 이야기는 나오지 않게 주의하고.”

“금강 이야기는…… 어떻게 할까요?”

“그건…….”

진희는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브리온과 금강이 한 몸이란 건 들었다. 카온과 라이샤를 공격했던 헌터들을 살피면서, 그들의 인상착의가 금강의 헌터란 걸 현성에게 확인받았기 때문이다.

“이세영 씨에게 괴짜가 붙어 있다 그랬죠?”

“네.”

클로이가 중얼거렸던 말들을 모두 기억하는 현성이 진희에게 괴짜에 대한 걸 정리해서 보고했다.

“이세영 씨가 알고서 행동했을 것 같진 않아요. 클로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적당히 거짓말을 섞어가며 회유했겠죠. 서한 씨도 마찬가지예요.”

진희는 서한과 세영은 배신하지 않았으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금강이 그러지 않으리란 법은 없겠죠.”

“이영한 회장은 의뭉스러운 인물이긴 합니다.”

“돌아가서 확인해 봐요. 서한 씨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니까.”

자신들과 함께할 것인지, 금강의 후계자로 돌아갈 것인지.

현성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만약 금강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건…….”

진희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별로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듯, 습관처럼 눈을 비비며 덧붙였다.

“가서 생각하죠.”

* * *

보육원에 도착한 일행을 맞이한 건 아이들이 아닌, 정부 출신의 의사들과 구급대원들이었다.

“오셨어요?”

피곤한 안색의 혜수가 다가왔다. 진희는 혜수에게 간략한 상황을 전달받았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지엑스에서 습격해 왔고, 카트리지를 사용한 적들 때문에 매우 고전하게 되었다.

가장 상처가 심한 사람은 소라였고, 삼인방과 청하는 지금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전했다.

“서한 씨.”

“왔냐.”

그리고 그 지엑스의 헌터들을 물리친 게 서한이란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저녁이 되어 아이들을 가까스로 재운 서한이 방에서 걸어 나왔다. 불안에 떠는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민하와 함께 이곳저곳 돌아다니느라, 그의 얼굴에도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늦었어.”

서한은 변명하지 않고 자신의 실수를 고했다. 이영한의 꾀에 넘어가 보육원을 비웠고, 금강은 보육원을 무시로 일관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그의 수하인 박준도 오지 못했고, 서한만이 달려오게 되었다.

“괜찮겠어요?”

진희의 질문에 서한이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와 같이 있으면 더는 금강을 가질 수 없을 거예요.”

“뭐, 그렇겠지.”

“후계자 자리도 홀랑 뺏길걸요?”

“그래.”

“그래도 좋아요?”

“그래, 좋아.”

서한이 씨익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좋아서 온 거야.”

풋, 진희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S급 백수 헌터가 집이 없어져서 왔는데, 방 좀 빌릴 수 있을까?”

서한이 손을 내밀었다. 진희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저번에 말했죠? 하루 25만 원이라고. 그래도 장기 숙박이라면, 할인 해 드릴게요.”

“바가지구먼.”

31. 정리

아이들을 치료하고, 보육원을 정리하는 것에만 이틀이 흘렀다. 지엑스와 브리온을 공격할 자료를 영상 컨텐츠로 만들고, 현성이 방위대로 복귀할 수 있도록 방위대에 대한 기사도 준비했다.

그러던 중, 실신했던 이주민들이 모두 눈을 떴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주민들의 장로는 무리를 이끌고 진희에게 찾아왔다. 사무실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던 진희와 PD는 그들의 방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디서 꺼낸 건지, 그들만의 특이한 복장을 입고 온 이주민들은 진희를 향해 절을 올렸다.

“그리고 용서를 빕니다.”

“……일어나세요.”

민하에게 이들이 어떤 일을 해왔는지 들은 진희가 쓰게 웃으며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장로는 여전히 서글픈 표정으로 진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헨즈를 비롯한 기사단원들의 기억을 읽으며, 그녀가 어떤 전생을 지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사단원들의 죽음에 일조한 그는 진희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찾아왔다.

“당신들 잘못이 아니에요. 탓할 생각 없으니까 걱정 마세요.”

“아니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불의를 보고 지나친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불의에 당한 당신이 저흴 구원한 것 또한 사실이지요. 저흰 당신에게 속죄해야 합니다.”

“당신들 모두의 뜻인가요?”

“네. 우린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영혼 결합은 이주민들의 능력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영혼을 연결해 영혼의 강인함을 견고히 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 즉, 장로의 결정이 이주민들 모두의 결정과 똑같다는 이야기였다.

“속죄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으음.”

진희가 PD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그녀의 눈빛에 PD도 고민 어린 얼굴로 이주민들을 살펴보았다.

모두가 짙은 녹색의 머리카락을 하고 있어 인상이 비슷했지만, 10명의 이주민 대부분은 젊은이였다.

“그러고 보면, 이주민이 사회에 나온 적은 없죠.”

라이샤와 카온도 따지고 보면 이주민이었지만, 공식적으로 등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에 나왔다고 표현하긴 어려웠다.

“정부가 관리한다고 했으니까.”

“근데 관리를 하던 게 헌터 관리본부였잖아요.”

그리고 그 관리본부를 무너뜨리고 있던 게 기사단이었다. PD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이주민분들, 혹시 고용되실 생각 있으세요?”

“네?”

“속죄한다고 해도 무보수 노동은 범죄니까요. 이 언니 돈도 많은데, 한번 일해보시겠어요?”

‘아니, 내가 돈 많은 걸 왜 네가 자랑해?’

진희가 떨떠름한 얼굴로 PD를 바라보았지만, PD는 이미 결단을 끝낸 듯 이주민들에게 말했다.

“사회적응기 같은 힐링 컨텐츠도 좀 필요하긴 했거든요. 요즘 영상들이 다 자극적이라.”

이주민들의 사회 적응을 돕는 기사단이란 이미지도 심어주고, 정부에 억류된 이주민들을 위한 인권 운동도 겸할 수 있었다.

당장 관리본부가 마비된 상태고, 길드와 방위대가 기사단 편인 지금 이주민을 고용한다고 막으려들 사람도 없었다.

“근데 이 사람들 월급 다 내가 주는 거야?”

“네, 단장님이시잖아요. 돈 많죠?”

“네가 나보다 많지 않아?”

PD는 국내에서 가장 잘나가는 헌터 인플루언서다. 영상이나 글을 투고할 때마다 억 소리 나는 수익을 얻는 그녀가 헌터 경력 1년 된 진희보다 자산이 많을 건 당연했다.

진희의 말에 PD가 뻔뻔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돈 빌려드릴까요?”

“……됐어.”

사채는 할 생각 없다. 진희가 피곤한 안색으로 손사래를 쳤다.

“저, 그럼 무슨 일을 해야…….”

“우선 애들부터 보러 가실까요?”

그렇게 열 명의 이주민은 보육원의 새로운 직원으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PD의 채널엔 이주민들의 지구 적응기란 제목의 영상이 수백만의 조회수를 찍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돈 되는 일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편하구나. 진희는 내심 생각했다.

* * *

“언니! 저 B급이래요!”

삼인방과 청하가 퇴원하고 보육원으로 돌아왔다. 아직 붕대를 감고 있긴 했지만, 마법사까지 고용해 치료 마법을 사용한 덕분인지 아이들의 안색은 훨씬 좋아졌다.

소라는 기쁜 얼굴로 달려와 진희에게 안겼다.

“축하해.”

아무래도 라이샤가 준 선물 덕분에 각성이 이뤄진 것 같았다. 진희는 소라의 마나홀에 담긴 신성을 살펴보았다. B급 수준으로 확장된 마나홀이 보였다.

“평소에 수련을 열심히 해서 그런 거야.”

소라는 한창 성장하던 중이었다. 마나 호흡법과 수련을 겸하는 꾸준한 성장세에 신의 기적까지 곁들여지니, 순식간에 성장이 일어난 것이다.

우연이나 다름없는 성장이었지만, 그래도 축하할 일인 건 변함없었다.

“으으, 이제 대련도 못 하겠어요.”

청하가 우는소리를 하며 소라를 바라보았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전투하며 성장한 소라는 청하보다 배는 강해졌다. 이제 어엿한 기사단의 전력이 된 소라가 어깨를 펴고 말했다.

“수련 정도는 봐줄게. 청하가 C급 되기 전까진 말이야.”

“이익.”

분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청하에게 비웃음을 짓던 소라는 청하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문득 진희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한 아저씨는요?”

“잠깐 일이 있어서 나갔어.”

“……우리 편 맞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