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139화
[타올라라.]
마지막 주문을 끝낸 민혁의 손에서 불꽃의 화살이 날아왔다. 크기는 작지만 화염의 위력은 대폭 상승한 마법이 민성의 등을 노렸다.
“어?”
만약 민성이 소라를 공격하는 것에 전념했다면, 그 마법에 그대로 등을 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그는 마법 발동과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문득 강당 바깥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왜 조용하지?’
하고, 아주 작은 의심과 우연이 그의 뒤통수를 노리는 불의 화살을 보게 만들었다.
실력은 형편없는 그였지만, 눈앞으로 날아오는 공격을 막지 못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마력을 이용해 방패를 사용했다.
‘막았다!’
급조한 마력의 방패였지만 민혁의 마법을 막는 정도는 가능했다. 생각보다 강력한 힘에 그가 크게 비틀거렸다.
그 뒷모습을 보고 있던 소라가 곧장 덤벼들었다.
이미 기회는 지나갔다. 민혁의 마법이 통하지 않게 된 이상, 그녀가 어떤 공격을 한들 민성에겐 닿지 않는다.
민성에게 덤벼든 것은 그저 이 기회를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발악에 불과했다.
민성이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손엔 민혁의 마법을 막아냈던 마력이 담겨 있었다. 소라는 패배를 직감했다.
민성이 더 빠르고, 강하다. 1년 동안 열심히 훈련해 봤지만, 결국 복수는 실패하고 말았다.
‘지고 싶지 않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의,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범인의 앞에서 패배자의 표정을 짓고 싶진 않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앞을 바라보았다. 민성의 주먹이 가까이 왔다. 닿는 순간 그녀의 몸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뭐-!”
소라의 주머니에서 갑작스러운 빛이 터져 나왔다. 강력한 빛에 민성은 질끈 눈을 감았고, 소라는 허리춤에서 타오르는 마력에 눈을 빛냈다.
‘라이샤 언니!’
그녀의 주머니엔 라이샤가 주고 간 정체불명의 아티팩트가 들어 있었다. 어떤 효과를 가진 물건인지 알려주지 않고, 그저 강하게 소망하면 소라의 편을 들어줄 거란 애매한 말만 남기고 간 라이샤의 물건이었다.
아티팩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소라의 신체를 맴돌았다.
만약 이곳에 바르그나 라이샤가 있었다면, 이 기운을 신성(神聖)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누나아-!”
기절한 척 땅바닥에 누워 있던 청하가 고개를 들었다. 민혁과 종혁이 반격을 준비하고 있을 때, 청하도 단 한 번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받아!”
청하의 허리에서 한 단검이 날아들었다.청하의 능력으로 날아온 단검은 소라가 익히 알던 물건이었다.
‘네가 정말 준비가 되고, 마음이 정리가 되면 말해. 그땐 이 단검을 돌려줄게.’
그것은 진희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던 때.
그녀가 소라의 복수를 위해 준비해 준 단검이었다. 그녀는 빛처럼 날아온 단검을 단숨에 손에 쥐었다.
‘힘이 모자란다면 역수로 쥐는 게 가장 효과가 좋지. 자신보다 덩치가 크다면 더욱.’
라이샤가 준 구슬에서 마력이 치솟았다.
카트리지가 인간들의 악의가 모여 만든 거짓된 기적이라면, 이건 라이샤의 연인이자 한 세상의 신이었던 카사의 안배였다.
진정한 기적이다.
인간의 영혼을 조악하게 뭉쳐 각성한 민성과 다르게, 소라는 신의 선택을 받아 당당히 검을 쥔다.
‘죽일 거라면 확실히.’
진희의 가르침을 잊은 적이 없다.
단검을 확실하게 찔러 넣고 싶다면 손잡이를 역수로 잡아 쥔다. 찌르는 힘은 내려찍는 힘이 가장 강한 법이다.
힘이 부족하다면 왼손을 보탠다.
“이게-”
민성이 다급히 팔을 모았다. 단검을 막아낼 셈이지만, 카사의 신성이 더해진 소라의 몸은 민성보다 한층 빨랐다.
‘그 사람을 죽이고 싶다면 도와줄게.’
소라가 민성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목표는 심장. 날카롭게 갈아진 단검의 날은, 아무런 갑옷도 입지 않고 찾아온 오만한 짐승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진희의 손놀림을 떠올렸다.
가볍게 쥔 듯하지만 손목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체중을 실어 내려찍는다.
민성의 마력의 갑옷이 생기는 게 눈에 보였지만, 문제는 없었다.
그의 엉성한 마력보다 소라의 긴 수련의 성과가 더 날카로우니까.
“죽어.”
라이샤가 준 힘. 민혁과 종혁이 만들어준 기회. 청하가 쥐여 준 무기.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진희를 위해서.
“죽어버려.”
‘많이 무섭지? 사람을 죽인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진희는 그녀가 살인을 두려워하는 걸 눈치챘다. 아직 고등학생인 소라에게 악랄한 헌터의 세상은 너무 일렀다.
그러나 이미 소라는 각오를 다졌다.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고, 내가 감당하겠다는 기사의 덕목을 갖췄다.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소라의 단검은 짐승의 가슴을 꿰뚫고, 심장을 파괴했다.
“아아아악!”
소라의 복수가 성공했음을 민성은 비명으로 알렸다.
* * *
“하, 하아, 하아.”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죠?”
적들이 갑자기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을 기자, 혜수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남편, 김방인을 불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선 방어를 할 심산이었다.
[끔찍한 도구군.]
“저게 뭔데요?”
카트리지를 알아본 정령왕 김방인이 경멸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혼의 도구야. 남의 영혼을 이용해 강함을 추구하다니, 참 인간답군.]
“하, 하하, 하하하!”
정재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렬한 고통을 이기고 일어난 이들은 처음 들이닥쳤던 수의 반 정도였다. 나머지 반은 카트리지의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고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죽어버린 자신의 동료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재민이 떨리는 눈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껏 본 적 없는 강력한 마력이 손에서 일렁거렸다.
“이게, 이게 S급이구나. 굉장해, 장난 아니야. 하하!”
[물러서. 위험하게 됐어.]
적들의 수준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S급이 여덟 명이라. 난리 났군.]
방인의 말에 혜수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정령왕을 다루는 그녀의 수준은 능히 S급에 준하지만, 그렇다고 8명의 S급 헌터를 당해낼 정도는 아니었다.
[지원을 부를 순 없어?]
“이서한 씨가 연락을 받지 않아요.”
[무슨 꿍꿍이지.]
이 난리가 일어났는데 금강에서 모르고 있을 리 없었다. 방인은 혀를 차며 혜수의 앞으로 나섰다.
“아- 기분 좋아. 진작 사용할 걸 그랬어.”
[이봐, 뒤의 동료들 좀 돌보지? 죽은 것 아니냐?]
“알 게 뭐야? 저런 패배자 새끼들.”
재민이 키득키득 웃으며 무기를 들었다. 그의 성격에 걸맞은 핏빛 메이스를 들고, 재민은 이선에게 말했다.
“이선아, 마지막 기회야. 너도 보이지? 넌 이길 수 없어. 다진 고기가 될 거야. 내 적들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잘 알잖아?”
“…….”
끔찍한 협박이었다. 혜수는 인선을 자신의 뒤로 숨기며 혀를 찼다.
“어지간히 저질이군요. 말 걸지 마세요. 듣는 것만으로도 귀가 썩을 것 같으니까.”
“길드장님께선 분위기 파악이 안 되시나 봐.”
하하, 웃은 재민의 곁에 있던 한 마법사가 장난스럽게 손을 휘저었다.
[음!]
아무런 주문도 없이 날아온 마법이었지만, 막아내는 건 쉽지 않았다. 방인이 얼얼한 손을 털며 신음을 흘렸다.
[어렵겠어…….]
적들 하나하나가 자신과 버금가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정령계에 있던 자신이라면 어렵지 않은 상대들이었지만, 소환되어 있는 지금의 상태에선 승리는커녕 도주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혜수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아이들의 생사는 물론, 길드의 입지까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지엑스가 더 이상 날뛰게 만들 순 없어.’
브리온과 지엑스가 동맹관계란 걸 안 이상, 이들의 공격을 막아내야만 했다. 브리온이 이 이상 힘을 가지게 된다면 길드와 방위대, 나아가선 헌터 시장과 정부까지도 위협할 것이다.
“계속 반항한다면 하는 수 없지. 팔다리를 잘라서라도 데려가는 수밖에.”
민성이 메이스로 어깨를 두드리며 동료들에게 말했다.
“다 죽여.”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적들이 달려들었다.
[앞으로 나서지 마!]
혜수가 정령들을 이끌었고, 방인이 그 위에 마력을 흩뿌렸다. 온갖 정령이 나타나 주변에 거대한 방어막을 치기 시작했다.
“으윽!”
이윽고 방어막에 도달한 적들이 공격하기 시작하자, 방어막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정령을 이용한 방어막의 견고함은 대단했지만, S급 헌터들의 공세를 버텨낼 수준은 아니었다.
곧이어 방어막이 금 가기 시작했다.
“곧 만날 수 있어! 이선아!”
적들의 선봉장에 선 재민이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이선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사정없이 방어막을 부수고 있는 그의 얼굴은 곧 이선을 손에 쥘 것이란 기대감에 달아올라 있었다.
이선은 이를 악물고 자신을 지켜주고 있는 혜수를 바라보았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녀는 고작 C급의 헌터였고, 이 괴물 같은 싸움의 발끝도 따라갈 수 없었다.
‘제발…….’
그녀는 차디찬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저 방어막이 부서지지 않기를, 그리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생기길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기적은 없었다. 방어막은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고, 그녀를 구원해 줄 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혜수야! 지금이라도……!]
방인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예상보다 방어막이 깨지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차라리 유나라도 곁에 있다면 공간 마법을 이용해 혜수라도 도망치게 할 텐데, 이 방어막이 깨지면 아무리 그라도 혜수를 지킬 방법이 없었다.
“……아뇨, 괜찮아요.”
하지만 혜수는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급함과 분노가 보였던 그녀의 안색이 놀랄 정도로 평온해졌다.
[뭐?]
“지원이 오고 있거든요.”
[그게 무슨…….]
방어막을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하던 방인은 알 수 없었지만, 정령을 풀어놓고 있던 혜수는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로선 처음 느끼는 기운이었지만, 오는 방향을 보고 확신했다.
그녀가 애타게 연락하던 지원군이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선 씨.”
“네, 네?”
“괜찮아요. 우리가 저 짐승이 당신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지켜줄 테니까.”
혜수는 이선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녀의 찬 손을 잡으며, 이선의 심정이 어떨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 작은 아이가 고통을 인내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지 짐작이 갔다. 길드장이었던 혜수는 이선의 이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 하지만 저 때문에 다들…….”
지엑스가 보육원을 습격한 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한 인선이 자책감 어린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이미 방어막은 반쯤 박살 난 상태였다.
저들이 들이닥치면 혜수와 영감은 살해당하고, 자신은 재민에게 끌려가고 말 것이다.
보육원의 아이들 또한 브리온의 연구소에 갇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