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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131화 (131/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131화

진희는 반쯤 듣다가 귀를 닫았다. 곁에 있던 유나만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연구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브리온의 과학, 마법 기술력은 유나의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던 것 같았다.

설명을 모두 들은 유나는 감탄하다가도 이내 침울한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기술력을 가지고 고작 한다는 게 인체 실험이라니. 덜떨어졌어요.”

“그건…….”

연구원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지만, 주변의 눈치를 보고 이내 입을 다물었다.

연구원의 안내에 따라 계속해서 걸어가자, 문득 거대한 방 안에 도착했다.

창고로 보이는 방 안은 거대한 컨테이너나 기계들로 사방이 막혀 있었다.

진희가 낮게 웃었다. 근방에서 인기척은 느껴지는데,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연구원이 이곳으로 그들을 안내한 이유가 있었다.

“하, 하하! 멍청하긴!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너희도…….”

“쓸어. 이놈만 남겨놓고.”

진희가 짧게 명령했고, 현성과 카온, 라이샤가 다시 한번 앞으로 나섰다.

“어?”

그리고 또다시 짧은 전투가 이어졌다. 적들이 숨어 있는 곳을 알고 있는 일행은 단숨에 접근해 적들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진영을 갖추지도 못한 적들은 경비들보다 빠른 속도로 정리되었다.

“수준이 괜찮네요. 대기업은 다르군요.”

“모두 A급 정도예요?”

“네, A급이 다섯, B급이 둘이군요. 둘도 마법사입니다.”

A급 한 명이 중소기업에서 엘리트 취급을 받는 걸 생각하면, 브리온이 이 연구소에 제법 공을 들였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현성의 무뚝뚝한 보고를 받은 진희는 다시 연구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연구원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당신들, 누굽니까?”

“기사단.”

“어, 어디 소속이에요? 말도 안 돼. A급이 이렇게 당하다니, S급이 아닌 이상…….”

그 S급 수준의 헌터가 일행 중에만 네 명이다. 두 자리 수의 A급이 덤비지 않는 이상 생채기 하나 날 리 만무했다.

“그럼 다시 안내해. 이번이 마지막이야.”

“……네.”

마지막이란 뜻은, 또다시 이런 일을 벌이면 저 바닥에 쓰러진 사람 중 하나가 되리란 경고였다.

웃는 낯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말에 담긴 살기를 알아차린 연구원이 일행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역시 바제트 경이에요. 기사단 수준이 정말 대단하네요.”

“입 닫아.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후후, 죄송해요. 하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거든요. 방금 전의 그 사람들 있잖아요. 모두 브리온 소속은 아니에요.”

“뭐?”

“지엑스, 그리고 금강의 헌터가 섞여 있네요.”

진희가 걸음을 멈췄다. 상상도 못 했던 이름이 튀어나왔다.

지엑스와 브리온. 이선을 노렸던 자가 소속된 기업이었다.

‘하지만 정상진은 분명 브리온에게 의뢰를 받았었는데.’

정상진의 증언에 따라 오브를 만드는 공장을 찾아가고, 거기서 나온 단서로 브리온이 이 일의 배후라는 증거를 포착했다.

그곳에 지엑스가 참견한 정황은 없었다.

‘아니, 지엑스야 브리온을 돕는다고 쳐도.’

“금강이라고?”

“네. 금강의 A급 헌터였어요. 제가 사람 얼굴은 잘 기억하거든요.”

“맹세할 수 있어?”

“물론이죠.”

쉽게 맹세할 수 없는 클로이의 말이다. 믿지 않긴 어렵다.

진희가 현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현성은 충격 대신, 생각에 잠겨 턱을 괴고 있었다.

“현성 씨, 어떻게 생각해요?”

“……우선 나가서 이야기합시다.”

“집히는 게 있나 보군요.”

“조금요. 이곳에서 할 이야기는 아닙니다.”

현성이 고개를 저으며 연구원을 바라보았다.

“이봐, 저 헌터들, 당신이 아는 자들인가?”

“아, 아뇨. 저희도 고용된 입장이라, 전투 직군 쪽은 이름도 몰라요.”

“브리온 소속이 아닌 헌터도 이곳에 들어오나?”

“오긴 하죠. 용병이나 비인증 헌터도 사용하는걸요.”

어쩌면 이 일의 배후는 브리온만이 아닐지 모른다. 현성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린 참견하지 말아야 할 일에 참견한 걸지도 모르겠군요.”

일행은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클로이의 충격적인 발언이 있다 한들, 여기까지 온 이상 목적은 완수해야 했다.

진희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바제트 때를 떠올리게 하는 기분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실수가 계속해서 겹쳐,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만들게 된 시절이 있었다.

바제트가 살아 있다면 생애에서 가장 후회하던 시절로 꼽을 그때가 연상되었다.

“손님을 부른 적은 없는데.”

진희가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때, 복도의 끝에서 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선두에 있던 연구원이 밝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곁에 있던 현성이 작게 신음을 흘렸다.

현성의 눈으로도 실력이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 자들이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S급이군요.”

“당신도 마찬가지네.”

현성의 말에 반대편에 있던 사내도 감탄 어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흠, 여우 인상의 S급이라. 방위대의 여우인가. 어쩐 일로 여기까지 왔지?”

“당신 뒤에 있는 비밀 때문입니다.”

일행은 사내들과 대치하였다. 복도의 끝, 해가 그려진 금색의 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거대한 창을 짊어지고 있는 사내와, 검과 방패를 찬 사내는 진희 일행을 보고 무기를 거머쥐었다.

“이것 참, 우연이군. 마침 상황 파악을 위해 온 참이었는데, 이렇게 대단한 손님들을 맞이하다니 말이야. 여형, 안 그래?”

“시끄러워.”

여형이라 불린 검과 방패를 든 사내가 혀를 찼다.

“넌 왜 그곳에 있지, 클로이?”

“오랜만이네요, 선배님들.”

클로이가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창을 든 사내는 넉살 좋게 그 인사를 받아주었고, 여형은 인상을 찌푸리며 클로이를 노려보았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닐 텐데. 에반은 어디 있지?”

“열심히 수련 중이에요. 최근 실력이 늘지 않는다며 걱정하고 있거든요.”

“그럼 넌?”

“저야 완벽하니까요.”

“우습군.”

여형은 진희를 바라보았다.

“귀찮은 걸 달고 다니고 계시는군. 당신이 이 무리의 리더인가?”

“단장이지.”

“사람 보는 눈을 키우는 게 좋겠어. 능구렁이가 수십 마리 집어삼킨 꼬맹이를 동료로 받아들이다니 말이야. 내가 그래서 저 쌍둥이를 데려오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당신이 신경 쓸 바가 아니야. 그것보다, 비킬 거야, 말 거야?”

진희가 카온에게 눈짓했다. 저 정도의 실력자와 싸우면서 유나와 PD를 지켜주긴 어려웠다. 카온이 고개를 끄덕이곤 뒤로 물러났다.

“당연한 걸 물어보는군. 버릇없는 후배의 손버릇도 고쳐줄 겸, 상대해 주지.”

“그럼 얼른 덤벼. 혀가 너무 길잖아.”

말을 참 예쁘게도 하는군, 여형은 이죽이며 진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곁에 있던 창을 든 사내 또한 현성에게 창을 들이밀었다.

전력은 진희 쪽이 명백히 우위다.

“이봐, 근데 네 명이서 공격해 오는 건 비겁하지 않아?”

“그럼 너도 친구 불러. 없어?”

“허, 참.”

진희와 현성, 클로이와 라이샤. 4:2의 싸움이었지만 진희는 꺼릴 게 없었다.

“너희가 나쁜 놈들이고 내가 정의의 편인데, 뭐가 비겁해?”

“……할 말이 없군.”

뻔뻔하지만 당당한 진희의 말에 사내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두 무리가 충돌했다.

* * *

“일어나셨어요?”

민하는 눈을 뜨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깨어나지 못했던 이주민 중 가장 상태가 괜찮았던 노인은 그나마 빨리 정신을 차렸다.

“이곳은…….”

“여긴 안전해요.”

민하가 침대 곁에 있던 물컵을 내밀었다. 안 그래도 목이 말랐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컵을 받았다.

단숨에 냉수를 들이켠 그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민하를 바라보았다.

“요정님, 당신이 구해주신 겁니까?”

“말 높이지 않아도 돼요.”

영혼을 다루는 능력을 가진 이주민답게, 그는 단숨에 민하의 정체를 꿰뚫어 보았다. 그의 앞에서 굳이 날개를 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민하가 날개를 꺼내며 작게 웃었다.

“진정되셨어요? 계속 불안해하셔서…….”

“그분은 어디 계십니까?”

“그분이요?”

“바제트 님이요.”

‘바제트?’

민하는 한참 생각하다, 이내 그것이 클로이가 진희를 부르는 호칭이란 걸 깨달았다.

“진희 언니는 지금 나갔어요.”

“그분께 사과해야 합니다. 저는…… 그분께 너무 큰 잘못을 했어요.”

사과해야 한다, 용서를 빌어야 한다며 다시 한번 몸을 떨기 시작하는 노인을 보며 민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또다시 발작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민하는 날개에 힘을 주고, 주변에 요정의 마력을 퍼뜨렸다.

사람의 감정을 추스르게 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요정의 기운 덕에 노인의 발작이 차츰 멎기 시작했다.

“괜찮으세요?”

“네, 네. 죄송합니다.”

“왜 진희 언니에게 사과하려고 하는 거예요? 진희 언니와 아는 사이세요?”

처음엔 실험의 후유증 때문에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는 진희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는 듯했다.

노인은 처연한 눈으로 민하를 바라보았다.

“……우리 부족은 영혼을 결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족의 영혼을 모아, 강인함을 갖는 부족이지요.”

“네.”

“하지만 그 악독한 자들에게 잡혀, 능력을 이용당했습니다. 타인의 영혼을 뽑아 조각조각 내고, 그것을 이용해 ‘카트리지’라는 걸 만들었지요.”

카트리지는 온갖 영혼의 파편 모음이다. 많은 양의 파편이 모여 카트리지 하나만 해도 대단한 용량을 자랑하지만, 결국 파편이기에 원본을 당해낼 수 없었다.

카트리지를 맞는다 한들 마력이 늘어날 순 있어도, 재능과 기억까지 물려받는 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각성제, 혹은 강화제로서의 기능을 할 뿐이다.

“그걸 만들 때, 전 ‘원본’의 기억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초기에 카트리지를 만들던 노인은 카트리지에 사용되던 영혼의 원본을 목격했다.

진희가 현성의 기억을 읽었던 것처럼, 노인은 그 영혼의 기억을 읽게 되었다. 그곳에서 진희를 발견했다.

정확히는,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전생인 바제트였다. 그게 노인이 바제트에게 사과해야 할 이유였다.

그는 그 기억에서 바제트를, 진희를 알게 되었고,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협박받으며 해왔던 일의 정체 또한 눈치챘다.

“영혼은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카트리지를 만들기 위해 희생된 사람은 열 명이 넘습니다. 그들은 가축처럼 가둬진 상태로 영혼을 뽑히고 있었습니다.”

해저 던전에서 보았던 광경.

수정에 갇혀 있는 인간들의 모습.

브리온은 그곳의 기술을 빌려, 인간을 ‘영혼 전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영혼을 회복하면 다시 그만큼의 영혼을 뽑아내 카트리지로 만든다.

인간으로 만든 발전소나 다름없었다.

“설마, 갇힌 사람 중에 진희 언니와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노인이 비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나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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