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130화
의심스러운 사람은 곁에 두고 감시하는 게 안전하다. 시야에서 사라지면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아예 같이 다니면서 딴짓 못 하게 감시하는 게 편했다.
의심이 사라질 때 놓아주면 그만이다. 반대로 의심이 현실이 된다면, 그 자리에서 제거하면 되고.
게다가 클로이는 아직 이용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었다.
“다들 모이세요.”
진희가 장비를 모두 챙긴 일행을 보며 말했다.
현성, 카온, 라이샤, PD와 유나가 긴장 어린 얼굴로 진희를 바라보았다. 한 번의 실패를 겪은 후였기에, 그들의 표정엔 각오가 담겨 있었다.
“이주민들 상태는?”
“좀 더 안정을 취해야 해요. 그래도 건강엔 이상 없으니까, 요양만 하면 될 거예요.”
“브리온 동향은?”
“변화 없습니다. 아무래도 연구소가 습격당했단 사실을 아직 보고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주민이 발견되었던 그 던전에 아무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좋아요. 그럼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할게요.”
진희는 세 손가락을 들었다.
“첫 번째 목표는 증거 수집. 브리온이 비인간적인 실험을 자행하고 있다는 증거를 더 수집할 거예요. 이미 증인도 잡아두긴 했지만, 증거는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PD는 계속해서 영상을 남기고, 유나도 연구 시설에 증거가 있는지 확인해.”
“네.”
“두 번째는 인명 구출이에요. 이주민이든 일반인이든,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구출합니다. 현성 씨가 주도적으로 맡아주세요. 치료와 전투가 동시에 가능한 건 현성 씨뿐이니까.”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진희가 후우,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깽판입니다.”
그리고 이죽거리는 입매를 보이며 웃었다.
“파란 기사단의 이름은 이미 등록되었어요. 던전 공략도 제법 했으니까, 업적으로 알려지는 것도 순식간이에요. 하지만 아직 부족해요.”
이 모든 건 브리온을 악당으로 만들고, 방위대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초석이었다.
방위대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면서, 동시에 방위대를 조종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일련의 계획.
“파란 기사단은 정의와 평화를 위해 움직입니다. 물론 저의 정의와 평화를 위함이지만, 하여간 그 목표에 브리온은 거슬려요. 브리온에 깽판을 쳐서, 명예를 얻는 게 마지막 목표예요.”
파란 기사단의 힘을 보여줄 기회이기도 했다.
던전 공략 업적만으론 부족하다. 대기업이자 악당인 브리온을 꺾은 신인들의 파티라는 호칭이 더 먹음직스러웠다.
“그럼 출진!”
진희의 마지막 말과 함께, 파란 기사단의 두 번째 습격이 시작되었다.
* * *
“나간다.”
도로에 부착된 감시 카메라에 잡힌 진희 일행의 모습을 보며, 정재민이 미소 지었다. 그의 뒤엔 지엑스의 헌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엔 소라의 원수이자, 상처를 회복한 박민성도 있었다.
“저 녀석들이 모두 나가면 기습할 거야. 아마 금강 쪽 헌터가 바로 찾아올 테니까, 인질로 잡을 수 있게 애들을 묶어둬.”
“죽이면 안 됩니까?”
헌터 중 한 명이 묻자, 정재민이 고개를 저었다.
“저 보육원엔 특별한 게 있어. 아이들 모두 죽이지 않도록 해. 그 외의 사람은 죽이든 말든 상관없어.”
정재민은 흘끔 박민성을 바라보았다.
박민성이 말해준 정보에 따르면, 보육원엔 특별한 장난감들이 한가득 있었다.
이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헌터라, 브리온에 데려가면 또 다른 기발한 실험을 진행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미 말했지만, 우리의 목적은 보육원의 아이들을 모두 납치하는 거야. 차는 이미 준비해 뒀으니까, 닥치는 대로 데려와서 집어넣어. 아, 박민성 넌 알아서 해. 그런 거래였으니까.”
“죽이는 건 안 된다고 하셨죠?”
“응, 대신 불구까지는 봐줄게.”
박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에서 느껴지는 복수와 광기에 정재민이 즐거운 얼굴로 웃었다.
‘자, 그럼…….’
그가 다시 감시 카메라의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면 너머에 보육원 앞마당을 청소하고 있는 이선의 모습이 보였다.
역시나 이선은 남겨져 있었다. 예상한 일이었다. 이선은 경력은 베테랑이었지만, A급 이상의 헌터들 파티에 끼어들 정도로 특별한 헌터는 아니었다.
‘내 목적은 정해져 있지.’
이번 일은 오로지 정재민이 단독으로 꾸민 작전이었다.
이미 브리온과의 거래로 큰 이득을 본 지엑스는 그에게 작전권과 함께 동료 헌터를 부릴 수 있는 명령권을 쥐여줬다.
동료들에겐 ‘브리온이 보육원의 아이들을 원한다’ 따위의 거짓말을 했지만, 사실 그가 원하는 건 이선이었다.
아이들도 흥미가 가긴 했지만, 이선에 비해선 곁가지에 불과했다.
이윽고 진희 일행이 카메라에서 안 보일 만큼 멀어진 게 보였다.
그들의 목적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정보상이 알려준 바에 의하면, 그들은 브리온의 새로운 연구소를 습격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시기에 안방을 비우다니, 제정신이 아니라며 정재민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가자.”
정재민의 말과 함께, 헌터들이 무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이번 연구소는 저번과는 달랐다. 많은 수의 경비가 깔려 있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대부분이 높은 등급의 헌터다. 그들은 각기 무기를 들고, 연구소로 향하는 던전의 게이트 앞에서 순찰을 돌고 있었다.
“아무리 인적이 없다고 해도 도시에서 이러고 있다니, 이번엔 숨길 생각조차 없군요.”
그 모습을 본 PD가 질렸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연구소의 던전은 서울에 위치했다. 비록 인적이 드문 외곽이긴 했지만,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헌터들은 버젓이 장비를 착용하고 활동하고 있다.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는 건 무엇을 뜻할까.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PD는 진희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 건지 묻는 눈빛에 진희는 웃으며 대답했다.
“정면 돌파할 거야.”
“역시.”
우리는 정의다. 그러니까 당당하게 정면에서부터 쳐들어간다.
파란 기사단의 컨셉은 뻔뻔함과 당당함이었다.
“누구냐!”
저번 연구소에서 만났던 경비원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아직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는데, 경비원들은 진희 일행의 인기척을 눈치채고 무기를 겨눴다.
모두 B급 이상의 헌터다. 진희는 카온에게 눈짓했다. PD와 유나를 지키란 뜻이었다.
“도망 못 치게 제압하세요.”
“네.”
“응.”
진희의 말에 현성과 라이샤가 짧게 대답했다. 죽이는 건 상관없지만, 놓쳐서는 안 됐다. 반드시 이 자리에서 모두 처리해야만 한다. 진희의 뜻을 이해한 라이샤와 현성이 동시에 앞으로 뛰어나갔다.
“막아!”
경비원들이 빠르게 진영을 갖췄다. 게이트를 막기 위해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걸 보니, 이들이 모두 같은 소속의 헌터란 걸 알 수 있었다.
마법사를 후방에 두고 탱커와 딜러를 앞세우는 보편적인 전술이었다.
하지만 그런 전술을 뒤엎을 만큼의 힘의 차이가 존재했다.
[그슨대는 눈꺼풀 안에 산다.]
“아, 앞이 안 보여!”
현성이 주술을 외우자마자 라이샤가 검을 뽑아 휘둘렀다. 카사가 준 불길한 검은색의 검에서 검붉은 마력이 반월을 그리며 날아갔다.
“피해!”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경비원 중 한 명이 외쳤지만, 눈에 걸린 주술 탓에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은 방어 자세를 취했다.
피해를 줄일 심산이었겠지만, 라이샤의 검기는 그들의 방어를 꿰뚫었다.
“아악!”
일 합의 공격으로 수많은 경비원이 바닥에 쓰러졌다. 무기와 방패를 잘라 버린 막강한 검기의 위력에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경비원들이 뒷걸음질 쳤다.
“물러서지 마!”
리더로 보이는 자가 비명이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이럴 때일수록 진영을 단단히 갖춰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공포가 생기기 시작한 이들은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잡아먹어라.]
“다, 다리가!”
현성이 다시 한번 주술을 외우고, 적들의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그의 그림자에서 나온 요괴들이 주변 경비들의 다리를 붙잡았다.
다급히 현성을 공격하려 했으나, 그는 이미 경비들의 리더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티, 팀장님! 지원을!”
다른 경비들이 리더에게 소리쳤으나, 그는 명령을 내릴 여건이 되지 않았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현성을 막기 위해 검을 내리쳤지만, 현성은 빠른 몸놀림으로 검을 피하고 그의 앞으로 파고들었다.
쾅!
“커헉!”
가슴팍의 갑옷이 우그러지며, 리더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단 일격만으로 적의 대장을 침묵시킨 현성이 고개를 돌렸다.
라이샤가 차근차근 경비를 제거하고 있었다.
남은 잔당들을 처리하는 동안, 진희가 천천히 걸어왔다.
“히, 히익!”
바닥에 쓰러져 있던 경비들이 진로를 막자, 발로 걷어차며 다가온 진희가 유일하게 멀쩡히 서 있는 경비를 보며 웃었다.
“문 열어.”
자연스럽게 명령하는 진희의 모습을 보며 유나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 기사단 맞지?”
* * *
던전 안은 저번과 흡사한 장소였다. 게이트에 들어서자 금색으로 장식된 화려한 신전을 보며 진희가 작게 혀를 찼다.
구도는 달랐지만, 신전 안의 장식물들은 저번과 똑같았다.
“이 신전이 뭘 모시는 건지도 좀 알아봐야겠는데.”
신전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일행은 제각기 무기를 쥐고 안으로 나아갔다.
“헉!”
“잡아.”
마침 지나가고 있던 사내가 진희의 눈에 밟혔다. 진희의 명령에 카온이 재빠르게 달려가 그를 잡아챘다.
목을 움켜쥔 채로 돌아온 카온이 진희의 앞에 사내를 내밀었다.
“컥, 커헉!”
“브리온 소속, 맞지?”
“컥…….”
“마력을 보니, B급 정도네. 마법사인가?”
진희가 그의 손을 펼쳐 보았다. 무기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깨끗한 손이었다.
“우린 여길 털러 왔어. 안내 좀 부탁해도 될까?”
“읍, 으읍.”
“싫어?”
카온이 목을 살짝 놓아주자, 사내가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상황을 눈치챈 것 같았다. 침입자가 상처 하나 없다는 건 곧 경비를 쉽게 통과했다는 이야기였다.
마법사인 그가 당해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시, 실험실은 이쪽으로…….”
사내는 비굴해진 얼굴로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일행을 안내했다.
그는 연신 도움을 바라는 눈길로 클로이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대체 왜 클로이가 이들과 함께 있는지 궁금한 눈치였지만, 차마 입을 열 순 없었다.
신전에 만들어진 연구소라 그런지, 이질적인 광경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금색 사자상 아래에 거대한 발전기가 있질 않나, 전선이 기둥을 휘감고 사방에 뻗어 있었다.
“근데 던전 안에선 전자 기기 못 쓰지 않아?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그, 그건 오브 덕분입니다.”
“오브?”
“네. 오브의 마법인 봉인 마법을 기계마다 걸어주고, 병렬 연결한 마법진으로 동력을 공급하면 던전 내부의 마력에 오염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