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112화
그리고 다신 고통받는 아이들이 없도록 강해지고자 했다.
[인간은 끔찍하군.]
‘새삼스러운 일이지.’
현성의 빛바랜 기억 속에서 연구소는 마치 지옥과도 같았다. 현성이 참고 지나갔던 실험들은 아이들이 경험하기엔 잔혹한 과정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 모든 일을 현성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겪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왜 현성 씨가 보육원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는지 알겠네.’
연구소의 아이들 대부분은 이능력을 가지거나, 현성처럼 특별한 마법을 사용하는 아이들이었다.
불을 다루는 이능력을 가진 아이는 피부가 타들어 갈 때까지 불길 앞에서 능력을 사용해야 했고, 노래로 마법을 사용하는 아이는 기도에 마이크를 박은 채로 고통스러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현성은 보육원 아이들을 보며 이 아이들을 떠올린 것이겠지.
그가 그토록 보육원에 이입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후 현성은 혹독한 연구와 훈련 속에서 빠르게 성장해, 이윽고 연구소를 탈출한다. 그리고 연구소를 의심하던 정부 조직과 협력하여 연구소를 파괴했다.
“난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그는 금의환향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현성은 정부에서 바라는 정의심 있는 능력 있는 헌터가 되었다. 헌터관측방위대의 무력집행부라는 버젓한 직함을 달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폐인이 된 신하성을 마주했다.
신하성은 현성을 팔아넘긴 돈으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현성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의 아버지는 영웅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든 의혹이 전부 거짓은 아니더군요.”
현성은 쓰게 웃었다. 하지만 그 엷은 눈매가 웃음을 짓자, 자신을 떠난 아내가 떠오른 신하성은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탈세도, 주민의 피를 이용한 것도, 의뢰비를 올리기 위해 일부러 던전에서 몬스터를 꺼낸 것도. 모두 진실이었어요.”
현성이 정부에 소속되고 가장 먼저 찾은 자료는 신하성의 행적이었다. 당시 어렸던 그는 신하성의 말을 언제나 믿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의 아버지의 행적은 예상 이상으로 더러웠다. 그가 항상 말하던 정의로운 사람, 도덕적인 태도란 겉치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너는 모른다.”
“맞아요, 저는 모르지요.”
하지만 그런 신하성도 아들을 아끼고 보살피는 아버지임은 변하지 않았다. 부족한 실력으로 영웅 대접을 받던 시기에, 그는 자신이 몰락하게 될 것을 예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범죄를 거듭하더라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썼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가 무너지게 된 것은 현성 때문이었다.
“제가 태어나지 말 걸 그랬군요.”
현성은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신하성은 결국 자신의 아들을 질투하는 꼴이 된 것이다.
현성은 당장 던전에 나가도 그보다 많은 수익을 벌어들일 것이고, 더 높은 명성을 얻을 것이다. 그렇기에 신하성은 현성에게 어디에 소속되지 말 것을 당부하며 무의미한 수련만을 반복시켰다.
아버지를 믿는 현성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자신이 아들보다 못한 아버지란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틀린 부성애가 불러온 안타깝고도 유치한 결말이었다.
결국 현성은 신하성을 법정에 세웠다. 어떤 에누리도 없이 그의 죄를 낱낱이 보고하는 현성의 눈엔 가족을 향한 애정이 아닌 법을 집행하는 방위대의 책임감만이 담겨 있었다.
“……미안하다.”
법정에서 나가기 직전, 현성의 귀에 신하성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그러나 현성은 듣지 못한 척 몸을 돌렸다.
더 이상 그의 정의에 아버지의 정의는 필요 없었으니까.
[끝인가.]
‘응.’
기억의 재생이 멈췄다. 진희는 말이 없었고, 바르그는 차분하게 감상을 입에 담았다.
[지나치게 착하군.]
‘그러게.’
아버지에게 복수심을 품거나, 간접적으로 학대를 묵인한 기업들에 증오를 가질 법도 한데, 현성은 언제나 올곧게 자신의 신념을 따랐다.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방위대에 붙어 있는 이유를 알 법도 했다.
진희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막 노는 법도 알려주고 그래야겠는데.’
만약 진희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말 한마디 없이 연구소를 박살 내거나, 그의 아버지 목에 검을 들이밀고 사과를 시켰겠지.
[영혼의 수복도 끝났다. 곧 눈을 뜰 테니까 주의해. 심하게 어지러울 테니까.]
‘나랑 현성 씨 영혼 상태는 어때?’
[큰 타격 없다.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마.]
바르그의 걱정 어린 목소리를 뒤로하고 진희가 차분히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추출기가 끝나는 시기에 맞춰, 기억의 재생도 끝나도록 설계되어 있는 듯했다.
‘추출기의 기능이겠지.’
진희는 이 추출기의 부작용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방위대가 습격당했던 당시, 테러범을 지키고 있던 나윤수의 증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영혼을 부여해서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는 부단장이란 작자의 능력.
만약 추출기의 기능이 부단장이란 자의 그것과 비슷하다면, 이 ‘기억의 혼선’ 또한 의도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떠오른다.]
진희는 현성의 기억을 살펴보며 그가 가진 주술적인 지식을 일부 볼 수 있었다.
만약 이 추출기에 영혼을 뽑아서 다른 사람에게 주입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면, 영혼과 지식을 모두 전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아티팩트가 될 것이다.
진희가 추출기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한 그때, 순식간에 사위가 밝아졌다.
“어라?”
진희가 눈을 뜨자, 보이는 건 현성의 뒷모습이 아니라 정면의 얼굴이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현성이 뒤로 돌아 진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추출기는 떨어져 나갔네요.”
푸른빛을 띠던 수정은 백색으로 변해 바닥에 떨어졌다. 영혼을 채웠다는 표식인지, 아니면 기능을 상실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이걸 가져가서 유나에게 분석을 요청해보자 생각한 그녀가 수정에 손을 뻗으려 하자, 현성이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진희 씨.”
“네?”
“당신은 왜…….”
현성이 진희를 노려보았다. 후회와 안타까움, 짜증이 섞인 복잡한 눈으로 한참을 노려보던 그가 쓴 것을 내뱉듯 입을 열었다.
“그런…… 선택을 한 겁니까.”
“봤어요?”
“……네.”
진희는 쓰게 웃었다. 역시나 현성 또한 자신의 기억을 본 듯했다.
“뭘 봤는데요?”
“당신이 죽는 장면입니다.”
“연회장에서 독주(毒酒)를 마신 거?”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죽는 모습까지.”
“하필 클라이맥스를 보셨네요.”
진희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당신의 최후를 듣긴 했습니다만, 이런 상황인 줄은 몰랐습니다. 대체 왜 당신은 반항하지 않은 겁니까? 그 자리의 누구도 당신을…….”
“그만.”
그녀의 손이 현성의 입을 막았다. 검을 휘두르는 손이기에 물집이 잡혀 까칠한 손가락이 그의 입술 위를 눌렀다.
“방금 본 건 서로 잊어요.”
“…….”
“저도 현성 씨의 과거를 봤지만, 현성 씨가 말하고 싶지 않다면 꺼내지 않을 테니까요.”
“……말하고 싶지 않습니까?”
“음, 애매하네요.”
바르그는 회상이 계속되는 이유가 ‘아픈 기억을 공유하고 싶은 속마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희 또한 현성처럼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는 속마음이 있는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진희는 그 사실을 입에 담지 않았다.
‘부끄럽잖아.’
“하여간 서로 잊자고요. 알았죠?”
“……진희 씨.”
현성은 한숨을 내쉬며 진희의 어깨에 손을 풀었다. 대신 그의 입을 가렸던 손을 꽉 잡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전 언제나 당신 편입니다.”
“네?”
“저는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네.”
배신이라, 바제트의 최후에 그만큼 어울리는 단어가 어디 있을까.
그녀는 주군과 가족에게 배신당해 최후를 맞이한 기사였다. 적의 검에 쓰러진 것이 아닌, 아군의 간계에 죽은 불명예의 기사.
진희는 웃음을 터뜨리며 현성의 손을 풀려 했다.
“이서한과는 다릅니다.”
“네?”
여기서 왜 서한이 나와? 진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래도 마지막 기억에서 서한, 황태자 케네스의 모습을 본 것인지 현성은 본 적 없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걱정 마세요.”
“……어, 네.”
그래도 지금의 서한과 케네스는 다른 사람 아닐까요, 하고 말하고 싶었던 진희였지만, 현성의 얼굴이 너무나도 경직되어 있어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 * *
‘살벌해.’
진희와 현성이 납치된 이후, 파티의 분위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PD는 안 그래도 떨리는 몸을 애써 추스르며 흘끔 뒤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동굴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오는 카온과 라이샤의 날이 선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카온의 눈이 분노로 번들거리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
“곧 도착이다.”
“네, 네.”
라이샤가 나지막이 말했다. 라이샤는 이 던전이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PD보다 구조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진희가 사라지자마자 PD의 뒤로 붙은 그녀는 빨리 가자며 일행을 재촉했다.
“이 앞에 있네.”
“뭐가?”
“이 던전의 주인.”
카온과 라이샤는 PD가 알아듣지 못할 대화를 나누며 무기를 꺼냈다.
라이샤는 카사에게 받은 검은색의 검을, 카온은 진희에게서 선물 받은 장검을 손에 쥐었다.
이윽고 그들은 던전의 끝에 도착했다.
어슴푸레한 빛을 발하는 수정 벽과, 그 앞을 막아서고 있는 거대한 몬스터의 실루엣이 보였다.
“이곳이에요. 제 일행이 통과하지 못한 곳.”
PD가 힘이 풀릴 것 같은 다리를 애써 지탱하며 몬스터를 노려보았다.
몬스터의 생김새는 마치 거대한 원숭이를 보는 듯했다. 긴 팔과 그에 비해 짧은 다리, 뭉툭한 몸, 인간처럼 동그란 눈동자.
어둠 때문에 세세한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앉아 있는 자세는 딱 원숭이의 그것과 닮았다.
“몰락한 주인이네.”
그 몬스터의 상태를 라이샤는 짧게 정리했다.
무너진 세상을 지탱하지 못하고 몰락해 버린 주인의 모습이었다. 신성(神聖)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야만스럽고 난폭한 마력만이 흘러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인원이 적으니까 조심해야 해요. A급이라고 해도 제대로 딜러와 탱커를 나눈 파티여야 안전하게…….”
“괜찮아.”
아직도 PTSD에 시달리는 PD는 싸울 수 없었기에 떨리는 목소리로 충고했다. 이렇게 된 바에 차라리 바깥에서 증원을 불러오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하려는 찰나, 라이샤가 PD를 뒤로 당기며 말했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
“저, 저기…….”
라이샤의 실력이야 진희와의 싸움을 봤으니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레이드와 사람과의 대전은 엄연히 다른 분야였다.
걱정 어린 얼굴로 PD가 말리려 하자, 이번엔 카온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저 벽 너머로 납치된 게 확실한가?”
“아, 네. 잘 보이진 않지만, 목소리를 들은 적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