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와 헌터의 겸직-111화 (111/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111화

성벽을 부쉈으며, 영혼을 다루는 자. 딱 봐도 테러범과 관련되어 있다.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단서를 찾은 것으로 진희는 만족했다.

지금 문제는 꽃의 정체가 아니라, 현성의 목에 달린 추출기의 제거였다.

“반반씩 영혼을 추출하는 방법이 뭐라고?”

“접촉입니다. 추출기를 중심으로 피부를 맞대고, 추출기에 영혼을 불어넣는 것입니다.”

영혼을 불어넣는 방법은 모른다. 진희가 현성에게 방법이 있냐 묻자, 그는 머뭇거리는 얼굴로 방법을 설명했다.

“단기간에 습득하긴 어려울 겁니다. 저도 처음엔 주술구를 통해 배웠으니까요. 제가 먼저 영혼을 움직이면, 그 기운을 따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았어요.”

진희는 바닥에 현성을 앉혔다. 목 뒤의 추출기는 어느새 주먹 크기까지 커져 있었다.

“주의사항은 있어?”

“합선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합선?”

“네. 영혼의 추출이 동시에 일어나면 서로의 영혼이 합선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경우 단편적인 기억의 충돌, 감정 공감 등의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으니, 주의를 바랍니다.”

“자, 잠깐만요. 기억의 충돌이라니, 설마 서로 기억을 볼 수 있단 겁니까?”

“네.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지간히 수상쩍은 장치다. 진희는 내심 생각했다.

영혼을 추출하는 것 말고도 기억을 헤집는 기능까지 있다니, 이쯤 되면 이 추출기의 정체가 궁금해질 따름이다.

“그럼 저 안 할……!”

기억이 충돌한다는 소리에 현성이 뒤로 물러나려 했다. 진희가 혀를 차며 현성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마력을 사용한 진희의 괴력에 현성이 욱, 하며 고개를 숙였다.

“제 기억도 볼 수 있으니까 쌤쌤이잖아요.”

“보고 싶지 않습니다! 놔요!”

“놓으면 어쩌려고요. 죽는 것보단 나아요.”

“다른 해결 방법이 있을 겁니다!”

있더라도 이미 늦었다. 진희는 눈에 보이는 속도로 커져 가는 수정을 내려다보았다. 현성의 감정에 이끌리는 것인지, 그가 당황해할수록 수정은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이제야 수정에 갇힌 사람들이 왜 고통과 당황 어린 표정으로 죽어갔는지 이해가 갔다. 커져 가는 수정에 당황해하며 몸부림치다, 결국 영혼을 모두 추출당해 죽어갔겠지.

진희는 현성을 그렇게 죽게 놔둘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럼 고개 숙여요.”

“윽!”

현성이 반항하려 하자, 진희가 그의 어깨 위에 팔을 걸쳤다. 그리고 수정에 이마를 기대었다.

“지, 진희 씨!”

목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그가 진희를 털어내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진희의 힘에 꼼짝도 못 하게 된 그는 한참을 발버둥 치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다.

“……정말 하실 생각입니까?”

“당연하죠. 얼른 영혼 다루는 방법이나 알려주세요.”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글쎄요.”

기억의 충돌로 충격받을 사람은 진희가 아니라 현성일지도 모른다. 진희는 쓰게 웃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주위 사람에게 전쟁이나 독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적이 없었다.

지금의 진희마저도 떠올리자면 아파 오는 기억들이다. 그걸 본 현성이 어떤 기분일지 그녀는 대충 상상이 갔다.

‘그때 기억이 부딪히지 않길 바라야지.’

진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마 위로 현성의 영혼이 움직이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진희도 그를 따라서 의식을 집중했다.

* * *

한국에서 막 게이트가 나타날 당시, 사람들은 이 비과학적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교인(敎人)이나 초능력자, 무당. 대중은 물론 정부까지 나서서 이 현상을 해결해 달라고 의뢰했지만, 누구도 게이트를 닫지는 못했다.

문명화된 사회에서 초능력이란 환상에 불과했고, 귀신의 목소리를 듣는 무당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사기꾼이란 이야기였다.

은거하고 있던 능력자를 찾은 적도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게이트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부탁을 거절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가 있었다.

한국의 첫 번째 마력 각성자이자 주술가 집안의 가주, 신현성의 아버지인 신하성이었다.

그는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주술을 이용하여 던전을 공략하여 일약 스타가 되었다. 게이트라는 공포의 존재를 없앤 그를 대중은 영웅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의 몰락은 빠르게 찾아왔다.

새롭게 마력을 각성한 유망주들이 신하성보다 강한 힘으로 던전을 공략해 나갔고, 온갖 기업이 헌터 시장에 참여하며 신하성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식어갔다.

게다가 신하성의 비밀이 유출되며, 그는 영웅이 아니라 범죄자로 낙인찍히기 시작했다.

[주술사 신하성, 그가 사용하는 피는 아이들의 피?]

[게이트를 닫겠다고 나선 신하성, 실패하자 도주.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몬스터가 인가를 습격해…….]

[주술사 신하성, 마석의 취득 후 미등록. 탈세 혐의 증명을 위해 구속 조치.]

[최초의 헌터는 어째서 범죄를 저질렀는가?]

헌터가 범람하며 온갖 범죄자가 한국을 들썩이던 시기였다. 경찰과 군인은 헌터라는 강력한 초인들을 제재할 수단이 없었고, 법안도 세워지지 않아 질서라곤 없는 무법지대가 되고 만다.

신하성은 그런 범죄자 헌터 중 하나로 지목당한 것이다.

어느 단체에도 속하지 않고, 명성은 있으나 실력도 모자란 그는 언론의 미끼가 되기에 최적이었다.

“난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신하성이 곧잘 그의 아들 신현성에게 했던 말이다.

“내가 주술에 쓰는 피는 닭 피고, 마석을 등록하지 않은 이유는 주술진의 동력으로 쓰기 위해서였어. 나는, 아빠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현성은 신하성을 믿었다.

무뚝뚝한 아버지였지만 주술에 대해선 언제나 진지했던 그였다. 무당 노릇을 하며 입에 겨우 풀칠을 하던 집안 살림살이가 나아진 이후에도, 그는 자신의 정도를 지켜왔다.

그의 아버지는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도덕성과 정의, 예절에 대해선 완벽한 사람이었으며, 능력은 부족하더라도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당당한 주술가였다.

현성은 아버지를 모욕하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분노했다. 신하성을 무시하는 헌터들이 미웠고, 영웅이라 칭송했으면서도 등을 돌린 대중에게 실망했다.

현성이 마력을 느끼기 시작한 건 중학교에 입학한 직후였다. 게이트가 열리고 5년가량 지나, 게이트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헌터란 직업 또한 재정립되던 시기다.

어리고 치기 어린 마음의 현성은 신하성을 본받아 정의로운 헌터가 되기로 결심했다.

악당 헌터들을 잡고 사람들을 구해주는 영웅, 어린 그의 꿈이었다.

“난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그러나 꿈은 그의 아버지로 인해 부서지고 말았다.

현성은 천재였다. 시작부터 B급 수준의 마력 감응력을 지니고, 신하성이 10년이 걸린 주술의 습득을 단 2년 만에 깨우칠 정도로 명석했다.

세간의 이목이 지목되었고, 어린 나이지만 온갖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올 정도로 유망한 인재였다. 그러나 현성은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아버지처럼 정의로운 헌터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현성은 그의 아버지가 그를 헌터 기업에 팔아먹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네 잘못이다.”

현성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변명을 듣게 되었다.

변명의 대상은 바로 자신이었다.

‘이게 어딜 봐서 단편적인 기억이야.’

눈을 한두 번 깜빡거린 것뿐인데, 진희는 현성의 과거를 단숨에 읽고 말았다. 세세한 기억은 생략되었지만, 현성의 요약된 성장기를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성의 아동기는 그의 부모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의 정의란 아버지의 모습이었고, 그의 신념이란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서, 그의 혹독한 청소년기가 시작된 듯했다.

[기구한 삶이군.]

‘바르그?’

[너와 나의 영혼은 융합되어 있다. 감각 공유 정도는 일도 아니야.]

바르그는 그나저나,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영혼의 추출이 끝날 때까진, 본의 아니게 이 녀석의 삶을 돌이켜 봐야 하겠군.]

‘설마 현성 씨도 내 과거를 다 보고 있는 거야?’

[그렇진 못하겠지. 들어와서 보니, 어떤 방식으로 영혼이 섞이고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너의 영혼이 이 녀석의 부족한 부분을 메꿔주고 있는 형태야. 네가 이 녀석의 모든 걸 들여다볼 순 있어도 녀석이 널 읽긴 쉽지 않아. 해봤자 볼 수 있는 건 가장 마지막 기억인 너의 죽음 정도겠지.]

그걸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건데 말이야. 진희는 쓰게 웃었다.

그 화려한 연회 속에서 볼품없게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끊을 방법은 없어? 더 보고 싶진 않은데.’

[글쎄, 그건 네가 바란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이 회상은 추출기 때문에 시작된 거지만, 계속 이어지는 건 신현성의 바람이니까.]

‘바람?’

진희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현성 씨는 내가 기억을 들여다보길 원한다는 거야?’

[너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이 처연한 과거를 털어놓고 싶은 본심이겠지.]

아픈 기억을 털어놓고 싶다. 누군가와 공감하고 싶다. 위로받고 싶다는 나약하지만 당연한 생각이었다.

진희는 들어선 안 될 것을 들은 듯하여,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예의 있고 상냥했던 그의 안타까운 속사정이었다.

‘더 보고 싶지 않아졌어.’

[어째서? 고통스러운 과거를 공감을 통해 이겨내는 게 성장 아니었나?]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네가 읽던 책에서.]

요즘 읽던 책이라곤 만화책밖에 없었는데. 진희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나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쯤은 있는 법이야. 그게 설령 감춰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고 해도.’

[너도 그런가?]

‘……그래.’

부정할 수 없었다. 진희는 바르그의 침묵을 의식하지 않으려 다시 시선을 돌렸다. 기억은 현성이 강제 계약으로 인해 기업에 끌려가는 것부터 시작했다.

현성은 충격에 빠져 계약을 부정할 생각조차 못 한 채 집에서 쫓겨났고, 그 모습을 증오스럽게 노려보는 아버지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질투? 아니면…….’

진희는 신하성의 얼굴에서 익숙한 그림자를 보았다.

질시와 증오, 티끌만큼의 애정, 그리고 후회.

바제트의 동생이 때때로 바제트를 볼 때 보였던 감정이었다.

결국 신하성도 한 명의 나약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현성이 도착한 곳은 헌터 기업이 아닌 연구 단지였다. 던전, 마법, 게이트, 마력, 온갖 신비를 과학으로 정리하기 위해 탄생한 연구소였다.

그곳에서 현성은 주술가로서 실험에 참가했다. 거부할 순 없었다. 아직 방위대나 관리본부가 없었을 때였기에, 비인권적 행태를 제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현성은 경비가 삼엄한 연구소에서 혹사당했다. 목에서 피가 나올 때까지 주문을 외우고 손가락이 터서 찢어질 때까지 주술진을 그렸다.

모르모트 취급을 당하기도 했고, 원하지 않는 전투를 하며 손에 피를 묻히기도 했다.

“강해져야 해.”

일반인이었다면 절망에 무너지고 말았을 상황에서, 현성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이 비인간적인 시설을 보며 정의가 필요하다 생각했고, 이곳에서 탈출해 모두에게 진실을 알려주리라 마음먹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