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와 헌터의 겸직-110화 (110/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110화

22. 신현성

“대체 언제까지 연락을 안 받는 거야?”

서한이 혀를 차며 휴대폰을 껐다. 진희가 던전으로 떠난 지 벌써 사흘째다. 반나절이면 공략이 끝날 것 같았던 던전에서의 체류가 예상외로 길어지고 있었다.

‘설마 실패했나?’

던전 공략의 실패, 그리고 연락의 두절이 의미하는 건 곧 사망이다. 하지만 서한은 곧 고개를 저었다.

진희의 실력은 객관적으로 자신보다 위다. 게다가 일행 중엔 현성과 카온도 참가하고 있었다. 그들이 실패한다면 그 던전의 난이도가 1급 혹은 등급외란 이야기였다.

서한은 그 터무니없는 걱정보다, 던전 내부의 시간이 현실과 다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던전 내부에서 보낸 시간과 현실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만약 일행이 향한 곳이 그런 특징의 던전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보육원을 너무 오래 비워.’

보육원은 기사단의 양성소 역할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진희의 약점이기도 했다. 때문에 진희는 보육원에 항상 기사단원 중 한 명을 배치하곤 했다.

대부분 카온이었고, 간혹 현성과 서한이 그 역할을 맡았다.

서한이 보기에 보육원은 진희의 역린이었다. 이능력을 사용하는 수십 명의 아이가 지내고 있다 보니, 외부에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진희라 하더라도 모든 간섭을 막긴 힘들 것이다.

차라리 금강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아 시설을 개조하고 헌터 아카데미로 만드는 건 어떤가 제의도 해보았지만, 진희는 아이들의 장래를 걱정하며 제안을 거절했다.

처음엔 그 친절에 납득했지만, 지금 와선 그녀의 선택이 기사단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서한은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의 하교 시간이었다. 보육원에 들어온 아이들이 서한을 발견하고 인사를 하며 지나쳤다.

“아저씨, 일 안 해요?”

“…….”

얼른 지나가라며 아이들에게 손짓한 서한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직도 연락이 오질 않았다.

차라리 부하라도 두고 갈까 싶었지만, 최근 다른 헌터 단체들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 본인이 아니면 불안했다.

금강이 대단한 기업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후계자인 서한이 곧 금강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헌터 단체, 기업이나 정부가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 자리를 비우는 건 여간 불안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서한은 십 수 개의 문자메시지를 보며 혀를 찼다. 가장 상단에 위치한 문자는 그의 동생인 세영이 보낸 것이다.

대부분이 최근 불안한 헌터 시장 동태에 관한 내용이었다.

[비인증 헌터들이 현격히 증가했습니다.]

[헌터들의 범법 행위의 수위가 높습니다. 잡으려 해도 방위대의 원조가 없습니다.]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헌터 시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비인증 헌터들이 암흑가에 범람했고, 그간 억제력이 되었던 방위대의 존재도 무색해졌다.

현성이 활동하지 않는 방위대의 빈자리가 생각보다 컸던 탓이다. 정부의 정보를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된 현성은 이런 헌터 시장에 대해 제대로 보고 받지 못하고 있었다.

‘녀석이 알았다면 분명 나서겠지.’

서한은 의도적으로 현재 상황을 현성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 현성은 자신의 명예를 복구하고, 입지를 다지는 데 힘을 쏟아야 했다.

그의 정의심 때문에 지금껏 준비한 일들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서한도 혼란스러운 현재 상황에서 중립을 유지하려 했었다.

테러범과 결탁한 정치인과 기관, 그리고 기업들을 상대해야 하는 지금 다른 곳에 눈을 돌리는 건 힘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한국엔 그의 동생 세영이 와 있었다.

세영은 사회의 평화를 위해 기업이 행동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며, 서한에게도 힘을 빌려달라 요청했다.

정론(正論)이다. 바른 기업인, 정의로운 헌터라면 세영의 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서한은 주변 사람들이 더 중요했다.

‘보육원에 둘 수 있는 믿을 만한 헌터가 너무 적어. 실력 있는 녀석들은 세영이 대부분 차출해 가기도 했고, 이제 와서 부패한 방위대를 믿을 순 없어.’

적어도 A급 이상의 실력자가 필요한데, 그런 헌터는 적고 이런 일을 시킬 만큼 여유롭지 않다. 서한도 보육원에서 지낼 땐 산더미 같은 일을 함께 처리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불편한 상황이었다.

세영의 말처럼 한 번쯤은 보육원을 나가 상황을 정리하긴 해야 하지만, 그 타이밍을 좀처럼 잡을 수 없었다.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을 한참 하던 도중, 누군가가 보육원의 대문을 두드렸다.

“누구?”

“안녕하세요.”

한 여성이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려한 백금발과 벽안을 가진 그녀의 외모를 보고, 서한은 단숨에 그녀가 누군지 눈치챘다.

클로이, 브리온 기업의 쌍둥이 신인 중 하나였다.

“브리온이 무슨 일이지?”

“처음 뵙겠습니다. 금강의 숨겨진 후계자를 보게 되다니, 영광이네요.”

클로이는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 예법으로 서한에게 인사했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인사에 서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답해.”

“도움을 드리고자 왔습니다.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거기서 말해.”

“안타깝군요.”

클로이는 짐짓 서운하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서한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진희가 클로이에 대해 미심쩍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었기 때문이다.

“바제트 씨의 거처를 꼭 한번 보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

대체 진희의 주변에는 왜 이런 이상한 사람들만 꼬이는 걸까. 백주 대낮에 전생에 대해 말하는 클로이를 보며 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할 수 없네요. 그럼 여기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클로이는 웃는 낯으로 대문에 가까이 다가섰다.

“이민자에 대해서 조사하신 게 있나요?”

이민자.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주민들로, 대부분 이능력이나 마력을 가지고 있어 정부에서 애지중지 보호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파란 기사단은 테러범의 단서를 찾기 위해 이민자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의 철통같은 경비와 아직 해결 못 한 문제들 탓에 조사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이민자에 대한 건 헌터 관리본부의 조사와 기사단 모집 이후에 다룰 예정이었다.

“이번 사태와 이민자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걸 알려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이번 사태?”

“네, 최근 비인증 헌터들이 말썽이죠?”

마치 뭐든 다 알고 있다는 말투다. 서한은 클로이에게서 괴짜 니케와 같은 불쾌감을 느꼈다.

“이민자들은 각기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죠. 다른 세상에서 온 만큼, 우리가 쓰는 마법과 다른 기적을 사용하기도 하고요.”

기업들이 이민자를 탐내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민자들은 대부분 현대 마법과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능력을 가졌다.

“그 이민자들과 비인증 헌터가 무슨 상관이지?”

“지금부터 5년 전, 이민자 중 한 그룹이 탈주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 이민자들의 능력은 ‘영혼 결합’. 같은 부족끼리 영혼을 연결하여 강인함을 유지하는 주술이었죠.”

서한의 물음에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은 채로 클로이가 말을 이었다.

“그들은 이능력을 사용해 정부에게서 도망치고, 실종됩니다. 하지만 작년에 그들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죠. 바로 우리, 브리온에서 말입니다. 그들은 브리온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던 것이죠.”

“……뭐?”

“그리고 브리온은 이민자들과 함께 어떤 연구를 진행합니다. 브리온의 극비 프로젝트이자, 이민자들을 ‘사용’한 첫 번째 헌터 강화 실험. 그 이름은…….”

클로이가 즐거운 표정을 하며 혀로 입술을 적셨다.

“SC(Soul Combine) 프로젝트. 이민자들의 능력을 사용해, 인공적으로 헌터를 생산해 내겠다는 미친 실험입니다.”

자신이 소속된 기업의 기밀을 유출하고 있는 주제에, 클로이는 당당하게 서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현재 비인증 헌터들이 급증한 건, 바로 이 SC 프로젝트가 성공했다는 의미입니다. 영혼을 조합하여 만들어낸 인공적인 헌터들이죠.”

헌터가 되는 것이 재능의 영역이라면, 아예 영혼을 개조하여 ‘재능이 있도록’ 설계하면 그만이다. 이민자들의 기적을 이용하여, 브리온은 터무니없는 기적을 증명해 내고 말았다.

자아, 하고 클로이가 대문에 손을 얹었다.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위해, 잠깐 안에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이사님?”

* * *

[인간이 만든 기계로군.]

바르그가 노기 어린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진희의 질문과 꽃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상황이 정리되었다.

“그러니까…… 이 던전이 사람이 만든 거란 이야기입니까?”

“그건 아닐 거예요. 인간은 성벽과 세상을 만들 수 없으니까.”

온갖 초월적인 존재들과 대화해 봤던 진희는 현성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인간은 성벽을 뚫는 성문(게이트)을 만들 능력을 가질 순 있어도, 성벽을 쌓고 세상을 만들 전능함은 갖출 수 없다.

“이곳은 라이샤나 바르그가 말했던 것처럼 다른 세상의 일부일 거예요. 하지만 이 꽃을 만든 건 사람이죠.”

“그렇다면…….”

“야, 여기 주인은 어디 있어?”

이 던전이 어떤 구조인지 어느 정도 파악은 되었지만, 확인을 위해 진희가 꽃에게 다시 질문했다.

“프로젝트를 위해 현재 교체 중입니다.”

[……주인의 자리를 빼앗았군.]

바르그가 눈을 돌려 수정 벽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수정 벽 너머에는 실루엣만 보이는 거대한 몬스터가 있었다.

저것이 바로 이 세상의 본래 주인이다. 바르그는 말했다.

[이런 방식이 있을 줄이야.]

작은 던전이지만 이곳의 주인도 한 명의 신임은 틀림없었다.

그런 신을 이따위 꽃으로 교체한다니,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이었다.

“라이샤는 이 세상에 누가 구멍을 뚫었다고 했어요. 일부러 성벽을 무너뜨린 그 작자는, ‘신’을 대신해 ‘꽃’을 만들었겠죠.”

몰락한 세상의 신은 영락한다. 카사가 등대 안에서 갇혀 있던 것도 그런 영락을 버티기 위해서였다.

세상의 성벽을 무너뜨려 신을 무력화하고, 그 신을 대신할 존재를 만들어 던전을 운영한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현성은 떠오른 의문을 입에 담으려 했지만, 이내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목을 만졌다.

“……추출기.”

그 작자의 목적은 뻔했다.

현성은 침착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추출기로 뽑아낸 영혼은 어디에 사용됩니까?”

꽃은 대답했다.

“대답할 수 없습니다.”

“대답을 피한다는 건, 당신들이 영혼을 사용한다는 이야기군요.”

이곳은 저승. 살아 있는 자들의 영혼을 가져가는 지옥의 일부다.

이곳을 습격한 작자는 이곳의 ‘추출기’를 사용하려 했던 것 같았다.

인간의 영혼은 함부로 정제할 수 없다. 애당초 영혼을 뽑아내는 마법은 존재하지도 않고, 그나마 부유령이나 정령을 불러내 주술로 엮는 정도가 한계였다.

하지만 온전한 영혼을 추출기란 장치로 뽑아낼 수 있다면?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영혼은 마력 이상으로 가치 있는 자원이었다.

‘게다가 이 추출기라는 수정의 메커니즘을 알아낼 수 있다면…….’

“뭐, 됐어요. 어차피 더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고, 누군가 이 던전에 이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수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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