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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105화 (105/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105화

박민성의 몰골은 처참했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과 덥수룩한 수염은 얼굴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지만, 한때 전사였던 그의 몸은 피골이 상접해 도저히 헌터로는 보이지 않았다.

정재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몰골이 무슨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수배자라고 해도 상태가 심각했다.

“어디 다쳤냐?”

“다, 당신 누굽니까.”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정재민이 아주 잠깐 마력을 개방했다. 엄습하는 마력에 박민성이 창백한 안색으로 고개를 숙였다.

마력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만큼 실력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탁월한 방법이 없었다.

“마, 마력 회로가 손상되어서…….”

“야매 의사한테라도 가서 치료하면 되잖아.”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냥 손상된 게 아니라서요.”

말하자면 신경에 화상을 입은 것과 같은 상태였다. 정령의 번개에 타들어 간 마력 회로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회로를 반쯤 뜯어내 수술로 이어 붙이는 방법이 그나마 치료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런 기술이 있는 고위 마법사에게나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래?”

대체 어떤 식으로 당해야 저렇게 폐인이 되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찾아온 용건은 그게 아니었다.

정재민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박민성에게 말했다.

“너 말이야, 서진희에 대해서 아는 게 있지?”

“서진희라면…….”

“정령의 동굴을 클리어한 헌터 말이야.”

순간 박민성의 눈에 숨 막힐 정도로 강렬한 증오가 스쳐 지나갔다.

“그걸 왜 물어보시는 거죠?”

“내 물건이 그 여자 손으로 들어갔거든. 마음에 안 들어서, 그 여자를 좀 망가뜨리려고 해.”

“제가 당신의 뭘 믿고 알려줘야 합니까?”

“그 상처를 치료해 주지.”

정재민은 박민성의 상처가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치료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박민성에게 이 권유가 가장 효과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내뱉은 말일 뿐이었다.

그러나 박민성은 그 말에 희망을 얻었다.

복수와 회생을 모두 손에 쥘 수 있는 기회였다.

피골이 상접한 몸을 일으킨 박민성이 입을 열었다.

“……가람 보육원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21. 악몽

“제가 공략을 실패한 던전은 바다에 있어요.”

라이샤에게 일반 상식을 가르치던 중, 영상 편집이 다 끝난 PD가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의 채널에 영상을 올리고 나서 만족스러운 얼굴로 한동안 채널의 업로드가 없음을 공지했다.

“어디?”

“남쪽이야. 해남 아래에 있는 수중 던전이에요.”

던전이 꼭 땅 위에 생기리란 법은 없었다. 학자들은 바다 아래에 수많은 게이트가 잠자고 있으리라 예상했다.

PD도 그런 예상을 가지고 해저 던전을 공략한 파티의 일원이었다.

“그곳은- 저희가 찾아서 정부에 등록한 던전이었어요.”

최초 발견자가 되자마자 그들은 최초 공략자가 되기 위해 공략을 준비했다.

PD를 포함한 파티의 수는 7명. 소규모 파티지만 모두가 B급 이상의 헌터로 매우 건실하고 실력 있는 파티였다.

“등급은?”

“3급. 혹은 2급.”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긴 했지만, 파티의 실력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은 던전이었다.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던 파티는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다. 그것도 연속 3번이나.

문제는 이 실패 속에서 그들은 계속해서 파티원을 잃었단 점이었다.

“처음 실패했을 때, 그만뒀어야 했어요.”

2년간 호흡을 맞추었던 파티였다. 끈끈한 전우애라고 표현하기엔 가볍지만, 나름의 우정으로 묶인 관계였다.

그런 동료가 탈락하는 걸 보고도 그들은 던전 입장을 멈추지 않았다.

“왜 그렇게까지 도전한 건데?”

“처음에 실패했을 때, 파티장이 ‘잡혀’갔어요. 그 파티장을 구하기 위해 두 번째 진입을 시도했지만, 이번엔 다른 동료가 잡혀갔죠. 마지막 세 번째엔 2명이 잡혀가서 결국 포기했어요.”

“잡혀가?”

“네. 던전 안의 적들은 동료를 납치해 간 다음, 그 동료를 전시하듯이 세워두거든요.”

던전 내부는 거대한 해저 동굴이었다고 한다. 빛 한 점 없는 동굴에서 나타난 적들은 어둠을 틈타 동료를 한 명씩 납치해 갔고, 그 납치한 동료를 동굴의 끝자락에 매달아 두었다.

“동굴의 끝엔 거대한 수정 벽이 있었어요. 벽 너머에 동료들이 천장에 매달려서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걸 들었지만, 다가갈 수 없었어요. 벽을 지키는 몬스터가 있었거든요.”

파티는 몬스터에게 패퇴해 동료를 구출하지 못했다고 했다.

“지원을 부르진 않았어?”

“불렀어요. 하지만 지원이 오는 사이에 동료들이 죽을지도 모르니까, 저희끼리 계속 도전한 거죠. 모두 실패했지만요. 지원으로 온 헌터도 마찬가지였어요.”

게다가 정부에서 부른 지원 헌터의 등급은 파티의 수준과 다르지 않았다.

B급과 간간이 A급이 존재하는 파티였지만, 그들도 결국 실패하고 인명 피해만 발생했다.

“그 이후 던전은 미공략 상태, 입장 불가 던전으로 결정 났어요. S급 헌터라도 오지 않는 이상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으니까요.”

“그럼 1급으로 측정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던전은 침입만 하지 않으면 주변에 무해한 던전이었거든요. 게다가 수정 벽을 지키는 몬스터의 힘도 특별히 강한 게 아니었어요. 그 몬스터가 강해서 잡지 못한 게 아니라, 지형이 불리했을 뿐이거든요.”

PD는 목이 마른지 기침을 몇 번 하고 말을 이었다.

“그곳은 빛이 통하지 않아요. 어떤 마법으로도 주변을 밝힐 수가 없었어요.”

마치 블라인드(Blind) 마법처럼 던전은 시야를 깜깜하게 가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습기가 가득 차서 불도 안 붙고, 설령 붙인다 해도 꺼져버려요. 불 속성 마법은 사용할 수 없는데, 빛을 내는 마법도 효과가 없어요. 별별 던전이 다 있죠?”

어둠에 익숙해지면 사물의 윤곽 정도는 분간할 수 있었지만, 그 정도의 시야로 전투가 가능할 리 없었다.

허우적거리는 동료들은 결국 동료의 비명을 듣고도 도망치고 말았다.

“힘들었겠네.”

“지난 일이에요.”

지금은 제법 시간이 지났기에 상처가 아물었다. 헌터에게 동료의 죽음이란 심심찮게 겪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PD는 쓰게 웃었다. 그렇다고 흉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 던전을 공략해 주겠다고 말했다면- 전 코웃음 쳤을 거예요. A급 헌터가 온다고 해도 공략 불가능한 던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이라며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칭찬 고마워.”

“빈말이 아니에요. 당신은 당신 힘을 좀 더 자각할 필요가 있어요.”

보세요, 하고 PD가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진희에게 보여주었다.

진희가 찍힌 등대 돌파 영상이 보였다. 조회수는 미친 듯이 증가하고 있었고, 댓글은 실시간 채팅처럼 빠르게 올라오는 게 보였다.

“영상 올리고 2시간 만에 온갖 기업에서 컨텍이 왔어요. 미국의 미노타우로스 때완 달라요. 이번엔 당신의 실력이 온전히 전해진 셈이니까요.”

진희의 업적은 헌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여다볼 정도로 대단한 내용으로 장식되었다. 이제 그녀가 S급에 가까운 헌터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PD는 휴대폰 화면을 끄고 진희에게 말했다.

“만약 해저 동굴도 공략할 수 있다면 단원이 되겠어요.”

“지난 일이라면서?”

“흉터가 쓰라려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진통이 안 될 것 같거든요.”

진희가 웃음으로 대답해 주었다.

* * *

그렇게 다음 행선지는 남해에 있는 해저 동굴로 결정되었다.

참가 단원은 진희와 현성, 카온, 라이샤, PD였다.

PD의 증언을 토대로 짠 파티였다. 많은 인원이 갈 수 없는 좁은 던전이었고, 마법의 사용이 어려워 미숙한 마법사는 없느니만 못했다.

게다가 정체불명의 몬스터가 파티원을 납치했다는 증거가 있으니, C급 이하는 파티에 포함하지 않았다.

서한은 일이 바쁜 데다 아이들의 수련도 봐주고 있어 이번엔 불참한다고 말했다.

“근데 언제까지 PD라고 불러야 돼? 이름 부르면 안 돼?”

“PD가 더 멋있잖아요. 별명 같고.”

“아, 그래.”

PD란 닉네임이 대체 뭐가 멋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진희는 묵묵히 침을 챙기는 PD에게 알겠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PD의 본명이야 단원으로 받아들일 때 이미 들었지만, PD라고 불러달란 게 그녀의 희망 사항이라 참견하지 않았다.

“전 어떻게 할까요?”

보육원에 남겨지게 된 이선이 불안한 얼굴로 질문했다. 아직 진희에게 수련 방법이라곤 특이한 호흡법 말곤 배운 게 없었다.

뭔가를 더 가르쳐 주지 않으려나, 기대감 어린 눈을 한 이선에게 진희가 강당을 가리켰다.

“그 호흡법으로 명상을 계속해. 마력을 바깥으로 뿜어내지 않고, 몸 안에서만 회전시켜 다 태워낸다는 느낌으로 해봐.”

“그게 소용이 있나요?”

“못 믿으면 말고.”

이선이 입을 꾹 다물었다. 불신이 가득한 이선을 보며 진희가 작게 웃었다.

이선은 한시라도 수련을 하지 않으면 불안을 느끼는 타입이었다. 병사로선 탁월하지만, 기사로선 고칠 점이 많았다.

“마력 회로가 단련되도록 만드는 수련 방법이야.”

“그럼 마나 감응력이 올라가나요?”

“그건 다음 수련 때 알려줄게. 지금 시도할 수준은 아니니까. 이다음 수련을 하기 위해선 몸을 먼저 만들어야 돼.”

알겠습니다, 이선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털레털레 돌아가는 발걸음이 안쓰러웠던 PD가 물었다.

“근데 정말 B급이 될 수 있나요? 5년이나 C급에 머물렀다면 이미 한계일 텐데…… 전 지금껏 5년 이상 된 C급이 B급이 된 사례를 본 적 없는데요.”

“B급 수준으로 만들 수는 있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지는 장담 못 하지만.”

“……그렇게 위험해요?”

“응, 해볼래? 너도 A급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사양하겠습니다. 전 정석 수련이 더 좋거든요.”

정석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다. 그걸 못하니까 이선이 힘들어하는 거고.

진희는 내심 생각하며 현성을 불렀다. 장비의 점검이 끝난 현성이 진희에게 다가왔다.

“경과는 어때요?”

“유착관계는 잡아냈습니다.”

테러범과 접촉했었던 정부 인사들, 그리고 그들이 특정 기업과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도 포착했다.

“기업? 어딘데요?”

“수가 제법 돼서 나중에 보고서로 올리겠습니다.”

현성이 복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서너 명 나올 줄 알았던 흑막이, 마치 고구마 캐듯 줄줄이 매달려 나오는 상황이었다.

“자금 경로가 심상치 않습니다. 처음엔 방산 비리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범죄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현성이 보육원의 아이들이 근처에 없는 걸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행정부 쪽에 신림 조직들의 뒷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까마귀파요?”

“조직은 특정하지 못했습니다만, 현물로 바꾼 수십억의 자금이 조직에서 사용된 걸 확인했습니다.”

까마귀파는 진희에게 해체된 지 오래였다. 연관이 있다면 그 후에 나온 조직일 테지. 진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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