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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103화 (103/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103화

“대체 왜 모른다는 건데!”

“그, 그게. 그 아이한테 등록된 업적이 없습니다.”

“C급 실력이라며, 그 나이에 C급이면 기록이 안 남았을 리 없잖아!”

정재민이 버럭 화를 내며 노려보자, 지엑스의 스카우터는 식은땀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정재민은 기업으로 돌아오자마자 청하의 정보를 찾으라고 명령했다.

공격적인 영입을 즐겨 하는 지엑스의 헌터 데이터는 굉장히 정교한 편이었기에, 정재민은 어렵지 않게 청하의 소속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스카우터는 청하의 이름조차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청하는 아직 C급 헌터 시험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하는 아직 D급 헌터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 그래도 이 서진희란 헌터는 찾았습니다.”

그나마 진희의 정보는 얻을 수 있었다. 스카우터를 비키게 하고 의자에 앉은 그는 모니터 안에 적힌 진희의 프로필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말이 돼?”

C급에서 B급, B급에서 A급이 된 기간이 터무니없이 짧았다. 공략한 던전도 하나같이 상급 던전들이었고, ‘미노타우로스 사건’을 해결한 것도 진희라고 적혀 있었다.

미노타우로스를 사냥했다는 동영상은 정재민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잘 만들어진 조작 영상이나 기업에서 만든 프로모션이 아닌가 싶었는데, 스카우터의 코멘트에선 오로지 진희의 실력으로 사냥한 것이라 적혀 있었다.

“그 경매장에 저희 임원이 있었습니다.”

“…….”

스카우터의 말에 정재민이 입을 다물었다. 직접 봤다고 하니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등급을 속였군.”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처음 C급 등록할 때부터 등급을 속였다는 이야기다. 세금을 내기 싫거나 주목받기 싫어하는 소수의 헌터들이 종종 선택하는 방법이었다.

“이 꼬맹이랑 서진희란 헌터가 같은 파티냐?”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이 서진희는 이름만 알려졌을 뿐 신상정보는 공개가 되지 않아서…… 자세한 건 알 수 없었습니다.”

“얼굴에 이름까지 아는데, 왜 몰라?”

“……금강이 끼어 있는 것 같습니다.”

“금강?”

“정보 은폐 방식이 금강이랑 똑같습니다.”

뜬금없는 금강의 출현에 정재민이 스카우터를 바라보았다. 한국의 기업들에게 금강은 절대 넘볼 수 없는 거산이나 다름없었다.

“금강이 뒤에 있다고? 아니, 잠깐만…….”

그럴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진희가 금강이 키우고 있던 루키였다면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대형 신인을 이런 방식으로 등장시키는 게 없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상한 점은 금강은 ‘그런’ 이미지의 기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등장 방식은 오히려 브리온 같은 기업에서나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금강은 그만큼 고루하고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그럼 이선을 포기해야 하는가? 정재민이 고민 어린 얼굴로 턱을 괴고, 가만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헌터 길드의 김유나도 서진희, 그러니까 금강 편이야?”

“잘 모르겠습니다. 길드는 한동안 잠잠하던 곳인데, 이번 기회에 금강이랑 손을 잡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금강이 뭐가 아쉬워서 길드 같은 애매한 기관이랑 손을 잡아? 애당초 정부랑 사이 안 좋은 게 하루 이틀이 아니잖아.”

“이번에 금강의 또 다른 후계자가 유럽에서 돌아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 때문에 금강 내부에서도 변화가 있던 게 아닐까요?”

정재민이 항상 홀대하는 스카우터였지만 시장을 보는 눈썰미는 제법 좋은 편이었다. 그는 이번 진희의 등장을 포함해서 금강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있을 법한 이야기다. 정재민은 스카우터의 말을 무언으로 긍정했다.

그리고 진희의 프로필을 유심히 지켜보던 중, 문득 한 구절에서 눈이 멈췄다.

“이 정령의 동굴이란 거, 강남에 있던 그거지?”

“아, 네. 맞습니다. 한동안 마석을 캐는 사냥터였죠. 저희 쪽 헌터도 제법 많이 드나들었습니다.”

“그거 말고, 수배된 애 중에 이 동굴에서 사건 터뜨린 녀석 있지 않아?”

“수배요?”

스카우터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헌터 수배자들의 얼굴을 다 익히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던전을 드나드는 것 말고도 온갖 음험한 일을 좋아하는 정재민은 수배범 명단을 때때로 보는 편이었다.

“아냐, 분명 봤었어.”

“아, 네.”

정재민이 왜 수배범을 체크하는지 잘 알고 있는 스카우터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속셈은 뻔했다.

정재민은 화풀이할 수 있고, 합법적으로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던 것이다. 그의 사디스트적인 성격은 익히 알고 있었다.

“분명 이름이…… 여기 있다.”

공개 수배된 인물들의 프로필을 찾던 중, 정재민은 ‘박민성’의 프로필에서 스크롤을 멈췄다.

[박민성, 22세, 전사, 탱커, 길잡이, 정령의 동굴 수배 중, 금융거래 정지 및 헌터 면허증 취소 진행…….]

“이놈도 화려하네.”

적힌 죄목을 읽으며 정재민이 끌끌 웃었다. C급 주제에 B급 헌터들을 함정에 빠뜨려 죽이거나 공적을 갈취한 죄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모아보면 사형에 준하는 죄였다.

“이 녀석 연락처 알아내 봐.”

“네?”

“찾아보라고.”

수배자를 어떻게 알아내란 건가. 스카우터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정재민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놈 무조건 서진희란 애랑 엮여 있어. 한번 알아봐.”

“이 범죄자가 도움이 될까요?”

“돼.”

정재민은 의자에서 일어나며 단언했다.

“직감이야. 이런 쓰레기 같은 놈들은 항상 기회를 엿보고 있을 거거든.”

굴러다니는 쓰레기(C급)라고 해도 쓸 곳은 있는 법이다.

정재민의 기묘한 직감에 스카우터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우선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청하의 신상을 알아내지 못한 이상, 이번에도 그의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떤 꼴을 당할지 뻔했기 때문이다.

* * *

“일어났어?”

다음 날, 진희는 PD에게서 받은 자신의 동영상 편집본을 보던 중, 문을 열고 들어온 라이샤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원내에 있던 잠옷으로 갈아입고 잠에 빠져 있던 라이샤는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한 채로 진희의 방 안으로 들어섰다.

“여긴 어디야?”

“우리 집?”

“여기가 지구야?”

“맞아.”

“너무 밝아.”

마치 외계인과 대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진희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면 카온이 처음 왔을 때도 이랬지.’

편의점에서 먹을 것 좀 사 오란 이야기를 편의점이란 곳에서 음식을 사냥해오라고 해석하던 때가 있었다.

“익숙해지도록 해. 이제부터 지낼 곳이니까.”

“응.”

“아침밥은 먹었어?”

“아직.”

진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밝았다. 지금쯤 카온이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시간이다.

“밥 먹으러 가자. 그전에 씻고 오고.”

“우물이 어디 있는데?”

거기서부터 가르쳐 줘야 하는구나, 진희는 라이샤를 데리고 샤워실로 향했다.

“아, 오늘부터 우리 기사단에 합류하게 된 라이샤야. 인사해.”

샤워가 끝난 후, 진희는 식당에 모인 아이들을 향해 라이샤를 소개했다.

아이들은 백발을 가진 라이샤를 보고 반쯤 넋을 놓고 있었다.

“외국인이에요?”

아직 상황을 전달받지 못한 종혁이 묻자 진희가 잠깐 말을 고르다 대답했다.

“외계인이야.”

“엥?”

“카온 아저씨처럼 다른 세상에서 왔단 이야기야.”

종혁이 멍청한 표정을 짓자 곁에 있던 소라가 대신 대답했다. 아무래도 전자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라이샤를 보자마자 카온을 떠올린 듯했다.

“그리고 PD도 우리 기사단 단원이 됐고. 이 자리엔 없지만, 나중에 소개해 줄게.”

PD의 입단 소식에 가장 기뻐한 건 청하였다. 청하는 지금도 숟가락을 든 채로 계속 휴대폰을 살피고 있었다. PD의 영상 채널에 진희의 영상이 언제 올라오는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PD님이 우리랑 함께하면, 이제 우리 영상도 올라가는 거예요?”

“글쎄, 정한 건 없는데.”

진희의 말에 청하가 조금 실망한 듯 휴대폰을 내렸다.

PD는 기사단의 정보 수집을 위해 영입한 단원이었다. 영상 채널을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게 될지는 정한 게 없었다.

‘능력이 아깝긴 한데.’

PD의 실력은 B급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다. 그런 전력을 정보 수집에만 사용하긴 아깝긴 했다.

그것도 PD와 함께 상의해 봐야겠지. 진희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손뼉을 치고 식사하자 말했다.

아이들은 진희와 라이샤를 번갈아 보며 숟가락을 들었다.

“이걸 들고 먹어라.”

그리고 어느새 라이샤 곁에 다가온 카온이 라이샤에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주고, 식사하는 데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라이샤는 카온을 쳐다보지도 않고 진희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마치 허락을 구하는 듯한 눈빛이었기에, 진희는 먹으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라이샤는 숟가락을 들었다.

‘부담스러워.’

카온의 상사 대우도 무거운데, 라이샤는 마치 진희가 주인이라도 된 듯이 행동해 부담을 가중시켰다. 편하게 있으라고 말을 해도 둘은 들을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단장이란 자리가 단원에게 존경받는 자리인 건 맞지만, 괜히 과거가 떠올라 달갑지만은 않았다.

“계란말이 엄청 맛없어. 탄내가…….”

“그거 카온 아저씨가 한 건데.”

“타, 탄내가 허브처럼 느껴진다.”

투덜거리는 청하를 소라가 타박하는 모습을 보며 진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카온과 라이샤도 저것처럼 서슴없는 관계가 되길 바랐지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라이샤가 식사를 시작하자 카온도 말없이 고개를 돌려 숟가락을 들었고, 둘은 말 한마디, 눈빛 한 번 교환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림은 되네.”

카온이 했다는 탄내 가득한 계란말이를 입에 넣으며 진희가 중얼거렸다.

선이 굵은 카온과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라이샤의 조합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비록 들고 있는 게 인삼이 그려진 은색 수저이고, 먹는 게 계란말이와 김치찌개지만, 인물만 따로 그려놓는다면 근사한 조합이었다.

“그런데요, 언니.”

“응?”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쯤, 소라가 진희를 불렀다.

“이제 기사단을 파티로 등록한다고 하셨죠?”

“그래야지.”

파티를 만들어 정부에 보고하면 사소한 혜택들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개인의 유명세보다 기사단의 명예를 드높이고 싶던 진희는 기사단원들을 모두 파티에 포함할 생각이었다.

“그럼 이름을 정해야 하지 않아요?”

“……헉.”

진희가 그녀답지 않게 눈을 크게 뜨고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기사단 이름을 정하지 않았다. 병아리 기사단이란 가칭을 계속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로 정하지?”

“설마 아직도 안 정하셨던 거예요?”

“응.”

진희의 뻔뻔한 긍정에 아이들은 물론이고 카온마저 어처구니없단 표정을 지었다.

진희가 중요한 일을 까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지만, 기사단 만든 지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껏 이름조차 정하지 않았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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