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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102화 (102/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102화

실력은 C급 중에서도 출중한 편, 그런데 이만큼 파티를 옮겨 다니다니, 뭔가 사유가 있는 게 분명했다.

“……뭐야, 이거?”

이선의 업적을 쭉 살펴보던 중, 서한은 이선의 초창기 업적을 살피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선이 아직 미성년자일 무렵, 그녀는 한 파티에서 제법 오랜 기간 탱커로서 활동했었다.

그런데 그 파티를 나온 사유가 심상치 않았다.

“고등학생 동창이 파티의 일원이었으나, 행방이 묘연해진 후 본인도 파티를 탈퇴?”

헌터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건 던전에서 죽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헌터의 자격에 연령이 상관치 않은 현대에서, 미성년자의 죽음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어떤 녀석인지는 알겠군.”

서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그녀는 B급이 되기 위해 강의를 듣기도 하고, 아카데미에 지원하려 한 기록도 남아 있다. 동시에 수많은 파티를 전전했다.

서한은 진희의 질문에 대답해 주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문자를 입력하면서도 입이 씁쓸해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금강의 후계자인 그로선 제법 봐온 광경, 사람이었지만 익숙해지지 않았다.

서한은 보고서 중간에 입력된 스카우터의 소견을 읽었다.

[금강 아카데미 입학 건강진단의 심리상담 중, PTSD(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의 진단 결과가 나왔으나, 본인이 입학을 거부하여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함.]

이선은 죽은 친구를 잊지 못한 것이다.

* * *

고등학교 1학년.

전학생 감응력 테스트를 하던 날. 자신에게 헌터가 될 재능, 마나 감응력이 측정되었단 소식에 이선은 기뻐했다. 마력만 따지면 무려 C급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잔치를 벌였고, 학교의 친구들은 연신 축하해 주었다.

그 모든 축하보다도 기뻤던 건, 중학교 때부터 같이 지냈던 친구인 강무영 또한 헌터가 되었단 사실이었다.

둘은 초등학교 때부터 언제나 붙어 다니던 단짝이었고, 그건 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보다 단짝과 많은 대화를 나누던 시기였기에, 헌터가 돼서도 같이 있을 수 있단 사실에 둘은 부둥켜안으며 기뻐했다.

강무영과 김이선.

같이 지낸 기간이 많았지만, 서로 연인인 것은 아니었다. 곁에 있는 게 당연했으나 사랑이라 하긴 가벼웠고, 친구라 단정 짓기엔 너무 소중한 사이였다.

결국 단짝 친구란 애매한 사이로 남았지만, 서로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둘은 재능마저 궁합이 좋았다. 이선은 탱커로서의 재능이 있었고, 무영은 검사로서의 재능이 있었다.

특히 무영의 재능은 특별해서, 헌터 교육이 끝날 무렵엔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올 정도였다. 이선에게도 제법 괜찮은 영입 제의가 들어왔지만, 무영과 이선은 둘 다 제의를 거절했다.

서로 파티를 맺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기업의 지원은 받지 못하겠지만 자유로운 점이 좋았다. 기업에 입사하게 되면 서로 만날 기회가 적어질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전한 곳만 가자니까.’

‘에이, 파티도 있는데 뭐가 무서워서 그래.’

헌터 교육이 끝나고 5급 던전을 돌아보던 중, 무영은 이선에게 3급 던전에 도전하자 말했다.

한창 실력이 올라 자신감이 올라 있던 무영은 C급 탱커와 딜러를 모집하는 파티에 지원했고, 무영을 따라 이선도 어쩔 수 없이 파티에 합류하게 되었다.

파티의 주요 전력이 모두 B급이니 안전하다는 무영의 판단에 설득된 탓도 있었다.

‘무영아, 무영아? 아니지? 어디야?’

그러나 이선의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던전에 참여했던 C급 헌터 중 반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참가한 던전의 형태는 복잡한 미로였는데, 그곳에서 무영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한참 전투가 벌어지던 도중, 적의 공격을 피해 진영을 빠져나갔던 무영이 함정에 빠진 탓이었다. 이선은 벽 사이로 사라져 간 무영을 필사적으로 잡으려 했지만, 그녀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무영은 미로의 벽에 잡아먹혔고,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긴 세월 같이 보내왔던 친구의 죽음은 눈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무했다.

‘아, 아직 제 동료가 저기에 있어요! 제발요! 돌아가야 돼요!’

무영뿐 아니라 수많은 C급 헌터들이 그렇게 실종되거나, 죽어갔다.

B급 헌터들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는 3급 던전에 도전한 결과였다.

하지만 C급들이 죽어 나가도 탐사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결국 파티의 중심은 수많은 C급이 아니라, 요직인 B급들이었기 때문이다.

온갖 보물과 자원들을 가지고 복귀하는 파티 속에서 이선은 무영의 탐색을 부탁했다.

파티장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기세로 달려들어, 재탐사를 해달라고 말했다. 이선처럼 동료를 잃은 사람들 또한 파티장에게 눈물 어린 부탁을 했다.

‘계약서 보셨잖아요.’

그런 C급들에게 B급이 말했다.

던전 중 개인의 생사는 책임지지 않는다.

진영을 이탈한 헌터의 탐색은 불가하다.

계약서에 버젓이 적혀 있는 내용이었다. 잔인한 항목이었지만, 이런 계약서는 어딜 가든 흔했다.

C급 헌터를 찾기 위해 B급 헌터들로 파티를 꾸려 탐색을 한다는 건 ‘손해’를 불러일으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C급 중 누구도 이선의 의견에 동조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찾고 싶으면 직접 갈 것이지, 하는 한심한 눈길로 노려보며 지나갔다.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헌터의 세계는 그만큼 득실과 손실의 계산이 냉정한 곳이었다.

비인간적인, 인류애를 무시하는 계약서가 합법인 세상이었고, 도덕보다 실리가 중요시되는 시장이었다.

‘우리가 강했다면.’

그와 그녀가 B급이었다면 이런 수모를 당할 일도 없었을까.

수년을 함께해 온, 가족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던전에 버려졌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함에 이선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후 무영을 버렸던 그 파티가 어떤 던전에서 동료를 잃고, 복수하겠다며 눈물 어린 신파극을 벌였단 소식을 듣고 나서.

이선은 다짐했다.

‘우리가 강했다면, 무시당하지 않았을 거야.’

* * *

“복수하고 싶단 생각은 하지 않았어?”

“누구에게 말이죠?”

이선의 사연을 다 듣고 난 후, 진희는 한정적으로 이선을 동료로 받아들였다. 서한은 그녀에게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전달했고, 진희도 그녀에게서 적의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선은 진희가 선임, 스승이 되어주겠단 이야기에 감사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말을 편히 해달라고 덧붙였다.

진희는 이선에게 복수 의사를 물었다.

“네 친구를 버린 파티나, 던전에?”

“다시 말하지만, 흔한 일이에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선의 눈빛엔 분노가 사라지지 않았다.

“정부 기관에도 도와달라 말해보고, 보험사에도 물어봤죠. 우스운 건 기업과 정부가 해줄 수 있는 탐색 지원은 4급 던전까지란 거예요. 그 위는 위험부담이 커서 불가능하다고 해요.”

B급 헌터의 파티 하나만 있어도 공략이 가능한 던전인데도 불구하고, 나서주는 사람은 없었다. 애당초 3급 던전에 돈이나 명예가 아닌, 인명 구출을 위해 나서는 헌터도 많지 않았다.

백 명 중 한 명 나오기도 힘든 B급이 C급을 위해 나선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투자였기 때문이다.

진희는 새삼 인권, 상식이란 게 무너지고 있음을 느꼈다.

미성년자가 헌터가 되는 세상이다. 목숨보다 돈이 중요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고등학생이 실종되었는데도 꿈쩍하지 않는 헌터들의 생태에 이질감을 느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터넷 방송에선 헌터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영상이 항상 순위권에 있었고, 방송사에서도 무미건조하게 헌터들의 죽음을 알리곤 했다.

‘성벽이 무너지면 상식과 규칙이 사라진다고 했던가.’

정령왕이나 카사, 바르그의 이야기가 언뜻 이해가 갔다.

바제트의 세상보다 훨씬 문명화된 시대였지만, 헌터라는 야만성이 사람들을 좀먹고 있었다.

“강해지고 싶다는 계기가 뭔지는 알겠어. 그런데 강해지고 나서 뭘 하고 싶은 건데?”

“하고 싶은 게 있어야 하나요?”

“그럴 필요는 없지. 하지만 명확한 목표가 없으면 흔들리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이런 사나운 경험을 한 사람이 강함을 얻었을 때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이참에 목표를 정해놓는 게 좋았다.

자신의 나약함에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강해졌을 때 폭주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이선은 아직 친구를 잃은 분노와 상실감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강해진 후, 갈 곳 없어진 분노가 애먼 사람을 노릴지도 몰랐다.

진희의 날카로운 눈이 자신을 향하자 이선이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했다.

“던전에서 실종된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자신이 겪었던 일을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자신이 받지 못했던 도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려 한다.

생각 외의 답변에 진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선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A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진희 앞에서 이런 소리 하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진 탓이다.

기특한 생각을 하는 걸, 진희는 작게 중얼거렸다.

생각지도 못한 정의를 이선에게서 보았다.

“……좋아, 그럼 내일부터 수련에 들어가자.”

이선은 본인의 실력이 모자란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진희는 건실한 C급이 기사단의 신입으로 들어오는 것을 기꺼워하고 있었다.

일단 단원 중 서한과 현성을 제외하면 베테랑이라 부를 수 있는 헌터가 없었다. PD는 휴식 기간이 길었고, 반쯤 단원 취급하는 유나 또한 등급은 높지만 경험이 많진 않았다.

서한과 현성도 날 때부터 탁월한 재능을 가진 헌터이다 보니, 하급 헌터들의 사냥법에 대해선 경험한 게 없었다.

그러던 중 5년 차 베테랑 헌터의 입단은 삼인방, 청하뿐 아니라 진희도 배울 기회가 생긴 셈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지엑스가…….”

지엑스에서 만났던 상사 정재민이 떠올랐다.

그가 자신을 찾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간 수련에 매달리느라 잘 숨어다녔지만, 모습을 보인 이상 그가 이선을 찾지 않을 리 없었다.

이선은 오히려 정재민이 자신을 놓아준 것 때문에 더 불안해했다.

그의 집착은 이 정도로 끝날 수준이 아니었다.

그가 지엑스에서 맡고 있는 역할은 한 파티의 파티장임과 동시에 기업의 어두운 면을 담당하고 있었다.

범법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그의 악독함은 지엑스 내부에선 유명한 편이었다.

“괜찮아.”

하지만 진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덤비면 상대해 주면 돼.”

정재민이 지엑스라는 뒷배를 가지고 있다지만, 이쪽은 비교도 못 할 뒷배가 버티고 있다.

잘난 단원을 둔 단장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이선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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