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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93화 (93/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93화

청하는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사내의 눈길을 피해 진희에게 다가갔다.

“이제 됐죠?”

“잘했어. 거봐, 이긴다니까.”

“그러게요.”

청하도 자신의 힘이 믿기지 않았는지 오른손을 연신 쥐었다 폈다. 사내도 분명 전력을 다해 마력을 끄집어냈지만, 청하의 마력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방출량 어마어마하네.’

진희는 표현하진 않았지만, 청하의 마력에 내심 놀라는 중이었다. 청하가 사내를 이길 것이라 예상하긴 했지만, 이만큼 압도적인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저번 시험 때 청하의 마력 친화력과 방출량은 보육원 아이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었다. 지금 소라와 다시 시합한다면 더 좋은 승부가 나올지도 몰랐다.

“저 근데, 제가 던전 들어갈 생각은 없는데요.”

“그럼 그만할래?”

“그래도 돼요?”

“당연하지.”

청하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에 들어가는 게 무서운 건 아니지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는 건 아직 부담스러웠다.

그 외모를 가지고 숨어다니는 게 아깝다. 진희는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선 너 같은 아이가 나서야 한단다, 같은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이봐!”

그때, 사내의 동료로 보이는 다른 이가 나타났다.

동료의 복수를 위해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카메라가 찍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 이를 보이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실력 좋아 보이는데, 나랑도 한판 하지?”

던전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청하와 달리 진희는 던전에 입장할 생각이었다. 그것도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면서.

‘팔운동 좀 하고 갈까.’

진희는 나른한 웃음을 지으며 탁자 앞으로 나섰다.

마치 청하를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것처럼 보이는 진희에게 사내가 코웃음 치며 다가왔다.

“하, 검만 들었다고 다 헌터가 아니야, 아가씨. 팔 부러지기 전에 저리 비켜. 난 장난 아니니까.”

“나도 장난 아닌데?”

서한이 사고는 치지 말아 달라 말했지만, 진희의 머릿속엔 서한의 주의는 이미 깔끔하게 지워져 있었다.

그렇게 시합이 시작되었고.

“으, 으아악!”

결국 진희는 어김없이 사내의 팔을 부러뜨리며 승리를 차지했다.

* * *

C급 헌터가 무시받는 일은 흔하다. 관문급이란 멸칭부터 시작된 C급 차별 풍조는 어딜 가나 만연해 있다.

5년 이상 C급에 머무른 헌터들은 대부분 승급을 포기하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 B급으로 승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헌터 아카데미의 수강이 대부분 3~4년에 종료되는 것도 이것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없다면 사람은 포기하게 마련이다. 결국 계속된 도전 끝에 흔해 빠진 C급 헌터로, 안정적인 인생을 목표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헌터, 김이선은 달랐다.

‘사람이 너무 많아.’

턱 아래까지 올라오는 폴라 티를 입고, 습관처럼 목을 매만지던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련에 지쳐 요즘 유행이라는 등대 던전을 구경하기 위해 왔지만, 오히려 기분만 나빠지고 있었다. 사람이 많고 번잡한 곳은 딱 질색인 이선은 차라리 공원에 들어오지 말고 멀리서 구경하는 게 나았다며 불평했다.

‘저질이야.’

마침 게이트 앞에선 팔씨름이란 미션을 개최하여,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를 성인 남성이 상대하는 모습이 보였다.

PD가 진행하는 방송의 인기는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해서 이기려는 사내를 보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저들끼리는 저런 콘텐츠를 웃고 즐기겠지. 괜히 온 것 같다며 돌아가려던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쾅-!

멀리 떨어져 있던 이선에게 들릴 정도로 커다란 충격음이 공원 중앙에서 울렸다. 이선은 탁자 위에 벌어진 광경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질 줄 알았던 꼬마 아이가 쉽게 사내를 이겨 버린 것이다.

“뭐야, 봐준 거 아냐?”

“그런 것치곤 마력 엄청나지 않았어?”

보고 있던 관중들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C급 헌터이다 보니 방금 전의 상황을 우연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실력 좋은 C급과 B급은 놓치지 않았다. 저 아이가 순간 방출한 마력은 허투루 볼 수준이 아니었다.

“나보다…….”

이선은 뒷말을 꾹 참았다. 인정할 수 없다는 패배감과 함께, 다시 확인해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녀는 사람들을 헤치고 탁자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 달리 다음 시합을 치른 건 아이가 아니라 그 곁에 있던 한 여성이었다.

메마른 눈과 처진 눈매가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검 한 자루만 차고 있던 여성은 느긋한 걸음으로 탁자 앞에 섰다. 그리고 다가오는 다른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한판 하자는 뜻이었다.

설마 또 이변이 벌어질까. 방금 아이에게 패배했던 사내와는 확연히 다른 덩치와 험악한 인상을 가진 사내가 탁자 앞에 서서, 여성의 손을 맞잡았고.

“아아악!”

패배했다. 아이가 이겨 수군거렸던 관중들의 숨이 순간 멎었다. 모두가 집중한 가운데, 패배한 사내만이 비명을 지르며 탁자에서 내려왔다.

“아차.”

여성은 실수했다는 듯 사내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이런, 너무 심했네.”

“미, 미친!”

PD의 미션에서 다치는 사람은 자주 나왔다. 달리기 도중 밀려나 땅에 처박히는 사람부터, 검술 대결을 펼치다 팔목이 부러지는 사람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흔하디흔한 팔씨름에서 팔이 부러지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표정과 말은 미안한 감정이 듬뿍 담겨 있었지만, 태연하게 걸어오는 진희를 보며 사내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가, 가까이 오지 마!”

“네네, 그럼 알아서 멀어지세요.”

여성이 흐느적 손을 흔들며 사내를 배웅했다. 사내는 대중들 사이로 도망쳤고, 그녀의 앞으로 PD가 다가왔다.

“와우- 대단한 시합이었네요! 그럼 시간 관계상, 바로 다음 시합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시합하려 하거나, 이 여성분과 시합할 분 계신가요?”

당연히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방금 발해졌던 마력과 충격은 앞서 아이가 보여줬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애당초 절대 흠집이 난 적 없던 책상에 금이 가 있었다.

C급 헌터라 해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보여준 여성에게 도전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PD는 팔짱을 끼고 짐짓 곤란한 듯 고개를 숙였다.

“너무 세게 하셨어요.”

“그러게. 적당히 하려고 했는데, 장난치곤 힘이 너무 들어갔네.”

PD가 떠들고 있는 사이, 여성은 아이에게 돌아갔다. 아이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그녀가 작게 웃으며 손목을 휘둘렀다.

“근데 어떻게 한 거예요? 내려찍기 전에 손목에 힘주셨죠?”

“응. 너도 나중에 연습해 봐. 팔에 마력을 집중할 필요 없이 손목과 팔목에만 마력을 사용하면 쉽게 힘을 줄 수 있거든.”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이들이었지만, 그들의 바로 뒤에 서 있던 이선은 대화를 몰래 엿듣고 있었다.

아이의 의문에 여성은 차분하게 방법을 설명했다. 마치 스승과 제자를 보는 것 같은 대화를 이선이 떨리는 눈으로 지켜보았다.

‘이 아이도…….’

재능이 출중한 아이가 고위 헌터의 제자나 후임으로 교육받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선처럼 평범한 재능을 가진 C급 헌터는 꿈꿀 수도 없는 기회였다.

수련에 매진한 지 4년이 지나 5년 차가 되고 있지만, 초등학생 되는 아이보다도 못한 재능이란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조였다.

결국 될 사람은 되는 법이란 뼈아픈 전 동료의 조언을 떠올리며 돌아가려던 그때.

“그럼 저도 곧 C급 될까요?”

“그래야지. B급도 올해 안에 돼보자.”

아이의 말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지금, 뭐라고?’

B급에 오를 재능이 있는 대부분의 헌터는 C급에서 시작한다. 아예 B급으로 헌터 자격을 취득하는 천재들도 있었다.

하지만 C급 미만의 헌터가 B급이 된 사례는 사막에서 바늘 찾기였다. 그러나 그들은 승급에 대한 이야기를 당연한 듯이 떠들고 있었다.

“으, 소라 누나보다 빨리 돼야 하는데.”

“왜?”

“내기했거든요. 지면 한 달간 설거지 담당이에요.”

이선이 황급히 여성에게 다가갔다.

여성의 말이 허세나 거짓말일 수도 있었지만, 근거를 알 수 없는 직감이 그녀를 잡아야 한다 말하고 있었다.

4년간의 진전 없는 수련에 지친 이선이었다. 혹시라도 B급이 될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필사적으로 여성의 팔을 잡으려 했지만, 다시 방송을 시작한 PD 때문에 인파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 죄송합니다, 미션이 밀렸네요. 음, 이렇게 실력이 대단한 분이 나타나면 아무래도 긴장돼서 꼬이고 마네요. 기다려 주신 시청자분들 감사합니다. 다시 미션을 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물론!”

PD가 여성을 가리켰다.

“승부할 사람이 없어진 당신께는 특별한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다름 아닌-”

PD는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팔을 벌리며 주변의 환호성을 요구했다. 헌터들이 영혼 없는 박수를 치자 만족한 얼굴로 PD가 여성을 가리켰다.

“특별 미션! PD를 이겨라!”

와아아아, 역시나 힘없는 환호성이 울렸다.

“아무리 그래도 1승 했다고 미션을 통과시켜 드릴 순 없기에, 아주 가아끔 찾아오는 특별한 이벤트! PD를 이겨라를 클리어하시면, 던전 입장을 허락해 드리겠습니다! 그쪽 분- 그러니까 성함이, 아, 네, 서진희 님이요. 그럼 진희 님! 참가하시겠습니까?”

여성, 진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PD가 다시금 사람들의 환호성을 유도했다.

“이익!”

이선은 어떻게든 인파를 뚫고 나가려 했지만, PD와 진희가 탁자 앞에 마주하자 사람들이 주변을 에워싸 비집고 들어갈 틈이 사라졌다.

여기서 억지로 치고 나가봤자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친다 생각한 이선이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 서 사람들 사이로 진희를 관찰했다.

미션이 끝나고 사람들이 물러나면 그때 붙잡고 물어볼 셈이었다.

진희와 PD가 다시금 허리를 굽히고 탁자 위에 팔을 올렸다.

‘PD는 B급 헌터야. 그것도 상위.’

저래 보여도 PD는 소싯적 알아주는 헌터였다. 전사 계열은 아니었지만 온갖 원거리 무기를 다루는 레인저로서 높은 등급의 파티에서 활동했다 알려져 있다.

이선은 아무리 긴 휴식기가 있었다고 한들, PD의 실력이 녹슬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카운트는 시청자분들이 해주세요!”

PD는 하늘의 드론을 향해 외쳤다. 공원의 헌터들에겐 보이지 않을 수많은 사람이 진희와 PD의 시합을 기대하며 카운트하기 시작했다.

3, 2, 1.

왼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채팅을 체크하던 PD가 돌연 외쳤다.

“시- 작!”

두 여성의 손은 탁자 위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탁자와 직각을 이루고 있는 팔 또한 마찬가지다.

조금의 떨림이나 마력의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요하게 일어난 PD와 진희의 마력은 팔을 휘감고 정지해 있을 뿐이다.

진희는 웃고 있었고, PD는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실력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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