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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91화 (91/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91화

내가 요즘 애들이 아닌 걸까, 진희는 복잡한 표정으로 쓰헌이란 단어를 중얼거렸다.

“우리 애들도 그런 단어 알아?”

“모를걸요? 소라 누나는 맨날 유무브로 격투술 영상만 보고, 종혁이 형이랑 민혁이 형은 인터넷 잘 안 해요. 톡보다 전화를 해야 답이 빨리 오는 지경인걸요.”

오늘 이곳으로 데려온 건 청하뿐이어서 그런지, 청하는 거침없이 자신의 형 누나들의 뒷담을 했다.

하긴 듣고 보니 청하를 제외하곤 보육원 내에서 인터넷 소식에 밝은 아이가 없던 것 같았다. 새삼 기사단의 수준 이하의 정보력에 고민하던 중, 청하가 공원의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저기 PD 와요!”

창백한 인상의 여성 한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다 해진 청바지와 목이 늘어난 셔츠, 어깨 위엔 헤드셋을 걸치고 다가온 그녀가 주변을 쓱 훑어보았다.

이미 주변 헌터들은 그녀가 PD란 걸 알아채 알은척하기 위해 다가오던 중이었다.

그녀는 헤드셋에 있는 마이크를 입술 앞으로 가져왔다.

“아, 아- 안녕하세요.”

목감기라도 걸린 것처럼 가래가 낀 목소리가 공원에 울려 퍼졌다. 마이크와 공원 스피커가 연결되어 있는지, 공원에 있는 모든 헌터가 PD를 주목했다.

“오늘도 많은 분이 모였네요. 아침부터 고생이 많으십니다.”

“지금 낮인데요.”

“제가 방금 일어났으니 아침입니다.”

PD는 시시한 농담을 하며 공원 중앙으로 걸어갔다. 중앙엔 바리게이트가 세워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 게이트가 우뚝 솟아 있었다.

바리게이트 앞에 서서 휴대폰을 꺼내 이것저것 조작하던 PD가 턱을 괴며 말했다.

“많이 오셨으니까, 오늘도 미션을 해야겠네요. 시청자분들은 어떤 게 좋으세요?”

아무래도 휴대폰으로 방송의 채팅을 보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혼잣말하는 것처럼 휴대폰을 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방송용 카메라가 보이지 않아 호기심이 생긴 진희가 청하에게 물었다.

“이거 어디서 촬영하고 있는 거야?”

“아, 드론이에요. 저기 건물 옥상 보이시죠?”

청하가 가리킨 곳엔 확인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먼 곳에서 드론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공원 전체를 몇 개의 화면으로 나눠서 촬영하는 드론이래요. 저래 보여도 비싼 재료로 만든 제품이라, 어지간한 마법에도 끄떡없대요.”

“가지가지 하는구나.”

확실히 장난으로 하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마치 새처럼 보이는 작은 드론을 흘끔 본 진희가 다시 PD에게 눈을 돌렸다.

“아아- 박서 님 후원 감사합니다. 네네, 오늘 참가하시는 분들은요-”

“응?”

그때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꺼내 들어 보니 서한에게서 전화가 오던 중이었다.

“여보세요?”

-이제 들어가?

완전한 등대는 입장이 한 명씩 가능하기에 서한은 같이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방송을 보고 있던 건지, 그는 카메라 앵글에 진희가 잡히자마자 전화했다.

“네, 근데 웬일로 전화까지 하세요?”

-걱정돼서 전화했다.

“어머, 걱정까지 해주다니 감격이네요.”

우리 애기 많이 컸네, 같은 어조로 진희가 말하자 서한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착각 마. 네 걱정이 아니라, 거기 있는 다른 사람들 걱정해서 전화한 거야.

“제가 여기에 누구 때리려고 온 줄 아세요?”

-수틀리면 다 때려눕힐 거 아냐.

틀린 말이 아니라서 진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후우, 좋은 이미지로 갈 거면 사고 치지 마. 애당초 A급 중에선 네가 가장 신인인 데다가, 얼굴을 모를 뿐이지 주목은 엄청 받고 있으니까.

“얼굴도 모르는데 주목을 받고 있나요?”

-너 헌터 업적 비공개 신청 안 했잖아.

“하긴 그랬죠.”

진희의 업적과 승급 정보는 일반 대중도 열람이 가능했다. 덕분에 헌터 언론이나 관심 있는 일반인들에게 진희는 큰 화제였다. 대체 언제 신상이 공개될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헌터로서 얼굴 알리는 데뷔나 다름없으니까, 사고 치지 말라고 전화한 거야.

“절 너무 못 믿는 거 아니에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내가 믿겠는지.

“무지 잘 믿겠는데요? 보증도 서주겠는데?”

-적당히 해.

둘의 웃음소리가 통화 너머로 작게 울렸다.

-너라면 위험하진 않겠지만, 행동거지는 주의해. 관리 본부에서 지켜보고 있어서 어떤 트집을 잡을지 몰라.

“걱정 말아요. 알아서 할 테니까, 하던 일이나 잘 끝내고 오세요.”

서한은 3인방과 카온을 데리고 주변 던전을 도는 중이었다. 한 달 내로 C급 상위 내지는 B급까지 승급시키겠다는 진희의 무리한 부탁 때문이었다.

물론 서한은 이 중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었지만, 그녀에게 빚진 것도 있기에 시간 날 때마다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생각보다 애들이 잘해. 의외로 승급이 어렵진 않겠어.

“제가 키운 애들인데 당연하죠.”

-그래.

서한이 짧게 웃었다.

-그럼 끊는다.

“네.”

-잘 갔다 와라.

뚝, 전화가 끊겼다. 휴대폰을 내리고 다시 PD를 보려는데, 청하가 자신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왜 그래?”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왠지 모르게 침울해진 얼굴로 청하가 고개를 돌렸다. ‘반칙이야’ 하고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으려는 찰나,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응?”

또 서한인가 싶어 화면을 확인하자 이번엔 현성이 발신자로 표기되어 있었다.

“여보세요?”

-잘 도착하셨습니까, 걱정되어 전화해 봤습니다.

이 사람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날 걱정하지.

진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 * *

적잖은 시간이 지나고 PD가 미션을 발표하기 위해 헌터들 앞에 섰다.

“오늘 미션이 정해졌습니다.”

그녀의 말에 수많은 헌터가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모였다. 진희는 무리에서 떨어진 벤치에 앉아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은 관계로, 빠른 미션으로 종목을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종목은-”

PD가 말꼬리를 끌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력 만땅 팔씨름입니다!”

PD의 의욕 찬 목소리가 공원을 울렸다.

그녀는 바리게이트 뒤에 숨겨진 은색의 탁자 하나를 꺼내 자신의 앞에 두고, 과장스럽게 팔을 벌리며 말했다.

추레한 옷차림치곤 제법 고상한 포즈로 탁자 앞에 선 PD가 룰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탁자는 특수 제작된 탁자입니다. 어지간한 충격으론 부서지지 않죠. 이 위에서 팔씨름을 해서, 아무나 붙잡고 3회 승리하신 분이 오늘 던전 입장권을 손에 넣게 됩니다. 반대로 한 번이라도 패배하신 분은 바로 탈락입니다.”

“어…… 토너먼트 같은 건가요?”

룰을 이해하지 못한 한 사람이 묻자 PD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대전 상대는 알아서 정하시면 됩니다. 여러분이 보기에 약한 상대를 데려와서 이겨도 문제없습니다. A급이 C급을 데려와 3승을 하든, C급이 C급끼리 팀을 이뤄서 하든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다만!”

PD는 과장스럽게 말을 끊으며 검지를 들었다.

“승리를 위해 조작하는 경우 제 영상에서 블락(차단)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아무나 붙잡고 팔씨름 세 번을 승리해야 하며, 한 번 지면 탈락하는 단순한 룰이었다.

적게 잡아도 네 명 중 세 명이 떨어지는 방식이기에, 많은 인원을 빠르게 줄이기에 알맞았다.

“이번 미션은 전사분들에게 유리하고 마법사분들에겐 불리하기에 신체 강화 마법 사용을 허가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이것도 큰 메리트는 아닙니다만, 그제 멀리 뛰기 미션에서 하늘을 날던 마법사도 합격 처리했으니, 이 정도의 불합리함은 이해해 주세요.”

“네-”

“자, 그럼!”

쿵쿵, PD가 탁자를 두들겼다.

“지금부터 미션을 시작하겠습니다. 각자 자신의 적수를 찾아 이 탁자 앞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 * *

마력의 특성 중 하나는, 하급자는 상급자를 알아보지 못한단 점이다. 그러다 보니 평범한 옷차림의 여성과 초등학생의 조합은 승리에 욕심 있는 헌터들의 눈을 모으기에 적합했다.

“나 참.”

진희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팔짱을 꼈다. 인상이 좋다고는 볼 수 없는 진희를 보고 사람들은 은근슬쩍 눈을 돌려 청하를 관찰했다. 청하는 자신에게 시선이 모이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엎을까.”

“아, 안 돼요. 이거 생방송이라니까요.”

팔씨름이고 뭐고 저 사람들 팔을 다 꺾어버리면 판정승이지 않을까? 하는 살벌한 소리를 내뱉는 진희를 청하가 만류했다.

“누나는 강하니까, 그냥 아무나 붙잡고…….”

“저기, 꼬마야. 너도 헌터니?”

그때 한 사내가 청하에게 다가왔다. 그는 친절한 웃음을 가장하며 청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혹시 형이랑 팔씨름하지 않을래?”

“저, 저요? 전 던전 들어가려던 게…….”

청하가 손사래를 치며 진희를 올려다보았다. 대신 거절해 달란 뜻이었는데, 진희의 얼굴을 보고 청하의 몸이 쩍 굳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나른한 눈매가 아름답게 호를 그리며 빙긋 웃고 있다. 청하는 저 웃음이 의미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쁜 장난을 생각해 냈을 때 곧잘 짓는 웃음이다.

“청하야, 한판 하는 게 어때?”

“네, 네?”

“걱정 마, 네가 이겨. 이 사람 별 볼 일 없거든.”

이 사람이 듣고 있는데요. 청하가 새파랗게 굳은 안색으로 사내를 흘끔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내는 분노가 어린 눈으로 진희를 쏘아보고 있었다.

“저, 전 별로…….”

“명령이란다.”

이 누나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청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거부할 권리는 없었다.

생각해 보면, 단원을 모집한다고 굳이 진희 혼자만 잘난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청하 정도의 실력이라면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꿀리지도 않았다.

게다가.

“와, 뭐야. 아역 배우야?”

“요즘은 저런 애들이 헌터도 되나보네. 세상 불공평해…….”

자, 우리 애를 봐라. 무지 잘생겼지.

진희가 에헴, 하고 어울리지 않는 콧김을 내며 청하를 탁자 앞으로 밀었다.

청하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사람들 앞으로 나섰다. 청바지에 줄무늬 셔츠라는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눈길은 청하에게 모였다.

자주 잊고 있는 일이지만, 청하의 외모는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근사한 미소년이었다.

“누나, 저 정말…….”

“괜찮아, 누나만 믿어.”

진희는 불안해하는 청하의 귓속에 작게 속삭였다.

“네 마력이 저 사람보다 많아. 신체 능력도 마찬가지야.”

숙련된 기사쯤 되면 걸음걸이와 서 있는 자세만으로도 사람의 신체 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작지만 몸의 균형이 완벽하고 잔 근육이 있어 힘이 좋은 청하와 달리, 저 사내는 딱 봐도 마법사 계열의 헌터임을 알 수 있었다.

허리는 조금 휘어 있고 손아귀엔 어떤 근육, 군살도 보이지 않는다. 종아리와 허벅지의 근육도 평범한 수준. 체력 훈련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의 특징이었다.

어림잡아 봐도 청하의 압승이 뻔했다. 청하는 아직 실력을 가늠할 정도로 눈썰미가 좋지 않아 모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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