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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76화 (76/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76화

그런 마법이 고작 날 없는 철검에 막히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행실이 가볍고 위선적이기에 주변의 평가는 좋지 않지만, 이하늘은 실력 하나는 인정받는 뛰어난 마법사다. 그렇기에 그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속도와 공격력 하나는 최고라고 자부하는 그였다.

“이, 이익!”

다시 한번 마법을 사용한다. 이번에도 똑같은 마법. 그러나 중첩의 수는 세 번이 아닌 다섯 번. 그가 중첩할 수 있는 최대의 횟수였다.

[Vent, Vent, Vent, Vent, Etincelle-!]

“자, 잠깐만! 이보게! 이러다 여기가 박살 나!”

한만수가 벽을 두들기며 소리쳤다. 일반인이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마법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5m에 육박하는 거대한 창이 그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진희와 이하늘의 거리는 50m가량 벌어져 있었지만, 불꽃의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마법이었다.

이 정도면 현성이 미노타우로스를 잡을 때 사용했던 주술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A급을 거저 얻은 건 아니네.’

행실이 좋지 않아서 그렇지 실력 하나는 A급이 확실했다. 진희는 고개를 기울여 이하늘의 뒤편, 시험관들의 얼굴을 살폈다.

어떤 이는 통쾌함과 기대감이 어린 얼굴이었고, 걱정과 염려가 섞인 눈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오직 조혜수만이 평온한 얼굴이었다.

“죽어어-!”

“살벌해라.”

드디어 마법의 시전이 끝났다. 마법의 모습은 이제 창이 아니라 거대한 병기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속도는 아까보다 빨랐다.

“흐으앗!”

불꽃이 단숨에 날아온다. 진희뿐 아니라 건물까지 집어삼킬 것 같은 불꽃의 창에 회전까지 더해졌다.

A급 바람 마법사 이하늘의 최대 전력. 바람의 창에 불꽃을 덧씌워, 어떤 몬스터라도 꿰뚫어버리는 창이 진희의 머리를 정조준한다.

“후우.”

다가오는 열기에 진희가 미소 지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벨 맛이 나지.

검을 들었다. 마력을 휘감는다. 진희가 내뿜은 금색의 마력은 철검을 감싸 거대한 대검의 형상을 만들었다.

고작 마법을 막는 데 기술은 필요 없다. 그저 날카롭게 벼린 마력과 정확한 타이밍에 휘두를 수 있는 감각만 있으면 충분하다.

베어내야 하는 곳은 뾰족한 창의 끝. 그곳을 정확히 파고들어, 마법이 몸에 닿기 전에 잘라낸다.

“흡!”

그리고 전진한다.

진희는 자세를 낮추고, 단숨에 땅을 박찼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대검을 휘두르고, 불꽃의 창 안으로 파고든다. 열기가 온몸을 태울 것처럼 덤벼들었지만 진희의 마력 갑옷은 불꽃들을 가뿐히 이겨냈다.

이하늘은 이제야 진희가 졌다고 생각하며 웃었다. 마법이 적중한 곳에서 진희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는 반대로, 진희는 불꽃의 창을 뚫고 단숨에 이하늘의 앞으로 돌진했다.

“아, 아아.”

콰앙-!

진희의 검에 베여버린 창은 허공에 흩어졌다. 창의 파편이 유리 벽 여기저기에 날아갔고, 벽은 속절없이 박살 났다.

흘끔 시험관과 아이들을 살펴보니, 윤수와 자오란이 각각 파편을 막아서고 있는 게 보였다.

“다, 당신, 뭐야.”

“후우.”

“대체 뭐냐고! 너 같은…… 읍!”

진희가 검을 땅에 버렸다. 이미 검은 제 역할을 다해, 열기로 무너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욕을 내뱉으려는 이하늘의 입을 오른손으로 틀어막았다.

꽉, 양 볼을 손아귀로 잡아채자 이하늘은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이제 더 보여줄 건 없지?”

“읍! 읍읍!”

“그럼 대련을 계속하자.”

진희가 아까 이하늘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귀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직 대련은 끝나지 않았잖아, 그렇지?”

“으읍! 으으읍!”

이미 검사에게 근접 범위를 허락한 이상 마법사인 이하늘에겐 승산이 없었다. 심지어 그의 최고 공격 마법조차 가볍게 막아낸 진희였다. 더 이상 대련을 이어 가고 싶지 않았던 그는 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외쳤다.

시합을 포기한다고 말하는 듯했지만, 입이 진희의 손에 틀어 막혀 그의 비명은 시험관에게 들리지 않았다.

“너무 겁먹지 마. 한 수 거들어 준다며, 선배님?”

진희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범을 보여야지, 안 그래?”

“으으읍!”

뜻하지 않은 고행, 일방적인 구타의 시작이었다.

* * *

“어른스럽지 못하셨습니다.”

“저기서 제가 제일 어린데요?”

“아니, 그건 맞지만…… 그 말이 아니잖아요!”

윤수가 발을 동동 굴렀다.

시험장은 난장판이었다. 특별 처리한 유리 벽은 박살이 났고, 온갖 경보음이 울리며 경비병부터 소방관까지 동원돼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틀쯤 자고 일어나면 멀쩡할 거예요.”

“진짜요?”

“네, 아픈 곳만 골라서 팼거든요.”

“…….”

윤수는 질렸다는 얼굴로 진희를 바라보았다. 진희는 특유의 나른하고 태연한 얼굴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종혁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이었고, 소라와 청하는 흥분에 차 반짝이는 눈동자로 진희를 반겼다.

“완전 대단했어요!”

“역시 언니! 그 변태 자식 상판 박살 나는 게 진짜 통쾌했어요!”

소라의 다소 과격한 언어를 못 들은 척한 진희가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기분 전환은 됐지?”

“……아.”

그제야 소라와 청하는 이번 외출이 자신들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 종혁은 눈치껏 뒷걸음질 쳤고, 소라와 청하는 감동 어린 눈동자로 진희를 바라보았다.

“물론이죠!”

“저기요, 무슨 감동의 대화를 나누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난리 났거든요?”

모두가 웃고 있지만 윤수만은 그러지 못했다.

이하늘은 기절했다. 온몸에 타박상이 생긴 그는 진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기절해 버렸고, 진희는 그의 몸을 한만수에게 던지며 ‘시험 끝났죠?’ 하고 말했다.

한만수는 경악과 공포 어린 눈으로 진희와 이하늘을 번갈아 보다가, 이하늘을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기업 관계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나름 A급 헌터였던 그들이었지만, 진희와의 실력 차를 두 눈으로 확인한 후엔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처음에 시비를 걸던 시험관이 ‘좀 하시는군요’ 같은 말을 하기 위해 진희 앞에 섰지만, 이내 무표정한 진희의 얼굴을 보고 고개도 들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소라는 ‘이게 사이다지!’라며 주먹을 쥐고 환호했다.

“제가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아뇨, 없긴 한데. 없어서 더 문제라고요.”

차라리 잘못한 사람이 존재하면 그쪽으로 책임을 몰겠지만, 이번 사태는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었다.

시험 당사자와 대련 상대는 최선을 다한 것뿐이고, 아무도 포기한다고 말을 안 했으니 시험관은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시험관들은 이하늘이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였다. 그들은 진희가 무난히 패배하면 이하늘의 승리를 선언한 후, 한껏 창피를 준 다음 내용에 따라 승급을 정할 셈이었다.

그런데 설마 이 난장판을 일으키고 승리할 줄이야.

게다가 대련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진희는 굳이 이하늘이 전력을 다하도록 놔둔 후, 그의 마법을 정면에서 돌파해서 승리를 손에 넣었다.

A급 상위, S급에 한없이 가깝다고 평가받던 이하늘을 이긴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A급 마법을 손쉽게 베어버리는 검사라니.

“어쩌면 더 주목받을지도 몰라요.”

“바라는 바예요.”

윤수의 걱정에 진희가 아이들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대답했다.

“슬슬 필요하거든요.”

“뭐가요?”

“힘이랑 사람이요.”

진희가 고개를 돌려 윤수 쪽을 바라보았다. 윤수의 등 뒤로 익숙한 얼굴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혜수, 유일하게 이 소란에서 당황하지 않던 그녀가 웃으며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진희 씨.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윤수를 지나쳐 진희의 앞에 다가온 조혜수가 물었다. 다른 시험관들에게는 볼 수 없었던 정중한 권유였다. 진희는 사심 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저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걸요.”

* * *

혜수는 일행을 헌터 길드 본부로 안내했다. 길드 본부는 오던 길에 봤던, 휘황찬란한 다른 건물들과 달리 평범한 생김새의 3층짜리 건물이었다.

그녀는 일행을 응접실로 안내했다.

“음, 아이들과 같이 이야기할까요?”

“아뇨.”

진희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이야기가 되었든 아이들이 들을 만한 내용은 아닐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저희 직원을 부를게요. 유나야?”

혜수가 천장을 향해 말하자, 갑자기 허공에서 녹색의 균열이 생겼다.

“불렀어요?”

마치 게이트가 열리는 것처럼 균열을 비집고 나온 사람은 짙은 녹발의 여성이었다. 사뿐하게 바닥에 내려앉은 그녀가 혜수에게 다가갔다.

“여기 아이들에게 구경 좀 시켜줄래? 선생님은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서.”

“네.”

녹발의 여성, 유나는 아이들에게 손짓했다. 진희는 소라가 자신을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가라고 덧붙였다.

“후후, 착한 아이들이네요.”

진희의 말에 두말없이 따르는 아이들을 보며 혜수가 흐뭇한 얼굴로 웃었다.

“민혁 군은 같이 안 왔나요?”

“민혁이를 아세요?”

“알다마다요. 저희 유나에게 마법을 배웠는걸요. 질려서 다신 안 오겠다 말하긴 했지만요.”

그건 몰랐다. 진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서 민혁이 헌터관리본부에 따라오지 않겠다 말한 것이었나.

“저희 유나가 신기한 재능을 보면 사족을 못 쓰는 성격이거든요. 지독하게 마법을 가르쳤죠. 마법 방식이 특이하지 않았나요?”

“그랬던 것 같네요.”

대련에서 보았던 민혁의 마법은 서한도 몰랐던 방식의 마법이었다. 그걸 어디서 배워왔나 했더니, 여기서 배웠을 줄은 몰랐다.

“민혁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죠?”

“음, 듣자 하니 게임에서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면 3인방 중 가장 컴퓨터를 잘 다루던 게 민혁이었다. 근데 마법 스승을 게임에서 구한다는 게 말이 되나. 진희는 궁금한 게 많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묻고 싶은 말씀이 뭔가요?”

“우선 차부터 한잔할까요? 허브티나 커피 어떤 게 좋으세요?”

“콜라요.”

“이런, 탄산은 없는데.”

차가운 물도 괜찮다는 진희의 말에 혜수가 찻잔에 얼음물을 담아주었다. 둘은 응접실 테이블 앞에 앉았다.

“사실 진희 씨에게 관심이 있던 건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건 제 남편 때문이에요.”

“남편분이요?”

“네, 그가 빨리 진희 씨를 보고 싶다고 했거든요. 갑작스러운 A급 심사도 제가 추진한 일이랍니다. 그에 대해선 사과 말씀드릴게요. 저도 이렇게까지 저질인 사람들일 줄은 몰랐어요.”

혜수가 고개 숙여 사과했다.

“됐어요, 지나간 일이기도 하고, 기분 전환도 됐으니까요. 그런데 남편분은 절 왜 보고 싶다 하셨나요?”

“본인한테 직접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혜수가 손을 뻗자, 양복 소매에 가려져 있던 문신이 빛을 발했다. 추상적인 문신은 푸른빛을 내더니, 단숨에 방 안을 빛으로 가득 채웠다.

“정령왕?”

진희는 익숙한 기운에 눈살을 찌푸렸다. 정령의 동굴에서 만났던 정령왕, 그리고 바르그에게서 느꼈던 정순한 마나였다.

그러나 그 크기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어림잡아 타락한 정령왕의 두 배는 될 법한 강력한 마나에 진희마저도 순간 팔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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