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71화
진희의 중얼거림을 들은 것인지, 사내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누, 누구냐고 묻잖아!”
“서한 씨한테 못 들었어? 호위를 맡은 사람인데.”
“이, 이서한 이사님?”
사내가 설마 하는 눈길로 진희를 위아래로 훑었다.
“……평범하잖아.”
“그야 너보단 평범하지.”
무례한 사람에게 존댓말을 쓸 필요를 못 느낀 진희가 쯔쯔 하고 혀를 찼다.
“아, 이쪽 분은 민경환 씨고, 저쪽에 계신 분은 한인수 씨예요.”
백금발의 민경환, 그리고 뒤에서 어정쩡하게 서서 이쪽을 보고 있는 평범한 사내 한인수.
두 사내의 소개는 세영이 대신해 주었다.
“이번 일정 중에 잡일을 담당할 분들이랍니다.”
“잡…… 이봐요, 이세영 지부장님. 저흰 호위로 파견 온 거지 잡일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
“그래요? 고작해야 B급 헌터가 잡일 말고 뭘 할 수 있죠?”
세영의 등급은 A급이었다. 그의 말에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던 경환이 얼굴을 붉혔다. 그들이 임무를 받을 때도 어디까지나 호위 보조라고 했지, 세영을 직접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건 아니었다.
호위하는 건 진희 혼자다. 경환의 살벌한 눈길이 진희에게 향했다.
“이 사람도 B급인데요?”
‘날 물고 늘어지네.’
진희는 경환이 자신을 삿대질하자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서한 씨한테 제 얘기 못 들었어요?”
“들었어. 뭐, B급인데 실력은 좋다면서? 그래서 어쩌라고? 그럼 A급이라도 되나?”
서한의 설명이 짧았던 듯했다. 하기야 진희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줄 수도 없었으니, 그저 실력 좋은 B급 헌터가 세영을 호위한다고 말했을 수도 있겠지.
“전사라고 해서 누가 오나 했더니, 비실비실한 녀석이 올 줄은 몰랐어.”
“당신…….”
“게다가 왔으면 인사를 해야지, 사람 무시하는 것도 정도껏…….”
경환이 자신이 상사라도 된 듯 계속해서 불만을 중얼거리자, 진희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서한의 부탁이어서 어지간하면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 상황을 정리해 놓지 않으면 계속 귀찮게 굴 것 같았다.
“야.”
“……뭐? 야?”
경환의 신장은 진희보다 머리 하나 컸다. 진희는 웃는 낯으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싶었으면 해달라고 하지 그랬어.”
그리고 경환의 오른손을 잡았다.
“너, 너.”
갑자기 손을 잡아 오는 진희를 보며, 경환이 말을 더듬으며 손을 빼려 했다. 하지만 손은 빠지지 않았다.
꺼지라고 소리치려 했지만, 이윽고 찾아온 기묘한 감각에 말을 잃어버렸다.
“어…….”
“반가워, 경환아.”
마력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손을 잡은 경환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끈적끈적하고 무서울 정도로 농밀한 진희의 마력은 손등과 팔, 어깨를 타서 온몸에 퍼져나갔다.
다른 사람의 몸에 마력을 침투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마력 저항력을 압도할 정도로 수준 차이가 나야만 가능한 일이다.
경환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거대한 동물의 아가리 속에 들어간 것 같았다. 지금 당장에라도 자신을 씹어 삼킬 것만 같은 마력이 경환의 몸을 기어 다녔다.
“인사를 해줬으면 대답을 해야지?”
“바, 반갑…….”
경환이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이 마력이 그의 몸을 쥐어짜 버릴 것만 같았다.
“반갑?”
진희가 섭섭한 듯 눈꼬리를 내렸다. 동시에 그를 감싸던 마력이 배는 늘었다. 이제 동물의 아가리가 아니라, 위장 속에 갇힌 듯한 착각이 들었다.
“바, 반갑습니다!”
“응.”
탁, 진희가 손을 놓았다.
“허, 허억!”
경환은 뒷걸음질 쳤다. 그나마 자리에서 쓰러지지 않은 건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다리를 지탱한 덕분이다.
진희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경환을 보고 웃었다.
“예의 있게 인사하니 보기 좋네.”
괜한 괴물을 건드렸다.
경환은 상냥하게 웃는 진희를 보며 생각했다.
* * *
본의 아닌 서열 정리를 한 후, 일행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차에 올라탔다. 경환이 수배한 차량은 방탄 처리가 된 밴으로 운전은 다른 호위인 한인수가 맡았다.
조수석에 경환이 앉다 보니, 자연스럽게 뒷좌석에 세영과 진희가 나란히 앉게 되었다.
“진희 씨는 유쾌하시네요.”
“제가요?”
세영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진희를 바라보았다. 진희를 관찰하는 시선은 아까 경환과 다를 바 없었지만, 세영의 시선엔 호감이 가득했다.
“진희 씨의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걱정 많이 했거든요. 혹시 불편해하시면 어떻게 하나, 하고요.”
세영은 다리를 꼬며 말을 이었다.
“전 진희 씨를 임무가 아닌 친구로 만나 뵙고 싶었어요.”
“절 잘 아는 듯한 말투네요.”
“모를 리가 있나요.”
세영이 하나하나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테러범을 물리친 금강의 은인, 첫 던전부터 드래곤을 사냥한 헌터, 신화 속 괴물을 잡은 역천검, 그리고 정령의 동굴을 혼자서 공략한 신인. 진희 씨의 업적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답니다.”
세영이 말할 때마다 앞 좌석의 경환의 어깨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 모습을 흘끔 본 진희가 대답했다.
“유럽에 계셨다더니 소식이 참 빠르네요.”
“세계 어느 곳보다 인재 풀이 훌륭한 게 한국이거든요. 유망한 신인은 모두 조사하고 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정령의 동굴, 사냥터를 다녀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조사가 되었을 줄은 몰랐다.
“뒷조사 같아서 좋은 기분은 아니네요.”
“이해해요. 하지만 그만큼 제가 진희 씨에게 큰 관심이 있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글쎄요. 전 세영 씨에게 별 관심은 없는데.”
진희의 심드렁한 어투에 세영이 웃음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그럼 어떻게 해야 제가 진희 씨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요?”
“굳이 그럴 필요 없어요.”
“아뇨, 꼭 그러고 싶어서요.”
이쯤 되면 관심이 아니라 집착이다. 진희가 아무런 감정이 보이지 않는 눈으로 세영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지나친 겉치레라고 생각했을 텐데, 세영의 눈에서는 조금의 거짓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진심이 가득한 어필이다.
“그럼…….”
무시하고 넘어가도 됐지만, 괜히 심심했던 진희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성별을 알 수 없는 세영의 얇은 턱을 손끝으로 건드렸다.
“얼굴 좀 바꿔줄래요?”
“……네?”
처음으로 세영의 얼굴에 당혹감이 찾아왔다. 이번엔 진희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제가 세영 씨 같은 얼굴을 어려워해서요. 얼굴이 조금 다르면 호감이 생길 것도 같네요.”
“하, 하하. 농담도…….”
“농담 아니에요. 그래서 서한 씨한테도 이목구비만 좀 바꾸면 좋겠다고 곧잘 말하거든요.”
실제로 진희는 자주 서한에게 이런 농담을 건넸고, 최근 익숙해진 서한은 ‘성형할 생각 없으니까 네 눈이나 고쳐’ 하고 일갈하곤 했다.
자신을 죽음이 이르게 한 황태자의 얼굴을 이렇게 많이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가 세상엔 세 명 정도 있다던데, 어쩌면 세영과 서한 말고도 또 다른 황태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희가 실없는 생각을 하며 손을 뗐다.
“……푸핫, 노력해 볼게요.”
“네, 열심히 하세요.”
이윽고 세영이 쾌활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진희의 말을 무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세영은 오히려 진희가 더 마음에 든 것처럼 호감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 *
목적지로 향하면서 진희와 세영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세영의 집요한 질문을 마냥 무시할 순 없었던 진희가 짧게 대답하며 이어지는 일방적인 대화였다.
차라리 세영이 민감한 질문을 한다면 아예 대화를 차단해 버릴 텐데, 세영은 어디까지나 일상적이고 호의적인 질문만 계속했다.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유럽으로 워크숍을 갈 생각은 없는지, A급으로 승급은 언제 할 건지 따위의 질문이 줄줄이 이어졌다.
호위 대상만 아니라면, 그리고 서한에게 빚이 있지만 않았다면 차 문을 박차고 나가버릴 텐데. 진희는 들으란 듯이 하품을 했다.
“진희 씨는 제게 궁금한 점이 없나요?”
“별로 없어요.”
아니다, 하나 있었다. 진희는 문득 떠오른 의문에 세영을 바라보았다.
“금강 한국 본부의 헌터들은 다 세영 씨를 싫어한다던데, 이유가 뭔가요?”
“헉!”
순간 핸들이 흔들렸다. 차가 잠깐 비틀거렸지만 누구도 운전석을 바라보지 않았다. 식은땀을 흘리는 인수와 경환은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시선을 앞에 고정했다.
“글쎄요, 아마 다들 제 이상이 부담스러웠던 게 아닐까요?”
“이상이요?”
“전 모든 헌터는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공헌. 서한보다는 현성의 입에서 자주 나오던 단어였다.
“한국의 헌터는 너무 기업주의적이에요. 대부분의 헌터가 기업에 속해 있고, 속하지 않은 헌터라도 기업과 계약하여 일을 하죠. 세계에서 정부 소속 헌터 비율이 가장 낮은 게 한국이에요.”
헌터(Hunter)는 있는데 영웅(Hero)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영어권에선 곧잘 ‘이상적인 헌터는 H와 H의 사이’라고 광고해요. 던전을 탐험하는 헌터와 정의를 지키는 히어로의 중간이 가장 이상적이란 뜻이죠.”
세계적으로 헌터라는 직업에 공익을 위한 책임을 더하고 있는 추세였다.
“하지만 한국은 거꾸로 가고 있어요. 헌터들은 자기 안위를 우선시하고 있고, 기업은 그런 헌터를 이용해 돈을 벌 생각밖에 하지 않아요.”
헌터 정책 중, 유럽과 한국의 대표적인 차이는 바로 ‘헌터의 개인정보 공개’였다. 유럽은 헌터의 등급, 업적을 모두 공개하는 게 원칙이었고, 한국은 개인의 자유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게 문제라고 세영은 말했다.
“높은 등급의 헌터일수록 사회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높은 등급일수록 자신을 숨기고 부의 집중을 노리죠. 진희 씨는 한국의 중급 헌터들이 해외로 이적을 자주 한다는 이야기를 아시나요?”
저번에 서한과 현성에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진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영은 ‘역시 다르시군요’라며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물론 해외의 기업들이 대우를 더 잘해주는 것도 맞습니다만, 이적의 가장 큰 이유는 해외에서 헌터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직종이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헌터는 곧 국가를 지키는 영웅입니다. 낮은 등급이든 높은 등급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존중하죠. 하지만 한국은 어떻습니까? 영웅보다 연예인으로 소비하고, 강자들은 자신을 숨기고 돈을 모으기 급급하지 않나요?”
잘 모르겠는데요, 하고 진희는 작게 중얼거렸다. 들리게 대답하면 세영이 달려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악습만 이어지고 있는 셈이에요. 강한 헌터는 계속해서 부를 쌓고, 약한 헌터는 인플레이션 속에서 발전과 명예 없이 기계적으로 던전에서 작업을 하죠. 저는 그런 사회, 관습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요컨대 영웅과 같은 헌터가 필요하단 말씀이시죠?”
“네, 모든 헌터는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자일수록, 더욱이요.”
진희는 세영의 말을 이해는 하지만 동감하지 못했다. 세영의 주장은 마치 바제트가 살던 시대의 기사도를 연상하게 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세영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짐작이 갔다. 결벽증과 이상주의자라.
서한과는 정반대였다.
서한은 현실주의자였고,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했다. 여기서 사익이란 개인뿐 아니라 그가 속한 단체, 부하들도 포함되었다.
세영은 달랐다. 자신의 부하이든, 같은 단체의 사람이든 힘을 가진 헌터라면 모름지기 책임과 사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하들이 싫어할 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