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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70화 (70/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70화

“텔레파시의 변형이에요.”

시합이 끝났다. 소라와 종혁의 시합은 단 5초 만에 끝났다. 종혁이 마법을 외우기 전에 소라가 다가가 그를 때려눕혔기 때문이다.

종혁은 소라에게 맞은 배를 움켜쥐며 울상을 지었다.

“텔레파시가 마력을 공유할 수 있단 걸 알아냈거든요.”

“마력을 공유해?”

“네. 이번 시합에서 사용한 마력은 시영이한테 빌린 거예요.”

종혁의 말은 이랬다.

텔레파시는 머릿속 생각뿐 아니라 마력 또한 전달받을 수 있었다. 전달받는 도중에 소모되는 마력이 제법 있었지만, 상대방의 동의를 받는다면 수신자의 신체가 허용하는 수준까지 마력을 받을 수 있었다.

사용 조건은 텔레파시와 동일했다. 거리가 멀리 떨어지지 않아야 하고,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하다. 마력의 전달 속도는 발신자의 마력 출력량과 동일하다.

출력량이 높은 사람이라면 많은 양의 마력을 순식간에 전달 가능하단 뜻이었다.

“네가 받는 거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할 수 있어? 예를 들어 서한 씨의 마력을 내가 받는다면?”

“가능해요. 하지만 그 경우엔 저를 거쳐서 전달되는 형식이라, 전달 속도는 제 마력 출력량으로 하향될 거예요.”

“뭐야, 그거. 사기잖아.”

시합에는 이겼으나 승부에서 진 듯한 기분인 소라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종혁에게 이겼지만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타인의 마력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사기 능력이었다.

마법사가 마력이 부족하면 전사가 마력을 보태주고, 전사가 지치면 마법사가 지원할 수 있다. 이론상 종혁은 파티원의 마력을 임의로 조절 가능한 최고의 서포터였다.

시험의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소라와 청하는 같은 전사인 카온과 서한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민혁 또한 수준급의 공격력을 보여줬지만 현성의 주술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종혁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특별한 이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희는 불만스러운 얼굴의 소라와 아쉬워하는 청하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럼 이번 시험의 합격자는-”

아직 발표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저 멀리서 달려온 시영이 종혁의 목에 매달려 환호성을 질렀다.

* * *

“종혁이란 아이의 능력은 숨기는 게 좋겠어. 아니, 애당초 다른 파티에 가도록 만들지 마.”

시험이 끝나고 나서 서한이 진희를 불렀다. 그는 진지하게 충고했다.

“저 능력을 들키면 달려들 녀석들이 한둘이 아닐 테니까.”

“서한 씨도 그런가요?”

“네가 없었으면 어떻게든 금강에 입사하도록 몰아붙였겠지. A급의 대우를 해줘서라도 영입했을 거야.”

서한은 단언했다.

“대상에 따라선 너나 카온보다 더 희귀한 인재니까.”

강한 힘을 가진 헌터는 많다. 돈만 많다면 강한 헌터를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희귀한 능력자는 달랐다.

“어떻게 살아갈지는 종혁이 자유예요.”

만약 종혁이 보육원이 아니라 더 많은 돈을 주는 단체에 가고 싶다면 진희는 흔쾌히 보내줄 생각이었다. 아이의 미래는 본인의 선택이지 보호자의 권리가 아니었다.

태연한 진희의 대답에 서한이 혀를 찼다.

“네 기사단이 성장할 기회인데도?”

“전 단원의 선택을 존중하는 단장이거든요.”

“물러. 상사란 부하의 자유보다 단체의 이득을 중시해야 해.”

서한의 말에 진희가 순간 표정을 굳혔다. 방금 그 말은 서한이 아니라 황태자 케네스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한 기사의 자유보다, 군대의 승리가 필요하다.’

바제트가 수도로 복귀하고 싶다는 의견을 어필하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황태자의 명령으로 바제트는 더 많은 전쟁, 살육을 반복해야 했다.

진희는 굳은 얼굴로 서한을 바라보았다. 서한이 다시 충고하려 입을 열었지만, 진희의 손이 그의 입을 막았다. 볼과 턱을 감싼 진희의 손가락에 서한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만해요.”

“음?”

“당신한테 듣고 싶은 소린 아니거든요.”

진희가 다시 손을 뗐다. 왠지 모르게 화가 난 상태로 돌아서는 진희를 보며 서한이 혀를 찼다.

“또냐.”

“…….”

“날 보며 또 누굴 떠올린 거야?”

서한은 진희가 자신을 보며 누군가를 연상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이게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카온의 원인 모를 적의와 진희의 복잡한 시선, 그 의미를 못 알아차릴 정도로 둔감하지 않았다.

서한의 말에 진희는 쓰게 웃었다.

“있어요, 서한 씨처럼 잘생긴 사람.”

“농담 아냐, 서진희 너 가끔 나보고 이름이 아니라…….”

“서한 씨.”

진희가 다시금 서한을 불렀다.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가려던 서한은 진희의 얼굴을 보고 결국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가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봐도 넘어가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젠장.”

결국 서한은 진희에게 이길 수 없었다. 진희답지 않은 서글픈 웃음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15. 제 것이 되어주실래요?

“저도 서한 씨 부탁 하나 정도 들어드릴게요.”

진희는 시험 감독을 해준 답례로 서한의 부탁 하나를 들어주겠다 말했다. 여기서 부탁이란 개인 대 개인이 아닌, 금강 기업의 의뢰를 뜻했다.

개인적인 부탁이야 그간의 궁금증 해소 때문에 쌓인 게 많았지만, 굳이 부탁할 거리를 찾지 못했던 서한은 생각해 보겠다며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던전으로 출발하기 일주일 전, 서한이 진희를 불러냈다.

“한 사람 호위 좀 해줘.”

“호위 임무예요?”

진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던전과 무관한 부탁을 해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사람 보내기엔 힘든데, 그렇다고 호위를 안 할 수가 없는 사람이 한국에 왔거든.”

“누군데 사정이 그렇게 복잡해요?”

“내 동생.”

시영이가 아닌, 금강 기업의 후계자 중 한 명을 뜻했다.

서한은 피곤한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이름은 이세영, 내 바로 아래의 동생이고, 유럽 지부에서 지부장을 하고 있는 녀석이야. 이번에 성과 보고 때문에 한국을 찾아왔더군.”

금강 기업 회장의 자식은 총 네 명으로, 첫째가 서한, 막내가 매일 보육원을 드나드는 시영이었다. 셋째는 가문에서 퇴출당했다고 했으니, 둘째라고 하면 서한 다음으로 후계자의 서열이 높은 사람을 뜻했다.

“중요한 사람인 것 같은데, 저한테 호위를 맡겨도 돼요?”

“어떻게든 인원을 구해야 하는데 모두가 기피하고 있어. 심지어 이세영은 자기 호위도 없이 혼자서 비행기를 탔다고 하고.”

기피한다? 진희가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자 서한이 한숨을 섞으며 대답했다.

“한국 본부에 있는 상위 헌터들은 대부분 이세영이라면 학을 떼. 이세영은 다소…….”

서한은 적합한 말을 한참을 찾다가 말했다.

“부하 직원을 난폭하게 다루거든.”

“그래서 그 난폭하신 대기업 후계자님의 호위를 저한테 맡기시겠다.”

“부탁 하나 들어준다고 했잖아.”

서한 입장에선 골칫거리였다. 같은 후계자로서 세영의 안전을 마냥 좌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부하 직원을 보내자니 모두가 난색을 보이고 있었다.

진희는 서한이 세영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단 사실에 의문을 표했다.

“후계자인데 서로 암살을 한다거나 와인에 독약을 타는 짓 같은 건 안 해요?”

“네가 무슨 중세 시대 사람이냐?”

제가 살던 세상에선 다 그랬는데, 진희는 생각보다 온건한 서한과 세영의 관계에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으음, 좋아요. 그 정도 부탁은 들어드릴 수 있죠. 호위 기간은 언제까진데요?”

“짧으면 하루, 길면 이틀.”

호위를 고용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고용된 헌터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진희는 딱 알맞은 헌터였다.

실력은 최상급, 타 기업과 인연도 깊지 않고, 금강 기업의 후계자 사정에 대해서도 무지한 편은 아니다. 이해관계에 묶여 있지 않으면서 신뢰할 수 있는 상대란 건 귀중한 법이다.

“근데 서한 씨 동생이면 그분도 헌터 아니에요? 굳이 호위가 필요한가요?”

“나 같은 전사 타입의 헌터는 아니거든. 마법사라고 봐야 해서, 호위가 반드시 필요해. 저번 테러처럼 작정하고 덤비면 위험하니까.”

“아하.”

“그리고 호위하는 데 필요한 경비는 모두 지원해 줄 수 있어.”

서한의 말에 진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보죠. 아, 혹시 호위할 때 필요한 장비도 지원해 주나요? 요즘 장갑이 시원찮아서.”

“……알아서 해.”

사람 하나 고용하는 것치곤 싸게 먹히는 편이다. 서한은 한시름 놓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저 사람인가?”

공항에 도착한 진희는 라운지에서 한 사람을 발견했다. 짧은 단발과 정장을 입은 사람은 캐리어를 끌고 라운지 구석의 자판기 앞에 서 있었다.

많은 사람 중에 저 사람이 이세영이란 걸 짐작한 건, 그의 주변에 헌터로 보이는 호위가 두 명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세영을 잘 모르는 신입을 두 명 넣었어. 경비 처리나 기타 업무는 녀석들이 해줄 거야.’

서한이 해준 말이 문득 떠올랐다. 진희 혼자서 호위를 맡기엔 해야 할 일이 많아 서한 나름대로 배려해 준 것이다.

대충 실력을 눈여겨보니 두 헌터의 실력은 B급 상위였다. 유망한 신입 둘을 붙여준 듯싶었다.

진희는 자판기 앞에 있는 세영을 향해 걸어갔다.

“어라.”

자판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그가 진희를 알아보고 작게 웃었다.

“당신이 서진희 씨인가요?”

가까이서 보니 정말 서한과 똑 닮았다. 서한과 시영은 전혀 다른 인상의 형제였지만, 서한과 세영은 딱 봐도 가족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이목구비가 닮았다.

갈색 눈동자와 짙은 눈썹, 치켜뜬 눈매, 제법 큰 신장, 웃는 얼굴이 서한보다 자연스럽다는 점 말곤 모든 점이 흡사했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 수 없는 중성적이고 가는 선이 인상적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여동생이라고 했었나? 그냥 동생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맞아요, 이세영 씨인가요?”

“세영이라고 불러줘요, 진희 씨.”

세영은 진희에게 악수를 건넸다. 특이하게도 흰색 면장갑을 끼고 있었다. 문득 세영의 옷차림을 살펴보니,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목을 제외하곤 피부가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거기에 먼지 하나 묻지 않은 하얀 면장갑이라. 진희는 주머니에서 물티슈를 꺼냈다.

그리고 티슈로 손을 닦은 다음 세영의 손을 맞잡았다.

“안녕하세요.”

“후후, 반가워요.”

서한에게서 세영이 약한 결벽증이 있다고 들었던 진희였다.

세영은 진희의 손을 맞잡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야, 넌 또 누구야?”

진희는 자신을 부른 사내를 바라보았다. 호위인 젊은 사내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짝다리를 짚고 서 있었다. 사내의 옷차림은 세영보다도 특이했다.

“으아, 촌스러워.”

진희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체인이 달린 카고 바지와 프린팅 셔츠, 거기에 탈색까지 한 백금발의 사내는 패션 센스가 특이하다 못해 촌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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