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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69화 (69/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69화

짧은 기간 동안 기초를 다지게 만든 진희가 대단한 걸까, 진희의 검술과 체술을 흉내 낼 수 있는 아이들의 재능이 대단한 걸까.

어느 쪽이든 아이들이 장래에 유능한 헌터가 될 거란 건 마찬가지였다.

“왜 아직도 C급 등록을 안 한 거야? 당장에라도 4급 던전 정도는 공략할 수 있을 텐데.”

“준비가 안 됐을 때 주목받고 싶진 않거든요. 서한 씨가 저런 C급을 발견하면 가만두겠어요?”

“……하긴.”

기업이라면 스카우트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켤 것이다. 보육원, 이능력이란 민감한 신분을 가진 아이들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솔로 플레이는 아직 위험해요. 좀 더 강해진 다음이면 모를까.”

“넌 의외로 걱정이 많더라.”

“저 섬세한 사람인 거 이제 아셨어요?”

섬세한 사람이 다 죽었나, 서한은 진희의 농담을 무시하고 대련에 집중했다.

여전히 주도권은 청하가 가지고 있었다. 염동력으로 사방을 장악한 청하는 끊임없는 공격으로 소라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이 일방적인 공격은 청하에게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유효타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헉, 허억!”

청하의 체력은 서서히 방전되었다. 신체 강화를 위한 마력과 염동력의 사용으로 정신력, 체력이 끊임없이 소모되고 있었다. 반면 소라는 적재적소에 마력을 사용하며 체력을 비축했다.

청하는 이 일방적인 공세에서 유효타를 내야만 했다. 마력 출력은 청하가 좋지만, 근접전에서의 우위는 언제나 소라에게 있었다.

“지쳤네.”

진희가 숨을 헐떡이는 청하를 보며 중얼거렸다.

기술, 속도, 이능력의 활용, 모두 청하가 소라보다 한 수 앞선다. 하지만 그동안 대련의 승패는 소라가 우세했다.

소라는 청하에게 없는 인내력과 침착함이 있었다. 절대 당황하지 않고, 흥분하지 않은 상태로 방어하고 빈틈을 노린다.

마치 지금처럼.

“윽!”

청하가 지쳐 드라이버를 움직이지 못하던 아주 잠깐의 틈을 노리고 소라가 달려들었다. 근접전을 선호하는 소라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범위, 그러나 청하가 검을 휘두르기 어려운 거리.

소라는 망설임 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타격 지점은 첫 공격 때와 똑같다. 명치를 맞은 청하가 헛숨을 마시며 뒤로 물러났다.

언뜻 보면 청하가 반격을 당해 물러난 것처럼 보였지만, 고통을 참는 청하의 눈엔 아직 의지가 꺼지지 않았다.

‘들어오면…….’

여기까지는 평소 대련했을 때의 패턴과 똑같았다. 공세를 취하던 청하가 반격을 당해 소라가 승리한다는 결과.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청하는 아직 주머니에 한 개의 드라이버를 더 가지고 있었다.

마무리를 위해 접근하는 순간 던진다. 이미 소라의 뒤엔 바닥에 떨어졌던 드라이버가 슬그머니 허공을 비행해 날아오고 있었다.

회피하거나 방어할 수 없도록 동시에 공격해 반격하겠다는 청하의 계획이었다.

진희와 서한도 청하의 반격을 기대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대단해.”

소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청하가 뻔히 빈틈을 내보였지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오히려 방어를 굳건히 했다.

고등학생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굳건한 정신력, 그리고 인내력이었다. 소라는 승부를 끝내기 위한 도박이 아닌 유리한 상태를 지속하려는 안전을 택한 것이다. 소라가 덤벼들었다면 승부가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하아.”

청하가 고개를 들고 한숨을 내쉬었다. 소라는 가드를 올린 채로 청하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승산이 없다. 청하는 소라의 가드를 뚫을 정도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지 않고, 마력의 잔량은 소라가 앞선다. 그렇다고 청하의 방어력이 소라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다.

‘기권할까?’

포기하고 싶다는 충동이 떠올랐지만 청하는 고개를 젓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지고 싶지 않았다. 동경했던 사람의 곁에 설 기회였다. 청하는 이를 악물고 다시 공격에 나섰다.

그러나 청하의 결연한 모습을 보고 소라는 웃었다.

“하아-”

소라는 아직 이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청하는 반격하겠다는 일념에 소라의 이능력을 잊고 있었다.

소라의 능력은 염파력(소노키네시스). 3인방 중 능력의 범위가 가장 좁은 소라였지만,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약하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파.”

또다시 사각(死角)을 노려 접근한 청하에게 그녀가 입술을 튕겼다.

‘아차.’

청하가 눈을 크게 떴다. 소라의 능력을 깜박했다.

소라가 입술을 튕기는 그 순간, 청하의 귀에서 이명이 들렸다. 뇌를 흔들어 버리는 강력한 소음에 청하가 재빨리 귀를 막으려 했지만.

“고생했어.”

그 틈을 놓칠 소라가 아니었다. 소라의 웃음소리가 이명 사이로 들리고, 청하의 시야가 암전되었다.

* * *

“명경기네.”

종혁이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쓰러지는 청하를 카온이 업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참 부담스럽다, 그치?”

화려한 두 명의 시합을 보고 나니 부담감이 한층 더 커졌다. 그간 열심히 수련했다는 건 자신할 수 있지만, 청하와 소라의 재능엔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민혁이 빤히 종혁을 바라보았다.

“걱정돼?”

“응, 그렇지. 넌 안 그래?”

민혁은 고개를 저으며 강당 중앙으로 걸어갔다.

“별로.”

“……그렇구나.”

종혁은 민혁의 등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다들 대단하네.”

* * *

“종혁이란 아이의 능력은 텔레파시라고 했던가. 전투에 쓸모는 없겠어.”

“후방 지원에 필요한 능력이죠.”

“하기야 던전에선 통신 장비가 통하지 않으니까.”

서한이 앞으로 나선 종혁과 민혁을 보며 턱을 괴며 말했다.

“능력은 괜찮지만, 글쎄. 솔로 플레이에선 소용이 없군.”

진희도 그 말에 동의했다.

텔레파시는 헌터에게 괜찮은 능력이다. 장기적인 던전 탐사에서 통신은 목숨 줄과도 같았으니까.

그러나 이번 시합처럼 혼자 전투할 때는 사용할 도리가 없는 능력이었다.

그렇다고 종혁의 기회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진희는 종혁에게 마법사로서 공평한 기회를 주려 했다.

“그럼- 시작!”

민혁과 종혁이 서로를 마주 보자, 진희가 똑같이 손뼉을 치며 시작을 알렸다.

바로 공격을 했던 앞의 대련과 달리, 종혁과 민혁은 오히려 뒤로 물러나며 서로 거리를 벌렸다. 마법사로서 당연한 대처였다.

[파이로.]

선제공격은 민혁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손아귀에서 불꽃의 공을 만들어냈다.

“처음 보는 마법인데.”

마법에 조예가 있는 건 아니지만 많은 마법사를 보아온 서한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마정석이 붙은 보호대를 사용하고 있어. 게다가 사용된 마력에 비해 공격력이 강해.”

기껏해야 초급 마법이나 시전할 정도의 작은 마력으로 제법 거대한 불꽃의 구를 만들어냈다. 아마 손목 보호대와 민혁의 능력이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민혁은 불꽃을 종혁에게 쏘아냈다.

[에어 재머(Air jammer).]

빠르게 다가오는 불꽃을 보며 종혁이 침착하게 주문을 외웠다. 그가 외운 주문은 마법 저항력이 높은 방어막 마법이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마법, 시전 시간이 빠르다는 것 말곤 별 특징이 없었다.

방어막은 무난하게 불꽃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소모된 마력량은 종혁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파이로.]

민혁은 침착하게 다음 마법을 외웠다. 똑같은 불꽃 마법이었지만 앞선 마법보다 그 규모가 컸다.

손아귀에 떠오른 불꽃의 구가 두 개였다.

[에어 재머(Air jammer).]

그리고 종혁도 똑같은 마법을 외웠다. 다시 부딪히는 두 마법, 이번에도 마법이 서로 상쇄되었다.

[파이로.]

“소모전인가 본데.”

마력량을 측정하는 건 마법사의 역량을 파악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었다.

공격 마법은 쉽고, 방어 마법은 어렵다. 공격 마법에 소모되는 마력보다 방어 마법에 투자되는 마력이 더 크다. 마법사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단순한 규칙이었다.

민혁은 종혁이 공격 마법을 다루지 못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배운 대부분의 마법은 서포터 역할에 해당하는 마법들이었다. 버프와 방어막, 해주(解呪) 마법 등등, 대련에 유용한 마법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민혁은 간단한 해답에 도달했다.

종혁이 마력을 다 쓸 때까지 공격 마법을 퍼붓겠다는 해답이었다.

[파이로.]

“바깥에서 대체 뭘 배우고 온 건지 모르겠네.”

서한과 마찬가지로 마법에 대해선 아는 게 없던 진희가 감탄 어린 눈빛으로 민혁을 바라보았다. 민혁이 마법과 이능력의 수련을 위해 보육원을 비운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어떤 스승을 만나 무슨 마법을 배운 건지, 민혁의 마법은 C급 마법사라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대담했다.

화염구의 숫자는 갈수록 늘어났다. 마치 어디까지 버티는지 두고 보자는 것처럼 늘어난 화염구의 숫자는 이윽고 열 개에 달했다.

파괴력만 따지면 C급 상위 마법사가 사용하는 공격 마법에 육박한다. 이능력과 마법의 결합, 서한과 진희는 예상치 못한 민혁의 실력에 놀란 얼굴이었다.

“A급 수준이 되면 화산 폭발이라도 시키는 거 아닐까요?”

진희가 농담 어린 말을 서한에게 건넸지만 서한은 부정할 수 없었다. 지금껏 민혁이 사용한 마력은 D급 언저리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능력과 마력을 조합해 한 단계 위의 공격 마법을 발휘하고 있었다.

“카온. 준비해.”

“예.”

열 개의 화염구가 허공에 떠올랐을 때 진희는 카온을 불렀다. 이번 공격은 종혁이 막을 수 없으리라 판단했다. 종혁을 구해낼 수 있도록 카온은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고 달려들 준비를 했다.

“……아니, 잠깐만.”

그걸 막은 건 서한이었다. 그는 미간을 좁히며 종혁을 바라보았다.

종혁은 지금까지와 똑같은 마법을 외웠다.

반복적인 마법이었지만, 모이는 마력의 양은 저번과 달랐다.

“쟤 마력량 대체 얼마야?”

진희는 서한의 말에 그제야 종혁의 마력을 살폈다.

“어라?”

종혁은 신체에 저장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마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진희의 눈으로 보이는 종혁의 마력은 민혁과 청하보다 적었다. 연속적인 방어 마법에 진작 바닥나야 할 수준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마력은 바닥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싶어 자세히 관찰하려 했지만, 민혁의 화염구가 종혁을 향해 날아가 시야를 가렸다.

쾅!

바닥이 뜯겨 나갈 정도의 강력한 폭발이 강당을 휩쓸었다. 카온이 진희와 서한에게 날아오는 먼지를 팔을 휘둘러 몰아냈다.

“세상에.”

먼지가 날아간 강당의 중앙을 보며 진희가 작게 입을 벌렸다. 종혁이 아무런 상처도 없이 서 있었다. 그의 방어막은 건재했으며, 오히려 공격한 민혁이 폭발의 충격으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종혁의 마력은 조금도 줄어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민혁이 물었다.

“그게 새로운 능력이야?”

“응.”

“대단하네.”

아직도 불안해 보이는 종혁의 얼굴을 보며 민혁이 피식 웃었다.

“대체 뭐가 걱정된다는 거야? 이렇게나 강해져 놓고서.”

민혁은 한숨을 내쉬며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 진희를 향해 돌아섰다.

“항복하겠습니다. 마력이 바닥났어요.”

신체를 강화할 최소한의 마력조차 없었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진희가 종혁을 바라보았다. 종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이제 소라와 시합할 준비하면 되나요?”

예상외의 전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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