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와 헌터의 겸직-67화 (67/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67화

“이번에 아이들 실력 테스트 본다고 했었죠.”

“그래.”

아직 학생인 아이들의 실력을 본다는 게 얼핏 들으면 우스운 말이었지만, 기업 소속인 서한에겐 별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헌터 아카데미에서는 대련과 시험이 매일같이 있다고도 하니까.

하지만 그 시험에서 합격한 아이를 다음 던전 공략 때 데려간다는 이야기엔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시험 감독에 서한 씨도 참가해 주실 수 있나요?”

“내가?”

팔에서 연고를 바르던 중 서한이 진희를 바라보았다. 진희의 얼굴이 농담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아채고서야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외부인을 참가시킬 줄은 몰랐는데.”

“이제 서한 씨는 외부인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미안해서라도 그렇게 말할 순 없다. 진희가 내심 쓰게 웃었다. 지금도 서한의 얼굴을 보면 묘한 거부감이 생기곤 했다. 하지만 그가 해준 일을 생각하면 마냥 외부인 취급하는 것도 미안했다.

“기자 막아준 거, 서한 씨가 한 일이죠?”

서한은 대답이 없었다.

미노타우로스를 사냥한 진희의 정보는 알음알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헌터의 스카우터, 기업, 언론의 기자 등등, 나름의 정보력을 가진 단체들은 새롭게 탄생한 유명 헌터에 대해 알아보려 여기저기 손을 뻗고 있었다.

“금강 쪽에도 귀찮게 구는 녀석들이 있어서, 겸사겸사 그렇게 된 거야.”

서한의 변명 아닌 변명에 진희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진희가 매일 드나드는 보육원에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서한은 줄곧 진희의 정보를 마치 금강에서 숨기고 있는 것처럼 위장해 기자와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돌려주었다.

덕분에 외부인은 보육원의 아이들에게 접촉할 수 없었다. 진희는 이 사실을 그녀의 아버지인 서혁에게 들었다.

‘이서한은 뒤가 켕길 게 별로 없거든.’

권력 암투에 시달려 온 대기업의 후계자치고, 서한은 음흉한 꿍꿍이가 없는 인물이었다. 언론으로부터 보육원을 지켜주었다는 명분만으로도 진희에게 이것저것 요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굳이 자신의 선행을 밝히지 않았다.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적어도 그가 보육원을 쉽게 배신할 인물이 아니란 것은 그간의 동행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보육원의 비밀을 밝히려 한다.

외부에 아이들의 비밀이 흘러나갔을 때를 대비해서라도, 서한처럼 영향력 있는 사람을 포섭하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오히려 꿍꿍이가 있는 건 나 같네.’

진희는 카온에게 문을 잠그라고 말했다.

“그런 고마운 일을 해줬으니까, 저도 부탁드리는 거예요. 전투에 있어선 저만으로도 충분하지만, 파티의 중요성은 서한 씨가 더 잘 아니까요. 파티에 더 잘 어울리는 헌터를 선발한다고 생각하세요.”

“네 입으로 부탁이란 단어를 들으니까 새삼스럽네.”

“저 이래 봬도 예의 바른 사람이에요.”

“농담도.”

헛웃음을 터뜨린 서한이 진희의 제의를 승낙했다.

“좋아, 네가 숨겨놨던 병아리 기사단 실력도 보고 싶긴 하니까. 그 정도는 해주지.”

“고마워요. 그리고 이번 시험 때 봤던 일은 모두 비밀로 해주길 바라요.”

“비밀?”

“네. 아이들은 일반적인 헌터가 아니거든요.”

진희가 복도 창문 너머로 달려나가는 아이들의 실루엣을 보며 말했다.

“이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이능력자’예요. 그리고 이번 시험에 응하는 아이들은 마력과 이능력을 모두 사용할 수 있죠.”

“……뭐?”

서한의 헛바람 섞인 반문을 무시하고, 진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별한 아이들의 시험이에요. 서한 씨도 부디 신중하게 감독하길 바랄게요.”

어떻게 보면 병아리 기사단의 실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다.

진희는 창문을 열었다. 마침 땀에 흠뻑 젖은 청하와 소라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걸어오고 있었다. 이제 슬슬 뿌려놓은 씨앗이 어떤 과실을 맺었는지 확인할 시기가 다가왔다.

* * *

‘우리가 도와드려야 합니다.’

‘명령을 따라라, 카오톨로메오.’

아직 어렸던 카오톨로메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용인은 자신의 주인을 따라 평생을 살아간다. 카오톨로메오가 있던 부족의 주인은 드라노이드 공작가로, 부족의 아이들은 태어나서부터 드라노이드의 가주를 섬기기 위하여 훈련을 받아왔다.

누구도 이 생활에 불만을 갖지 않았다. 그들의 주인은 대대로 정의로운 기사였기에 주인을 섬기는 것에 어떤 의문도 품지 않았다.

하지만 카오톨로메오가 성인식을 받기 전, 부족은 가문에게서 ‘영토를 지켜라’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최소한의 용인들을 제외한 모든 용인은 제국의 격전지로 향했다.

기나긴 전쟁이 끝난 후유증을 버티기 위해 혼란한 영토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가문에서 온 전령은 설명했다.

‘로드께서 직접 내린 명령이 아닙니다.’

‘전령을 불신하지 마라.’

‘로드께서 홀로 수도에 남아 있지 않습니까!’

카오톨로메오는 답답했다. 그들이 떠나고, 드라노이드의 가주는 듣도 보도 못한 수도방위 기사단이란 허접한 기사단의 단장이 되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이자 검성이라 칭송받는 인물이 받은 포상으론 너무나 비참했다. 카오톨로메오는 그의 주인이 함정에 빠졌으리라 생각했다.

비열한 중앙 귀족들의 행태는 들은 바가 있었다.

주인의 곁으로 돌아가자는 카오톨로메오의 제안은 부족의 어른들에게 거절당했다. 가주, 가문의 명령은 절대적이란 답답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카오톨로메오는 부족의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 이윽고 긴 시간이 흘렀다. 혼란스럽던 제국 경계의 치안을 정리하던 도중, 부족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들의 주인인 가주가 독살(毒殺)당했다는 전령이었다.

‘지킬 수 있었어…….’

징조는 있었다. 드라노이드 영지를 떠나기 전, 멀리서 보이는 가주의 모습을 보았을 때.

‘힘들어하셨어.’

그 누구보다 강하다 칭송받는 영웅이 사람들 사이에서 고독해하고 있음을 그는 눈치챘다.

적색 갑옷을 입고 당당하게 기사단의 선두에 서 있던 모습. 그러나 화려한 주변과 다르게 홀로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외로운 모습에, 카오톨로메오는 동경과 동정이 같이 일었다.

그의 유일한 주인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던 드라노이드 가주를 본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직 살아 있던 모습을 보는 것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 * *

“낮잠 잤어?”

“……죄송합니다.”

“안 일어나도 돼.”

카온이 눈을 떴다. 훈련을 한다고 강당에 나와서 명상에 잠기던 중 깜빡 잠이 든 것 같았다. 명상 중에 잠이 들다니, 전사로서 부끄러운 모습을 진희에게 들킨 것 같아 그가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시간은 어느새 저녁이 되었는지, 강당의 창문 너머로 석양이 지고 있는 게 보였다.

“악몽을 꿨나 봐?”

“아닙니다.”

“그런 것치곤 안색이 안 좋은데? 얼굴이 새파래.”

진희가 자신이 마시고 있던 음료 캔을 카온에게 건넸다. 진희도 마침 훈련을 위해 강당을 찾던 참이었다. 그녀는 어깨에 걸친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별일이네. 카온이 낮잠도 자고.”

카온은 스케줄을 칼같이 지키기로 보육원에서 유명했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아침 모닝콜을 시계 대신에 카온에게 부탁할 지경이었다.

그런 그가 예정 외의 시간에 훈련을 하고, 심지어 하다가 잠드는 광경을 목격할 줄이야. 진희는 새삼스럽단 눈으로 카온에게 말했다.

“훈련에 너무 집착하지 마. 내가 하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무리하란 이야기는 아니었어.”

악몽을 꾸며 식은땀을 흘렸던 카온이 흐릿한 시선으로 손에 든 음료수 병을 바라보았다.

“아직 부족합니다.”

많은 뜻이 담긴 한마디였지만, 진희는 그것이 서한과 현성에 비해 부족하다고 자신을 탓하는 것처럼 들렸다.

카온이 서한에게 대련을 신청했다가 패배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카온이 은근히 승부욕이 있는 사람이란 걸 알던 진희는 굳이 그 화제를 건드리지 않았다.

“천천히 해. 넌 이미 내가 기대했던 수준을 충분히 달성했으니까.”

다음 던전 공략을 위해 필요한 능력치의 상향은 진작 달성했다. 오히려 자금 조달을 위해 여기저기 쏘다닌 진희가 뒤처졌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괜찮은 무기를 손에 넣었지만, 고질적인 문제인 마력 출력과 체력 향상은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더 강해져야 마스터를 지킬 수 있습니다.”

얘가 아직 잠이 덜 깼나, 진희가 뜬금없는 카온의 말에 딸꾹질을 삼켰다. 하지만 카온의 얼굴은 진지했다. 아직 담이 덜 깬 주제에 표정만은 새삼 심각했다.

“내가 약해 보여?”

어디 가서 질 정도의 실력은 아니라고 자부하는 진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예.”

“…….”

그리고 카온의 대답에 할 말이 없어져 입을 벌렸다. 용인의 주인 보호가 극진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자신을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여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저번에도 그렇게 사라지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번?”

“수도에서, 마스터는 홀로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 얘기구나. 진희가 카온이 꺼낸 과거의 이야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온이 먼저 과거, 제국의 이야기를 꺼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 그때 마스터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용인으로서도, 기사로서도.”

“…….”

진희는 카온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의 가문에 속한 용인은 한 개의 소대보다 많았고, 전쟁이 끝난 당시엔 그보다 많은 수의 용인이 그녀를 따르고 있었다.

기사단의 이름은 모두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녀였으나, 그때의 바제트는 그런 사소한 규칙을 지킬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카온, 넌 어디서부터 기억하고 있어?”

“……저희를 전선으로 보낸 건, 마스터가 아닌 다른 분이란 건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카온은 진희가 수도 방위 기사단에 속했을 때를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때 동생이랑 황태자가 전력을 분산시켰던가.’

수도 방위 기사단장을 역임한 후에 드라노이드의 전력은 각기 분산되었다.

당시, 전쟁에 승리하여 영토를 획득한 제국은 전선을 안정화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시키던 중이었다.

전쟁 영웅이자 중앙 귀족들에겐 계륵이나 다름없던 드라노이드 공작가는 병력 파견의 1순위로 꼽혔다. 마침 공작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높을 때라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결국 바제트는 동생과 황태자의 설득에 기사단을 쪼개서 전선으로 파견 보내게 되었다.

“제가 돌아가야 했습니다.”

“글쎄.”

진희는 카온의 말에 쓰게 웃었다. 카온이 온다고 해도 과연 바제트의 운명이 바뀌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만큼 바제트는 수세에 몰려 있었다.

이미 지나간 일에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카온의 얼굴을 보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희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기사가 자신의 죽음을 위해 저렇게 서러운 표정을 짓는데, 함부로 말을 꺼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왜 다시 기사단을 만드신 겁니까?”

카온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흐리멍덩한 눈동자가 진희를 향했다. 진희는 그에게 다가가, 땀에 젖은 검붉은 머리카락에 손을 얹었다. 덩치는 커다란 주제에 지금은 투정 부리는 아이 같았다.

“기사단 같은 건 잊고, 편하게 살아갈 수 있잖습니까.”

보육원을 구하고 기사단을 꾸린다고 했던 때, 카온에겐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일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