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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62화 (62/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62화

3급 던전의 몬스터 한 마리만 바깥으로 튀어 나가도 아비규환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와우.”

건물의 1층 로비엔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게이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이 던전은 측정 불가능한 규모를 가지고 있어 많은 헌터를 모집하고 있다고 한다.

당장 로비 주변에도 몇 헌터가 던전에 진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혹시 파티 찾으세요?”

그때, 진희에게 한 사내가 다가왔다.

갈색 곱슬머리를 한 말끔한 인상의 사내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진희에게 말했다.

“파티가 없으시면 저희와 합류하실래요? 저희도 파티원을 찾고 있어서요.”

“괜찮아요.”

진희가 눈을 끔뻑이며 사내를 바라보다가 짧게 거절했다. 이 정도 던전에서 굳이 파티할 생각도 없었고, 눈앞의 사내의 마력 수준이 처참해서 함께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잘해봐야 C급 하위, D급 상위나 될 법한 헌터가 여기엔 어떻게 입장했는지 의문이 들 수준이었다.

진희가 자신을 지나쳐 가려 하자, 사내가 황급히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 그러지 마시고. 장비 보니까 초보이신 것 같은데 같이하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요?”

‘얜 또 뭐야?’

진희가 눈살을 찌푸리자 사내가 찔끔하는 표정으로 뒷걸음질했다.

상위 헌터가 될수록 오브(Orb)화된 장비를 지니고 있기에 겉으로는 경력을 짐작할 수 없었다. 물론 이번 던전엔 진희가 검 말고 다른 장비를 챙겨오지 않은 건 사실이나, 겉모습으로 수준을 평가당하는 상황에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더 달라붙으면 어디 구석에 던져버릴까 생각하던 그때, 사내의 뒤편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야, 박민성. 아직도 못 구했냐?”

“혀, 형.”

박민성이라 불린 사내는 어깨를 움츠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게이트의 곁에서 배낭을 챙기고 있던 사람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싸구려 장비를 입고 있던 박민성과 다르게, 그는 과할 정도로 치장된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금색으로 수 놓인 기능성 로브와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들고 있던 그가 혀를 차며 다가왔다.

“오.”

그리고 진희를 보고 웃었다. 평소라면 그 기분 나쁜 시선에 먼저 선방을 날렸을 진희였지만, ‘박민성’이란 이름에 신경이 몰려 있어 반응하지 못했다.

“그쪽도 헌터시죠? 혼자 들어오신 겁니까? 이야, 그럼 B급 헌터란 건데.”

로브를 입은 사내가 박민성을 지나쳐 걸어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진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 B급 상위 헌터, 김상수라고 합니다. 검을 차고 계신 거 보니 검사이신 것 같은데…… 혹시 파티하실 생각 없으세요?”

“……박민성.”

“예?”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름이 김 뭐라고요?”

진희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파티할 생각은 없었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인연 덕에 귀찮음을 감수할 명분이 생겼다.

* * *

사냥터가 과거 약초밭과 같은 상황이었다.

사냥터는 마정석을 확정적으로 떨어뜨리는 정령들이 출현하는 던전이었는데, 내부가 워낙 넓다 보니 무한 사냥이 가능해 많은 헌터가 몰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위험성 때문에 정부는 해당 게이트를 B급 이상의 헌터만 이용할 수 있도록 막아두었고, 그보다 하위 등급의 헌터는 반드시 B급 헌터의 파티에 포함되어야만 입장이 가능했다.

실력 좋은 B급 헌터들은 자신들끼리 파티를 짜 던전을 공략하고 있었고, C급 이하의 헌터는 자신을 데려가 줄 B급 헌터만을 기다리고 있는 판국이었다.

C급 헌터에게 있어서 이 던전은 큰 고생을 들이지 않고도 B급 하위 헌터 수준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던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던전에서 사냥을 하면 다른 던전보다 많은 업적을 쌓을 수 있었다. 그 말인즉 B급으로 승급할 수 있는 업적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뜻이었다.

“게다가 이 던전의 위험성은 측정된 등급보다 낮거든요.”

상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상수의 파티는 네 명이었고, 진희를 포함해 다섯 명이 된 참이었다. 상수와 민성 말고는 모두 여성이었고, 대부분이 초보인 듯 주변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상수는 능숙하게 파티원을 이끌며 말했다.

“3급 상위로 측정된 던전이지만, 사실 내부의 위험성은 하위 혹은 4급까지 되기도 해요. 던전의 특수성 때문이죠.”

진희가 자신과 같은 B급이라고 생각한 상수는 유독 진희에게 달라붙었다.

“특수성이요?”

신경이 민성에게 쏠려 있던 진희는 듣는 듯 마는 듯 상수의 말에 의례적인 대답을 했다.

“네, 바로 나오는 몬스터가 모두 정령뿐이란 겁니다. 정령은 물리 대미지를 받지 않지만, 마법으로 인한 속성 공격엔 매우 취약하거든요. 전사들에겐 최악의 던전이지만 마법사들에겐 이만큼 편리한 던전이 없죠.”

이 던전이 C급에게 큰 인기를 몰고 오게 된 계기가 바로 던전 내부의 몬스터 조성이었다.

이 던전은 B급의 마법사 한 명에게 속칭 ‘버스’만 타도 안전하게 사냥이 가능했다. 상처 하나 없이 던전을 돌 수 있는데 업적은 3급 던전으로 인정해 주는 판국이었다.

게다가 세금을 낼 필요가 없으며 마정석이 확정 드롭된다는 높은 수익성도 자랑한다.

C급 헌터들에겐 B급 마법사 한 명만 있으면 인생이 필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덕분에 이 근방에서 B급 이상의 마법사는 마치 귀족처럼 대우받았고, 그 귀족 중 하나가 바로 상수였다.

“너무 멀리 떨어져 계시지 마세요. 제가 지켜드린다니까요?”

“아, 네…….”

상수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다른 여성들에게 말했다.

짧은 대화였지만 진희는 상수가 어떤 인간인지 대략 짐작이 갔다. 그는 자신의 등급과 직종을 이용해 왕 노릇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하인(민성)을 두고 곁에 여성들로 가득한 파티를 만들겠다는 뻔한 싸구려 망상을 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저 박민성이란 분은 동료신가요?”

“민성이요?”

상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민성을 바라보았다. 짐을 들고 걸어오고 있던 민성은 상수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다.

“흠, 저런 얼굴 좋아하세요?”

“…….”

일단 한 번 참아준다. 진희가 빠득거리는 이를 애써 풀며 말했다.

“아뇨,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요.”

“음…… 저놈이랑 일한 지는 얼마 안 됐죠. 흔해 빠진 C급이긴 해도 길잡이 짐꾼은 필요하니까요. 전사인데 마력을 제대로 못 쓰는 반편이입니다. 워낙 마력에 재능이 없어서요. 본인은 신림에서 활동했던 경력이 있다곤 하는데, 거짓말이겠죠. 거기가 얼마나 살벌한데.”

“……그렇군요.”

“뭐, 이곳 지리는 빠삭한 죽돌이고 싹싹한 얼굴이어서 써주는 거지, 겉만 반지르르한 녀석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상수보다는 민성 쪽이 인상은 더 좋았다. 다소 느끼하고 부담스러운 얼굴의 상수에 비해서 민성은 제법 수려한 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상수는 민성을 앞세워서 여성 파티원을 모집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 상수의 속셈을 모를 리 없는 진희가 작게 혀를 찼다.

‘헌터가 돼서 한다는 일이 고작 이런 거였네.’

“뭐, 흔한 인상이니까 어디선가 비슷한 사람이라도 본 거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저 녀석에 비해선 제가 인물이 낫죠. 안 그래요?”

이게 두 번째다. 얼굴을 들이미는 상수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진희가 중얼거렸다. 부처님도 세 번은 참는다는 격언을 떠올렸다.

“응?”

때마침 주머니에 있던 폰이 울렸다. 게이트 입장에 앞서 장비를 정비하던 파티원들을 먼저 보내고, 진희가 폰을 확인했다.

[언니, 어떤 게 좋아 보여요?]

소라에게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징이 박힌 건틀렛과 가시가 박힌 각반 중에 어떤 게 좋겠냐는 질문이었다. 고등학생이 보냈다기엔 살벌한 문자에 진희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진희는 자신의 생각이 담긴 짧은 답 문자를 주고선 고개를 들었다. 상수가 민성에게 뭐라고 꾸중하는 게 보였다.

‘자, 어디 한번 볼까.’

진희는 박민성을 관찰하려 이 파티에 참여했다. 솔로 플레이의 이점을 버리고서 굳이 상수 같은 저질과 함께하는 이유는 오로지 소라 때문이었다.

박민성, C급 헌터.

가람 보육원의 비밀을 까마귀파에게 알려준 소라의 원수의 이름과 똑같은 사내.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정황이 딱 들어맞았다.

C급 헌터이자 전사였지만 마력을 잘 다루지 못해 등급은 유명무실이고, 까마귀파에게 얻어맞아 빈털터리가 되었다던 ‘박민성’.

이후 신림에서 자취를 감춰 어디에 숨어 살고 있나 했더니, 강남에서 짐꾼으로 살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의 처지를 동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습다고 생각했다. 박민성의 태도는 비굴했지만 눈동자만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상수에게 타박받을 때마다 분노와 짜증으로 상수의 뒷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마 본인만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능력이 부족하기에 상수의 버스에 얻어 타려 하고, 자존심은 버리지 못해 열등감에 몸서리치고 있다.

자신의 살길을 위해 수많은 아이를 조폭에게 떠넘긴 사내의 모습을 진희가 동정할 리 없었다.

“출발할까요?”

상수가 웃으며 다가왔다. 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게이트를 향해 걸어 나갔다. 그녀와 상수의 뒤에서 민성이 짐을 들고 뒤따라왔다.

소라의 복수를 대신 해줄 생각은 아니었지만, 조금의 보복 정도는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진희가 뒤통수에 느껴지는 시선을 뒤로하고 작게 웃었다.

* * *

던전은 새하얀 안개가 낀 숲에서 시작되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 상수는 익숙한 듯 앞으로 걸어갔다. 마법사임에도 선두를 자처했고, 일행은 잠자코 그 뒤를 따랐다.

진희를 뺀 나머지는 모두 이런 ‘버스’에 익숙한 듯 보였다. 민성이 모아온 C급의 헌터 둘도 상수의 농담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따라왔다.

이 던전에서만큼은 마법사가 귀족이었고, 상수는 그 취급을 즐기는 듯 보였다.

‘이상한데.’

정령은 자주 튀어나왔다. 바람, 물 속성으로 보이는 정령들은 사나운 기세로 파티에게 달려들었다.

[아- 아!]

“저리 꺼져 이것들아!”

주먹만 한 크기부터 작은 아이 수준으로 성장한 정령까지, 그 크기는 다양했지만 모두 상수의 속성 마법 한 방에 쓰러져 나갔다. 상수의 콧대는 높아져 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진희는 사라져가는 정령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가 알고 있던 정령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생김새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정순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정령처럼 자연계의 마나가 느껴지는 게 아니라, 마치 인간처럼 마력만이 느껴졌다. 심지어 공격하는 패턴도 정령답지 않았다.

‘무슨 귀신이야?’

퀭한 두 눈으로 달려드는 정령을 검으로 베어버린 진희가 작게 혀를 찼다.

이 던전은 이상했다. 상수나 다른 헌터들은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진희가 보기엔 던전의 배경부터 정령의 모습까지, 어느 것 하나 상식적인 게 없었다.

물웅덩이 하나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왜 물의 정령이 나타나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곳에서 바람의 정령이 공격해 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정령들은 주특기인 자연계의 마나를 이용한 공격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몸만 들이미는 단순한 공격만을 하고 있다.

상수가 왜 던전이 3급 던전으로 측정되었으나 위험성은 그보다 낮다고 평가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와, 솜씨가 예사롭지 않으시네요.”

“…….”

상수가 다른 파티원에게 집적거리고 있을 때, 민성이 진희에게 다가왔다. 딴에는 호의적인 미소를 띠고 말을 걸어왔지만, 진희는 별다른 반응 없이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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