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61화
서한은 이주민에 대해서 모르는 진희를 위해 설명했다.
“이주민들 대부분의 특징은 보편적인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야. 헌터 중에서도 특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야 있지만, 이주민들은 거의 모든 이가 이레귤러지. 나도 처음엔 테러범들이 이주민이 아닐까 의심하긴 했어.”
비록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조사하진 못했다.
이주민이 정부의 역린이자 중요 관리 사항이란 걸 알고 있는 서한은 섣불리 이 화제를 꺼내지 않았다.
“정부 소속인 네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는데.”
“…….”
현성은 입을 다물며 대답을 거부했다. 진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테러범이 이주민이라고 의심하는 걸 왜 숨겨야 하는 건데요?”
“그건 좀 복잡하긴 한데…….”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서한은 고민했다.
“혹시라도 테러범이 이주민이라면 나중에 ‘공개’될 이주민들의 이미지에 불이익이 가니까?”
“공개할 생각은 있나 봐요.”
“그럼 당연하지. 한국인으로 교화된다면 이주민 숫자만큼의 정부 소속 헌터가 늘어나는 거니까.”
교화라는 단어에 담긴 부정적인 뉘앙스에 현성이 발끈했다.
“비인간적인 과정은 결코 아닙니다.”
“알아. 이주민에게 매- 우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고 있다는 거. 하지만 자유를 빼앗고 있다는 것도 진실이잖아?”
서한은 현성이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진희에게 말했다.
“이주민이 생기면 정부는 곧장 대상자를 특정 마을에 가둬. 그리고 현대의 상식을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이주민 학교에 다니게 하고, 전투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후 헌터 아카데미에 보내지. 여기까진 정상이지만, 문제는 따로 있어.”
언뜻 보면 이주민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이주민은 무조건 ‘국가 소속 헌터’가 되어야 해.”
“현성 씨처럼?”
“맞아. 정부에선 국가안보를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지.”
그 이면엔 정부 소속의 무력 집단을 만들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서한은 단정했다.
현재 한국뿐 아니라 세계 전체의 이슈 중 하나는 ‘민간 집단과 정부의 무력 균형’이었다. 헌터들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고 현대의 무기들은 정체되고 있다.
훈련된 군인보다 C급 헌터가 더 우월하고, 강력한 화약 무기보다 B급 헌터의 마법 한 방이 강력하다. 각국의 정부는 실력 있는 헌터를 모집하고 있지만,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막대한 부와 명예를 포기하고 국가에 소속되는 헌터는 극히 적었다.
이런 때에 이주민이란 존재는 정부의 입장에선 매우 탐나는 인재들이었다.
각자 특별한 능력을 가진 데다 마력 감응력이 높아 헌터가 될 재목이며, 신분과 소속이 없으니 어딘가로 섣불리 도망칠 수도 없는 신세다.
국가에 헌신하여야 신분을 주겠다는 건 국가의 입장에선 당연한 처사였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속내는 깨끗하지 못했다.
“헌터와 대립이 가능한 무력 조직이 필요하니까.”
헌터 기업들은 이주민의 존재를 알게 되자 자신들의 사원으로 스카우트하려 했지만, 정부는 신분이 불확실한 이들이라며 거절해 왔다. 법적으로 정당한 대답이었으나 기업들의 입장에선 속이 탈 지경이었다.
유능한 헌터가 될 재목들이 부와 명예와는 인연이 없는 국가 소속 헌터가 되고 있다니,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선 좋게 보일 리 만무했다.
물론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어떤 생각,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니 섣부른 영입은 지양하는 게 옳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정부의 철벽같은 접촉 금지는 기업들로 하여금 의심하게 만들었다.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화제를 꺼내려 한 게 아니니, 넘어가죠.”
“좋아. 하지만 너도 방위대 대표 노릇 하고 있는 만큼 계속 모르는 척할 수 없다는 건 알아둬.”
위치가 있으면 보이는 것도 다른 법이다. 헌터의 먹이사슬 중 최상위에 자리한 서한의 눈엔 비슷한 실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상부에 휘둘리는 현성이 답답해 보였다.
현성은 작게 헛기침하며 화제를 돌렸다.
“만약 테러 단체가 이주민이고 게이트를 사용할 줄 안다면, 자신들의 세계에서 넘어왔다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테러를 위해 게이트를 자유자재로 열 수 있다면 우선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찾는 게 최우선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수정구는 중요한 단서였다.
“수정구는 게이트 마법의 비밀 혹은 그들의 세계와 관련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 중요 단서가 아니라도, 그들이 수정구를 찾으려 했던 의도라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게 현성이 수정구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였다. 결국 테러범들의 의도 혹은 단서를 찾기 위한 다음 스텝인 것이다.
진희와는 다른 이유였지만 결국 방향은 같았다.
“좋아요, 같이 가죠.”
진희는 시원하게 수락했다. 현성이 먼저 말해오지 않았다면 진희 쪽에서 참가를 권유했을 것이다. 올라운드 포지션이 가능한 현성은 일원 중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헌터이기도 했으니까.
“서한 씨도 갈 거죠?”
“일정 보고.”
말은 저래도 따라올 걸 알고 있다.
“이번엔 파티를 일곱에서 여덟 명 정도로 꾸리려고 하는데, 데리고 올 사람 있으면 데려와요.”
“헌터야 얼마든지 데려올 수야 있긴 한데, 너도 데려올 거야?”
“전 애들 중 한 명 데려갈 생각이에요.”
“……진짜?”
진희의 발언에 서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곁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카온도 인상을 찌푸렸다.
삼인방과 청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 중이란 건 그들도 아는 사실이었다. 천재 부류에 들어가는 청하는 이미 D급을 넘어서 C급 헌터를 바라볼 정도였다.
하지만 던전에 데려가는 건 다른 문제다. 몇 등급일지도 모르는 던전에 초보자를 데려가는 건 자살행위였다. 드래곤이라는 측정 가능한 보스 레이드에서 시영을 데려간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확정은 아니에요. 그냥 기회를 주려고요.”
“기회?”
“네.”
향상심을 유발할 좋은 기회였다.
진희가 출장을 나갈 때마다 부상을 입고 오다 보니, 아이들은 다음엔 자신들이 같이 가서 지켜주겠다는 기특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물론 진희도 아이들이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파티원과의 체급 차이가 어마어마하니까.
하지만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출발은 한 달 뒤에 할 거고, 3주 후에 아이들의 실력을 시험할 거예요. 그중 합격선을 넘으면 참가시키고, 아니면 마는 거죠. 처음 있는 시험, 시합이니까 준비하면서 성장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꼭 선생님 같네요.”
“단장이라서요.”
자신의 스콰이어의 실력을 체크하는 것도 기사의 의무 중 하나다. 진희는 카온에게 아이들의 수련에 좀 더 집중하라는 말을 하고선 서한과 현성에게도 충고했다.
“아, 이번에 출발할 때까지 두 분도 수련 좀 하고 오세요.”
“무슨 수련?”
“서한 씨는 방패와 한 손 검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 힘과 속도는 있는데 기교가 너무 부족해요. 몬스터 잡을 때 양손 검이 편하다는 건 인정하는데, 적에 따라서 안 통한다는 거 알고 계시죠? 인간형 적에게 너무 취약해요.”
진희는 그간 생각하고 있던 서한과 현성의 단점을 읊었다.
“현성 씨는 저주나 주술을 쓰는 건 좋은데, 체술 말고 접근전이 가능한 무기술 좀 익혀 봐요. 공격력이 부족하니까 마력 저항 있는 몬스터들에겐 맥을 못 추잖아요.”
“……제 본직은 따로 있는데요.”
“사람 잘 죽인다고 만족하게요?”
“…….”
말 참 독하게 한다. 서한이 떨떠름한 얼굴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넌 뭐 부족한 거 없고?”
“전 완벽하니까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당연히 있죠. 저도 대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근력 좀 기르고, 탱커 노릇 할 수 있게 방패를 다시 들어볼 거예요. 서한 씨보다 제가 할 게 더 많을걸요?”
“그게 한 달 만에 돼?”
“해 보고 안 되면 말죠.”
진희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각자 스타일이 뚜렷한 만큼, 서로의 단점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신체 조건은 가장 좋지만 기교가 떨어지는 서한, 기교는 높으나 신체 조건과 방어력이 부족한 진희, 올라운더인 만큼 공격력이 부족한 현성.
물론 현성과 서한이 보기에 진희는 완벽에 가까운 전사였지만, 아직 전성기에 비해 부족하다는 건 진희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서로가 모여 있을 땐 시너지가 좋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수련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젊은 나이에 S급에 도달한 천재들이었다. 말은 어렵다고 해도 수련을 하다 보면 분명 큰 진전이 있을 거라 진희는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기회가 없으면 성장을 안 하는 타입이지.’
성취감에 목마른 서한과 정의에 강박증이 있는 현성은 목적만 뚜렷하면 어떤 장애물이라도 넘을 천재들이었다.
진희는 천재들의 성장 속도를 목격한 경험이 제법 있었다.
일 년, 한 달, 하루가 멀다 하고 성장하는 게 천재란 존재다. 드래곤과 미노타우로스의 레이드라는 경험을 한 서한과 현성은 처음 만날 때보다 좀 더 성장해 있었다.
빛이 보이는 원석을 가만히 썩힐 수는 없겠지.
아직도 그들을 완벽한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나름의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카온, 넌 나랑 수련하자.”
“예.”
진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자러 갈게요. 이야기 더 하시고 갈 거면 알아서 하세요. 문만 잠그고 나가시고.”
“나도 여기서 자고 가고 싶은데, 돌아가면 일이 산더미거든.”
“숙박료 일박 25만 원인데요. 손님.”
“안 자.”
서한이 코웃음을 내며 거절했다.
* * *
아이들에겐 3주 후에 시합을 할 거라 말해두었다. 서로 싸우는 토너먼트식으로 진행될 거라고 덧붙였다.
좋은 성적을 받은 사람은 이번 파티에 참가시키겠다고 덧붙이자, 안 그래도 몸이 달아 있던 아이들은 눈을 빛내며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진희도 준비를 시작했다. 수련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게 있었다.
다름 아닌 자금 수급이다.
“B급 헌터 서진희입니다.”
“네, 확인되었습니다.”
강남역,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한 건물의 입구.
진희가 면허증을 직원에게 내밀었다. 이곳은 최근 게이트가 발생해 건물 전체를 폐쇄하고, 헌터만을 입장시키고 있는 일종의 ‘사냥터’였다.
민간인의 안전을 위해 빠른 폐쇄, 클리어를 추진하고 있는 이 게이트는 위험도와 수익률이 모두 최상으로 유명했다.
게이트 건너편의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특별 관리형 던전이었으며, 내부는 3급에 준하는 위험 몬스터가 가득했다.
최근 업적으로 인해 B급으로 자동 승급이 된 진희는 던전 내부로 태연히 걸어 들어갔다. B급 헌터는 파티 없이도 던전 출입이 가능했다.
진희가 이 던전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빠른 폐쇄를 위해 정부가 공개 및 관리하는 ‘사냥터’ 던전은 세금이 붙지 않기 때문이다.
‘B급이랑 C급 세금 차이가 두 배일 줄은 몰랐어.’
새삼 승급한 게 아까워지는 순간이었다. A급을 노려보지 않겠냐는 현성의 은근한 권유를 거절한 진희는 B급 헌터가 내는 세금도 아까워 인상을 찌푸렸다.
헌터 면허증 덕분에 아티팩트나 마정석, 유물의 거래가 쉽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덕분에 억 수준의 세금이 나가는 단점도 존재했다. 괜히 신림에 비면허 헌터들이 판을 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 던전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다. 세금을 걷는 것보다 민간인들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정부의 정책 덕분이었다.
하긴 이런 강남 한복판에 특별 관리형 던전이 생겼으니 마음이 급해지는 것도 이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