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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60화 (60/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60화

어릴 적 진희도 큰 의심을 품어 본 적이 없었다. 던전과 게이트에 익숙해질수록 정체불명에 대해 무서워하기보단,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금은보화에 눈길이 가게 되었으니까. 당장 진희가 헌터가 된 계기도 야망보단 ‘지금보다 맘 편히 살기 위해서’였다.

던전을 탐험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헌터가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가짐이었다.

제국의 멸망, 가문의 후기보다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한 건 게이트의 존재였다.

제국을 멸망시킨 게이트도 우연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마침 게이트를 열고 닫을 수 있는 무리가 있으니까 말이지.’

예전에 만난, 마법처럼 게이트를 만들어내던 테러범의 얼굴이 떠올랐다.

테러범들과 게이트, 게이트와 제국, 제국과 바제트.

동떨어져 있던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는 것을 느끼며, 진희는 발걸음을 돌렸다.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 줄 사람이 한 명 있었다.

* * *

“이 녀석들은 게이트를 열고 닫을 수 있지?”

어두운 방, 서혁은 현성에게 말했다. 현성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서혁을 경계하고 있었다. 마력은 느껴지지 않지만 요주의 인물인 만큼 언제든 반격을 할 수 있도록 마법진 또한 발동 상태에 있었다.

현성이 그러거나 말거나, 서혁은 태연하게 의자를 가져와 앉고선 탈진에 빠진 레인을 바라보았다.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더라고. 요즘 같은 현대 사회에서 완벽히 정체를 숨기는 게 가능할까? 사소한 정보까지 숨기는 건 불가능한데 말이야.”

“……마치 모든 인간의 정보를 아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모두 알지는 못해도, 모두 조사할 수는 있어. 대상이 누가 됐든 단서는 나오게 마련이거든. 산골 오지에 사는 사람이라도 병원을 간다든가, 쌀을 사기 위해 집 앞 마트에 들른다든가. 그런 사소한 것들이 전부 조사 범위지.”

일반인들끼리도 사생활 조사가 가능한 세상이다. 하물며 전문가의 수준이 된다면 말할 것도 없었다.

서혁은 이 일을 하면서 이번처럼 조사가 버거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현대의 인간은 정보기술에서 벗어날 수 없어.”

서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정보가 아예 나오지 않는 인간을 두 종류로 구분해. 첫째, 신분을 속이고 다니는 녀석들. 둘째, 누군가가 일부러 정보를 삭제한 녀석들. 하지만 이 테러범들은 모두 해당되지 않아.”

현성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하고 있었지만 서혁은 기절한 레인만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신분을 속이기 전 과거도 찾을 수 없고, 정보를 없앨 정도로 면밀하게 움직인 것도 아니거든. 그렇다면 예외적으로, ‘애당초 이곳에 살지 않는 녀석들’일 가능성도 있는 거지.”

“살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계속 모르는 척할 거야? 알고 있잖아, ‘이주민’에 대해서.”

이주민, 혹자는 난민이라 부르는 이들.

역시 알고 있었나, 현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주민이란 ‘게이트에서 넘어온’ 인간들을 뜻하는 단어였다. 진희의 곁에 카온이 그러했듯이, 실제로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이주민들은 제법 존재했다. 단지 정부의 철저한 관리로 대중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왜 지금껏 테러에 대한 정보를 언론에 공개하지 못했고, 이 녀석들의 신상명세를 특정하지 못했는지, 그 모든 의문은 이 녀석들이 이주민이라면 모두 설명이 돼.”

이주민에 대해 철저한 비밀을 지키길 원하는 세계의 정부들의 뜻이라면, 수사 진척이 계속 미진했던 것 또한 이해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당신도 이 아이를 직접 심문하려고 데려온 거 아냐?”

“…….”

서혁의 말에 현성이 입을 다물었다.

이주민의 비밀은 현성이 상부의 인사들을 못 믿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여간 한국 정부는 기업들 눈치 엄청 봐요.”

방위대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서혁은 현성의 침묵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심문으로 큰 성과가 없다면, 이주민 위주로 한 번 조사해 봐. 정보 기록이나 신상명세보다는 던전 출입 기록, 게이트 발생 현황 같은 걸 보는 게 효과적일 거야.”

“어째서 도와주는 겁니까?”

현성만이 아는 이 장소를 어떻게 찾았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서혁 정도의 인물이라면 장소뿐 아니라, 방위대 내부의 기밀 사항을 알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보다 의문이 드는 건 왜 그가 자신을 돕느냐는 것이었다.

“자식 일이니까, 태어날 적부터 뭐 해준 게 없어서 말이야. 이런 때라도 도움이 되어줘야지.”

“자식이 연관되어 있습니까?”

“뭐?”

서혁은 설마 하는 얼굴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현성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방위대 헌터라는 양반이 이렇게 눈치가 없어?’

서혁은 새삼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딱 봐도 닮은 얼굴 아닌가.

“몰랐어? 나 진희 아빠야.”

“네?”

현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몰랐어?”

“어…….”

답지 않게 말을 흐리는 현성을 보며 서혁이 혀를 찼다.

“의외로 허당이네, 당신.”

“…….”

13. 정령, 무기, 그리고 성벽

“수정구를 열어볼 거야.”

“……꼭 밥상에서 말해야 하냐?”

“우리 밥상이거든요?”

진희가 수정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 건 식사를 하던 도중이었다. 훈련을 막 끝낸 3인방과 카온, 청하, 그리고 시영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 일의 뒷수습이 다 끝났는지, 초췌해진 안색의 서한이 찾아왔다.

그를 보고 식사시간이라고 내쫓으려 한 카온이었지만, 서한은 거대한 덩치를 지나쳐 진희의 옆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저녁 반찬은 서한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가정식 음식들이었다.

그는 장조림 국물에 밥을 말며 말했다.

“쪼잔하게 그러지 마라.”

“…….”

오래간만에 보는 뻔뻔한 모습에 진희가 코웃음을 쳤다. 카온은 혀를 차며 장조림을 진희 앞으로 옮겨버렸다.

“근데 수정구는 왜?”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니까요.”

“뭔가 켕기는 게 생겼나 봐?”

이제 진희의 말 돌리기에 익숙해진 서한이 태연하게 말했다.

“뭐, 그래도 난 찬성이야. 어차피 아무도 감정 못 한 물건인데 직접 까보기라도 해야지. 게다가 좀 기대되기도 하고.”

“뭐가 기대돼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던전이라며. 던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면 큰 이득이거든. 게이트를 만드는 기술이라도 발견되면 난리 날걸.”

결국 돈 때문이지, 국을 맛있다며 들이켜는 서한이 덧붙였다. 던전의 비밀 하나가 밝혀질 때마다 기업, 시장은 휘청거린다. 먼저 정보를 취득하고 시장을 장악해야 선두를 유지할 수 있다.

최근 던전에 대한 연구가 지지부진하던 중이었다. 이런 때 수정구의 던전은 서한에게도 중요한 소재였다.

“게다가 업적을 더 쌓아두고 싶기도 하고.”

“후계자 싸움인가요?”

“그렇게 표현하니 드라마 같긴 하네.”

하지만 맞는 말이다. 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계자 이야기가 나오니 시영이 화들짝 놀라 종혁의 뒤로 몸을 숨겼다. 굳이 네 얘기 꺼내려는 건 아니었는데, 서한이 작게 중얼거렸다.

“하여간 그래서 나는 찬성이야. 파티를 꾸린다면 꼭 참여하고 싶어.”

서한이 참가한다면야 진희에게도 나쁠 건 없었다. 드래곤 던전의 위험도를 생각하면 유능한 파티원은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신현성은?”

“몰라요, 요즘 연락도 뜸하던데요?”

테러범 중 한 명을 잡았으니 굳이 진희의 곁에서 잠행할 필요도 없어졌다. 귀국한 이후로 현성을 본 적이 없던 진희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그럼 그 녀석은 빼고 이번엔 내 쪽에서도 사람을…….”

서한이 묘하게 밝은 얼굴로 말을 하려 하자, 갑자기 식당 문이 열렸다.

“오랜만이네요.”

“쟤 저기서 기다리고 있던 거 아냐?”

서한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현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조금 피곤한 얼굴로 다가왔다. 문 쪽에 있던 청하가 수저를 내밀었지만 생각이 없는 듯 거절하며 진희에게 말했다.

“진희 씨, 갑작스럽지만 진희 씨 아버님을 만나고 오던 길입니다.”

“우리 아빠요?”

자질구레한 인사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꺼내자, 전후 사정을 모르는 진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네, 업무상 일이 있어서…….”

“네가 누굴 만났다고?”

그때 현성의 등장에 짜증이 난다는 듯 된장국을 마시고 있던 서한이 인상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서혁과 나눈 대화에 대해 진희와 말하려던 현성이 서한을 바라보았다.

“진희 씨 아버님이요.”

“그분을 왜 만났는데?”

“일 때문이라니까요.”

“무슨 일?”

“당신이 알아서 뭐 하게요.”

현성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오히려 인상이 굳어진 건 서한이었다. 서한이 다시금 입을 열려 하자 진희가 막아섰다. 괜한 참견으로 이야기가 진전이 없던 탓이었다.

“입 좀 다물고 있어 봐요.”

“…….”

다소 과격한 어조에 서한이 억울하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뭔 얘기 했는데요?”

“음, 게이트 이야기였습니다. 이곳에서 이야기하긴 좀 그렇습니다만…….”

현성은 이쪽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우선, 수정구를 사용해 봐야겠습니다.”

“수정구요?”

진희가 고개를 돌려 서한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 진짜 어디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타난 거 아니에요?”

“…….”

‘어찌 이렇게 타이밍 좋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거지.’

진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 * *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일행은 응접실에서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꿍얼거리는 서한을 무시하고 현성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주민에 관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현성은 간략하게 설명했다. 게이트를 통해 국내로 넘어온 이주민의 존재를 먼저 설명하고, 테러범의 정체가 이주민일 것 같다는 의심을 덧붙였다.

“근거는요?”

“당신의 아버지입니다.”

“……우리 아빠 발이 넓네.”

서혁은 긴 시간 동안 조사를 했다고 한다.

사소한 정보라도 찾아보려 애썼지만 얻을 수 있는 건 없었고, 오로지 테러범들이 게이트 마법을 사용했다는 증언만이 남았다.

아무래도 테러범들과 부딪힌 건 진희만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다른 이들도 테러범들이 도주할 때 게이트를 사용해 도망쳤다고 증언했다.

“신분이 없으며 마력을 쓸 수 있고 실력 있는 단체가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심지어 조직 체계가 갖춰진 단체라면 더욱더 그렇죠. 다른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저도 이주민 출신이란 의견에 찬성하는 편입니다.”

“이유는요?”

“능력의 특징 때문이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서한이 대신 대답했다.

“테러범들의 능력은 일반적인 헌터의 능력이 아니었어. 게이트를 만든다든가, 기생충을 다뤄 사람을 꼭두각시로 변화시킨다든가. 듣자 하니 신체를 물로 변화시키는 능력자도 있었다지?”

“맞습니다. 알고 계시는 게 많군요.”

“너보단 많지.”

현성은 서한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서한의 귀로 들어가는 정보가 현성이 모은 정보들보다 정확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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