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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59화 (59/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59화

물론 어떻게 살아 있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폐인이 되어버린 그녀의 동생을 떠올리며 클로이가 즐겁다는 듯 웃었다. 그것까지 진희에게 말해줄 생각은 없었다. 가장 중요한 비밀과 접촉된 정보였으니까.

노만력 1015년. 몬스터가 나타난 지 4년이 되는 날, 제국은 멸망했다.

제국을 멸망시킨 대악마는 그걸로 자신의 일이 끝났다는 듯, 나타날 때처럼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췄다.

“그게 경의 제국이 멸망한 원인이랍니다.”

“…….”

“내 사후의 일은 이제 됐어.”

진희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클로이의 예상과는 다르게 진희는 자신의 죽음 이후의 일이 크게 궁금하진 않았다. 물론 호기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클로이의 말에 신경 쓸 만큼 진희는 감정적이지 않았다.

“근데 너와 난 어떻게 환생할 수 있었던 거야?”

그리고 카온은 무슨 방법으로 이 세상으로 넘어올 수 있게 된 것인가? 카온의 이야기를 굳이 꺼낼 생각이 없던 진희는 질문의 범위를 자신과 클로이로 한정시켰다.

“경과 저만이 다시 태어날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저희의 케이스는 우연이었겠죠. 하지만 환생하게 된 경위는 알고 있답니다.”

“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줄래?”

선문답도 아니고, 애매모호한 대답에 진희가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클로이는 작게 웃었다.

“저희의 대륙에서 누가 환생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란 거예요. 왜냐하면.”

클로이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번엔 웃음기가 섞이지 않은 매우 진지한 목소리였다.

“‘지구로 향하는’ 게이트를 발견했거든요.”

“뭐?”

이 대화에선 들을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게이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진희는 저도 모르게 되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제국이 멸망한 후, 노만은 몬스터들이 대체 어디서 나타났고, 갑자기 사라졌는지 알아내기 위해 조사팀을 꾸려 보냈습니다. 수많은 신관으로 이루어진 조사팀은 이내 충격적인 결과를 들고 왔어요. 다름 아닌 ‘게이트’의 출몰이었습니다.”

“지구에 있는 그 게이트?”

“네, 맞아요. 이곳의 게이트와는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대개는 비슷했죠. 아시겠어요? 제국은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에게 멸망당한 거예요.”

게이트란 존재를 알게 된 대륙 각국에선 각자의 방식대로 게이트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제국의 멸망보다 새로운 신비의 출현이 대륙을 더 큰 충격에 빠뜨렸다.

다른 세상과 이어지는 문. 마법사들은 이 신비를 해석하기 위해 밤낮을 걸쳐 연구를 거듭했다. 아직 열려 있는 제국의 게이트를 조사한다든가 게이트를 만드는 마법을 개발하기 위해 새로운 학파가 출몰하는 등, 막대한 예산과 시간을 들여 게이트의 신비를 해석하였다.

그러던 중, 그들은 제국의 수도에서 지금껏 본 적 없던 거대한 게이트를 발견한다.

“그게 바로 지구로 향하는 게이트였어요.”

“게이트가 제국에서 나타났어?”

“네.”

회색빛 하늘과 콘크리트 빌딩이 보이는,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게이트가 그곳에 출몰했다. 마법사들은 육안으로 다른 세상의 문명을 볼 수 있는 제국의 수도로 몰려들었다. 그중에선 노만의 신관들도 있었다.

“하지만 게이트를 넘나들 순 없었어요. 들어가는 순간 튕겨 나왔거든요.”

“이유가 뭔데?”

“마법사들은 성벽과 운명, 존재의 증명, 재정립 같은 어려운 말을 썼지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없었어요. 그저 저쪽 세계와 이쪽 세계의 밀도차가 커서 그렇다고 들었어요.”

마법사들의 이론을 기사가 이해하긴 어려웠다. 진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렇게 관찰을 계속하던 도중에, 마법사들은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사람은 게이트를 통과할 수 없지만, ‘영혼’은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아무리 마법이 발전된 대륙이라 하더라도 영혼을 재단할 능력자는 없었다. 그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신에서 빠져나간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영혼을 감지하는 마법만이 개발된 상태였는데, 그 마법으로 게이트를 넘나드는 소수의 영혼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영혼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는 곧 인간의 소원 중 하나인 ‘환생’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마법사들은 세상을 떠도는 영혼들을 모아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도록 기계 장치를 만들어냈다. 주변의 영혼을 모아 게이트를 향해 뿜어내는 단순한 장치였다.

이후 모든 영혼이 게이트를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소수의 영혼은 통과하고 있다는 게 증명되었다.

“그럼 나도 너도, 그 기계를 통해 게이트를 넘어 이 세상에 환생했다는 이야기야?”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바제트가 살던 세계가 판타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SF로 변질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다른 세상으로 환생하기 위한 장치라…….

헛소리로 치부하고 싶지만, 진희와 클로이, 그리고 서한의 케이스를 생각해 보면 영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닌 듯싶었다.

게다가 지구에서 나타나는 게이트도 다른 세상과 연결되고 있다는 특징을 생각한다면, 지구와 대륙 간의 게이트가 나타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오히려 진희, 카온, 클로이라는 예시가 있으니 대륙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하나쯤 있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 게이트, 지구에선 찾을 수 있어?”

“찾아보려고 시도는 해봤는데, 발견하진 못했어요. 게다가 게이트가 양방향인지조차 모르니까요.”

진희가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카온은 그 게이트를 통해 이곳으로 넘어온 것일까.

아직 해결되지 못한 의문점은 남아 있었다. 카온은 어떻게 맨몸으로 게이트를 넘어온 것일까. 그리고 자신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영혼들도 기억을 가진 채로 환생했을까. 대륙의 환생자가 나타났다면 다른 세계의 죽은 이들도 지구에서 환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진희는 고개를 들어 클로이를 바라보았다.

음산한 첫 만남치고는 클로이는 진희에게 끝없는 호의를 보여 왔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성심성의껏 알려주었고, 그렇다고 말속에 음모를 숨겨놓진 않은 듯했다.

대가 없는 호의에 의심이 들긴 했다. 하지만 클로이가 자신을 속인다고 해서 그녀가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이 많은 물음은 어디까지나 호기심에 의한 것이다. 진희는 대륙으로 돌아간다거나, 제국을 멸망시킨 몬스터들을 토벌한다는 복수심 따위는 요만큼도 없었다.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클로이는 바제트를 어떤 인물로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진희가 되면서 그녀는 과거에 미련을 버렸다.

진희는 지구에서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바제트 때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매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네가 바라는 내 모습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진희가 존경이 우러나오는 클로이의 눈동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궁금한 건 더 없으신가요?”

“응, 대충 알겠어.”

진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

“뭐든지요.”

“넌 과거에 내 적이었어. 그런데 왜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거야?”

“아직도 모르고 계셨나요?”

클로이가 놀랍다는 듯 입을 가렸다.

“제가 당신을 사모하기 때문이에요.”

“…….”

장난도 심해라. 진희는 혀를 차며 뒤로 돌아 걸어갔다.

“언제든 궁금한 게 생기시면 연락 주세요. 뭐든 대답해 드릴게요.”

그래, 진희는 짧게 대답하고 방을 나갔다. 각오한 만남에 비해 허무한 이별이었다.

진희가 나간 방문을 보며 클로이가 중얼거렸다.

“아무런 관심도 없다…… 고?”

거짓말을 해도 적당히 하셔야지. 클로이가 즐겁단 얼굴로 고개를 돌려, 창문 바깥을 바라보았다. 갈색 피부를 가진 거구의 사내와 합류해 걸어가는 진희의 뒷모습이 보였다.

본인의 사후가 궁금하지 않았다면, 클로이의 긴 설명을 다 듣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굳이 이 먼지 많은 방에서 기다리지 않고 돌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진희’는 궁금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안의 ‘바제트’는 아직도 과거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사모한다는 것도 거짓말이 아닌데.”

당신의 아름다움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온몸에 피를 칠갑하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적을 도륙하는 그 모습은 마치 신과 같았다. 전쟁과 아름다움의 신, 어울리지 않는 두 표현이 치명적으로 어울리는 그녀를 어찌 미워할 수 있을까.

아군이 죽어 나가는 전장에서도,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당신은 존재만으로도 완벽해.

그 모습을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아니, 볼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클로이는 미려한 청색 눈동자를 감았다. 오늘 만난 진희의 모습을 음미하면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했다.

* * *

“제국…… 이라.”

돌아가는 길, 진희의 중얼거림에 카온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진희의 얼굴에선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카온의 걱정과는 달리, 그녀는 전생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는 듯했다.

그럼에도 카온은 진희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카온.”

“예.”

“아직도 나한테 숨기는 게 있어?”

“……없습니다.”

“있구나.”

카온의 늦은 대답에서 많은 것을 읽어낸 진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클로이가 말한 게 전부가 아니란 뜻이겠지.

클로이의 성격은 짐작할 수 없었지만, 그녀가 마냥 정직한 사람이라고 믿진 않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어떤 호감을 품고 있든지 알 바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호의를 가졌으나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당장 최근에 만난 괴짜 니케도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네 생각엔 ‘지구의 게이트’는 어떤 느낌이야?”

진희는 클로이와 나눈 대화를 모두 카온에게 들려주었다. 제국의 멸망, 게이트의 출현, 카온은 그 어떤 이야기에도 놀라는 반응이 없었다.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진희는 카온의 생각이 궁금했다. 대륙에서의 게이트와 지구에서의 게이트는 어떤 차이점이 있던 걸까.

“다소 편의적이긴 합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생각이 더 이해가 안 갑니다.”

카온에게 있어서 게이트란 지옥의 문이다. 제국이란 거대한 산을 삽시간에 무너뜨린 악마이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몽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구에선 위험하긴 해도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는 광산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게이트 안, 던전이 인간에게 너무나 편의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해당 국가의 언어를 따라 쓰는 던전 내부의 안내문, 커다란 동굴 안에 덩그러니 존재하는 보스 몬스터, 무한으로 몬스터가 리젠되는 던전, 녹이 조금도 슬지 않은 무구들. 모든 던전이 그렇다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대중이 생각하는 던전의 이미지는 이처럼 편의적이었다.

“하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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