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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55화 (55/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55화

“안 돼요! 의사가 절대안정을 취하라고 한 거잖아요!”

“절대안정까진 아니었는데…….”

그냥 안정을 취해라 정도였다. 진희가 말을 정정하려 했지만, 소라가 날이 선 목소리로 카온에게 말했다.

“오빠! 업어요!”

어조는 거의 명령 수준이었다. 카온은 또 그 말에 잠자코 따랐다.

“실례하겠습니다.”

카온은 진희의 다리에 손을 넣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마치 어린 아기를 어깨에 짊어진 것처럼, 엉덩이에 팔을 대고 등을 안았다. 아기가 분유 먹고 나서 트림하게 만들기 위해 안는 바로 그 자세였다.

갑자기 높아진 시야에 진희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들이 ‘침대를 준비하라-!’ 하고 보육원에 달려가고 있는 게 보였다. 아이 취급당하는 부끄러운 자세는 둘째 치고, 꼬맹이들에게 간호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 머리가 아팠다.

“이럴 필요까진 없는데.”

그렇다고 걱정해 주는 애들에게 그만하라 잔소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숨을 쉬는 진희에게 카온이 말했다.

“……다음엔 반드시 따라갈 겁니다.”

진희는 고개를 내려 카온의 정수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제법 화난 표정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고 보면 벌써 두 번째였다. 카온을 놔두고 갔다가 크게 상처 입고 돌아온 것이. 이번에야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 나름대로 자책하고 있을 게 뻔했다.

화를 풀라는 듯이 진희가 카온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렸다.

“걱정 마, 다음부턴 싫다고 해도 데리고 다닐 거니까.”

탱커의 필요성을 새삼 느꼈거든. 진희가 카온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 * *

진희의 동영상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조회수는 천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정체를 밝히겠다는 분석 영상부터 패러디, 유명세 덕을 보려는 이들까지 나타나 해당 영상 사이트에서도 큰 소란이 일었다.

[전격 분석, 역천검의 비밀! A급? S급?]

[역천검 중국 현지 반응 모음.]

[역천검은 사실 한국의 비밀병기였다?]

“제목 진짜 싸구려다.”

반쯤 자신의 방이 된 강당의 중역 의자에 널브러진 진희가 중얼거렸다. 아이들의 병문안 겸 눈물의 환영식을 끝내고 쉬는 중이었다.

붕대와 부목을 풀고 싶었으나 소라의 눈길과 카온의 무표정으로 인해 포기한 그녀는, 아이들의 부담스러운 눈길을 피해 강당으로 피신했다.

물론 카온의 시중은 피할 수 없어서, 그는 강당 한구석에서 청하와 훈련하며 이쪽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세상 좋아졌네, 단원이 단장 눈치도 주고. 진희가 투덜대며 폰의 화면을 내렸다.

“근데 역천검은 또 뭐야?”

“중국에서 온 영상에서 그렇게 소개되었다고 해요.”

흠뻑 땀을 흘린 청하가 다가오며 말했다. 청하는 그새 키가 크기 시작해, 진희의 어깨 위까지 성장했다. 이런 일에 ‘시간이 흘렀구나……’ 같은 소리 하면 안 되는데, 괜히 연장자의 버릇이 튀어나온 진희가 물었다.

“중국에서 뭐라고 했는데?”

“누나가 미노타우로스를 잡았을 때, 천장까지 점프했다가 내려왔잖아요, 그래서 역천(逆天)하는 검(劍)이라고 해서 별명을 붙였나 봐요. 은검희, 검성 같은 별명도 있었는데, 그게 제일 잘 어울린다고 이름 대신에 쓰는 것 같아요.”

“별명이 하나같이 왜 그래?”

“중국 감성 아닐까요? 게다가 헌터 네임이란 게 그런 오그라드는 게 많잖아요.”

그건 그렇지. 현성이나 서한처럼 철저히 이름을 감추고 활동하는 최상위 헌터도 많았지만, 명예를 중요시하는 상위 헌터들은 다들 한가락 할 것 같은 별명을 쓰곤 했다.

“청하 넌 뭐 쓰고 싶어?”

“닉네임이요?”

음- 하고 고민하던 청하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 요정의 기사 같은 거요?”

동생 사랑이 지극하구나. 진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청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금방 식을 인기겠지?”

“글쎄요……. 우리나라 사람들 이런 거 되게 좋아하잖아요. 순위싸움, vs 붙이기 같은 거.”

청하가 폰 한구석에 적힌 ‘금강의 비밀병기 vs 역천검!’을 가리켰다.

금강의 비밀병기라고 하면 서한을 말하는 걸까. 근데 그 사람 별명이 비밀병기야?

“어? 얘들도 영상 올렸네요.”

“누군데?”

“이 사람들 몰라요? 되게 유명한데.”

청하의 손가락이 가리킨 영상의 이름은 ‘브리온 쌍둥이의 본심’이었다. ‘헌터들의 사담’이라는 채널의 영상이었는데, 조회수가 매우 빠르게 상승 중이어서, 현재 사이트 랭킹 2위를 선점하고 있었다. 1위는 물론 원본 영상이었다.

“B급으로 면허를 얻은 신인 헌터가 올해 3명이나 나왔는데, 그중 두 명이 이 ‘브리온의 쌍둥이’예요.”

브리온은 금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국계 기업으로,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헌터 회사였다. 그만큼 신인 발굴에 누구보다 힘쓰고 있어서, 유능한 신인이 나온다면 거침없이 프로모션을 하기로 유명했다.

금강이 다소 보수적인 기업인 반면, 브리온은 헌터 연예계 사업도 겸하는 진보적이고 젊은 회사로 알려져 있다.

“바로 B급 되는 게 드문 일이야?”

“엄청 드문 일은 아닐걸요? 인터넷 뉴스에서도 가끔 나오긴 하니까……. 쌍둥이인 데다가 브리온의 신인이라서 더 주목하는 거 아닐까요?”

“그래?”

서한과 같이 다니다 보니 대기업에 대한 이미지를 평가절하한 감이 없지 않았다.

“브리온은 정의롭고 밝은 이미지의 헌터가 많잖아요. 그래서 브리온에서 광고하는 헌터는 다들 멋있어요.”

“그럼 금강은 악당 같고 어두워?”

“그, 그건 아닌데요.”

청하가 생각해 보니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하여간 한 번 봐볼까, 진희는 영상을 클릭했다.

지나가고 있던 브리온의 쌍둥이 헌터를 취재하는 영상으로 보였다. 어딘가로 향하고 있던 쌍둥이를 계속 불러 세워, 집요하게 질문하고 있었다.

[브리온의 헌터는 아니란 말씀이시죠, 그럼?]

[저흰 아무것도 몰라요.]

[혹시 금강의 헌터일까요? 그렇게 되면 금강의 S급 헌터, 혹은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란 이야기인데요!]

[모른다니까요!]

아무래도 촬영자는 끈질긴 파파라치인 듯했다. 역천검의 정체를 묻기 위해 계속해서 쌍둥이를 따라가는 모습을 3분간 보여주는데, 마치 유쾌한 모습인 양 빠른 재생으로 코미디적인 배경음악까지 깔아 놨다.

결국 참다못한 쌍둥이 중 한 명이 돌아서며 소리쳤다.

[전 그런 신인 본 적도 없고! 알 생각도 없으니까 가세요!]

[그럼 한마디만 더 부탁드릴게요, 요즘 금강에 비해 브리온이 업적이 뒤처진다는 평이 많은데, 이번 역천검이 금강의 헌터라면 큰 위기감을 느끼시지 않나요?]

[안 느낍니다! 우리가! 제 누나가 더 강하니까요!]

이제 그만 가! 하고 그가 문을 닫는 것으로 인터뷰가 끝났다. 그리고 깜깜해진 화면에 ‘브리온의 쌍둥이, 역천검에게 선전포고!’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영상 정말 저질이다.”

요즘 인터넷 영상 콘텐츠에 문제가 많단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로 안하무인일 줄은 몰랐다.

정식 기자들은 헌터들의 입김이 무서워 사생활까진 파고들지 않는다던데, 소속되어 있지 않은 파파라치들은 그런 눈치 따윈 없는 듯했다.

“이 채널 주인이 진짜 겁 없긴 해요. 저번에 헌터한테 맞았다고 고소하겠다면서 청원도 올리던데요?”

“왠지 이 사람이 먼저 잘못했을 것 같네.”

청하가 ‘그건 그래요’ 하고 웃었다.

“근데 너는 이런 영상 챙겨보는 편이야? 잘 아네.”

“음, 네. 저 말고도 다 그러는 걸요?”

듣자 하니 초등학생의 장래희망 1순위가 헌터, 2순위가 인터넷 스트리머란다. 진희는 꿈에 가득 찬 청하의 모습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저번에 뉴스에선 고등학생 장래희망이 1순위가 대기업 직원이고 2순위는 공무원이었단 말이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각성하지 못하는 현실을 깨닫고 꿈에서 눈을 돌린 탓이겠지. 굳이 청하의 꿈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진희는 잠자코 넘어갔다.

“……마스터.”

“응?”

그때, 수련을 하던 기구를 정리한 카온이 다가왔다.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누군데?”

“브리온에서 왔다더군요.”

“브리온?”

여기서 왜 브리온 이름이 나오지? 진희와 청하가 동시에 고개를 마주했다.

* * *

청하는 묘하게 흥분한 얼굴로 ‘설마 쌍둥이가!’ 하고 달려나갔지만, 정작 찾아온 건 정장을 입은 여성이었다. 딱 봐도 회사원의 기운이 느껴지는 정중한 인사를 받은 청하가 더듬거리며 그녀를 진희에게 안내했다.

“반갑습니다, 서진희 씨.”

“네, 반가워요.”

갈색 도는 머리카락을 가르마를 탄 후, 목 뒤에서 깔끔하게 하나로 묶은 여성은 수려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진희보다 반 뼘은 큰 키를 가지고 있어서, 진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갔다.

“헤드헌터 박정인이라고 합니다.”

건네준 명함엔 고풍스러운 폰트로 그녀의 소개가 적혀 있었다.

“바르고 양심적인 알선……?”

“네, 헌터 구직과 구인 연결을 맡고 있습니다. 들어본 적 있으신지요?”

“아뇨. 하지만 무슨 일을 하시는지는 알 것 같네요.”

하긴 이런 직업이 있을 만도 했다. 헤드헌터란, 구인을 하는 회사와 구직을 하고 있는 직원을 서로 알선하여 연결해 주는 직업을 말했다. 인적 자원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헌터 사업에 이런 직종이 존재하는 건 당연했다.

“브리온에서 오셨다고 들었는데요.”

“네, 현재는 브리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잠깐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정인이 묻자 진희가 강당 안쪽으로 안내했다. 응접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방금까지 환영회를 연다고 이래저래 복잡했기에 사용할 수 없었다.

“자리가 이런데 괜찮으세요?”

“물론이죠.”

강당 의자에 앉은 정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말투부터 자세까지 하나같이 정갈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한텐 약한 편인데, 진희가 내심 생각했다.

“용무는 어떻게 되세요?”

“영입이지요.”

직설적인 진희의 물음에 정인 또한 딱 잘라 대답했다.

“브리온에선 진희 씨의 행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흐음, 진희는 고개를 돌려 카온에게 손짓했다. 차를 내오란 뜻에, 카온이 잠시 정인을 바라보다 바깥으로 향했다.

“소식이 빠르네요. 전 제 행보를 어디다 광고한 적도 없었는데.”

“아무렴 금강만 할까요?”

금강이라, 거기까지 알고 있단 말이지.

진희가 팔짱을 끼며 정인을 바라보았다. 정인은 시종일관 웃는 낯이었다. 현성과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던 게, 현성이 본심을 숨기기 위해 웃는 타입이라면, 이쪽은 정말 순수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순진한 웃음에 정중한 태도라, 진희가 껄끄러워하는 타입이었다.

“미노타우로스를 상대했던 그 강인함, 그리고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몸소 앞장서는 정의로움, 모두 브리온이 생각하는 헌터의 청사진이었습니다.”

“미노타우로스랑 싸운 건 우연이었고, 저 살자고 덤빈 거예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군요. 의도가 어떻든 사람을 구한 영웅임은 사실입니다.”

“정의감 같은 것도 없고요.”

“모든 영웅이 선한 것만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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