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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52화 (52/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52화

[테- 세우스-!]

내 이름은 그게 아냐.

자신의 악몽을 부르짖는 미노타우로스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진희의 칼을 피하지 못했다.

[아악-!]

섬광은 그대로 미노타우로스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더 이상 피할 길은 없었다. 미간, 이마, 코를 파고들어 목까지, 이내 가슴을 베어버리는 칼은, 결국 미노타우로스의 상반신을 정확히 이등분했다.

수천 년 동안 기록되었던 소(牛) 괴물 미노타우로스는, 그렇게 또다시 인간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 * *

“말도 안 돼…….”

출혈이 끊이질 않는 어깨를 부여잡고, 겨우 통로를 기어 나온 레인이 경매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신화의 괴물인 미노타우로스가 죽어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앞에서 미노타우로스의 피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누워버린 진희의 모습도 같이 보였다.

부단장이 알려준 미노타우로스의 수준은 가히 1급 던전의 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건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죽일 수 없으며, 마치 인간처럼 체술을 사용할 줄 알았고, 공격력과 방어력이 모두 출중한 괴수였으니까.

정교하게 만들어진 레이드 파티가 아니라면 상대조차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해내고야 말았다. 구색만 맞춘 조건과 줄타기에 가까운 계획을 통해서, 저 괴수를 기어코 쓰러뜨렸다.

운명, 영웅, 세계, 성벽.

부단장이 말했던 단어들이 새삼 떠올랐다.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피 웅덩이에 빠져 눈을 감은 저 괴물 같은 작자가 우리들의 숙적이라고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약 저자가 숙적이라면-

“……찾았다.”

레인은 고개를 들었다. 테라스의 난간에 한 사내가 올라와 있었다.

여우처럼 눈꼬리가 내려간 사내, 신현성이었다. 그는 레인을 무감정한 눈으로 내려다보다, 가까이 다가왔다. 그도 몸이 성하지는 않았지만 다 죽어가는 레인에게 겁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인상착의가 똑같네. 테러리스트.”

“……하.”

레인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현성을 보고 비웃었다. 지금껏 우리의 그림자 하나도 밟아보지 못한 무능한 인간들이, 자기 동료를 미끼 삼아 기회를 만든 주제에 뻗대고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너희가 아니야. 레인이 팔을 들었다. 그의 자랑인 기생충 마법이 현성을 뒤덮으려던 순간.

“이제야 잡았군.”

“……!”

모든 마법이 캔슬되었다. 시동이 시작된 마법을 캔슬하는 건, 급수가 서너 계단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자신과 저 작자의 차이가 그 정도나 날 리 없다. 그제야 레인은 그가 차고 있는 팔찌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

마정석이었다. 그것도 무식하게 마나를 뿜어내도록 설계한 고가의 소모성 아티팩트. 초마다 몇백만 원이 날아가는 그 무식한 장비를 들고서 현성이 다가왔다.

“듣자 하니 게이트를 사용해서 이동한다고 하더군.”

그걸 방지하기 위해 마법을 방해하는 아티팩트를 끼고 온 것이다. 팔찌는 주위의 마나를 흐트러뜨려 마법을 캔슬시키는 아티팩트였다.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에 레인이 식은땀을 흘렸다.

현성은 가까이 다가와, 레인의 목을 내리눌렀다. 이미 출혈 때문에 힘이 빠진 그는 손쉽게 제압되었다.

“개, 자식…….”

“형사소송법 제212조, 그리고 헌터 범법 시행령에 의거하여, 영장 없이 현행범을 체포합니다.”

묵비권이나 변호사 등, 의례적인 설명을 덧붙이며 현성이 레인의 목을 졸랐다. 동시에 팔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감촉에 레인이 눈을 감았다.

마취제다.

“죽이…….”

마지막까지 저주의 말을 퍼부으려던 레인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이내 완전히 움직임을 멈추자, 현성이 천천히 목에 팔을 풀고 레인의 후드를 벗겼다.

창백한 피부와 손질하지 않은 더벅머리, 그리고 잠깐 보인 회색 눈동자. 생긴 것만 보면 도저히 사람을 살해하려 하는 테러범이라고 보이지 않을 외모였다.

우선 일단락되었나. 현성은 주머니에서 남은 와이어를 꺼내 레인을 묶었다.

레인이 기절함과 동시에 결계 또한 해제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쁨 어린 비명을 들으며 현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 *

언제나 뒷수습이 힘든 법이다.

결계가 사라지자마자 경찰과 헌터들이 들이닥쳤고, 내부의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한 대대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경매장에 있던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으며, 온갖 언론사에선 헬리콥터까지 나와 주변을 촬영하고 있었다.

가장 눈길을 받는 건 역시 진희 일행이었다.

특히 경매장에 있던,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진희를 영웅 보듯이 쳐다보았다.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은빛 실에 휩싸인 무대 위에서, 로켓처럼 뛰어올라 혜성처럼 떨어져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린 장면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평생 기억에 남을 명장면이었다.

많은 사람이 고맙다고 인사하려 다가왔지만, 진희는 이미 대답할 기력이 없었다.

“발목이 나가서 못 걷겠어요.”

“업혀.”

억지로 마력을 사용하면 걸을 순 있겠지만, 피곤해서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양쪽 발목은 관절이 나가버렸는지 힘조차 줄 수 없었다. 돌아가면 카온이 또 어지간히 뭐라 그러겠다, 진희는 작게 웃었다.

그런 진희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던 서한이 등을 돌린 채로 주저앉았다. 두 팔을 뻗어 그의 등에 업힌 진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부상자 운송 수고하세요.”

“…….”

그 말에 서한은 잠시간 말이 없었다. 경매장을 나가려 하자 많은 사람이 진희를 보려고 달라붙었지만, 그나마 상태가 멀쩡한 루카스가 나서서 그들을 막았다. 서한이 눈짓으로 루카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계단을 올라갔다.

“고생했어.”

“……뭘요.”

“그리고 미안하다.”

계단을 올라가느라 자세가 뒤틀려, 더 높이 진희를 업고선 서한이 말했다.

“내가 선배인데 짐만 돼서.”

“…….”

선배라, 진희는 쓰게 웃었다. 진희가 그의 인생보다 긴 세월을 싸워왔다는 사실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서한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그는 분명 최상급 헌터이며, 던전에 관해선 진희보다 긴 경력을 가졌다. 그런 그가 이번 전투에선 시간을 버는 것과 한차례 빈틈을 만드는 것 말곤 크게 기여한 게 없었다.

물론 진희는 서한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는다. 서한이 제물이 되었더라도, 저 미노타우로스는 사냥당했으리라 장담할 수 있었다.

무력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무력 수준만 놓고 본다면, 자신들은 진작 저 괴수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파티의 구조조차 잡혀 있지 않은 헌터들과 드래곤마저 뛰어넘는 신화의 괴수, 누가 보더라도 승산은 뻔했다.

그녀가 본 것은 마치 역전의 용사처럼 단단한 심기(心器)와 불굴의 특성 때문이었다. 서한은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다.

진희는 서한의 어깨에 두른 팔을 들어, 그의 가슴을 토닥거렸다.

“뭐야?”

“음, 근육 보니까 살은 안 빼도 되겠네요.”

“…….”

푸핫, 서한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 나름대로 위로였고, 그걸 알아들은 서한은 다른 이들이 보고 있음에도 폭소하고 말았다.

“이쪽, 이쪽 좀 봐 주세요-!”

“괜찮으십니까!”

“내부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쏟아지는 플래시와 질문들을 뒤로 한 채, 진희와 서한은 그들만의 농담을 주고받으며 걸어갔다.

* * *

일행은 모두 병실로 옮겨졌다. 일반 진료실엔 이목이 쏠리니, 개인 병실에서 진료해야 한다길래 4인실에 일행 모두가 모이게 되었다. 모인 일행은 서한과 진희, 현성과 루카스였다.

모두 어디 크게 찢어지거나 다친 곳은 없어서 수술까진 가지 않았다.

서한의 경우 찢어진 머리를 스킨 스테이플러로 작업했다. 금이 간 팔이나 늑골 골절은 다소 위험했지만, 일행 중 회복력이 가장 뛰어난 서한은 진통제로 충분하다 답했다.

현성은 잔 상처들에 연고를 바르고, 마력 회복을 위해 마정석을 병실에 배치하였다. 어깨 관절이 비틀렸지만 부목을 대고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치료를 마무리했다.

느지막이 합류했던 루카스는 큰 상처가 없었다. 그는 입실을 돕겠다며 나서서 순식간에 병원 입원 처리를 마무리하더니, 어째서인지 병실에 환자처럼 자리 잡았다. 왠지 자신을 빤히 관찰하는 게 느껴져서 진희는 그의 눈동자를 애써 회피했다.

가장 상처가 많은 건 역시 진희였다. 구급차에 실려 왔을 때 발목은 인공 관절을 집어넣느냐 마느냐 얘기가 나올 정도였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두 시간가량이 지나자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었다.

진희는 서한처럼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수술을 거부했다. 대신 발목과 무릎 쪽에 부목을 대고, 상처를 입은 가슴팍도 붕대를 감았다.

“진짜 환자네.”

자신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으면서 서한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태연하게 침대에 기대고 있던 진희가 붕대를 감은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음~ 여기구나!”

그때 병실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찾아온 건 괴짜, 니케였다. 니케의 뒤편에 있던 제이미가 쓴웃음을 하고 따라 들어왔다.

“병실은 지금 출입금지입니다. 멋대로…….”

“아아, 그런 치사한 소리 하지 말구우, 우리 친구잖아, 그렇지?”

루카스가 니케를 막아서려 했지만, 니케는 진희에게 윙크를 하며 병실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니케는 서한과 현성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고서 진희의 침대까지 다가와, 뒤로 숨기고 있던 꽃다발을 내밀었다.

“드라마 보니까, 병문안 때는 꽃을 들고 가더라! 어때, 좀 예뻐?”

알록달록한 꽃다발은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진희는 그것을 받고 빤히 내려다보았다. 생화인지, 줄기와 잎사귀에서 신선한 차가움이 느껴졌다.

“몸 상태는 괜찮지? 사실 미노타우로스를 쓰러뜨린 ‘영웅’한테는 특전이 주어지거든. 보물이 없는 대신 주는 선물인데, 그 특전을 받으면 마력 회로와 활력이…….”

“야.”

“……응?”

니케가 신나게 떠들기 시작하자 진희가 작게 웃으며 말을 잘랐다.

니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희를 바라보았다. 동그란 눈매와 짙은 녹색의 눈동자가 모여, 마치 호기심 강한 작은 동물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니케의 성격이 대충 짐작이 갔다.

이 녀석은 전적으로 쾌락주의자다. 도덕이나 배려는 존재하지 않고, 그저 즐거운 일에 몰두하는 아이와도 같다.

“너 알고 있었지?”

“뭐가아?”

“벽화에서 괴물 튀어나올 거란 거.”

“아하.”

니케가 ‘그 말이었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고 있었어. 난 예지 능력이 있거든.”

하하. 진희가 짧게 코웃음 쳤다.

병실 안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현성은 날카로운 살기가 담은 눈으로 니케를 바라보았고, 서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니케를 가로막는 제이미를 살폈다.

루카스만이 이게 무슨 일인지 몰라, 열려 있던 문을 닫았다.

“…….”

왜 그걸 알면서도 막지 않았나,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해 본 적은 없나, 그런 도의적인 질문은 할 필요조차 없었다.

‘재밌으니까’ 벌인 일이겠지. 지금까지의 괴짜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직접 당해 보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진희는 비죽이는 입꼬리를 막지 않았다.

“너 말이야, 나한테 관심 있는 이유가 뭐야?”

“그야 닮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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