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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50화 (50/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50화

“네.”

공략 방법이란 공격에 대해서만 설정하는 게 아니었다. 유리한 필드, 조건을 맞추는 것도 중요했다.

“전승을 정리합시다. 미노타우로스는 미궁에서, 실타래를 든 테세우스에게 쓰러집니다. 여기서 미노타우로스와 테세우스는 조건이 충족되었어요. 문제는 미궁과 실타래인데……. 미궁은 어쩔 수 없다 생각해도, 실타래는 준비할 수 있습니다.”

현성은 다 박살 나버린 경매장의 단상을 가리켰다.

“……아 그러고 보니, 와이어가 있다고 했던가요?”

“네, 에르텔 금속을 사용한 와이어가 출품되었었죠.”

전형적인 마력 금속 중 하나인 에르텔은, 내구성은 강하지 않지만 마력의 감도가 매우 높아 드물게 이용되는 금속이었다. 가공이 어려워서 그렇지, 와이어 수준으로 얇게 뽑힌 에르텔이라면 함정이나 속박용으로도 유용했다.

현성은 차분하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진희는 에르텔 와이어를 이용하여 미노타우로스를 상대한다는 것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내 사용처를 듣고는 납득했다.

현성은 와이어를 통해 경매장 안에 필드를 만들 셈이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수준의 얄팍한 계획이었지만, 적어도 개연성은 있었다.

“얼른 좀 도와, 이것들아!”

“체중도 나가셔서 튼튼하신데 좀 버텨보세요!”

“근육이라 했지!”

야! 필사적으로 공격을 회피하던 서한이 외쳤지만, 현성과 진희는 공격에 가담하지 않고 단상 쪽으로 달려갔다.

* * *

‘강하군. 하지만 부족해.’

경매장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무리 중, 가장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인물이 있었다.

짧은 금발을 뒤로 넘긴 30대 초반의 사내, 루카스 노이만은 팔짱을 끼고 미노타우로스와 싸우고 있는 일행을 살폈다.

그는 용병업과 무기 매매가 주력상품인 기업, ‘볼드만’의 이사로 무기로 사용될 만한 아티팩트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경매에 참가한 참이었다.

본인도 독일의 A급 헌터로 이름난 인물이었으나, 미노타우로스를 본 순간 일행을 이끌고 후퇴했다.

“괘, 괜찮겠나, 루카스? 저들이 쓰러뜨릴 수 있겠지?”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저도 참전한다면 승산이 더 올라갈…….”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넨 날 지켜야지!”

루카스는 도망친 무리 중에선 그나마 강한 헌터에 속할 테지만, 곁에 있던 이 인물 때문에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페도라를 깊게 눌러쓴 중년의 남자는, 볼드만의 대표 거래처이자 중국의 대기업인 청량의 독일 지부장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무기와 헌터를 구입하고 있는지 잘 알기에, 루카스는 지부장의 말을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볼드만 기업의 상장은 사실상 중국과의 거래 덕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더라도 기업을 위해선 이 인간만은 살려야만 했다.

‘내가 나선다면…….’

승산이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전면에 나선 세 명의 실력은 놀라웠다. 비록 마법사인 그였기에 전사의 수준은 쉽사리 예측할 수 없지만, 속도만 보더라도 그가 보아온 자국의 최상위 헌터와도 비견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마저도 상처 하나 제대로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상위 등급의 몬스터일수록 마력 저항력이 높다는 걸 생각해 보면, 탱커조차 없는 저 전장에 자신이 끼어드는 것부터가 민폐일 수도 있었다. 괜히 자신에게 어그로가 끌리면 진영이 무너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증원은……. 오지 않나.’

저 일행에 제대로 된 탱커 한 명만 있더라도 상황은 다를 텐데. 루카스는 주머니에 있는 폰의 화면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전파는 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지하층을 반듯하게 에워싼 게이트 때문에 누구도 들어올 수 없었다.

천장도 막혔다. 혹시 몰라 천장을 향해 마법을 사용해 보았지만, 천장의 높이에 맞게 펼쳐진 게이트 때문에 천장엔 조금의 흠집도 나지 않았다.

수많은 던전을 돌파해왔던 그였지만, 이번 전투만큼은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저 일행이 지금껏 버티고 있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음?”

전투는 장기전으로 돌입했다. 어떻게든 지부장을 설득하여 전투에 참전하려고 말하려던 순간, 루카스는 단상을 향해 돌진하는 두 헌터를 관찰했다.

그들은 단상 뒤편, 경매 물품이 있던 자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무기로 쓸 만한 걸 찾고 있나? 하지만 이번 경매에서 괜찮은 무기는 많지 않았다. 하물며 저런 괴수를 상대할 정도의 무기는…….

“그렇군.”

“으, 응?”

루카스가 그들이 들고나온 물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왜 미노타우로스를 한 명이 상대하게 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단상으로 향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들이 들고 온 것은 와이어였다. 에르텔로 만들어진 와이어. 그 물건을 본 순간 무엇을 하려는지 단숨에 눈치챘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도 헤쳐 나갈 탈출로를 찾고 있군.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감정이 드러난 그들의 얼굴을 보며 루카스가 앞으로 나섰다. 이때까지 숨어 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던 참이었다.

“자, 자네! 어디 가나!”

“저들이 지면 저희 차례입니다.”

“즈, 증원군이 올 때까지라도 날 지켜야……!”

“죄송합니다, 저도 헌터라서요.”

루카스는 차고 있던 목걸이를 벗어 지부장에게 건네주었다.

“호부(護符)입니다. 괜찮은 방어 마법이 걸려 있으니,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 계세요.”

그리고 주머니에서 오브를 꺼내 들었다. 형상화한 무기는 커다란 수정구가 달린 지팡이. 미약한 힘이나마 저들을 돕고자, 루카스가 전장에 합류했다.

* * *

“저 미국 아저씨는 또 누구래요?”

진희는 와이어를 현성에게 넘기고, 서한을 돕기 위해 달려가려던 참이었다. 웬 훤칠하게 생긴 남성이 지팡이를 들고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지팡이에 감도는 마력을 보니 마법사인 듯했다.

“도와주려고 왔습니다.”

“이제 와서?”

짧은 영어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던 진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자, 현성이 그녀를 대신하여 남성과 대화를 나눴다.

“마법사이십니까?”

“A급 헌터입니다. 도움이 되고자 하는데, 그 와이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명석한 마법사라서 그런지, 현성이 들고 있는 와이어로 무슨 일을 할 건지 눈치챈 것 같았다.

“진희 씨.”

“네?”

“전 이분하고 필드를 만들겠습니다. 마법사라고 하시니, 에르텔 사용법도 잘 아실 거예요.”

현성은 차분하게 작전을 설명했다. 왜 이제 와서 돕겠다고 나섰는지 그 저의는 알 수 없었으나, 일단 마법사가 한 명 는 것만으로도 전략의 폭은 꽤나 확장된다.

서한의 비명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진희가 현성의 작전을 경청했다.

진희는 작전을 수긍했지만, 현성은 본인이 말하면서도 걱정 어린 표정이었다. 유일한 어태커인 진희에게 큰 부담이 되는 작전이었다. 가장 위험한 포지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상황이다.

하지만 진희는 군말하지 않았다.

“좋아요, 가보죠.”

그저 검을 강하게 움켜쥐며 앞으로 나섰다.

“…….”

현성은 그 모습을 보며 뭐라 말을 하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그나마 효율적인 작전이었다. 평소에도 진희에게 묘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던 그는, 괜히 그녀를 사지(死地)에 몰아넣는 기분이 들어 말 한마디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굉장한 사람이군요.”

그 모습을 보던 루카스가 중얼거렸다. 그가 보아도 이 작전에 진희의 역할은 그야말로 제물이었다. 실패하면 먼저 죽을 포지션에 저렇게 당당히 지원하는 것을 보며 감탄했다.

“대단한 헌터죠.”

그 말에 현성이 작게 대답하며 말을 수정했다.

십 년 동안 헌터로서 활동한 자신보다 지금의 진희가 더 경력자로 보이는 건 왜일까.

* * *

“많이 기다렸어요?”

“…….”

서한이 징글맞다는 얼굴로 진희와 교대했다. 머리가 깨지고 땅을 구른 서한의 얼굴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럼에도 별말을 하지 않는 건, 진희와 현성이 확실한 공략법을 가져왔으리라 믿기 때문이었다.

“현성 씨에게 설명 들어요. 이제부터 제가 상대할게요.”

“괜찮겠어?”

맷집이 좋은 서한마저 이 꼴이다. 10분만 늦었다면 그도 저 도끼에 양단된 수많은 헌터 중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서한의 걱정에 진희가 손사래를 쳤지만, 안심이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진희보단 서한 쪽이 거대 몬스터와 싸운 경험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 탱커와 딜러를 번갈아 할 수 있는 실력도 그렇고, 그가 가진 검술이나 체술 자체가 몬스터를 상대로 개발된 것들이다 보니, 진희보다 요령 있는 전투가 가능했다.

반대로 진희는 몬스터를 잡아본 경험보다는 사람과 싸운 전적이 훨씬 많았다.

서한은 그녀가 전쟁을 잘하는 것이지, 사냥을 잘하는 사람(헌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서한의 걱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진희는 이길 수 있는 전투를 앞에 두고 내빼는 성격이 아니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예요?”

진희가 미노타우로스를 바라보았다. 거친 콧김을 내뱉는 괴물의 앞에서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피나 닦고 오세요. 잘생긴 얼굴 망가지니까.”

진희의 말에 서한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진희가 위험할 수도 있단 생각에 그녀의 앞을 막아서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 한복판에선 그녀라면 이길 수 있으리란 직감이 들었다.

서한은 단 한 번도 진희의 전력을 본 적이 없었다.

머리의 출혈이 더 심해지기 전에 상처 부위를 감싸고, 서한이 현성 쪽으로 빠르게 도망쳤다. 그리고 현성에게 지혈을 받으며 계획을 전달받았다.

“…….”

계획은 그가 처음에 구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와이어를 이용한 ‘실타래’ 사용, 그리고 ‘테세우스’ 역할을 진희에게 맡기는 것.

서한이 생각했던 계획과 다른 점은, 현성의 계획은 진희에게 부담이 너무 크게 간다는 것이었다. 서한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지만, 이내 차분하게 생각해본 그도 반박을 하지 않았다.

진희에게 위험부담을 지우지만, 그만큼 성공확률이 높아 보이는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시작하자.”

서한이 시간을 벌기 위해 미노타우로스와 대전을 시작한 진희를 보며 말했다.

적어도 20분 안에, 모든 준비를 끝마쳐야 했다.

* * *

“이쪽이야 이쪽!”

서한처럼 어그로를 효과적으로 끄는 방법은 모르지만, 적어도 속도 하나만큼은 진희가 그보다 앞섰다. 그녀는 과장스럽게 팔을 흔들며 미노타우로스를 불렀다.

미노타우로스는 지금껏 자신이 상대하던 자들이 어디 갔는지 찾아보려고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때마다 진희가 다가와 검을 휘둘렀기에 결국 타깃을 바꾸었다.

현성과 루카스가 작정하고 은신을 시작하자, 미노타우로스의 눈으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쾅-!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급해진 건 아니었다. 그간 그랬던 것처럼, 미노타우로스는 천천히 진희를 압박하며 다가왔다. 경매장의 구석진 자리로 진희를 몰아가며, 빠른 기동성을 펼칠 수 없도록 만들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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