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와 헌터의 겸직-47화 (47/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47화

니케가 흘끔 제이미를 바라보았다. 제이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지금 가지고 있는 현금이 없잖아.”

“으응…….”

“경매가 끝난 다음이라면 몰라도.”

제이미의 말에 현성이 의문을 표했다.

“이번 경매에 물건을 올렸나요?”

“응, 제법 괜찮은 걸 두 개 정도 올렸어. 입장권도 경매 참가자보다는 증여자 자격으로 받은 거거든.”

그렇기에 경매가 끝나 대금을 받기 전까진 니케는 지금 한 푼이 아까운 빈털터리 신세란 이야기였다.

“저번에 사기 친 일 때문에 손해배상을 하느라…….”

제이미의 한숨 어린 말에 니케가 입을 비죽 내밀었다. 사기라 함은 이번에 불법 아티팩트를 팔아넘기다 생긴 일을 말하는 듯했다.

그래도 손해배상이란 걸 하긴 하는구나, 진희는 새삼스럽단 표정으로 니케와 제이미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둘의 관계가 대충 짐작이 갔다. 니케가 사고를 치거나 일을 벌이는 역할이라면, 제이미는 그걸 수습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올린 물건이 뭔데?”

“그건…….”

니케가 대답하려던 순간, 경매장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단상에 조명이 집중되고, 사회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올라왔다.

[좋은 밤입니다, 지금부터 경매 시작을 위하여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주변이 조용해지기 시작하자 남성이 경매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경매는 테이블에 있는 버튼을 이용하여 입찰을 진행할 수 있으며, 경매가 끝남과 동시에 대금 거래가 이뤄진다는 이야기였다. 아티팩트가 많다 보니 안전을 위해 주소를 말해주면 직접 배송을 해주겠다, 따위의 말을 덧붙이며 사회자가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우선 첫 물품입니다. 아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군요, 이것은 중국의 2급 던전에서 나온 각룡의 발톱을 갉아 만든 검으로…….]

갖은 아티팩트가 경매에 올라왔다. 아티팩트에 큰 관심이 없던 진희도 눈길이 갈 정도로 특이한 물품이 많았다. 드러나는 마력의 수준은 대단치 않았지만, 확실히 경매라는 특성상 희소성 높은 물품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니케는 연신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물품들을 구경했고, 제이미는 차분히 테이블 위의 음료를 마시며 관람했다.

또 현성이 기감을 넓혀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게 뚜렷하게 느껴졌다.

아티팩트가 거래가 되는 경매장이다 보니 헌터로 추측되는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보였다. 무력의 수준만 따지자면, 이 경매장 안은 뉴욕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한 곳이다.

진희는 턱을 괴고 단상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직까진 별다른 징후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평온하게 끝나면 좋으련만, 그녀의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 * *

경매의 마지막 물품은 시작 전부터 이목을 끌던 벽화와 깃털 펜이었다.

크레타 왕국을 그려놓은 돌 벽화와, 신혈이 묻었다는 깃털 펜은 단상 위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탄성을 끌어냈다. 그중엔 진희도 있었다.

진희가 보기에도 저 물건들에 들어 있는 마력량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넘쳐흐르다 못해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끈적끈적한 마력이 단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근데 저게 신물(神物) 맞아?’

신의 피가 묻었다는 깃털 펜에선 어마어마한 저주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력의 색을 유독 잘 구분해내는 진희가 보기엔, 펜이 아니라 배신의 비수나 사형장의 도끼 같은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드디어 여러분께 선보입니다! 크레타 왕국의 성벽에 각인되어 있었던 벽화와, 신(神) 아테나가 썼다던 펜! 비록 역사를 증명할 수 없습니다만, 숱한 감정가들이 그만큼의 신비와 내력이 있으리라 단언했던 두 물품입니다!]

그리스 신화 시대의 물품은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좋다. 과거에 정말 신이 존재했는가에 대한 고찰은 뒤로하고, 인지도가 높은 만큼 강한 마력을 품은 아티팩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펜과 벽화가 당최 어떤 쓸모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온갖 수집가들과 헌터들의 눈엔 탐욕의 빛이 엿보였다.

[사실 하나씩 경매를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만, 물건을 맡기신 회원님의 희망 사항이 있어 이 두 물품은 세트로 경매에 오르게 됩니다. 시작 가격, 20만 달러부터 시작합니다. 그럼 셋, 둘, 하나.]

사방에서 버저 소리가 울렸다. 금액은 단숨에 배가 되었고, 다른 경매 물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금액이 측정되기 시작했다.

“저 물건들 말이야, 사실 소개된 것과 이름이 다르다?”

“뭐?”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니케가 진희의 곁으로 다가와 귓속말했다.

“저 벽화는 크레타 성벽의 벽화가 아니라, ‘미궁(Labyrinthus)’의 벽에 걸려 있던 벽화야.”

“미궁?”

“그래, 미궁. 잘 보면 풍경화 안에 거대한 뿔을 가진 사람이 보이지. 저게 바로…….”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다. 그리스 신화의 대표적인 괴수 중 하나이며, 불우한 탄생 배경을 가진 크레타 왕의 아들.

진희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벽화 구석에 벽을 등지고 선 거대한 사내의 모습이 보이는 듯도 했다.

“저 벽화는 아마 미궁의 희생자 중 한 명이 각인한 거겠지. 미궁을 설계했으나 갇혀버린 다이달로스가 조각한 걸 수도 있고.”

“잘 아네.”

“그야 저거 내가 출품한 물건이거든.”

니케가 진희의 어깨의 손을 올렸다.

“다이달로스의 미궁은 지금은 그 흔적도 찾아볼 수 없어. 하지만 저 벽화만은 실존했지.”

저 벽화는 얼마나 많은 희생자의 최후를 보아온 걸까? 그리고 미노타우로스는 저 벽화의 앞에서 몇 명의 희생자를 죽였던 걸까?

그제야 벽을 등지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벽 너머로 탈출하고 싶어 하는 자세로 보였다.

“……?”

그리고 그 모습이 어째서인지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네가 가지고 있던 그 수정구 말이야. 그 마감 실력은 대단한 거긴 하지만, 그런 메커니즘을 가진 아티팩트가 드물지만 없는 건 아니야.”

“잠깐만요, 진희 씨. 저 벽화…….”

경매 가격은 끝없이 상승한다. 유력자들의 탐욕이 경매장을 가득 채운다.

“특정한 조건이 맞춰지면 게이트를 생성하는 아티팩트도 존재하거든.”

“……너, 설마.”

“궁금하지 않아? 신화의 괴물이 대체 얼마나 강할지. 난 너무 궁금해서 잠도 못 잤어.”

니케는 소름 끼치는 웃음을 지었다. 진희는 고개를 돌려 니케를 바라보았다.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말하려던 그때.

[다음 입찰 없습니까! 종료까지……. 어?]

단상의 위, 천장과 근접한 곳에서 거대한 게이트가 열렸다.

게이트가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 주변 공간이 왜곡되고 던전의 마력이 흘러나온다. 그 게이트의 안에서, 갈색의 털에 휩싸인 거대한 팔이 나타났다.

[저, 저…….]

그리고 그 팔은, 주먹을 쥐고 단상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주먹은 사회자의 머리를 향해 정확히 내리꽂혔다.

쾅-!

“꺄, 꺄아아아아아!”

“으아아악!”

단상은 단숨에 피범벅이 되었다. 사회자의 신체는 그야말로 압축이 되었고, 주변 테이블을 향해 혈액이 터져나갔다.

아비규환이다. 주변에 있었던 일반인들은 비명을 질렀고, 몇 있던 헌터들은 당혹하고 있음에도 무기를 꺼내 들고 응전을 준비했다.

그리고 게이트가 완전히 전개되었다.

“…….”

바닥부터 천장까지 닿는 거대한 게이트에서, 괴수가 걸어 나왔다.

갈색의 털, 뿔을 가지며, 소의 머리를 가진 인간 형태의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한 손에 거대한 도끼를 들고서 경매장에 나타났다. 압도적인 마력이 숨결에서 느껴진다. 마치 저번에 만난 드래곤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듯한 압박감, 헌터들마저도 그 힘에 짓눌려 한마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을 때.

[우어어어어-!]

미노타우로스의 도끼가 주변을 휩쓸었다.

* * *

미궁의 벽화를 이용해 던전, 게이트를 생성하는 조건은 두 가지.

첫째, ‘아테네’의 깃털 펜과 벽화가 같이 있을 것.

두 번째, ‘희생자’가 될 나이 어린 소년과 소녀가 7명씩 주위에 준비되어 있을 것.

신화 속의 미노타우로스는 9년에 한 번씩 아테네에서 바친 소년과 소녀를 잡아먹었다고 전해진다.

이 조건을 부단장은 알고 있었다.

‘게이트를 열어드리겠습니다. 마야 씨는 일이 있으니 갈 수 없지만, 아티팩트를 드릴게요.’

게이트 안쪽엔 부단장이 ‘만들어낸’ 소년과 소녀 7명이 들어 있었다. 폴리모프 아티팩트를 통해 경매장에 침입한 레인은, 경매가 시작된 직후 게이트에서 아이들을 꺼내 경매장 구석으로 향했다.

위치는 2층, 본래라면 VIP들을 위한 음료를 옮기는 통로에 자리 잡은 레인은 벽화가 단상에 오르자마자 의식을 실행시켰다.

의식은 복잡하지 않았다. 14명의 아이를 상처 입혀, 혈액이 나오도록 만들면 되었으니까. 경매의 막바지, 레인은 아이들의 목덜미 부근에 작은 상처를 입혔고, 그와 동시에 조건이 충족되어 미노타우로스가 소환되었다.

경매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미노타우로스의 힘은 2급 던전의 보스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오히려 신화 때의 괴수였기에 온갖 신비와 섭리로 무장하고 있어, A급 헌터라고 해도 감히 나설 수 없었다.

역할이 정해진 레이드 파티가 아닌 이상에야, 제아무리 강력한 헌터라도 보스급 몬스터에겐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도, 도망쳐!”

“호위, 호위는 어디 있나!”

미노타우로스의 도끼질 한 번에 서너 명의 사람이 양단되었다. B급 헌터로 보이는 무리가 호위대상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섰지만, 제대로 된 장비도 하지 않은 채론 미노타우로스의 도끼를 막을 수 없었다.

초인이라 칭송받던 헌터마저도 허수아비처럼 파괴된다.

“히, 히이익!”

단숨에 단상 아래를 쓸어버린 미노타우로스를 보며 레인이 작게 웃었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저 정도의 힘을 가진 괴수라면 제아무리 진희라고 해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출구만 봉쇄하면 된다. 이 건물에서 나간 후, 부단장이 준 결계석을 발동시켜 내부를 밀폐시키자.

탱커와 딜러, 보조가 갖춰지지 않은 진희 일행은 미노타우로스 일행에게 사냥당하리라 생각했다.

레인은 곧바로 게이트를 다시 열어 아이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상황을 보기 위해 테라스에서 고개를 삐죽 내밀어 진희가 있는 부근을 내려다보았다.

그녀 또한 당황하고 있겠지, 얄팍한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관찰이었으나.

“……아.”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말도 안 돼.’

다시 고개를 집어넣어야 했으나, 그 강렬한 눈길에 레인은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자신은 현재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폴리모프, 변신을 한 상태였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들킬 리 만무했다. 그러나 서진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았다.

역시 너였네.

서진희의 분홍빛 입술이 달싹거렸다.

레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 쳤다. 서진희가 조금의 웃음도 없이, 똑바로 레인을 바라보고 있다.

혼란한 경매장을 뚫고 서진희의 살의가 그의 목을 졸라온다.

도망쳐.

그녀의 살의가 형태화하기 직전, 레인은 망설임 없이 뒤로 돌아 도망쳤다.

0